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시대별로 한 세대의 사회적 특징이나 양상을 몇 단어로 풍자하거나 설명하는 표현이 유행하곤 한다. 흔히 MZ세대, 3포, 7포 세대, DINK족, 중 2병, 고 3병, 욜로족 등이 그 예이다. 이것을 살펴보면 발달학적으로 한 세대를 풍자하는 말들이 많다. 그중에 노년기와 관련된 말로는 ‘빈 둥지 증후군’이나 ‘은퇴 증후군’이 있다. 특히, 사회의 고령화와 함께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목회자의 은퇴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준비되지 않는 은퇴가 많은 사람들의 노년기를 어렵게 만드는데, 목회자의 은퇴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교회라는 종교 공동체의 특수성과 사회나 개인의 현실적 인식 차이 때문에, 양극화된 태도의 대립이 다른 어느 조직의 은퇴 양상보다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목회자는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할을 수행해 왔던 세대이다. 이 시기는 공감이나 감성보다는 이성, 역할, 의지, 책임, 도전, 성취 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고, 전도와 부흥이라는 결과 중심적 목표를 향해 목회자와 성도가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목회자의 헌신과 성도의 헌신이 분리되지 않았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애쓰고 최선을 다했다.
『한국교회 목회자 은퇴 매뉴얼』 표지 ⓒ도서출판 기윤실
나는 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요청으로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인터뷰하고 이 사례를 중심으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들은 50명 미만의 미자립 교회 목회자. 소형 교회 목회자, 300명 이상의 중대형 교회 목회자였다. 이들이 목회한 시기에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성공과 부흥을 경험했지만, 모든 결과에는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이 존재하듯이, 안정적으로 성장한 교회들 한편으로는 50명 미만의 미자립 교회도 존재하여 교회 역시 빈익빈 부익부로 분리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은퇴 시점에 목회자가 겪는 어려움으로서, 양가적인 이분법적 사고, 신앙과 관련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열심과 주도적 성취의 고착화, 부흥기 세대에 이상적이었던 신앙과 믿음의 추구, 절대성과 현실성의 불균형, 사역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나 높은 거룩성의 추구로 왜곡된 견해나 역할 부여, 정서적 어려움(우울증) 증가, 시대 변화에 대한 낮은 인식, 독단적 태도나 사고의 경직성, 정서적 공감력의 부족 등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었던 주요한 문제들이다.
자기(가족) 돌봄의 부재와 인식 부족
경계가 약한 타인(성도) 중심의 삶
관계나 일 중독적 성향이 나타남
자기 인식의 부족
주도적 결정과 통제적 리더 역할에 익숙하여 관계와 소통에 어려움
의존적 성향의 성도로 인한 높은 동반적 관계 의존성
종교와 현실적 문제의 경계 혼란
이들은 교회 부흥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으로 강박과 완벽을 추구하면서 내면의 불안과 염려를 차단해 왔고, 오직 성도들과 교회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았다고 말한다. 교회의 양적 성장을 성공한 목회로 보는 문화 속에서 교회 부흥을 추구하면서,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 발달하고, 뒤돌아보거나 반추하는 시간보다는 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한 도전과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셨지만, 이 시기의 목회자들은 자신에게 잠시도 이러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면 자책감이나 죄책감 혹은 무기력을 경험하면서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가정을 돌보기는 쉽지 않았고, 자식보다는 성도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 결과 가족과 자녀와의 관계는 은퇴 이후의 삶이 힘든 한 요인이 되었다.
사역 자체는 우울이나 정서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환경이며, 다양한 사람들을 돌보고 교회를 관리하는 일은 여러 영역의 활동이 요구되므로 분주하게 되기 쉽다. 그럼에도 목회자들은 신앙의 명목으로 힘든 상태를 부인하고 자신을 돌보는 것을 소홀히 했다.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자신을 돌볼 기회를 놓치고, 이런 상황이 익숙해져서 결국에는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은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이 은퇴 이후의 정체성 혼란과 신앙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현실적 문제들을 직면하면서도 근본적 가치들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교회(교단)와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은퇴를 앞둔 목회자를 위한 은퇴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 제공과 담당 심리 전문 상담사 배치
은퇴 목회자를 중심으로 동료 상담사로 역할 전환을 할 수 있는 심리 교육 제공
정서적 심리적 의식의 변화를 위한 집단 상담이나 교육
은퇴자들이 편히 예배를 보거나 교제할 수 있는 장 마련
심리적 지원은 은퇴만의 문제가 아닌 근원적 목회자 돌봄이라는 인식 전환
또한, 목회자에게 경제적 측면의 은퇴는 있지만 한 개인의 소명이나 가치로부터의 심리적 은퇴는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목회가 부르심이고 삶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외부 환경 변화와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영혼 구원 사역에 은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회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목회자 역할이나 기능, 소속 교회나 공동체가 제공한 일터 개념에만 근거를 두고 이해한다면, 은퇴는 분명 일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란 분명 일터 중심의 개념은 아니다. 목회가 단순한 역할이나 기능이 아니라 가치나 목적이 되면, 은퇴는 사실상 없다. 이 부분에서 은퇴 목회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특정 교회라는 소속 공동체의 부재가 목회자 정체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 정서적 자기 돌봄과 목회자의 정체성에 대한, 나아가 존재에 대한 건강한 가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은퇴를 맞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년기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이다. 인간 발달 단계마다 성취해야 할 과업이 다르듯이, 은퇴 목회자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인생의 새로운 과업을 성취해 가는 한 부분이다. 하나님이 인생에 개입하시고 돌보시는 일은 우리가 천국 가는 날까지 계속되므로, 평생을 목회에 바쳐 헌신한 분들의 삶 또한 계속될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평생을 수고하고 헌신한 목회자들의 열심과 열정, 그리고 믿음의 삶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고, 은퇴 전후 현실 상황에서 겪은 마음의 상처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있기를 바라본다.
곽은진 아신대학교 상담학 교수
이 글은 기윤실 <좋은나무>의 기사를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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