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알 수 없는 손님은 자리에 앉더니 손짓을 하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생긴지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로 얼굴을 막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얼굴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검은 무언가로 싸고 있었다. 곧 새어머니가 술쟁반을 가지고
나오자, 그 손님은 조용히 술병을 잔에 따라 조용히 마셨다.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으며, 춤을 추지도 않았다. 온몸을 움직이지도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했다가는 일부러 덮어쓴 듯한 저 검은 망토가 벗겨져 버릴 것이다.
진은 그 작은 구멍으로 손님을 계속 지켜보았다. 손님은 계속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 볼 이유도 없었지만, 진은 계속 그 손님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냥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거기 구멍에 눈을 대고는 계속 있었다. 그 손님은 술을 마시고는 한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는 부엌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에 놀란 진은 얼른 그
구멍에서 얼굴을 떼었다. 그리곤 놀라서 숨을 차게 쉬었다.
' .... 놀랬어. ... 왜 갑자기 부엌을 쳐다본거야....?......'
진은 잠깐이였지만 너무 놀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던
진은 또 그 손님을 보고 싶은 충동이랄까. 그런 마음이 일어났다. 진은 다시 구멍으로
얼굴을 대었다. 그리고 그 손님이 앉은 자리를 보았다. -! 그러나 손님은 없었다.
나갔다면, 가게의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을것인데-! ..... 진은 이상했다. 하지만 곧
그 손님이 앉았던 자리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갈색의 무언가였는데, 부엌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진은 설거지거리를 잠시 두고, 부엌에서 나왔다. 가게에는 어떤 손님도
없었다. 진은 그 손님이 앉았던 자리로 가보았다.
' ...... 이 ..... 이건 ......... 책이잖아 .....? .... 왜 이걸 놓고 간거지? ......'
진은 그것을 들고 서둘러 가게에서 나왔다. 책을 손님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손님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진은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책을 부엌쪽 탁자에
둘까 생각했다. 거기에 놓는다면, 내일 그 손님이 다시 찾아와 책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책 내용이 궁금했다. 책도 별로 읽어보지 못했던 진이였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갔다. 동화이야기일까? ... 소설? ...... 결정했다. 진은 책을 펴 보기로 했다.
" 아야! ... " 누군가가 진의 머리를 한대 떄렸다. 진은 자기를 때린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뒤로 돌았다. 그 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새어머니였다. 새어머니는 아주 밉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양 손을 허리에 쥐고 있었다.
" ... 어머니 ......" 진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자기 옷속에 감추려 했다.
" 설거지도 안하고 뭐하는거야?! 어라. 이거 책아니야? ....... " 진의 새어머니는 그 책을
잽싸게 빼앗았다. 너무 센 힘으로 갑자기 가로챈 것이여서 진도 잡고 있을 틈도 없었다.
" ... 니가 책을 읽어? ... 어디서 훔쳤어?! ... 어미가 없으니 이모양이지. 전의 어미는
어떻게 애를 키운거야? ...." 새어머니는 화가 난 얼굴로 진을 째려보며 말했다.
" 어머니-! ... 전의 어머니 얘기는 꺼내지마세요. 그리고, 그건 제가 훔친 게 아니 ....."
" 얘! 너 지금 나한테 큰 소리 쳤니? 동네 창피해서말이야. 이 책은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겠어. 당장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 못하겠어! ...."
새어머니는 정말 가게 문 쪽에 큰 쓰레기통에 책을 넣고는 뚜껑을 닫아 버렸다. 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계속 쓰레기통만을 보았다. 새어머니에게 저건 내가 훔친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새어머니의 얼굴은 정말 무서웠다. 또 말 한마디만
했다가는, 큰 일이 날 듯 했다. 진은 슬퍼졌다.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모든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다. 진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기 전에 진은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은 흐르는 눈물을 옷으로 쓱 닦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나오는 물로 얼굴을 한번 확
씻어버렸다. 그제서야 좀 진정할 수 있었다. 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은 그때마다
더 강인해 지는 것을 배웠다. 혼나는 것 뿐이였지만, 웬지 그렇게 억울하게 이런 일들이
있을때마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일은 잠시뿐이라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계속 했다. 그릇이 하나씩 깨끗하게 닦일 때마다 피로가 몰려왔다.
자꾸 눈이 감기려 했다. 오늘 일이 꽤 힘들었었다. 무거운 술상자를 들고 시장거리를
돌아다녔고, 또 혼나기도 했다. 언제나 있는 일이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다른날보다
더 피곤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가게의 문을 잠궜다. 그리고 가게 끝쪽으로 들어갔다. 더 속으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그의 방이 있었다. 작고, 그의 방 지붕에는 쥐들이 들락날락
거렸지만 그에게 평온한 휴식을 주는 최고의 장소였다. 진은 방에 들어가 벌러덩 누웠다.
그의 방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창문이 있었는데, 달이 밝은 날에는 언제나 그 달빛이
그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듯 했다.
' ..... 너무나 피곤해. ..... 오늘은 달이 밝나보네. 저렇게 창문이...밝잖아? .....'
진은 눈을 감았다.
이불하나 없이, 그냥 진은 눈을 감아 버렸다.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진. 그는 그래도 아직 어린 13살의 소년이였다.
++
' ..... 뭐지? .... 여기는? ......... 뭐야 ... 처음 보는 곳이란 말이야 .....'
진은 계속 걸었다. 그곳은 숲같기도 했다. 하지만 숲은 아니였다. 주위는 밝기도 하면서
어두운 빛을 띄우고 있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했다. 그리고 자꾸 어떤 무언가가
진의 앞과 옆, 뒤를 휙휙 지나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어떤 소리가 계속 흘렀다.
그때 다른 또 무언가가 진의 앞을 확 지나쳤다. 진은 지금 또 방금 지나간 그 무언가의
입을 보았다. 그 무언가도 무엇을 말하고 있었다. 진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계속 그 무언가
의 입 모양을 보았다. 갑자기 그 무언가는 진의 얼굴로 바로 날아와서는 무어라고 하고
없어졌다.
' ㅌ .........ㄹ .......ㅡ ... .....' 그 무언가의 입 모양은 이 모양이였다.
진은 계속 그 무언가를 보았으나, 갑자기 주위에 모든것들이 사라졌다. 너무 놀란
진은 거기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
. . . . . .. 눈을 떴다.
아직 창문가에 달빛은 들어오고 있었다. 진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진은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땀이 한 가득 있었다. 진은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