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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의 전황은 혼전중이다.
러시아 연합군(정규군과 친러 도네츠크 민병대,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 그룹' 등)이 수개월만에 우크라이나군의 필사적인 저항을 뚫고 도심으로 진출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개전 초기에 우크라이나군이 결사항전했던 아조프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마리우폴 전투에서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단체 '아조프 연대'가 산업단지의 철골 구조물 뒤에 숨어 저항을 계속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우크라이나군 수천명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마리우폴의 아조프스탈 제철소에서 걸어나와 러시아군에게 투항하는 우크라이나군/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며칠 사이 '춘계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러시아군에 내주었던 바흐무트 외곽 지역 일부를 탈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바흐무트로 연결되는 보급로를 차단했던 러시아군도 몇 ㎞ 뒤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고전(당서·唐書의 배도전·裵度傳)에도 나오는 것처럼 '이기고 지는 것(승패·勝敗)은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인 만큼, 전투 하나하나의 승패에 일희일비할 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큰 흐름이고, 군부대간의 단합과 호흡이다.
그런 면에서 크렘린(푸틴 대통령 등 수뇌부)이 직면한 고민거리 중 하나는 '바흐무트'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민간 군사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군인들을 중심으로 돈으로 계약한 자원 병력과 사면을 미끼로 끌어들인 죄수( 수감자)들을 적절하게 얼버무려 바흐무트 공격에 큰 전과를 올려온 그다. 수많은 수감자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았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어차피 전쟁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 러시아측으로서는 프리고진의 기발한 발상 덕분에 정규군의 희생을 그만큼 줄였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도 있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용병 차출 연설을 하는 프리고진/영상 캡처
바그네르(바그너) 용병 모집 홍보판/사진출처:스트라나.ua
문제는 바흐무트 공격 전선에서 '바그너 그룹'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프리고진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과격한 언행을 불사함으로써 심화된 러시아 연합군내 분열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총을 든 '권력 투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크렘린이 처리 방안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프리고진은 이제 크렘린에게 '계륵'(鷄肋)이 된 건 아닐까?
먹기에는 너무 적고 버리기에도 아까운 닭 갈빗대(계륵)다. 한동안 러시아 정규군에게 '메기 효과'(메기 한마리가 미꾸라기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긴장 효과)로 작용한 '바그너 그룹'이 너무 커버린 탓이다. 제어가 힘들면 불화만 일으킬 뿐이다.
특수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러시아 연합군은 크게 정규군과 동원된 예비군, 친러 도네크츠(DPR), 루간스크(LPR) 민병대, 그리고 용병으로 참전하는 '바그너 그룹'과 '체첸 전사' 등으로 나뉜다. 작전 총괄은 당연히(?) 러시아군 총참모부가 맡고 있다.
그러나 작전 초기에는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상당한 권한이 부여됐다. 전투 현장의 지휘체계는 수직적이라기 보다는 비교적 병렬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작전 부대간에 손발이 안맞을 때도 있었고, 전과를 시기하거나 서로 비판하는 경우도 잦았다.
대표적인 게 러시아군 최고 지휘관들에 대한 '바그너 그룹'과 '체첸 전사' 측의 신랄한 인신 공격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군이 제대로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점령한 하르코프(하르키우)에서 철수하자, 프리고진과 체첸자치공화국(이하 체첸)의 수반 람잔 카디로프는 거의 동시에 '무능한 지휘관'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작전 지휘관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도 신랄한 비판을 비껴가지 못했다.
한달 여뒤, 남부 헤르손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이 압박이 집중되자, 러시아군으로서는 '작전상 후퇴'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군내 과격파, 혹은 반(反)쇼이구 장관-게르시모프 세력의 비판이 무서워 선뜻 철군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체첸 자치공 수반 카디로프/사진출처:체첸 사이트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뒤 기자회견하는 수로비킨 장군/사진출처:소셜미디어 ok
이때 크렘린(국방부)이 꺼내든 카드는 프리고진, 카디로프로부터 '진짜 장군'이라는 칭찬을 들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중장이었다. 그를 특수 군사작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권을 부여했다. 개전 후 처음으로 특수 군사작전 지역에서 수직적 명령체계가 도입됐다.
수로비킨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헤르손 전황을 설명한 뒤 과감하게 철군 명령을 내렸다. 앞에는 적, 뒤로는 드네프로강에 막혀 자칫 전멸 위기로 몰렸던 러시아군이 별다른 손실없이 드네프로강 동쪽으로 물러나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헤르손 철군 명령에도 불구하고, 프리고진이 '싸우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장성'이라고 치켜세웠던 수로비킨 총사령관은 그러나 직책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인 올해 1월 초 전격 교체됐다. 그의 후임은 프리고진에게는 '눈엣 가시'같은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었다. 수로비킨은 게라시모프 총사령관을 보좌하는 부사령관으로 한단계 내려앉았다.
특수 군사작전 개시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군 최고 지휘관(총참모장)이 직접 작전을 지휘하게 됐다. 전군 동원령과 유사한 지휘체제가 만들어졌다. 작전 최고사령부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하루 아침에 작전 최고 지휘부와 끈이 떨어진 프리고진은 또다시 자신과 가까운 군사 인플루언스(친 프리고진 텔레그램 채널)을 동원해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겨냥해 '구두탄'(口頭彈)을 날리기 시작했다.
특수 군사작전 최고 지휘부. 맨위가 총사령관을 맡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아래는 수로비킨 장군등 부사령관 3명/텔레그램 캡처
한동안 내부 총질보다는 바흐무트 공격 전과에 대한 선전에 열을 올리던 프리고진이 총구를 다시 내부로 돌린 것은 지난 5일께. 러시아의 최대 국경일인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전승절)을 앞두고 바흐무트 완전 점령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조됐을 때다.
프리고진은 지난 5일에 올린 영상에서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인간 말종들'이라고 비하하며 "'바그너 그룹'에 충분한 탄약을 제공하지 않은 죄로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포탄 공급을 안해줄 경우, 10일 0시 부로 바흐무트 전선에서 철수하겠다고 경고했다.
그의 이같은 폭탄 선언에는 서로 상반되는 분석이 뒤따랐다. 실제로 '포탄 부족이 심각하다'는 주장에 더해 △바흐무트 점령의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프리고진을 견제하기 위해 국방부 기득권 세력이 탄약 공급을 중단했거나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 사수에 프리고진이 목표 달성(전승절 전 바흐무트 점령)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명분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탄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러시아 국방부는 물론, 우크라이나군에 의해서도 일축됐다. 바흐무트 주둔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이 "러시아측(바그너 그룹)의 포 공격이 줄어든 게 없다" "최근 몇 주 동안 포격 강도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프리고진이 수세에 몰렸다. 서방 측의 철군 권고에도 불구하고,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군지휘부가 나서 바흐무트 사수를 독려하면서 전승절 이전까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바흐무트 도심에 모습을 드러낸 러시아군 T-90 탱크/텔래그램 영상 캡처
프리고진이 크렘린에 '계륵'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 프리고진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국방부)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자신과 가까운 군사 인플루언스들을 동원했다. 때마침 좋은 핑계거리도 생겼다. 지난 달 초에 터진 미국 국방부의 유출 기밀문건에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지난 2월 12일 '바그너 그룹'에 대한 군수품 공급 중단을 명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프리고진이 바흐무트 철수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온 데에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전승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서라도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양보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크렘린에게는 '마지막 한수'가 남아 있었다. 소위 '체첸 전사'들을 이끄는 카디로프 체첸 수반이 나섰다. 그는 이튿날(6일)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바그너 그룹' 대신 자신이 이끄는 '아흐마트 특수부대'를 바흐무트 최일선에 배치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국영 타스통신을 통해 공개 요청했다. 또 후퇴를 원치 않는 '바그너 그룹' 전사들에게 아흐마트 특수부대에 합류하도록 호소했다. 동시에 전쟁에서 명령없이 철수하는 것은 반역이라며 프리고진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는 카디로프의 발언이 타스 통신을 통해 전해진 것은 크렘린이 뒤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프리고진이 손을 들고 말았다. "러시아 국방부가 다시 탄약과 무기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며 바흐무트 철군 의사를 번복했다. 그는 "우리는 현재 바흐무트 지역 95%를 통제하고 있으며, 남은 5%지역도 특수 군사작전 수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군의 수용소를 방문해 귤을 전달하는 프리고진/현지 매체 RT 영상 캡처
그러나 스트라나.ua는 7일 "크렘린이 (프리고진의)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했다"고 썼다. 만약 프리고진이 전장을 떠난다면 러시아의 국가 시스템이 그를 제거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프리고진이 지난 2월에도 비슷한 요구를 내세웠다가 문제가 해결됐다고 물러선 적이 있다"며 "그가 이번에도 쇼이구 국방장관-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라인을 제거하지 못해 앞으로도 비슷한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 예측은 적중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계속 외친 '양치기 소년'이 된 프리고진은 9일 전승절 행사 직후 또 논란이 될만한 영상을 올렸다. '행복한 할아버지' 이야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영상을 통해 "러시아군이 탄약을 비축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바그너 그룹)에게는 탄약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전날(8일)에는 국방부 참모로부터 '바흐무트 철수는 반역죄로 간주된다'는 경고와 함께 전투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의 측면을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탄약이 공급되지 않으면 (살기 위해서) 철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진 철수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따른 후퇴론으로 논리를 바꾼 것. 특히 바흐무트 측면을 방어하던 러시아군이 말없이 후퇴하는 바람에 전선의 2km가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최전선을 찾아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쇼이구 국방장관(위)와 '바그너 부대(그룹)'를 격려하기 위해 전선을 방문한 프리고진/현지 매체 영상캡처, 텔레그램 캡처
이날 영상 메시지의 핵심은 '한 할아버지의 존재'였다. "포탄을 쏴 적을 죽이고 우리 병사의 생명을 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병사가 죽어 나가도 행복한 할아버지는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할아버지가 옳다면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아니라면, 우리 자녀, 손자, 러시아의 미래는 어떻게 되느냐? 그는 바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은 여기서 '할아버지'는 푸틴 대통령을 뜻한다며 푸틴 대통령을 직격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튿날(10일) '할아버지'의 정체를 묻는 러시아 TV채널 'RTVI'(해외로 송출되는 TV채널및 뉴스 플랫폼)의 질문에 "국방차관에서 해임된 뒤 바그너 그룹에 합류한 미하일 미진체프, 우리에게 포탄을 공급해야 하는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소셜미디어에서 우리에게 포탄 상자를 제공한 나탈리야 힘 등이 될 수 있다"고 얼버무렸다. 또 "군 수뇌부가 푸틴 대통령을 기만하고 있다"고도 했다.
프리고진의 이날 영상에서 스트라나.ua가 주목한 것은 국방부 참모로부터 들었다는 '반역죄' 경고다. "푸틴 대통령의 동의 없이 그같은 경고가 하달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계의 어떤 군대도 탄약 부족을 이유로 함부로 철수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만약 우크라이나군이 탄약 부족을 이유로 철수했다면, 이미 러시아군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하지만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라인이 군부에서 제거될 때까지, 혹은 푸틴 대통령이 '그만하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때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전망했다. 그의 정치적(?) 야망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특수 군사작전을 통해 자신을 '애국자 캐릭터'로 만들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서려 한다는 것이다.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을 접대하는 장면/사진출처:얀덱스
일부 성과도 없지 않았다. 국방부의 탄약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프리고진을 하원(국가두마)으로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 세르게이 네베로프 하원 부의장이 제안하기도 했다. 프리고진도 즉각 "(탄약 지원 부족)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하원이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프리고진의 돌출행동에 대한 또다른 분석도 있다. 미국 카네기 재단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선임 연구원인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에게는 분노를 담은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 없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카디로프 체첸 수반은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 뒤 '셀카'를 남기기도 했으나, 프리고진의 크렘린 '푸틴 독대설'은 아직 나온 바가 없다.
푸틴 대통령과 독대한 뒤 셀카를 남긴 카디로프 수반
스트라나.ua는 "프리고진의 진짜 동기가 무엇이든, 그의 행동은 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극도로 불편하고 수위가 높은 발언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계속 용인하기도, 내칠 수도 없는 존재(계륵)가 되어간다는 지적이다.
프리고진도 자신의 처지를 모를까?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바흐무트 전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할 게 분명하다. 일단 진행되는 전황은 그에게 유리한 듯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외곽 지역에서 반격을 계속하고 있다. 안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12일 정확한 위치를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바흐무트 방향으로 2Km 전진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이 지난 9일 주장한 그대로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베르호프스키 호수를 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바흐무트 북서쪽에 위치한 이 호수는 오랫동안 러시아군의 후방에 속했다. 러시아군이 기존 위치를 떠나 북쪽(베르호프스키 호수쪽)으로 후퇴했다는 뜻으로 스트라나.ua는 해석했다. 프리고진도 러시아 국방부의 이같은 발표에 "러시아군이 바흐무트 보급로 장악을 포기하고 도망갔다"며 "우크라이나군이 차소프 야르~바흐무트 보급로를 다시 열었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 종군 텔레그램 채널들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고, 러시아군이 뒤로 밀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프리고진과 가까운 텔레그램 채널들은 이미 전날(11일) 러시아 제 9기계화보병연대가 바흐무트 북서쪽 위치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은 "수개월간 매일 수십m, 수백m를 진격하며 우리 동지들의 피와 생명으로 빼앗긴 영토가 제대로 싸우지고 않고 적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10일에는 "우리 군이 도망치고 있다"며 "제 72기계화보병여단은 오늘 아침 3㎢를 버렸고, 그곳에서 병력 500여명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의 분석은 러시아군 내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부추기듯, 너무나 달랐다.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정규군에게 사전 통고도 없이 위치를 떠나는 바람에 지난 8일 우크라이나군에게 돌파구가 열렸다고 썼다. 스트라나.ua가 인용한 우크라이나군 제 3공수여단 제 1대대장은 '바그너 부대(그룹)'이 그날 방어를 포기하는 바람에 러시아 제 72 보병 여단이 홀로 싸우다 패퇴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이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흐무트 전투에서 시내 진입에는 '바그너 그룹'이, 시 외곽 포위 공격에는 러시아 정규군이 맡았다고 한다. 시 외곽이 뚫렸다면, '바그너 그룹'이 아니라 러시아 정규군의 책임 구역이 돌파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NYT는 또 '바그너 그룹'이 철수한다면, 바흐무트의 판이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본격화한 지금, 프리고진을 내치기는 크렘린에게는 너무 위험한 선택이다.
그렇다고 적을 이롭게 하는 자중지란을 두고만 볼 것인가? 프리고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크렘린의 선택에 달렸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러시아의 반정부 매체 '메두자'는 프리고진이 지금과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면, 크렘린은 그를 러시아의 반역자로 규정하고, 특수 보안부대가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메기효과'는 지금까지로 충분했고, 계륵 같은 존재라는 확신이 든다면 부담없이 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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