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의 고전으로 세상 읽기
사람으로서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자는 무의(巫醫)도 어쩔 수 없다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자장이 덕을 높이고 미혹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忠, 여기서의 忠은 나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정성, 성의, 충실 등의 뜻임)과 신(信)을 주로 하고, 의(義)로 나아가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할 때는 살기를 바라다가, 미워할 때는 죽기를 바란다. 이미 살기를 바라다가, 또 죽기를 바라니, 이것이 바로 미혹이다.”(子張問崇德辨惑. 子曰 主忠信, 徙義, 崇德也.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논어』「안연」)
인간의 감정만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도 없다. 좋아할 때는 간이라도 다 빼줄 듯이 좋아하다가도, 미워지면 저 웬수는 왜 빨리 죽지도 않아, 하며 저주하는 게 인간의 감정이다. 오죽했으면 부부간은 무촌이라 하였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돌아서면 세상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되고 마니 말이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인간의 감정이 공자에게도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이를 ‘미혹’(迷惑)이라 하였을 것이다.
변화무쌍, 총선 판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판이 변화무쌍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마치 정치판 전체가 변덕으로 죽이 끓는 것만 같다. ‘동지가’를 부르며 말끝마다 형제, 동지를 외쳤던 대한민국 제3당인 민주노동당은 이제 곧 두 쪽이 날 판이다. 북한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자주파와 평등파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어제까지 동지였던 자주파와 평등파는 아마 이제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사이가 될 것이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노선 차이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4년 전 서로 함께할 수 없다고 맨몸으로 육박전까지 벌이며 헤어졌던 무슨 신당이라는 데와 무슨 민주당이라는 데는 다시 합쳐서 도로 민주당이 되었다. 우리 무식한 백성들은 지금도 4년 전에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 모른다. 당연히 4년 후인 지금 그들이 왜 다시 합친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헤어졌으니 헤어졌나 보다 하고 다시 합쳤으니 다시 합쳤나 보다 할 뿐이다. 어제까지 국정실패세력이니 구태정치세력이니 하며 서로 삿대질을 했던 두 당의 당원들은 이제 생사를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다.
어제의 동지가 웬수가 되고
한나라당의 총재로 대통령 후보를 두 번이나 했던 이회창은 자유선진인가 뭔가 하는 당을 새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과거 자기가 이끌었던 그 당을 깨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이 총재로 있을 때 그토록 격렬하게 비난했던 야당 파괴공작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 당은 이제 곧 여당이 될 것이지만). 서로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그는 현재 삼순가 사수 끝에 대통령을 한 김대중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이다.
외견상 한나라당은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안에 메가톤급 시한폭탄이 장치되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이명박 세력과 박근혜 세력간의 공천 갈라먹기가 잘못될 경우, 아마 시간상의 문제로 또 다른 당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까지의 동지가 서로 원수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
정치판이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면서 철새들까지 화려하게 상공을 난무하고 있다. 어제까지 분명 노무현과 함께 있었는데, 어느새 이회창한테 가 있지를 않나, 한나라당 문전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 와중에 노무현 정권 아래서 국가 안전의 책임자였던 어느 얼빠진 인사는 이명박에게 뒷줄을 대려다 미수에 그쳐 개망신을 자초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철창 신세를 질 우려까지 생겼다. 한나라당 공천 심사가 마무리되면 철새들의 이동이 극에 달해 아마 철새들 때문에 하늘조차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같은 백성은 이런 정치판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팽팽 돌 지경이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옳은 것도 같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공자가 오늘 대한민국 정치판을 보았으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대한민국 정치가 곧 미혹이다(大韓民國之政治, 是惑也)
대한민국 정치는 귀신도 모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방 사람들의 말에 ‘사람으로서 마음이 한결같지 않은 자는 무의(巫醫)도 어쩔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좋은 말이다. 그 덕이 한결같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을 당할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점을 칠 것조차 없다.”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善夫. 不恒其德, 或承之羞. 子曰 不占而已矣-『논어』「자로」)
무의는 의사를 겸한 무당이다. 고대 사회에서 무당은 대개 의사를 겸하고 있었다. 사람이 그 마음이 한결같지 않으면 점괘도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무당인들 그를 어쩌겠는가? 점을 칠 것도 없이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 뿐이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또 오늘과 내일이 다른 대한민국 정치판을 그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 점쟁이도 이런 정치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귀신도 모른다고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생각할수록 옳은 말이다. 우리같은 미욱한 백성은 그저 고개나 절래절래 흔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우재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중국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우재의 논어 읽기>, <하늘호수에 뜬 백편의 명시, 중국 한시편> 등이 있다.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이우재 20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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