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서울 수복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은 북한의 수중에 있던서 서울이 극적으로 수복된 날이다.
한국전쟁 승패의 분수령이 된 역사적인 날로,
당시 감격의 순간이 눈에 아른거린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인천 월미도에 상륙한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진입에 성공한 후, 북한군을 소탕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다.
뒤늦게 깨달은 김일성은 급히 방향을 바꿔 영등포를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해병 제2대대는 미 제1해병연대와 함께
이를 무찌르고 마포와 서울역을 경유해 서울 시가지로 진격하였다.
북한군은 200~300m 간격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수에 마지막 총력을 기울이며
중앙청 앞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펼쳐졌지만, 9월 27일 새벽 중앙청을 탈환했다.
오전 6시 10분경 박정모 해병 소위는 해병대원 3명을 이끌고
중앙청 꼭대기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다시 게양했다
.(다음 날 수도 서울을 완전 탈환했다.)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한 지 92일 만에(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한 지 13일 만에)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여 극적으로 전세를 반전시킨 것이다.
서울 탈환 작전의 하이라이트는 중앙청 국기 게양이다.
그런데, 태극기를 꽂은데 대한 숨겨진 비화(祕話)가 있다.
당시 작전 계획 상 유엔군이 중앙청을 점령하고 중앙청 건물 꼭대기에
미군이 승리 상징인 성조기를 꽂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해병 2대대 6중대 소대장인 박정모 해병 소위가 이끄는 해병대가 명령을 어기고
유엔군의 작전 지역을 몰래 침투한 직후 중앙청으로 기어 올라가 태극기를 꽂은 것이다
.(박 소위는 이 직전에 서울시청에 태극기를 꽂았는데,
이때 종군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중앙청에도 꽂는 게 이승만 대통령의 소원이라고 권유하자,
박 소위는 이를 즉각 상부에 보고했고 이어 참모 회의를 소집하여
미군의 작전 지역으로 침투하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군 해병대가 꽂기로 하였다.)
박정모 소위는 조선호텔 지하실에서 구한 4m짜리 대형 태극기를 온몸에 감고
소대원들의 허리띠를 연결해 로프를 만들어 힘들게 기어 오른 후 장대에 태극기를 매달아 내걸었다.
(당시 이 태극기는 현재 전쟁기념관 중앙청 국기 게양 코너 천장에 전시되어 있다.)
실제로 이 일로 인해 박 소위 등 대원들은 군법을 어긴 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약식 기소 형태로 겨우 빠져 나왔다고 한다.
박정모 소위(후에 무공훈장을 받고 대령으로 예편, 2010년 작고)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태극기를 게양하자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소대원들은
일제히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지.
사선(死線)을 넘은 소대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어.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장면만은 결코 잊지 못 할거야. 당시 내 나이 스물넷이었소.
장가도 못 갔고 고향에도 못 가고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온 국민이 열망하는 것을 저버릴 수 없었지.
온 국민의 갈망대로 우리나라 심장부에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직접 꽂았다는
벅찬 감격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이들이야말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진정한 애국자이다.
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세계 속 위해단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안보를 무너트리고 김정은의 야욕을 옹호하는
종북 좌파들의 굴욕적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국민적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 채
9.28 서울 수복을 위한 거창한 국민적 행사(기념식)는 고사하고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폄하시키는 분위기가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수레 바퀴는 되돌릴 수 없거늘,
좌빨들은 대한민국의 안보 가치를 흔들면서 역주행하고 있다.
빨리 먹구름이 걷히고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PS 1) 한국전쟁의 참전국(22개국, 의료지원 6개국 포함),
軍 사망자(실종 포함, 부상자 불포함, 국가기록원)는
아측 180천명(국군 140천명+유엔군41천명),
북측 800천명(북한군 650천명+중공군 150천명)으로
양측 약 1백만명이 희생되었고(부상자는 사망자의 5배 이상),
民間人 사망자(학살 포함) 2백만명(남한 40만명+북한150만명),
피난민 260만명 등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낸 냉전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전쟁이자 세계 최악의 동족상잔의 비극이므로,
우리는 북괴의 만행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PS 2) 미국에서조차 한국전쟁 기념비를 세우고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고 위도 38선이 지나는 미주리에
Feedom is not free.
(자유는 결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가 새겨져 있다.
PS 3) 한반도가 북괴의 수중에 넘어가려는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
창설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세계 전사에 남을 혁혁한 전과를 세우며
대한민국을 극적으로 구한 대한민국 해병대의 전설을 다시 되새기고 싶다.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첫댓글 정말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