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조부님의 여동생, 나는 그분을 ‘왕고모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가 계셨으니 안강에서 친정 경주로 종종 오시곤 했다. 그때 할머니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는데, 키가 크고 체격도 다부졌으며 인상마저 남성적으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강인한 분이셨지만, 어린 나에게 왕고모 할머니는 솔직히 말해 조금 무서운 존재였다.
평소에는 우리를 보면 귀엽다며 웃으셨다. 그러나 예의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목소리가 단번에 높아졌고, 그 순간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쩔쩔매곤 했다. ‘귀여워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근처에 갔다가 혼날까 봐 슬그머니 거리를 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왕고모 할머니에게는 묘한 별명이 하나 있었다.
‘OK 할머니.’
그분의 댁호(宅號)가 따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와 고모들은 할머니가 계실 때는 공손히 “고모님”이라 불렀고, 안 계실 때는 꼭 “OK 할머니”라고 불렀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아주 어릴 적 그 말이 본래의 택호인 줄로만 알았다.
열다섯을 넘기며 세상이 조금씩 궁금해질 무렵, 문득 그 이름의 어원이 마음에 걸렸다. ‘OK’라는 말이 영어라는 걸 알게 된 뒤였다. 가까이 사시던 고모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왜 왕고모 할머니를 OK 할머니라 부르게 되었느냐고.
고모님은 잠시 웃더니,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일이었다. 신라 김유신 장군묘 입구, 서천교 아래 강변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정으로 오시던 왕고모 할머니가 나무 판넬로 임시로 놓은 다리를 건너고 계셨다고 한다. 그때 미군 병사 하나가 다가와, 장난기 섞인 얼굴로 영어로 복싱 게임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태어나서 분명히 들어본 영어 단어는 단 하나,
“OK”뿐이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OK”라고 답한 순간, 그 병사는 주먹을 날렸다. 맨주먹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고, 코피가 터지며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병사는 할머니가 쓰러진 모습을 보며 두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유히 주둔지로 돌아갔다고 했다.
정신을 차린 할머니는 그대로 친정으로 와 그날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분노와 허탈함,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뒤섞인 자리에서, 온 식구는 결국 그분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OK 할머니.
세월이 흘러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웃음이 먼저 나오지만, 그 속에는 전쟁의 그늘과, 언어도 힘도 없던 한 여인의 억울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남성적인 인상 뒤에 감춰졌던 왕고모 할머니의 삶은, 그렇게 한 단어의 별명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았다.
OK.
그 말 하나로 시작되어, 평생의 이름처럼 불리게 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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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명 하나에 담긴 기억을 함께 따라와 주셨다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이 글은 거창한 설명보다는, 말해지지 않은 시간과 그 안에 남은 흔적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전해졌다면 충분합니다. 함께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런 사연.
우습고 씁쓸하고 아픈...
왕고모님의 평생 기억이 되었겠군요.
영천 지나 안강 거쳐 경주로 가던
그 선이 아름답던 길이 기억납니다.
감사합니다.
웃음처럼 흘려보낼 수 없는 기억들이 있지요.
그 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풍경보다 마음이 먼저 겹쳐옵니다.
함께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단어의 오해가 한 사람의 생애를 별명으로 남겼군요.
웃음 뒤에 전쟁의 비대칭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한 단어가 개인을 규정하고, 그 규정이 오래도록 굳어지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웃음으로 소비된 장면 속에 전쟁이 만들어낸 권력의 불균형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짚어 주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미군 병사?
어의가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폭행죄로 구속감 인데?
충성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폭행에 해당하죠.
그래서 더더욱 그 시대의 비정상적인 상황과 권력 관계를 돌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일단 나쁜 미군 병사에게 화가납니다.
여자아이를 때려놓고 그냥가다니..
제게도 왕고모 할머니기억이 있습니다.
제 할머니껜 시누이였을 텐데,
치매오신 그분을 잠시 저희 집에 모셨는데 저희 할머니께서 이가 빠진 왕고모할머니께 사과인지 배 인지 과일을 수저로 긁어 떠 먹이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댓글 쓰고도 그 미군병사의 못된 짓에 화가납니다 .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힘없는 아이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은 누구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요. 말씀해주신 왕고모 할머님 이야기처럼, 돌봄과 연민이 얼마나 귀하고 인간적인지 알기에 그런 잔인함이 더 대비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일은 국적을 떠나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잊히지 않고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미군이었네요.
그 옛날에
미국인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고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나쁜 사람이 있었네요.
인간의 본성은 좋은데
그 중에도 엉덩이에
뿔난넘들이 있지요.
여름에 학교 마치고
집에올때 미 군용 차가
지나갈때
손을 흔들어 주면
캔과 과자를 던져주던 것이 생각납니다.
OK 할머니라는 말의 뉘앙스는 남의 말 쉽게 잘 들어주는 성격좋은 분으로 들리나 알고보니 그런 웃픈사연이 있었군요... 그만큼 우리는 약소국가 국민이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읽어주신 시선에 깊이 공감합니다.
겉으로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남의 말을 다 받아주던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성품이기 이전에 시대가 강요한 체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웃으며 넘긴 한마디 속에 개인의 아픔과 약소국가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세대의 무게가 함께 담겨 있었겠지요.
그 시절을 견뎌낸 분들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이 글을 통해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힘의 균형을 잃었을 때,
인간이 인간 답지 않는 못된 것들이 있지요.
아마도
그 미군은 못난 미국인 이었을 겁니다.
자국에서 어깨 펴지 못하고
작은 나라에서 꿀렁대는 그런 못된 인간이지요.
꿀렁대는 인간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강점기 때를 생각하면...
콩꽃 님, 따뜻하게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인간의 품격은 힘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약자 앞에 섰을 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시대와 국적을 넘어 되풀이되는 모습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지요.
OK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귀한 말씀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군인의 행동에 살짝
분노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여성이고 또한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자기의 힘만 어필한 못된 미군.
OK할머니.
멋진 할머니세요.
저희 가족에게는 평생 가슴에 남을 기억입니다.
상대가 여성이라는 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상황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힘으로만 자신을 드러낸 그 행동에는
지금도 분노와 안타까움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왕고모께서는 공포 앞에서조차
존엄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OK’라는 한마디에 담긴 것은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서 있으려는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태도가 더 오래 기억되기를,
그리고 힘이 아니라 품격이 진짜 강함임을
많은 이들이 함께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단석님 좋은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비애입니다
6.25 우리 민족의 상잔으로 강대국 미국의 지원이 컸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강대국의 병사들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은 미군들이 구호 물자로
우유를 배급 받아 먹었으며 ,또한 양공주 아가씨들의 삶 ,동두촌,의정부, 오산 ....
지금도 우리나라에 공산화를 방어하기 위하여 진지를 구축한 구역이 있고 ,납.북으로 나누어진
민족의 잔재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약소 국가의 국민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만장봉님, 깊은 말씀 고맙게 읽었습니다.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에 남아 있는 상흔이라는 말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우유의 기억 뒤에 남은 기지촌의 골목과,
동두천·의정부·오산으로 이어진 지명들은
지도가 아니라 사람의 삶으로 읽혀야 할 역사이겠지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약소국의 운명 또한
분단의 철조망처럼 아직 우리 곁에 서 있습니다.
제 글에 이런 사유를 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고 말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