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오늘은 드디어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맞는 축제이자,우리 학교 3년 마다 한번있는 규모가 큰
축제이다.외부인 출입은 허용되고 있었으나 학생들의 사복차림으론 규제가 되어 있던 탓에 약간
말들이 많았었는데 올해부터는 학생들 복장규제 역시 사라져서 더 재밌을 거라는 주위의 말들.
어제 방과후 늦게에도 모두들 축제준비에 여념없었다.뭐 나야 그렇게 어려운거 없었다지만 나보다
더 많이 수고한 우리반 아이들 덕분에...우리반 교실은 멋진,식당이 되었다.
남자애들은 별로 호응적이지 않아보인다.여자애들의 주장이 강해서 정해진 탓에 불만이 없어 보이진
않지만 축제인데 다들 재밌게 즐길 의향이 있으니까.게다가 각 반마다 미남미녀 투표,인기투표 등
이번부터는 새로운 거리가 많이 생겨나서 더 재밌을거라는 아이들의 말에...적잖게 기대가 된다.
"그거 여기에 놓는거야,여기 버너 옮겨줘!"
"당근이 하나 모자라.오늘 재료로 전부 다 팔아봐야 본전이란 말야.빨리 가서 사와~"
영 적응 안되는 말들 뿐이지만...이윽고 축제를 알리는듯 굳게 닫혔던 교문이 열리고 문앞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들과 타학생들 많은 사람들이 빠글빠글하게 모여 들었다.
이 근방에는 유일하게 있는 고등학교라 근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도 견학겸 온 아이들 덕분에
정신없는건 선생님들과 아이들.그렇지만 이것 나름대로 재밌는데.
고등학교 축제답지 않게 3년 한번,하루만에 끝나는 축제라 모두들 큰 기대를 하고 또 재미있게
보내려고 노력들이다.그런 이 상황,이 와중에...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기,내가 뭐 할거 없어?"
"됐어~너 아프잖아.그러지 말고 학생 휴게실가서 좀 쉬어."
난 환자가 아니거늘..어쨌든 다 내가 아파서 그런거였으니까 뭐라고 다른 말도 못하겠구,그냥 다른
반이나 기웃 거리며 학교를 들쑤셔야 겠다.젠장,처량하게...그보다...신지율은 대체 어딨는거야?
신지율을 포함한 우리반 남자애들 대다수가 아까부터 행방불명이다.
못된놈.이럴때는 같이 있어줘야 할거 아냐.바보라서 혼자 못 두겠다 그런 말 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러니깐...내가 찾아봐야 겠다.이 한심스러운지고.어쨌든 각 반을 돌아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신기한것도 많다.다들 바빠 보이고.그런데 난 왜 이 모양인거야!!좀 쓸쓸하지만 이것저것 바쁜
윤경이를 불러 같이 있기도 뭐하구,만들기에 여념없는 현정이랑 지애를 꼬시기도 뭣하고.게다가
왜 커플들만 이렇게 걸어 다니는건데!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속에 나 혼자 눈에 뛰는것은 아닐까?
"희성아~!"
너무 한심스럽게 다른 반을 기웃 거리고 있던 내 눈에 띈 사람은 다름 아닌 희성이.내가 먼저 희성
이를 보았기 망정이지 희성이가 먼저 날 봤다면 대체 어떻게 보였을것인가.
"아프다더니 괜찮은거냐,그렇게 돌아다니고."
"아우,이제 괜찮다니깐 다들 그래.난 심심해 죽을것 같다구~"
피식 웃어보이는 희성이.헤헷,이렇게 아는 누군가를 만났기에 그나마 처량해 보이진 않았음 좋겠다.
"남자 애들 다 어딨는거야?"
"남자애들은 왜?교실에 없어?"
"응.몇명 빼고 거의다 사라졌어."
"같이 찾아 볼까?"
"응!"
혼자 걷는것 보단 역시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는게 보기에도,기분에도 좋다.어쩐지 혼자 걷는건
굉장히 싫은 일인걸.아무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우리반 남자 애들을 찾는 희성이.
"신희야,희성아!"
급히 뛰어오는 우리반 아이.부반장이다.숨을 헉헉대며 우리를 불러 세운다.그렇게 뛰어올것 까지야.
어쨌든 멈춰선 우릴 보곤 다시 숨을 돌린다.숨 넘어 가겠다,야.
"하아..이거 투표 용지인데...하,기권은 안되거든?거기에 적힌대로 써서 지금 내."
"아,응."
"비밀투표니깐 이름 쓰지말구 반 접어서 내."
부반장이 내미는 종이와 펜을 집어들고 갑자기 복도 한가운데 벽에 대고 글을 쓰게 된 희성이와 나.
가뜩이나 사람도 많은데...어쨌든 부반장이 내민 종이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이게...뭐야!?
우리반 남자얼짱.여자얼짱...성격이 좋은 아이.목소리가 예쁜아이.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무인도에
버려도 다시 돌아올것 같은 아이?이런 투표라...혹여 내가 뽑힐리 만무하잖아?어쨌든 기다리고 있는
부반장을 생각해 내 나름대로 성실하게 적었다.남자 얼짱이라?
"여기."
"응,고마워.대체 나머지는 어딜 가 있는거야!"
희성이와 내가 내민 종이를 받아들고 다시 부리나케 달려가는 부반장..수고하길 바라며 다시 걸음을
옮기는 희성이와 나다.점쳐 주는 반,연극 하는 반,1반부터 10반 모조리 뒤져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신지율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축제 별로 좋아 하는것 같지 않더니 정말 코빼기도 안 비출 생각인가?
"여기두...없네."
"그러게,안되겠다.그냥 우리반 교실 가 있자.오겠지."
"응."
정말...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만 놔두고...못된자식,하여간 이기적이야.어쨌든 다시 교실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뒤에서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
"저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요?"
"네."
처음보는 아이.우리 학교 애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그렇지만 저 교복은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
교문에서 많이 보던 교복이 아니던가.어쨌거나 옆에 희성이가 있는데...
"얘기하고 와.나 먼저 가있을게."
"아,응!먼저 가.곧 갈게."
먼저 교실로 향한 희성이를 뒤로하고 그 아이가향한 쪽으로 같이 걸음을 옮겼다.체육관을 지나서,
인적이 뜸한 체육창고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추는 남자아이.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 까지온거지?
나는 궁금해 죽겠는데 자꾸만 뜸을 들이는 아이.후,아무 말이 없으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저기,조...좋아합니다!"
#57
"조...좋아해요!"
평생 짝사랑만하고 살것 같던 나.아니 짝사랑이라도 한다면 행복하기만 할것 같던 나.그 내가...
난생처음,남자에게.그것도 연하에게...고백을 받았다...얼떨결에 들은 말이라...나조차 당황스럽고
그 남자아이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듯 해 보이는게 이게...웬 떡이냐!!!
그렇지만 나 역시 이 기쁜 상황에서 티를내면 우습겠고...신지율 어딨냐,와서 이것 좀 보란 말이다!
한번도 고백이란걸 받아 본적이 없어서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가면 되나?기분좋고 기쁘긴 해도 받아 들일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금 내겐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그 사람 역시 날 좋아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에,고마워.기쁘다..정말 기뻐.고백 같은거 한번두 못받아 봤거든...그..."
"알아요,누나 어떤 형이랑 서로 좋아한다며요.그냥...고백한건데요.기다려도 되요...?"
이 아인 분명히 내가 유뷰녀란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그렇지만,그렇지만 기다린다니...!?이런
있을수 없는 일인지고.자식,나두 알어,네 맘 다 안다구~그래서 인지 더 기쁘다.정말 어떡하지?
침착,침착...너무 기쁜거...티 내면 안돼.신지율 이놈,와서 좀 보라구~!
"에,그..."
"이봐,잘못봐도 너무 잘못봤어!"
에..?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후엣말을 생각하고 있는건 난데..뜬근없이 나온 말이 잘못 봤어라니,
대체 어떤 녀석이냐,나의 첫 고백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는 녀석이!!주위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고
소리가 들린곳을 보자니...체육창고 위 별관 창문 아래서 내가 싫어하는 그 놈 특유의 비웃는듯한
재수없는 눈초리로 나와 그 아일 내려다 보고 있는...신지율이 있었다...젠장!!!!
"누구세요?"
생각치도 못하고 있던 곳에서 우리 둘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신지율을 발견한 그 남자아이는 당황
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물었다...그에 비해 쌩뚱맞은 표정으로 창가에서 뛰어 내리는 신지율.
"미쳤어?다치면 어쩔려구 뛰어내려!?"
"여기 1층이야."
아,그랬지..스스로 자중하고 다시 그 아일 쳐다보니 여간 황당스러워 하는 눈치.그럴테지..아니,
와서 좀 보라구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구 정말 훔쳐 보고 있을건 또 뭐냐구!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나 역시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자,가만히 있던 신지율이 또 입을 열었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날 따라 다닌건 이 녀석이고.불쌍해서 사겨준것도 나다."
"야!"
"내 외모를 봐라.그렇다고 내가 장님이겠냐?귀여운 자식~"
정.말.로 귀엽다는듯 그 아이의 머릴 부비는 신지율.니가 지금 나랑 인내도 테스트하냐!!그렇지만
정말 더 웃긴건,신지율에 말에 동요하는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이 녀석이다!
"그럼 누나가 형 따라 다닌거예요...?"
"그렇지~!"
웬지 실망한듯한 눈으로 날 슬쩍 쳐다보곤 한숨을 쉬는 이 아이.둘이 죽이 맞아 떨어지는 구만.
그렇지만 생각을 해봐라.니가 좋아하는게 나지,이 놈이냐?이 놈 말에 금방 태도가 바뀌는건 뭐냐구~
기분이 떨떠름한게...이렇게 생각을 하긴해도 내가 먼저 신지율을 좋아한 사실을 맞으니 부인도
못하겠다.젠장,그래도 석연치 않아 보이는 그 아이의 태도에...한술 더 뜨는 신지율.
"게다가 데이트하면 좀 많이 먹는줄 아냐?아주 그릇까지 씹어 먹는다.와드득,와드득.또 생긴게
이래 가지구는 데이트할때 돈도 안내요.한 50년 있다가 뻥 걷어차 줄 생각이야.그때 너 가질래?"
"...아니요."
이것들이 정말 나 가지고 장난하나?더 웃긴건 이 아이의 태도다.인석아,그럴거면 고백도 말던가!
날 다시 한번 쳐다보곤 고개를 푹 숙인채 마지막 인사도 잊지않고 자리를 뜨는 아이.
"잠시나마 누날 정말 좋아했어요.행복하세요.아,혹 저 형한테 차여도 저한테 오진 마요."
너무 당황스러워서 웃음조차 나지않는다.지금 이 둘이 내 앞에서 뭘한거지?그 아이가 눈에서 멀어질
즈음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 하는 신지율.
"저런 놈은 처음봤네."
그건 내가 할말이다.나야말루...너같은 놈은 처음 본다!남이 고백 하는걸 망쳐놓구,뿐더러 내 마음
역시 망쳐놨어.못된놈...
#58
어쨌든 잔뜩 골이난 나와 신지율.이건 화가 안 나려해도 안 날수가 없다.멋진 고백을 받는것이
여자에겐 최고의 로망이건만,그 고백을 그렇게 산산히 망쳐 버릴것 까지야.이번 만큼은 절대,절대
용서 안 할거야!그래봤자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생선찌개와 생선구이를 식탁위에 올려놓는것 뿐...
게다가 이 녀석이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아무것도 안하곤 도저히 못 견디겠어.
조금이나마 있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치 못하는 일이다.후..그런데...자꾸 복도를 거닐 때마다
잘나신 내 서방님께 향하는 눈길들이...왜 이렇게 야속한지.인간들아,세상엔 얼굴이 다가 아니란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율의 얼굴을 힐끗 거리며 꺅꺅대는 저 사람들을,내 막을 힘이나
있던가.그냥 무시하고 빨리 반까지 다다르길 바라는 것뿐이다.
가뜩이나 지가 잘난줄 아는 녀석인데,이럴때마다 더 심해질건 뻔~하다구.제발 자중해주길.
교실에 도착하자,과연 우리반 애들이 만들었다고 믿기는 힘든 음식냄새가 복도 전체에 퍼지고 많은
사람들로 즐비해있다..과연 내일 병원으로 실려 가지나 않을런지...얼마 남아있지 않은 재료들을
보면서 매우 흐믓해하는 아이들.세상에...음식 한번 만들어 보고 좋으냐...?
그랬으면 우리집에 와서 맨날 좀 도와주지 그러니...어쨌든 계속 음식을 만들고 바쁜 와중에 드디어
그 많고 많던 재료들이 모두 바닥나고 모두 슬슬 돌아갈 무렵,난 아프니깐 하지 말래놓구 뒤에
설거지다 뭐다,궂은 일은 다 시키는 웬수들.이것이 정말 내 건강을 생각해서 부탁하는게 맞는걸까?
"자,오늘 우리반 수고 많았다.내가 알기론 우리반이 매상 최곤걸로 알고 있어."
선생님의 한마디에 소란스러워지는 아이들.선생님께선 오늘 번 돈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돈을
확인하셨고,무려 138,200원이라는 돈이 모였다...정말 대단하다.하지만 뭐 재료값이다 뭐다 든 돈에
비하면 턱 없는것 같지만 부둥켜 않고 좋아라 하는 우리반 아이들.
"오늘 다들 재밌었는지 모르겠다.집에가면 시간들 많이 늦을텐데 다 빨리들 들어가."
선생님의 간단한 종례가 끝나고 뒷정리와 함께 분주한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앞으로 나가 교탁을
두드리는 윤경이와 부반장.
"아까,우리반 투표한거 결과 나왔다~궁금한것부터 말해,불러줄게!"
"야,무인도에서 살아돌아올 놈!!"
"얼짱 누구냐?!"
더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투표결과를 부르는 윤경이.
"...그리고 우리반 남자얼짱 1위.신지율,2위.류승균,3위.강희성!"
대략...내 귀를 의심했다.다른 반 아이들이야 신지율 외모만 보고 좋아라 한다는건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던 진리다.허나 이 녀석에 대해 알거 다 아는 우리반 아이들 마저 굳이 신지율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또 뭐냐구~!!짜증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남자아이들과 그걸 재밌어 하는 여자아이들..
"짜식들이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사랑한다!"
젠장,좋냐...?좋아 보이는 신지율 표정.사랑한다는 또 뭐냐구.어쨌거나 의기양양해져선 나를 힐끗
쳐다보는 신지율.이제 그만 이 생활에서 벗어날때도 되지 않았나.어쨌든 그런 신지율의 말들은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윤경이.역시,윤경이 뿐이야!옳지~
"다음 여자 얼짱 1위...나.니들 정말 보는 눈들은 있어갖구...고마워!"
이거야 신지율과 다를바 없잖아?대체 난 뭘 기대했던거지..어쨌든 반장으로서의 임무를 잊지않고
마저 발표하는 윤경이.
"2위,진채빈.3위,조신희."
전혀 예상 못했었다는 듯 나에게 꽂히는 시선들과 뿐더러 나 역시 당황스럽지 않을수 없다.가만,
이 투표가 무슨 투표 였더라?나를 보며 좋겠다며 웃는 아이들.이건..이런 생각치도 못한 상황은...
투표 결과를 모두 마친 윤경이가 내 앞에 앉아 웃으며 말한다.
"너 뽑힐거라구 생각 못했지?"
"지금 이거 장난치는거지?응?"
"아냐~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애들이냐."
한가한 애들 맞잖아..어쨌든 상황파악이 안된다...이런 생각치도 못했던 상황에 내가 놓이게 되다니
무인도에 버려도 살아올것 같은 아이도 아니구,내 얼굴이 이쁘다구?
"너 8표.꽤 많이 나온거 알지?여자 애들만 20명인데."
"내가 예뻐?"
너무 솔직한 질문 이었을까.싸늘한 윤경이의 표정.하지만 내가 묻는 이유는 정말 궁금해서 그렇단
말야.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무 험란한 인생을 살았다.어릴때부터 남자애들한테 얼마나 놀림도 많이
받았다구.못생겼단 말도 들었고.그래서 지난날을 얼마나 충격속에 휩싸여 살았는데...이제와서 알고
보니 내가 예쁜 얼굴이라면 당황스럽지 않을수가 없는게 사실이다...
"그런건 묻는게 아냐,이 바보야~뭐 그래두...남자들이 좋아하는 얼굴이지."
"신희 너 니 입으로 그런말 하면 쫌 재수없다?"
이봐들,난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거라구~오늘 또 새로운 진리를 알아 버렸다.비록 어릴적엔 못생겼
다고 놀림 받아온 나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난 사실...예뻤던거야...!!
그래서 다들 질투를 했던거라구.이,이런...오늘에서야 새로운 사실을 알아 버리다.
#59
이른 저녁,신지율과 집으로 향하는 시간.난 아까 일에 대해 투정을 부리는것 마냥 아무말 없지만
신지율은 별로 동요치 않는다는게 더 화가 난다.서운 하다구..
그리고 조용히 길을 걸음과 동시에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도대체 예쁜 얼굴의 기준이 뭐지..?
"...지율아."
"그렇게 부르지마."
"왜?"
"기집애 같아서 안돼."
그걸 이제야 알았나?어쨌든 녀석이 동요하는건 드문 일이기 때문에 가끔 녀석에게 토라질때 마다
이렇게 불러야 겠군..신지율도 싫어하지만 나 역시 적잖게 어색하다.여자 이름 같아..어쨌든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 겠다.
"신지율...나 이뻐?"
보통 사람들이라면 여럿이 그렇게 말해주면 믿었겠지만,나한테는 당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아니,못생겼다고 놀림 받아왔고 스스로 자각하고 살아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연하에게 고백과
동시에 예쁘다는 말을 듣는 다는게 적응하기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믿을수 없는데...내 딴엔 꽤나 진지하게 물은건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 좋은 신지율의 표정이다.역시 괜한걸 물은거야..저 표정을 어떻게 다시 돌린담...
"너 지금.."
"대답 안해도 돼!"
조금 더 늦게 말했더라면 뭔가가 날아왔을지도 모른다.그냥 예쁜다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렇지만 오늘 하루 충분히 기분이 좋은데..뭐처럼이니깐 참아야겠다.어쨌든 기분좋게 걸어가는 길.
당황스럽고 조금 피곤한 감도 없잖게 있지만,뭐처럼 기분 좋아진거 같아서 다행이다.그런데 이렇게
기분이 좋고 보니,별로 신경쓸 일도 아닌듯 싶지만.역시...길어야 겨우 두달,이 집에서 지냈을 뿐
인데 이젠 우리 집이란 생각이 확연히 든다.들어오면 제일 편안하고,좋은...집.
그런데 이렇게 있자니,엄마 생각도 나고,불현듯 떠오른 안부전화..아저씨께도,엄마한테도...먼저
연락을 드리지 않은지 꽤 오래된듯 싶다.처음에 이곳에 왔을땐 하루라도 엄마 목소리 안 들으면
견딜수 없을것만 같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을 정도여서 혹 엄마가 실망이라도 하는건 아닌지.
집에 도착하면 꼭 전화 해봐야겠다.어떤 말 들을지,각오는 단단히 해두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문을 열자마자 울리는 전화벨.어쩜 난 신기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녀석을
제치고 달려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아무말 하지말고 듣고만 있어."
예상치 못하게 전화를 한건 우리 엄마도,하새윤도 아닌 장세나.당황스러움에 그아이의 말처럼 아무
대답않고 그저 묵묵히 수화기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은 조심스럽게..하지만 전과는 달리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는 하새윤.
"희성이한테 전화왔어.생각치 못해서 그냥 놀라긴 했는데...기뻤어,그냥.좋은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만족할만 하다고 생각해.어차피 희성이 나한테 관심 같은거 없다는거 다 알고 있었으니깐-"
한번도...이 아이와는 긴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었다.혹 얘기가 길어졌던 때가 있었다면,그건 어느
한 쪽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끝나는 거였고,굳이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그게 내가 장세나를 이해할수 없는 이유 중 하나 이기도 했다...
"그래서 네가 많이 미웠어.우습게도 니 주위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희성이 역시 네게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네가 미웠어...그렇지만 너 싫어 했던적은 한번도 없었어.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지만,정말이야..부러웠을 뿐이었어.그리고 지금도 부럽네..이미 가버린 여잘 기다리는 남자가..
어디 이 세상에 흔하니?그래도 네가 행복하다면 괜찮다고 했으니까."
"무슨..소리야,기다리다니...?"
"희성이가 나한테 한 말,별거 아냐.너 좋아한대.그것뿐이야!참,웃기지...정말...차라리 처음부터
희성이 입으루 너 좋아한다는 사실 들었으면 괜찮았을텐데...다 알고 있으면서도 단념하지 못했던게
이젠 포기가 되.그러니깐 괜찮을거 같아.강희성 그 바보,처음부터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애써 아무렇지 않은듯 한 말이었지만 점점 더 떨려오는 장세나의 목소리를 모른척 할수 있다면,어쩜
그게 더 신기한 일일지도 모른다.이미 심하게 떨려오는 목소리가,장세나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울고
있을지가 눈에 선해서...그 어떤 말도 해줄수가,할수도 없었다...
"어쨌든...제일 미안한 사람이 너야..언제든 다시 보게 되면 인사나 하자.조신희...안녕."
"아.."
뚜뚜뚜--
채 말을 묻기도 전에 이미 끊어져 버린 전화.끝내..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마지막이 될줄은 몰랐다.
난 궁금한게 아직 많은데...아직 장세나가 희성이에게 정확히 어떤 말을 들었는지 알순 없지만...
그래도 다시 고쳐진 생각 하나.어쩌면...장세나와 좋은 친구가 될수 있었을텐데 하는.
"누구야?"
"아,아무것도 아냐!"
뭐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와중에 녀석의 달갑지않은 목소리에 들고있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배고프지?밥한다.오늘 맛있는거 먹자,내가 다 해줄게~"
"약 먹었냐?왜 안하던 짓을 하고 난리야."
"그냥...기분 좋으니깐 그렇지,바~보."
정말 이상한거 쳐다보듯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는 신지율에게도 아랑곳 않게 된다.난 분명히 나쁜
아이인지도 모른다.그래서...장세나의 그런 우울한 말들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기분이 좋아져 버린
심술궂은 아이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내게 있어 더 큰 사실은 장세나의 말들이 후회와 속풀이란
사실보다..화해라는 사실이 더 크게만 느껴진다.그래서...그런가 보다.
#60
오늘은 우리 학교 큰 행사중에 하나로 속하는 행문관 실습일.아무래도 서울 가장 자리에 위치함과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학교인 공학 사립교고인 우리 학교이니 만큼 유난히 예절,예법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간혹 몇몇 아이들을 빼곤 학교를 결석하는 일도 매우 드문일.
신기하게도 그렇게 등교를 서두르는것 같진 않은 아이들이지만 지각은 기억하기 드물 정도다.
어쨌든 반별로 돌아가면서 행문관 실습을 하는데 행문관을 위한 특별실 마련으로 이 날 하루만큼은
교복대신 한복을 입고 다도,풍습,예절,한문 수업을 듣는다.바로 오늘이,우리반 행문관 실습일.
까만 정장풍 교복 대신 형형 색깔의 한복을 입은 우리반 아이들이...대체 왜 이렇게 어색한거야..
"신희야,나 이것 좀 묶어줘~"
벌써 여기 저기서 옷고름을 매달라며 다가오는 아이들.나야 엄하셨던 우리 할머니 덕분에 이런거야
잘 알고 있지만 무래도 제일 번화한 수도이니 만큼,한복을 입는 일이 거의 없나보다..
어쨌든 예절교육 담당 선생님을 따라 다도실로 들어간 반 아이들은 매우 낯설은 자태로 선생님께
혼나가며 다도를 배우는 중.옷고름 매는 정도야 알지만,이건 영...
"자,이번엔 물과 찻잎을 다관에 담는 투다법을 이용하여..."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해 아이들이 싫어하는 이유는...도대체...남녀평등인 이 시대에 여자들만
꼭 이런것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여자 아이들이 이렇게 선생님께 혼나가며 차 마시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을즈음,태평히 교실에 앉아 수업이나 받고 있을 남자 아이들을 생각하자,이가 으득 으득
갈리는 듯한 아이들..역시 무섭다니깐.
"뭐야,그럼 오늘은 남자애들도 못보고,집에도 못가구 여지서 자는 거잖아~"
"싫어.이게 뭐야..차 마실줄만 알면되지,이런걸..."
"거기,조용히 안해?!"
후,아쉬운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구~오늘밤은 학교에서 자야 하는데...그렇게되니 여간 신경 쓰이는
신지율.요즘들어 괜히 입맛 없다고 굶는 놈인데 내가 없으면 또 과자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게 뻔한데...이런 저런 생각들과 함께 가시방석 같은 시간은 점차 흘러만 갔고,이미 야간자율
학습을 마친 타반 아이들과 우리반 남자 아이들이 창가로 얼핏 얼핏 보인다..덕분에 마치 처음으로
빛을 본 죄수들 같은 형태로 창가에 매달려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이거 원 공학 같지가 않아..
"네 이것들 이럴줄 알았어!"
마치 이런일이 벌어질라고 예감이라도 했었다는 듯 복도에 놓여져 있던 대걸레를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 오시는 선생님.덕분에 창가에 개미떼 처럼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던 아이들이 대걸레를 보자
이내 창가에서 떨어졌다.대걸레의 힘은 위대해..
[잠시후 명상의 시간이 있겠습니다.주위를 정리하고 귀를,귀울여,주십시오.]
곧이어 낭랑한 목소리를 가지신 선생님께선 밤 11시가 넘어서 도록 명상의 시간을 주선 하셨다.
덕분에 안그래도 지쳐있던 아이들의 눈을 점점 더 풀려만 갔고,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는 행문 실습실 전체에 고요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이것으로 명상의 시간을 마칩니다.모두 취침 준비를 해주...]
"야,끝났어 일어나.이불 피고 자자~"
한참동안 들어오던 선생님의 듣기좋은 날랑한 목소리가 끊기자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아이들이
약간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선잠에서 깼다.아마도 낭랑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다는게 못내
아쉽다는 듯이 느껴지는,난 뭐지?
"8반 오늘 수고했습니다.기상 시간은 6시 30분이며,식사 시간은 7시 입니다.지켜주길 바래요."
아까 방송에서의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셨던 선생님께선 낮에 다도 수업때와는 달리 온화한
표정으로 취침 준비를 확인하신 선생님께선 또각또각 어여쁜 구두 소리를 내시며...멀어져 지셨다.
"잘자 신희야."
"응,너두."
이미 모두 잠들어 있는 사이 살짝 잠에서 깬 윤경이가 마지막 굿나잇 인사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
하,피곤하다.나도 슬슬 자야 하는데...
♬♩♪♩♬♪♩
그때였다.웬지 익숙한 벨소리.귀에 익은 이 핸드폰 벨소리는..신지율 핸드폰의 벨소리와 동일했다.
하지만 이곳에 신지율의 핸드폰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행문관 실습을 할때 에는 핸드폰을 가져 올수
없게 되있는데..익숙한 벨소리를 따라 걸음이 옮겨진 곳은 다름 아닌 내 가방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가방안에는 그 녀석의 핸드폰이...요란스럽게 울려 대고 있었다.
"여보세요..?"
"모시모시."
"뭐야..신지율...?"
어처구니 없는 일본말이긴 했지만,분명히 신지율 목소리.모시 모시는 또 뭐야..
"서방님 목소리 그리웠지?"
"나 여기 핸드폰 가져 온적 없는데..어떻게 된거야?"
"잘나신 네 서방님이 못난 마누라가 목소리 듣고 싶어 할까봐."
"바보..."
겨우 반나절 못봤을 뿐인데...목소리를 듣자 듣지 못했을때 보다 더 보고싶고 벌서 일주일은 더
보지 못한것 같은 기분이 든다.뭐야,나야말로 정말 바보같이.
"선생님한테 걸리면 혼나는데."
"그럼 끊을까?"
"아니,뭐!잠깐이라면..."
생각치도 못한 신지율의 전화에 생각치도 못했던 대화들로 굉장히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감이 모두
물밀듯 사라지는것만 같다.약간은 어색한 녀석과의 전화 통화에 오분,십분...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그날 늦은 밤.넓은 방에 들리는건 아이들의 고된 숨소리와 녀석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찾아온건 오랫동안의 통화에...어느새 나도 모르게 녀석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찾아온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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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악마와의 동거동락_同居同樂[56~60]
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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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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