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한가위에 가위에 눌린 기분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말장난같기도 합니다. 추석 한가위의 가위와 우리가 가위에 눌린 기분이라는 가위는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즐겁고 유쾌했으면 하는 명절에 느끼는 기분이 청량한 것이 아니라 뭔가 후텁지근하고 무거운 기분을 함축적으로 하는 말이겠지요. 단지 역대급 폭염의 지속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잠을 제대로 이루기도 힘들고 에어컨에 의지해 겨우 잠을 들었다가고 뭔가 불안한 마음에 금방 잠에서 깨기 일쑤입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야말로 편한 구석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주변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된 듯 합니다. 명절때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의 표정도 어둡습니다. 손에 든 선물보따리도 작아졌습니다.
이번 추석때 날씨는 정말 역대급입니다.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추석때 열대야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추석이란 바로 가을 저녁이란 뜻인데 그속에는 청량한 바람이 불고 일년가운데 가장 편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낮에도 35도까지 올라갑니다. 밤과 새벽에도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에어컨 없이는 잠을 청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벌써 몇달째 에어컨에 의존하다 보니 에어컨 중독이 된 듯합니다. 날씨가 편치 않은데 개개인의 기분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전기값 폭탄 고지서 받을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그래도 추석은 추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추석은 너무 썰렁합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계층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상여금도 받고 회사로부터 추석 선물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그런 분위기가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들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명절선물을 소개한 사진입니다. 나주 배가 여러개 담긴 선물 박스 한 상자 사진을 올리면서 사측이 배 한 상자를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자속 배를 여러 직원이 나눠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컵 라면 한 개와 작은 초코바를 추석 선물로 받았는데 해당 회사 사장은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 세태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뒷맛이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직장인들 가운데 40%는 추석 상여금을 받지 못했다는 조사도 나왔습니다. 올들어 6월까지 체불임금만도 사상 최대 규모인 1조 4천여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올해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주부들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합니다. 장바구니 물가가 너무 올랐기 때문입니다. 과일값부터 채소값 육류 생선류 할 것없이 모조리 급등했습니다. 물론 기후탓도 있지만 배추 한 포기에 2만원을 호가하고 생선류값도 20%이상 올랐습니다. 오르지 않은 것은 월급밖에 없다는 소리도 나옵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반면 서울의 아파트값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서울 특정지역만 그렇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언론에도 신고가를 갈아치웠다느니 분양시장에 몰리는 인파라는 보도가 이어집니다. 물론 건설사가 언론사라는 말도 있지만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정부의 관심은 서울 특정지역 아파트에만 쏠리는 모양새입니다. 엄청난 경제난의 태풍이 밀려온다는데 바다에서 여유롭게 요트 즐기는 부류가 참 많아 보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아프면 안된다는 말이 많습니다. 요즘 나라를 짓누르는 의료대란때문입니다. 응급실 뺑뺑이 관련 소식이 연이어 들립니다. 평시에도 그런데 연휴때는 더 하지 않을까 우려스런 시선이 상당합니다. 정부는 별일 없었을 것이라고 큰 소리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료대란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 더 큰 우려입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 여기에 당사자인 의사들까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데 무슨 해결책이 나오겠습니까. 정말 요즘 갑자기 아프다가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전세계 인구전문가들은 이미 한국이 세계 최초의 소멸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냥 심심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닌 정확한 자료에 기반한 예측입니다. 초저출산에 초고령화까지 겹쳐 사회는 점점 노년의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젊은이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노년들의 힘없는 행보만 드러납니다. 언제부턴가 노년의 운전사고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노년층의 범법행위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초저출산 경보까지 내리고 있지만 실제 가임층에서는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식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각 가정에서도 자녀들에게 결혼 이야기 꺼내지 않습니다. 고향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들에게 결혼이야기 언급했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로 취급받습니다. 이런 가운데 추.석 명절 인사를 하러 나온 대통령 내외가 안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 너무 쌩뚱맞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며칠 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한국에서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국내의 모 신문은 이 기사를 인용하면서 대통령이 개를 안고 편하게 누워있는 사진을 게재했습니다. 이 정도로 외신들은 한국 상황을 비웃지만 한국 사회는 그다지 반응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라밖 상황은 어떤가요. 미국은 한달반후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누가 되던 한국에 그다지 유리한 상황은 아닙니다. 일본은 이달말 새 총리가 들어섭니다. 누가 총리로 선출되던 한국입장에서 좋은 여건은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상황도 지극히 불안한 양상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의 입지와 건강상태가 흔들거리면서 북한 붕괴론이후 한반도의 상황이 지금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편하고 한국에 유리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속에 잠을 편히 자는 사람은 정말 강심장이거나 세상에 대해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다 갖추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상황이 오히려 이상한 부류일 수도 있습니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한가위만큼은 제발 가위에 눌리는 꿈을 꾸지 않았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부디 무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4년 9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