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시향 회원이다. 1년에 3만 원의 후원 회비를 내고 매달 공연 해설이나 연주자 인터뷰가 실린 소식지 [SPO], 스노우캣이 일러스트를 그린 달력, 모든 공연에 대한 예매 우선권과 할인 혜택을 받고 있다. 정규직 월급쟁이라서 3만 원 정도는 한 끼 식사나 휴대폰 게임 아이템에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형편은 되지만, 3만 원 정도 아껴 보겠다고 화장품 로드샵 세일 날짜 알람을 해두거나 해외 직구를 활용하는, 나름 합리적 소비자이기도하다. 시향 후원 회비로 내는 3만 원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충분히 돌려받기 때문에 아깝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나마도 후원 기간 종료를 알리는 공지 문자도 오지 않기 때문에 1년이 언제 지났는지 잊어버리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지둥 회비를 챙겨 내곤 한다(그리고 이 글을 쓰다가 올해 분 입금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래식을 좋아한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음악 듣기에 물려본 적은 없는데 서른 근처가 되자 어쩐지 사람 목소리가 귓가에 부대낄 때가 많았다. 운전하며 가사 없고 광고 없는 채널을 찾다 보니 클래식 FM에 손가락이 멈췄다. 어릴 적 가요, 팝, 록을 편식하지 않는 가운데 거실 오디오에서 들려오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비발디 사계, 베토벤 운명 같은, ‘한국인이 좋아해서 식상한 고전음악 100선’ 레퍼토리를 얻어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 뿐, ‘아버지에게 넘겨받은 클래식 LP 컬렉션’ 같은 건 ‘엄마가 물려준 샤넬백’ 만큼이나 먼 남들의 도시전설이었다. 그렇게 이끌어주는 사람도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마냥 더듬거리며 하나씩 입에 넣어보고,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골라 먹기 시작했다. 거슬리는 데가 없어 틀어놓고 흘려보내던 고전음악이 서서히 귀에 머무르면서 친숙한 레퍼토리는 제목이나 작곡가로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연주자나 악단마다 비교하며 찾아 듣기도 했다. 음악은 한번 좋아하게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음악을 데려오는데, 클래식도 다를 바 없었다.
레코딩이냐 라이브냐, 음악가도 음악 팬도 대략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데 나는 조금 더 후자에 기운다. 전설적인 녹음을 반복해서 듣는 일이 완벽하게 보장된 즐거움을 준다면, 현장에서 연주자들과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화학작용에는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다. 나쁘면 배로 망하고, 좋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피아노나 첼로, 바이올린 독주회 같은 데는 가보던 공연 애호가의 동선이 어쩐지 오케스트라 연주회까지는 쉽게 미치지 못했다. 나도 이름을 알 만큼 유명한 오케스트라들이 더러 한국에 왔지만 너무 비쌌으니까(그렇다고 나조차 이름을 모르는 오케스트라를 굳이 가서 볼 이유도 없었다. 실력이 없을 테니까. 오케스트라의 딜레마랄까). 보통 대중음악 콘서트 관람료가 7, 8만 원부터 11만 원 정도인데 그 가격으로는 가장 싼 합창석이나 기껏해야 B석 정도 표를 살 수 있었고, 그나마도 소식을 듣고 들어가 보면 저렴한 좌석부터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공연 개런티 외에 그 많은 단원들의 항공료와 체류비까지 고려하면 그럴법한 가격이었지만 그 돈으로 이를테면 이승열 소극장 공연에 가서 얻는 즐거움의 효용을 생각하면, 클래식은 레코딩으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와 타협할 만 했다. 통폐합의 길을 걷는 클래식 메이저 음반사들은 검증된 음원들을 슬플 만큼 저렴한 가격에 CD 박스세트로 내놓고 있고, 유튜브에서는 내 여생보다 긴 재생목록을 만들 수도 있다.
‘요즘은 시향도 들을 만 하다’는 얘기를 내게 처음 해준 이가 누구였는지는 잊어버렸지만 2009년이었다는 건 기억한다. 다음 해의 말러 사이클이 내가 본 첫 시향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그 전까지의 내 자세는, 김연아를 알기 전에 “한국에 피겨스케이팅을 잘 하는 선수가 있다구? 으응…” 하는 느낌이었다. 좋아하던 레퍼토리인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 마침 공연이라 알아봤더니, C석 1만 원. 홍대 클럽 공연 가격이었다(게다가 스탠딩은 이제 체력적으로 힘든데 앉을 수도 있다). 홈페이지를 기웃거려 보니 ‘우리 동네 음악회’라는 무료 공연도 종종 열고 있었다. 대학 강당이나 교회의 엉망인 음향과 뛰는 어린이들 틈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연주하는 단원들을 보며, 그래도 시향이니까 이런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평범한 시민들이 클래식 공연에 가기 힘들다면 그건 1만 원짜리 티켓 가격 부담보다는 이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2011년부터는 매년 패키지를 끊어 한두 달에 한번 씩 시향의 공연을 본다. 돈과 시간과 체력을 아끼고 잘 분배해서 써야 하는 30대 직장인으로서는 그 셋을 꾸준히 투입하는 취미생활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클래식을 듣는 귀가 조금씩 열리고 악기의 음색이나 곡의 구조에 대해 이해를 넓히며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오케스트라의 실연을 자주 본 덕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몇 년 사이의 이런 개인사는, 다 시향의 연주가 ‘들을 만’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시향의 기량이 정점에 오른 2013년은 기억에 남는 연주가 많았다. 1월 중순 김선욱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협연 날은 도이치 그라모폰 레코드 녹음을 의식했는지 유독 객석에 헛기침이 잦았다. 3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협연에서는 지금 경기 필하모닉 단장으로 가 있는 당시 부지휘자 성시연과 손열음의 용호상박이 굉장했다. 한 선배는 이 즈음의 시향을 가리켜 ‘2002년 월드컵 때의 한국 축구팀 같은 기세’라고 촌평했다. 누구도 세계 랭킹에 꼽진 않지만 기이한 팀워크와 근성을 발휘해 4강까지 올랐던 매력적인 컬러의 팀,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한 리더십. 2014년에 시향은 BBC 프롬스 데뷔 무대를 가졌다. 4년 남짓, 수십 차례의 커튼콜과 현장의 화학 작용을 지켜본 관객으로서 지금 시향에 대해 ‘들을 만 하다’는 정도의 시큰둥한 표현을 쓴다면 미안한 일이다. 그리고 ‘요즘은 시향도 들을 만 해’라는 그때의 말 뒤에 그 이전의 시향, 그러니까 정명훈 예술감독 이전의 시향이 어땠는지에 대한 생략이 숨어있었다는 것 또한 알겠다.
다른 많은 도시의 송년 음악회와 마찬가지로, 매년 시향의 마지막 연주회 레퍼토리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다. 어째 ‘환희의 송가’가 어울리지 않는 삶의 순간이 점점 많아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날만큼은 대곡의 연주를 듣고 예술의 전당에서 반포대교까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돌아오곤 한다. 음악이 주는 순수한 고양감과 훌륭한 연주에 대한 만족, 또 한 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 같은 기분 곁으로는 내가 사는 도시가 이런 오케스트라를 가졌다는 데 대한 긍지도 단단히 존재한다. 한 해에 한 번,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tvN [미생]에서 요르단 중고차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내 비리에 대해 장그래는 “우리 회사의 모두가 모욕을 받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박현정 서울 시향 대표이사의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인격 모독 역시, 직원과 단원 뿐 아니라 시향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긍지까지 훼손시켰다. 공방이 치열하던 지난 12일에 있었던 정기 연주회에서는 지휘자가 입장할 때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명백한 지지의 의사 표시였다. 모두가 ‘환희’에서 한 발 더 멀어진 올해도 나는 시향의 마지막 공연인 합창을 보러 간다. 그리고 내년에도 후원하고, 공연에 가고, 시향을 계속 응원할 것이다. 무엇을 도려내고 덜어내야 할지, 무엇을 지켜내야 할지 명확하다. 내가 사는 도시가 이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계속 가질 수 있을지,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서울에 시향이 가장 필요할 때다. 우리 삶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이 점점 비루해지기 때문에, 자꾸 우리를 모욕하기 때문에, 그럴수록 아름다운 것이 절실하니까.
첫댓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요즘 시향의 몇몇 사태들에 슬프기도
화가 나기도 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