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철학적, 심리학적으로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 solitude)은 뚜렷이 구분이 된다. 외로움은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를, 고독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격리'를 의미한다.
철학자 틸리히(Tillich)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정신분석학자 설리번(Sullivan)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으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구분했다.
심층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루소(Rousseau)는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말했다.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도 엄습한다.
자아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은 젊은 시절, 지독한 외로움과 방황 중 이태리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다 "이런 나르시즘은 그에 대항할 만한 자신만만한 생각이나 힘을 찾지 못하면 이는 분명히 젊은이의 정식적 타락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외로움에 대항할만한 '자신만만한 생각이나 힘'은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 (昇華•Sublimation)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된 사람의 '외로움'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고독한 사람이다.
-양철기/교육심리학 박사-
*오늘날,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의 새로움은 이미 낡고 진부한 것이 되었고, 그 진부함은 경쟁만능 세상에서 낙오하는 지름길이 되곤 한다.
사람들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온갖 접속을 시도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루 종일 컴퓨터 창에 띄워 놓고, 외출이라도 할라 치면 스마트폰 과태 블릿피시에 고개를 박는다.
연인과 대화 중에도, 가족끼리의 단란한 식사 중에도 접속을 포기할줄 모른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중독이 되면 혼자 있을 수 없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마약처럼 중독된다.
24시간 누군가와 접속된 상태에 있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매시간 언제든지,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버튼 하나만으로 누구든지 불러낼 수 있는 마법은 어떤 면에서는 저주일 수 있다. 항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고립되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
외로움은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불안한 정서다. 외로운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고독이란 홀로 있음을 즐기는 사람이다. 언제든 홀로 있음으로 자신의 평화를 충분히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은 두 가지의 세계 속에서 길항하며 성장, 발전하는 존재이다. 하나는 고독의 세계, 다른 하나는 타자와 섞이는 세계이다. 즐겁게 독서를 하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세계가 한 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바우만은 말한다. 인간에게는 바로 이 고독의 시간이 "생각을 집중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라고. 500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들도 내가 고독의 순간들을 통하여 성장시킬 진정한 '나'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고.
-이서영. 작가. 칼럼니스트- ------------------------------------------
현대인의 삶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고독'이다.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르다. 외로움은 군중 속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껴지는 소외감 이지만, 고독은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영혼이 자라나는 곳이다
빌라의 비발디 오톤, RV 729(Act II) 카이오의 아리아 레기 알메노, 티라나 인페델레 잔인하고 믿음 없는 여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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