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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지남에 따라 반권력적 의협심(義俠心)은 마치히케시(町火消し)로 승계되는데 요즘으로 치면 소방관을 생각하면 된다. 좀 더 정확히 하면 '도시주민이 자치적으로 조직한 소방 조직'이다. 자체적으루다가 하는 험한 일이 그렇듯, 이들은 든든한 오야붕(親分)-꼬붕(子分) 관계로 뭉치는 집단이 된다.
2) 전업 도박꾼과 전문 수사꾼
도박묵시록 카이지라는 만화가 있다. 아마 보신 분들 제법 있을 줄로 안다(술렁술렁).
에도시대에는 카이지처럼 사는, 그러니까 하라는 일은 안하고 도박으로만 먹고 사는 천하의 쌍놈들이 탄생한다. 말하자면 전업 카이지, 아니, 전업 도박꾼이 탄생했다는 말인데 이는 도박판을 주재하거나 도박하는 것을 전업적으로 행하는 아웃로(outlaw) 집단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박판하면 뭐다? 칼부림이 일어난다. 칼을 잘 쓰는, 그러니까 쌈도 무지 잘하고 도박도 잘하는 이들의 세력도 함께 커지게 된다.
해서, 19세기 초반, 에도막부는 관동지방 8개 지역 전체를 관할하며 무뢰한(無賴漢)을 단속하는 특별 수사반, 칸토토리시마리슈츠야쿠(関東取締出役, 일명 핫슈마와리(八州廻り))를 설치한다.
도박집단이 커질수록, 특별수사반도 커지게 마련, 특별 수사반은 그들을 제대로 단속하기 위해 도박집단 내에서 유명한 이들을 고용한다. 뭐, 자세히 들어가면 끝이 없지만 일본에선 전통적 야쿠자로 널리 알려진 쿠니사다 츄지(国定忠治)나 오마에다 에이고로(大前田英五郎)도 이 일원이었다.
카이지와 코난, 아니, 전업 도박꾼과 전문 수사꾼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일을 하는 이 집단 역시, 야쿠자의 기원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한다는 점, 짚고 넘어가자.
여기까지는 옛날 얘기지만 이 바톤을 넘겨받은 이들은 계속 일본 역사에서 소소하게 영향을 끼치다가 때때로 역사 전면에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시미즈노 지로쵸(清水次郎長)다.
3) 근대의 원조 야쿠자
토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통치권을 메이지 천황에게 반납한 대정봉환(大政奉還) 후, 구 막부군과 메이지 신정부 사이에서 보신전쟁(戊辰戦争)이 일어났고, 많은 도박꾼이 참전했다. 그 후 메이지 정부에 대해 국회 개설, 입헌체제의 실현을 요구하는 자유민권운동이 과격화되는 과정에서 도박꾼들이 많이 활약한다.
해서, 정부는 전국적인 “도박꾼 사냥”을 벌였고 이때 체포된 야쿠자 중에는 시미즈노 지로쵸(清水次郎長)라는 오야붕이 있다. 어려운 친구를 잘 도와주고 받은 은혜는 꼭 갚는 심성, 꼬붕(부하)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야쿠자 계에선 전설로 불리는 이다.
근대 이후에 한정하면 시미즈노 지로쵸가 야쿠자의 원조, 적어도 근대 야쿠자의 원조를 상징하는 존재라 볼 수 있겠다.
4) 테키야(的屋)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일반적으로 야쿠자로 지목되는 집단 중 “테키야(的屋)”도 있다. 노점(露店)을 운영하는 상인으로, 도박꾼이 “협객(俠客)”이라면 테키야는 “협상(俠商)”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경, 테키야(的屋)도 일가(一家)를 이루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일 야마구치구미와 싸우는 이이지마카이(飯島会)의 창설자 이이지마 겐지로(飯島源治郎)가 테키야의 중흥을 이룬 오야붕으로 알려져있다.
자, 야쿠자의 역사는 여기까지 짚고 관계로 함 넘어가 보자.
2. 야쿠자 사회의 일면
야쿠자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의(擬)가족적 인간관계를 들 수 있다. 오야붕(親分, 두목, 아버지)-꼬붕(子分, 부하, 자식)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의제한 것이고, 아니키(兄貴)-오토우토붕(弟分)은 형과 아우 관계를 의제한 것이다.
이런 의가족 관계가 일가(一家), 즉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〇〇구미(組, 조), 〇〇잇카(一家, 일가), 〇〇카이(会, 회) 등 이름 아래 야쿠자 조직이 형성된다.
야쿠자 조직은 극히 예외적인 이유가 없는 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고, (조직 내 서열을 제외하고는) 일반 사회에 있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야쿠자 사회는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빈곤과 차별을 이기지 못한 이들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먹여주는 부모가 없고 철이 들면서부터 범죄를 저질러온 불량소년, 봉건시대 신분제도가 사라지지 않은 채 계속 차별당해온, 이른바 부라쿠민(部落民, 특정 부락에만 거주할 수 있는 이들), 조선에서 왔다는 이유로 새로운 차별 대상이 된 조센진(朝鮮人, 조선인). 일견 “깨끗한”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는 이들이 끝내 봉착하는 자리가 야쿠자 조직이라는 말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역사를 돌아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야마구치구미는 4개 산하조직이 각각 공략 지역을 분담하는 방식을 취했다. 지미치구미(地道組), 수가타니구미(菅谷組), 코니시구미(小西組), 야나가와구미(柳川組)의 네 개 조직이다. 그 중 코니시구미의 코니시 오토마츠(小西音松) 총장은 고베의 빈민가 출신, 수가타니구미의 수가타니 마사오(菅谷政雄) 쿠미쵸는 피차별 부락 출신, 야나가와구미의 야나가와 지로(柳川次郎) 쿠미쵸는 조선인이다(본명 양원석).
이 셋이 야쿠자 사회에 입문한 계기를 오로지 빈곤과 차별이라고 하면 과언이겠지만, 적어도 먹고살기에 어려움이 없고 자신의 출신에 대해 주저없이 밝힐 수 있는 사람보다 삶의 선택지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야마구치구미는 가난함과 배척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살기 어려운 자들을 인수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역사적으로 다른 야쿠자 조직과 달리 비교적 정치권력과의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긴 하다).
3. 야쿠자의 현재
정치권력 입장에서 보면 민간에 있는 조직화된 폭력은 양날의 칼이다. 경찰력을 동원해도 억누를 수 없는 민중소동이 발생했을 때 야쿠자는 이용할 만한 예비군이 되기도 하지만, 민중 측에 섰을 땐 통치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정치권력은 불안정한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가 안정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폭력의 독점”을 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전을 계기로 점령군이 야쿠자로 대표되는 조직폭력을 일소하도록 일본 정부에서 지령을 내린 것은 당연했다(“폭력단”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단 패전 직후의 사회적 혼란과 경찰력의 부족은 일본 사회가 야쿠자를 “필요악”으로 안고 가는 이유가 되었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 외의 폭력을 허용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경찰에 의한 폭력단 대규모 단속작전, 즉 '정상작전'이 일본의 고도성장과 궤를 같이 한 것도 필연이었다 하겠다.
정상작전이란 도쿄올림픽이 치러진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3차례에 걸쳐 벌어진 대규모 폭력단 단속작전이다. 경시청에 조직폭력범죄단속본부를 설치해, 야마구치구미를 포함한 광역폭력단의 주요 오야붕이나 간부, 즉 “정상”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단속을 벌였다. 한편 합법・불법을 가리지 않고 야쿠자의 돈벌이 수단을 빼앗기도 했다.
야쿠자 조직을 싹쓸이 해체시키는 작전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정상작전 전에는 야쿠자 조직의 수만 약 5,100개에 다르고, 조직원은 약 18만 명(5년 전 대비 약 2배)에 달했으나, 제1차 정상작전에서민 무려 17만 명이 검거되었다. 광역폭력단으로 지정된 조직으로 해체하지 않고 버틴 것은 야마구치구미 뿐이었다.
그러나 야쿠자는 살아남았다.
야쿠자를 본격적으로 궁지에 몰아간 것은 “폭력단원에 의한 부당한 행위의 방지 등에 관한 법률(暴力団による不当な行為の防止等に関する法律)” 약칭 '폭대법(暴対法)'이다.
1992년에 시행된 이 법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킨 조직을 “지정폭력단”으로 지정, 그 구성원이 일반인을 상대로 폭력 등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동시에 야쿠자의 손발을 결정적으로 묶는 규정을 담았다. “민사책임의 특칙” 규정이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가해자 본인이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관리・감독자는 적절한 관리・감독을 게을리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 하지만 폭대법상 지정폭력단에 대해서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지정폭력단에 속하는 조직원이 불법행위를 저질러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해당 조직의 두목도 과실의 유무를 불문하고 민사상 사용자 책임을 진다.
정상작전 이후 경제활동의 범위가 좁아진 가운데, 꼬붕의 불법행위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오야붕도 함께 손해배상을 하는 것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 광역지자체가 잇따라 폭력단배제조례, 일명 “폭배조례(暴排条例)”를 제정했다. 설상가상으로 야쿠자 조직에게 타격을 가하고 있다.
일련의 조례가 꾀하는 내용은 이름 그대로 '야쿠자를 사회에서 쫓아내는' 것. 지자체마다 차이가 있으나 조례는 폭대법상 지정폭력단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가하는 한편, 조직원에 대해 이익 공여를 하거나 가까이 지내는 일반인도 규제 대상이다.
문제는 이익 공여나 교제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은행이 계좌를 개설해줘도 이익 공여, 자동차 딜러가 차를 팔아도 이익 공여, 부동산 중개업체가 아파트 임대 계약을 중개해도 이익 공여다.
교제의 범위도 만만치가 않다. 일반인이 동창회에 가 지정폭력단 구성원인 동창생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밀접교제자”로 처벌될 수 있다. 물론 일반인에 대해 강도 높은 처벌이 가해지지는 않으나 일반인 입장에서는 지정폭력단 구성원을 고객으로 모시는 것을 최대한 꺼리기 마련이다.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한다는 주장이 없지는 않으나 야쿠자 괴멸이라는 슬로건 앞에서는 무력하다.
정당성을 떠나서 야쿠자 관련 법제가 위와 같이 정비된 이상 야쿠자는 살아남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폭대법이 제정된 직후인 1991년, 아이즈코테츠(会津小鉄)의 타카야마 토쿠타로(高山登久太郎) 회장의 촉구 아래, 수미요시카이(住吉会)의 니시구치 시게오(西口茂男) 회장, 야마구치구미의 와타나베 요시노리(渡辺芳則) 쿠미쵸, 이나가와카이(稲川会)의 이나가와 유코(稲川裕紘) 회장이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의논했다.
사실상 일본의 모든 야쿠자 조직의 두목이 모인 셈인데, 합의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앞으로 전쟁은 피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힘으로 상대 조직을 억눌러 흡수하는 것이 조직이 성장하는 주된 방식이었으나, 이후 중소 조직이 스스로 거대 조직으로 편입되어 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말단 조직끼리 조그마한 싸움은 종종 있고 자칫 전쟁 상태에 돌입할 뻔한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전국 조직의 두목이나 간부들은 교섭을 통해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 야쿠자 사회는 “평화공존” 노선 추세다.
4. 다음 회부터
단편적으로나마 야쿠자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했다. 다음 회부터는 일본 야쿠자 사회의 대표격인 야마구치구미의 역사를 살펴보고, 때때로 일본 사회에서의 야쿠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발점은 초대 야마구치구미 쿠미쵸(조장) 야마구치 하루키치(山口春吉)가 고픈 배를 안고 고향을 떠나 고베의 땅을 밟은 191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의 야쿠자 용어 기초지식(1) - 야쿠자(やくざ)
야쿠자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쓸모없거나 가치가 없음', '백수건달'이라는 말이 나올 뿐, '의리에 대한 존중'이라든가 '의협심(義俠心)' 등은 관련이 없다.
그럼 왜 야쿠자를 '협객(俠客)'이라 부르는 등 '의협'과 관련시키는 걸까? 답은 어원에 있다.
원래 '야쿠자'라는 말은 도박의 한 종류인 “산마이 가루타(三枚がるた)”에서 유래됐다. 산마이 가루타는 1에서 10까지 10장의 카드를 네 개 조로 섞고(모두 40장) 딜러와 참가자가 한 장씩 번갈아 세 번 뒤집는 도박이다. 합계의 첫째 자리가 9에 가까울수록 강하진다. 예를 들어 8, 9, 3을 뽑으면 합계가 20이다. 이 경우 첫째 자리가 영이기 때문에 최저 최약의 끗수가 된다.
여기서 8은 일본어로 “야(や)”, 9는 “쿠(く)”, 3은 “자(ざ)”와 각각 비슷한 소리가 난다. 그래서 에도시대에 노름판을 열거나 도박을 하며 나날을 보내는 이를 '야쿠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카부키모노가 카부키라는 연극에서 배우(일본어로 “야쿠샤(役者)”라고도 함)를 하고 있었기에 법을 따르지 않고 거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이를 카부키모노, 즉 야쿠샤 같다고 형용한 데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한편으로 도박꾼은 나쁘게 말하면 '백수건달'이긴 한데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의리를 존중하고 의협을 중히 여기는 특성이 있었다(먹고 살기 위해선 이러한 신뢰가 중요했고 이제는 옛날 이야기지만!). 즉, 야쿠자라는 말을 의협(義俠)과 연관시키며 야쿠자 본인도 의협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적어도 겉으로는), 야쿠자라는 말이 도박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야쿠자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고쿠도(極道)"는 "의리의 길을 극하는 이”, “토세이닌(渡世人)"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 “아소비닌(遊び人)"은 "노는 이” 라는 뜻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