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가 100만을 훌쩍 넘어 이번 주말엔 200만 관객까지 돌파할 태세다. 한평생 함께 살아온 촌부 최원균 할아버지(80세)와 늙은 황소(추정나이 40년)와의 우정이 설정된 독립영화다.
제대로 거동도 못하는 촌부는 황소를 위하여 날마다 논두렁 꼴을 베어 먹이고 황소도 한결같이 촌부 곁을 지키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시장으로 팔려나가는 운명을 감지하고 눈물을 흘리는 황소눈물은 감동적이다. 또한 황소가 눈을 감는 순간과 죽은 소의 고삐를 풀어주고 땅에 묻어주는 장면에서 보는 이의 눈시울은 뜨거울 듯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봉화의 ‘워낭소리’ 일대를 차분하게 농촌관광자원화 계획을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됐다.
‘워낭소리’가 이 시대에 진행 중인 현대판 감동이라면, 경기도 광주에는 6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전판 ‘워낭소리’가 있다. ‘흑기총(黑麒塚)’이야기다. ‘흑기총’은 검은소 무덤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고불(古佛) 맹사성(1360~1438)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불(맹사성의 호)이 하루는 고향 온양에서 상춘을 한다. 그때 악동들로부터 매를 맞으며 시달림을 받고 있는 검은 소를 목격한다. 달려가 아이들을 꾸짖고 소를 구해주는데, 여기서부터 검정소와의 인연은 시작된다. 고불이 검정소를 타고 피리를 불면서 한양을 오갔던 일화와 고불이 죽자 소도 며칠을 굶고 눈물을 흘리다가 따라 죽었다는 감동스토리는 ‘워낭소리’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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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총(직동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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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의 유언에 따라 검정소는 맹사성의 묘 가까이에 묻혀있다. 그래서 후손들은 해마다 벌초를 해주고 술잔까지 부어준다. 태봉에서 승용차로 10여분거리, 직동방향으로 쭉 직진하다가 어설픈(?) ‘맹사성의 묘’ 안내판을 보면서 동네 끝자락에 미치면 차를 세운 후 또 10여분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흑기총’은 잔디가 잘 손질되어 있다. 얼핏 보면 도톰한 빈대떡 모양인데 위쪽에 붙은 작은 꼬리모양이 쉼표꼬리처럼 귀엽다. 크기는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지름 3m폭에 높이는 한 뼘 정도로 낮은 편이다.
‘흑기총’을 둘러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다. 검정소의 친구이며 주인이기도 한 고불의 묘가 어떤 사유로 직동에 모시게 됐느냐이다. 고불의 활동무대는 한양이었다. 또 고향은 충청도 온양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직동에 사는 맹승재, 18대손) 한양에서 온양으로 상여가 내려가다가 판교부근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회오리가 불어 명정(銘旌,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등을 기록하여 상여 앞에 들고가는 기다란 깃발)이 날라 갔다. 그런데 그 떨어진 곳이 바로 직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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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묘역(직동 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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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최영장군의 손자사위이기도 한 고불은 조선시대 청백리의 표상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시문에 능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고 누구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른이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과도 많은 점이 닮아 보인다. 소탈 겸손하고 해학이 넘치며 효성이 지극하다. 순수한 청빈 속에 살다가 간 고불의 삶을 역사를 통해 배운다.
내가 고불의 묘를 찾은 시간은 지난 주말 해가 맹산에 걸리던 저녁이었다. 올라가는 길에 논배미가 아름다웠고 노래를 부를 만큼 노을에 걸린 낙엽송 디테일이 유난히 돋보이던 시간이었다. 게으름 탓일까? 아니면 무관심... 나 역시 50여년 만에 뵙는 인사다. 어찌 보면 광주에 살면서 이제야 뵙는 건 크게 꾸지람을 받을 일이다. 남윤구 직동이장의 말을 빌면 옛날에는 광남초등학교의 소풍장소였다는데 요즘은 고불 연구학자나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따뜻한 봄날 고불을 만나러 소풍을 떠나보면 어떨까? 할미꽃이 피는 봄날이면 더욱 좋겠다. 챙길 것은 도시락과 음료수와 아이들과 함께 즐길 고불의 ‘공당’게임이다.
※서비스 : 아이들과 함께 즐길 <고불의 공당 게임>
소를 타고 한양을 가다가 허름한 주막에 들린 맹사성이 한 젊은 선비와 장기를 두면서 즐긴 재치게임. 질문은 말끝에 공자를 붙여야 하고 답은 당자로 끝 운을 달도록 했다.
“심심하니, 우리 장기나 한판 두지 않을 공?” “좋도록 합시당” “어디 가는 길인공?” “한양가는 길이당” “무엇하러 가는공?” “과거보러 간당” “내가 잘 아는 시험관이 있는데 글제를 알아봐 줄공?” 젊은이는 별안간 장기판을 뒤엎는다. “뭐 이런 늙은이가 있당!” 그 후 한양으로 올라간 선비는 과거급제하고 마지막 면접시험을 치른다. 선비는 시험관 앞에서 깜짝 놀란다. 주막에서 뵌 노인이 앞에 앉아있지 않는가. “떨어 뜨릴공?” “아이고 살려 줍시당!” 맹사성은 장기판을 뒤엎을 때 이미 젊은 선비의 됨됨이를 이미 알아챘다. 물론 젊은이는 합격하여 훌륭한 관리가 된다.
신동헌 농촌정보문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