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짜 심하기로는 조선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여원부원군 송질의 처 남원 양씨를 당할 여인이 기록에는 없다.
물론 중국의 서태후나 소쿠리양반 부인 크산티페인지 산타페인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어느봄, 송질이 후원을 거닐다 꽃같이 피어난 방년의 계집종을 한번 보고는 탕정을 못이겨 그만 손목을 잡고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근력 부치는 칠십객인지라 이내 잊고 말았는데 그날 저녁 부인 양씨가 소반에 식보를 덮어 무었인가를 내왔다.
대감이 보던 책에서 눈을 떼고는,
"그게 무었이오, 부인?"
하고 물었다. 원체 사랑 걸음을 잘 하지 않는 부인이기도 하거니와 무어 소찬이래두 챙길만큼 살가운 부인이 아니기에 괴이쩍기 이를데 없었다.
순간 양씨의 아미에 싸늘한 한기가 스치는가 하더니,
"대감이 이겄을 좋아 하신다기에 어렵게 구해 왔습니다."
"원,, 부인도 저승 문턱이 낼 모레인 나이에 무얼 그리 탐하는게 있겠소."
대감이 짐짓 헛웃음을 치며 소반에 놓인 식보를 벗기는 순간 대감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소반엔 피가 흥건한 여자의 손목과 입술이 놓여 있었다.
"아까 후원에서 보니 대감이 이겄을 대단히 즐기시기에 내 그년에게 사정하여 경우 구처하여 왔나이다."
서릿발같이 차가운 내자의 말에 송대감은 한번의 실수로 젊은 처자의 한평생을 망친겄에 가슴을 쳤으나 만시지탄일 따름이더라.
뒷날 상(중종)이 이를 아시고는 양씨 부인의 투기를 고칠 요량으로 꿀물을 되직하게 타서는 사약이라 속이고 어명을 나려,
"다시 투기를 안하나면 모를까, 맹세를 지키지 못하겠다면 즉시 샤약을 거행하라."
그러나 어명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양씨는,
"계집사람으로 태어난 겄이 천지간의 죄는 아닐진대도 평생 투기의 멍에를 쓸바엔 차라리 어명을 따르는 겄이 옳다."
하고는 누가 말릴 틈새도 없이 가짜 사약 그릇을 기울여 단숨에 원샷 해버린다.
송대감은 말할겄도 없거니와 명을 받아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이 썩은 돼지간처럼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여 몸둘바를 모르더라.
훗날 상이 들으시고는 무릎을 치면서,
"계집의 투기란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더니 하물며 과인임에랴,,허.."
하고는 돌아 앉아셨다한다.
웬 옛날 야그 하시겠지만 우리집에도 그런 무시무시한 분이 계시기에 하는 말이다.
비록 얼굴은 우박맞은 잿더미 같고 이슬비래두 내릴 양이면 고개를 들기 힘든 들창코지만
수단이 빠르고 공갈에 능하여 하루하루가 고양이 불똥 디디는 걸음매로 살아야 하니 이 어이 장부의 호협한 생활이라 할까,,
이런 부인이 남긴 도시락 쪽지 몇자 대강,,
"가군이 낮에는 밭갈고 밤에는 선비의 본분인 글을 읽는 주경야독으로 가업을 일굴 염의를 내시지 않고 안기생(신선)의 옥경자(용,여기선 잔차)와 이태백의 호로를 빌려 선기를 가다듬는다 하시고는 주야장천 청풍명월을 희롱하며 또한 풍도를 과시하고쟈 하룻밤에 수백금을 물쓰듯 하시니 석숭의 화수분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당이 되오리까.
이제는 곳간의 쥐새끼도 주림을 견디지 못해 이웃으로 도타한지 오래 되었으니 제발 식솔을
가긍히 여겨 형설의 빛으로 학문을 닦고 마소를 부려 문전옥답의 황폐함을 제거하시길 학수고대 소원할 뿐입니다,,, 운운,,"
"...................."
자굴산 쇠목재의 된비알을 오르고 싶었다.
아침 햇발이 처마를 스럼스럼 타고 내릴 때에야 겨우 토끼 세수로 정신을 차리고는 모산재 주차장으로 향한다.
대기저수지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자라목이 되어 헌걸차게 따라붙는 부암산 능선의 꼬리를 쫓아 가회로 내려선다.
가회하면 오도리 이팝나무와 김창완이 주연한 "학생부군신위" 로 이름난곳이다.
사정천을 따라 구평 마을을 지나고 가술천을 따르는 간공리 마을 부터는 완만한 업힐이 시작되는데 골짜기 가녁으로 늘어진 황금 논매미는 보는겄만으로도 배부르고 황홀하고
산자락에 피어난 쑥부쟁이와 감국은 깊은 가을의 향기를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확포장 공사가 한창인 어수수선한 대의 고개에서 물한방울로 갈증을 속이고 모텔 뒤로 이어지는 중촌리 임도를 타고 오른다.
제법 꼴깍 거리는 임도를 한번 채어 오르면 이내 길은 고저가 유순한 운치있는 길로 바뀐다. 임도가 흐르는 능선이 진양기맥길인지라 원님 덕에 나팔불고 옴덕에 보지 긁는 일타이피의 행복한 자전거 길이된다.
어찌나 임도 관리가 잘 되어 있던지 과부 허벅지 본 홀애비 마냥 혼자 실실거리며 마악 고개를 감아 도는데 어매 저게 뭐시다요??
그리 크지는 않으니 중톳 정도의 멧톧 한놈이 임도 구석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순간 머리칼이 무스를 바른듯 뻤뻤이 서고 아랫도리가 풍 만난 놈 마냥 후덜덜 거렸으나 놀라기는 지놈도 마찬가지인지 붉은 개옻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며 산기슭으로 장달음을 놓는다.
등짝엔 한출첨배의 식은땀이 흘러 재킷속에서 오뉴월 보리밥 쉬어터지는 냄새가 등천을 한다. 저 아래 중촌 마을을 지나면서 웅장한 자굴산이 코앞으로 다가선다.
그놈의 먹다 만 찐 고구마같은 멧톧 덕에 조금 놀라기는 했으나 물 본 기러기가 어옹을 두려 할 까닭이 있을까, 행정으로 떨어지는 능선 분기점을 지나면서 좌굴티재까지는 신나는 다운힐이 기다린다.
신정 소류지를 지나면서 그토록 오매불망 갈구하던 쇠목재 된비알이 본격적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도로법상 구배율이 17% 이내로 도로가 시공되기에 쇠목재 구배율이 16% 라는건
대단한 경사도 임에는 틀림이없다.
특히 중간 지점의 헤드핀 구간은 아차하면 자동으로 윌리가 구사되어 낭패 보기 십상인 위험한 지역이다.
자굴산 정상부의 단풍이 절정으로 타올랐으나 이놈의 된비알에 얼혼이 빠져 만추의 산을 감상할 겨를이 없다. 어디 배고픈 범이 원님을 알아본다던가,,,
똥 싼놈 바지춤 움켜잡듯 단단히 핸들을 감아 쥐고 까다까닥 기어 오르니 쇠목재엔 단풍을 즐기려는 유산객들의 차로 문정성시를 이룬다.
임도가 이어진 한우산 정상은 올해 두 번이나 갔기에 생락하고 째보 엿가락 물디끼 고갰마루에서 파는 어묵 한꼬지를 삐뚜름히 물고는 다시 모산재로 달려간다.
왕년의 씨름왕 이만기교수의 본가가 있는 행정리를 지나 삼가를 거쳐 그믐재를 숨가쁘게 올라서면 다시 가회면으로 돌아든다.
모산재 단골 식당에 들러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곧장 모산재를 타고 오른다.
하산을 서두르던 산꾼들이 객의 요상한 복장에(잔차옷)에 미친년 치마속 보듯 힐끔 거리며 혀를 찬다.
오뉴월 쇠불알로 늘어져 사흘길에 하루 가서 열흘씩 눕던 길이 복숭아 바위를 지나면서 조금씩 날이 나기 시작해 정상까지 수월하게 진행한다.
아까 다녀온 자굴산과 쇠목재를 눈이 시리도록 쳐다보곤 왁자한 한무리의 산꾼들 뒤로 저만치 쳐져 하산을 서두른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쉬려니 귀머거리가 우는놈을 보고 하품하는 줄 알더라고 객의 숭악한 몰골에 쉬쉬거리며 서둘러 길을 비켜준다.
영암사지의 쌍사자 석등의 우람한 자태를 한번 더 보고 오늘의 라이딩및 산행을 마무리 한다.
황매산을 타고 내리는 바람쌀이 조금씩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2009년 10월 18일,,
**라이딩거리,,,, 60키로(4시간30분)
**모산재(767봉),,,, 1시간 10분.
첫댓글 한편의 고전을 읽는듯한 라이딩기 잘 보았습니다. 근디 요즘 사람 아닌가토....
저기,,, 그래도 샨행기라고 올렸는디...
아우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실실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치 천사 같은 제수씨를 악독한 송질의 처와 비교를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ㅎㅎ 사진 한 장 없는 잔차기와 산행기지만 표현력이 너무나 탁월하시니 생생하게 전달이 됩니다. 일전에 일타 사피는 국쏟고 빰맞고 보지데고 치마베리고 더니 일타 이피는 원님 덕에 나팔불고 옴덕에 보지 긁는 것이구랴 흐흐흐.. 머리에 학실하게 팍팍 들어 오고 엔돌핀이 팍팍 돕네다. ^^
악처가 어디 따로 있읍니까,, 돈 못벌고 힘없으면 바로 악처 시하지에.. 방자님 ,,고맙슴다..
난테님의 글을 읽는 재미가 솔찬히 재미있습니다.
휴우,,,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흥감이오이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쉬려니 귀머거리가 우는놈을 보고 하품하는 줄 알더라고 객의 숭악한 몰골에 쉬쉬거리며 서둘러 길을 비켜준다.] 안봐도 비됴 입니다하
미남이란 소린 못들었으도 제가 그 정도 인즐 몰랐음다..
유학을 하시었는지?남편분의 문장만큼이나 부인의 문장력도 대단하십니다!~~~ㅎ 늘 행복하게 사십시요
집안이 미천하야 어데 유학 갈 여유는 전혀 없었음다,,, 희언이고,, 황매산을 대명으로 쓰신걸 보면 향골 분으로 짐작이 되시는데,,, 늘 즐산 하소서,,
ㅎ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어도 우리집은 황매산에서 해가 뜹니다!~~뜨겁고 눈시린 햇살이 문지방을 차고 들어 오는 바람에 어린 시절 늦잠한번 못자보았구요
잼납니다.저도 악처 소리는 안 듣는지 조심 해야 되 것네여 ㅎ
어쩜 이렇게도 맛깔스러운 산행기를 탄생시키는 것인지요 난테님의 산행기를 만날때마다 그 문장력에 감탄사가 연이어 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