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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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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 OK 할머니
단석 추천 0 조회 193 25.12.25 21:03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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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5.12.26 01:2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명 하나에 담긴 기억을 함께 따라와 주셨다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이 글은 거창한 설명보다는, 말해지지 않은 시간과 그 안에 남은 흔적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전해졌다면 충분합니다. 함께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25.12.26 01:23

    아... 그런 사연.
    우습고 씁쓸하고 아픈...
    왕고모님의 평생 기억이 되었겠군요.
    영천 지나 안강 거쳐 경주로 가던
    그 선이 아름답던 길이 기억납니다.

  • 작성자 25.12.26 02:05

    감사합니다.
    웃음처럼 흘려보낼 수 없는 기억들이 있지요.
    그 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풍경보다 마음이 먼저 겹쳐옵니다.
    함께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25.12.26 03:10

    한 단어의 오해가 한 사람의 생애를 별명으로 남겼군요.
    웃음 뒤에 전쟁의 비대칭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 작성자 25.12.26 05:29

    한 단어가 개인을 규정하고, 그 규정이 오래도록 굳어지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웃음으로 소비된 장면 속에 전쟁이 만들어낸 권력의 불균형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짚어 주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 25.12.26 06:06

    그 미군 병사?

    어의가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폭행죄로 구속감 인데?

    충성

  • 작성자 25.12.26 07:22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폭행에 해당하죠.
    그래서 더더욱 그 시대의 비정상적인 상황과 권력 관계를 돌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 25.12.26 06:28

    일단 나쁜 미군 병사에게 화가납니다.
    여자아이를 때려놓고 그냥가다니..

    제게도 왕고모 할머니기억이 있습니다.
    제 할머니껜 시누이였을 텐데,
    치매오신 그분을 잠시 저희 집에 모셨는데 저희 할머니께서 이가 빠진 왕고모할머니께 사과인지 배 인지 과일을 수저로 긁어 떠 먹이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댓글 쓰고도 그 미군병사의 못된 짓에 화가납니다 .

  • 작성자 25.12.26 07:39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힘없는 아이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은 누구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요. 말씀해주신 왕고모 할머님 이야기처럼, 돌봄과 연민이 얼마나 귀하고 인간적인지 알기에 그런 잔인함이 더 대비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일은 국적을 떠나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잊히지 않고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5.12.26 08:23

    나쁜 미군이었네요.

    그 옛날에
    미국인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고 좋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나쁜 사람이 있었네요.

  • 작성자 25.12.26 08:34

    인간의 본성은 좋은데
    그 중에도 엉덩이에
    뿔난넘들이 있지요.
    여름에 학교 마치고
    집에올때 미 군용 차가
    지나갈때
    손을 흔들어 주면
    캔과 과자를 던져주던 것이 생각납니다.

  • 25.12.26 08:53

    OK 할머니라는 말의 뉘앙스는 남의 말 쉽게 잘 들어주는 성격좋은 분으로 들리나 알고보니 그런 웃픈사연이 있었군요... 그만큼 우리는 약소국가 국민이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 작성자 25.12.26 13:13

    읽어주신 시선에 깊이 공감합니다.
    겉으로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남의 말을 다 받아주던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성품이기 이전에 시대가 강요한 체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웃으며 넘긴 한마디 속에 개인의 아픔과 약소국가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세대의 무게가 함께 담겨 있었겠지요.
    그 시절을 견뎌낸 분들에 대한 기억과 존경이 이 글을 통해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 25.12.26 09:14


    힘의 균형을 잃었을 때,
    인간이 인간 답지 않는 못된 것들이 있지요.

    아마도
    그 미군은 못난 미국인 이었을 겁니다.
    자국에서 어깨 펴지 못하고
    작은 나라에서 꿀렁대는 그런 못된 인간이지요.

    꿀렁대는 인간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강점기 때를 생각하면...

  • 작성자 25.12.26 14:51

    콩꽃 님, 따뜻하게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인간의 품격은 힘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약자 앞에 섰을 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시대와 국적을 넘어 되풀이되는 모습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지요.
    OK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귀한 말씀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

  • 25.12.27 02:21

    그 군인의 행동에 살짝
    분노가 생깁니다.
    상대방이 여성이고 또한
    영어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자기의 힘만 어필한 못된 미군.
    OK할머니.
    멋진 할머니세요.

  • 작성자 25.12.26 23:45

    저희 가족에게는 평생 가슴에 남을 기억입니다.
    상대가 여성이라는 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상황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힘으로만 자신을 드러낸 그 행동에는
    지금도 분노와 안타까움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왕고모께서는 공포 앞에서조차
    존엄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OK’라는 한마디에 담긴 것은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서 있으려는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태도가 더 오래 기억되기를,
    그리고 힘이 아니라 품격이 진짜 강함임을
    많은 이들이 함께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 25.12.27 07:10

    단석님 좋은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비애입니다
    6.25 우리 민족의 상잔으로 강대국 미국의 지원이 컸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강대국의 병사들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은 미군들이 구호 물자로
    우유를 배급 받아 먹었으며 ,또한 양공주 아가씨들의 삶 ,동두촌,의정부, 오산 ....

    지금도 우리나라에 공산화를 방어하기 위하여 진지를 구축한 구역이 있고 ,납.북으로 나누어진
    민족의 잔재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약소 국가의 국민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25.12.27 15:51

    만장봉님, 깊은 말씀 고맙게 읽었습니다.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에 남아 있는 상흔이라는 말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우유의 기억 뒤에 남은 기지촌의 골목과,
    동두천·의정부·오산으로 이어진 지명들은
    지도가 아니라 사람의 삶으로 읽혀야 할 역사이겠지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약소국의 운명 또한
    분단의 철조망처럼 아직 우리 곁에 서 있습니다.
    제 글에 이런 사유를 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하고 말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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