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오묘한 일...나타난 일 - 여기서 '오묘한 일'이란 인간에게 계시되지 않은 일로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신적 계획이나 섭리 등을 가리킨다. 반면 '나타난 일'이란 말씀이나 예언, 기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편을 통하여 이미 인간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주권과 계시(啓示)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 준 구절로서, '나타난 일'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또한 후손들에게 가르칠 것이 요구되지만, '오묘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하에 속해 있음을 가르쳐 준다 한편 이 점은 사도 바울 역시 유대인들의 배신과 회복을 논한 그의 강화 끝부분에서 고백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도는 '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놓아 두셨을까?'하는 문제에서 부터 '왜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구속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를 반드시 죽게끔 하셨던가?'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논리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성경의 제난제에 대하여서는 피조된 자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욥 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온전히 알겠느냐 - `오묘'란 원어상으로 `심사 숙고', `깊은 것'등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묘'란 하나님의 깊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깊은 뜻을 가리킨다. 그리고 `측량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발견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 전반절은 욥과 같이 말이 많고(2절) 어리석은 자가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밀들을 발견할 수도 깨달아 알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한편 본문 후반절의 문자적 의미는 `네가 전능자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의 뜻이다.
즉, 본문 후반절의 `온전히 알겠느냐'의 히브리 원어는 전반절의 `측량하며'란 말과 같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후자의 `팀차'를 `네가 도달하다로 수정 번역한다 그러나 본문은 동일 어휘의 반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봄이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