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 최씨 (義州 崔氏) 증시: 1명 시주 1명
*최효일(崔孝一) 미상∼1644년(인조 22).
시호: 충장(忠壯) 危身奉上曰忠 武而不遂曰壯 정조 20년(1796) 증시
자신이 위태로우면서도 임금을 받드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무예가 있으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장(壯)이라 한다.
시장: 대제학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 찬
제향처: 의주 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 일명 顯忠祠)
본관은 의주(義州). 자는 원양(元讓).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광해군 때 형조좌랑을 거쳐 훈련판관에 이르렀다.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이름이 알려진 용장으로, 1629년(인조 7) 청군(淸軍)이 침입하여 오자 의주에서 장사 장응림(張應林)과 함께 출전하여 통군정(統軍亭)에서 적병 수십명을 죽이고, 거짓 적진에 투항하여 당시 가도(椵島)에 주둔중인 명나라의 좌도독 모문룡(毛文龍)과 내통, 모문룡으로 하여금 적을 공격하도록 정보를 제공한 다음 적진을 탈출하여 청량산(靑梁山)에 들어가 장사를 모아 적을 방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의 휘하에 들어가 압록강에서 적과 싸워 전공을 세우고 많은 군용품을 노획하였다.
청나라의 임금을 죽여 명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원수를 갚을 계획으로 역사(力士) 차예량(車禮亮), 의주부윤 황호일(黃皓一), 절도사 임경업 등과 약속하고 등주(登州)로 건너가 진홍범(陳洪範)에게 청나라를 치자고 건의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다시 영원(寧遠)으로 가서 명장(明將) 오삼계(吳三桂)와 함께 금주(錦州)에서 청병과 싸워 여러번 공을 세웠다.
1644년 적장 이자성(李自成)의 침입으로 연경(燕京)이 함락되고 명나라가 망하자 오삼계는 항복하고, 그는 죽은 명주(明主) 의제(義帝)의 빈소에서 10일 동안 통곡하면서 단식하다가 죽었다.
숙종 때에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의주 백마산성사(白馬山城祠, 일명 顯忠祠)에 배향되었다.
贈戶曹參判崔公 孝一 謚狀
明季。死事之臣誠多矣。如文正公孫承宗諸人。危忠特節。已磊落相望。未及出身而仕朝廷。若顧炎武,屈大匀,魏禧,呂留良之徒。輒自放於山顚水涯。與老將退卒。有時悲歌飮酒。或隱於市門以終其身。稍能有傑氣。則撫刀橫槊。陰結少年。以圖天下事。因不就而死者。亦多有之。有明三百年。先皇帝壽考作人之化。浸濡醲郁。薄于海寓。士大夫沒世而不能忘。往往謳歌思吟。自靖其身。爲前代之遺民。固職耳。盖亦千百而一有焉。故尙能爲志士所咨嗟而愾慕。况乎生於東海之上。不識天子之面。不莅中國之土。而當甲申之變。欲奮拳入虜庭。提戈斬級。以雪恥酬忠。竟不得遂其志。而從死帝陵之旁者。豈非窮天地亘古今。與日月爭其光。與魁斗齊其名者哉。余於崔公孝一見之矣。公字元讓。義州人也。長於西陲。能遠射。狀貌魁梧。以俠士稱。與車禮亮,安克諴二人者相友善。日馳馬試劒。意氣偉肰可觀。邊上少年。無敢望者。先是。伯父嵂從都督麻貴。與倭戰有功。崔氏以此聞於中國。公甞欲爲中國樹勳。以繼伯父也。及本朝與虜和。公悲憤泣下。與二人者謀曰。建州胡日盛。將爲中國患耳。吾若入中國事明天子。率舟師直擣瀋陽。彼必乞我援。子與里中豪傑應募而往。從中而起。可一擧而擒驕虜也。二人者俱膝席而前曰諾。公遂傾家産市舟。將浮于海。恐陷虜諜。密告林將軍慶業。以受笞數百。乃言丈夫辱於人。何以自立。無寧逃之海上。乃以妻子托禮亮。因泛舟而西。禮亮與客送之港口。酒酣而歌曰。壯志連天菀。精忠貫日明。男兒一掬淚。不獨爲今行。禮亮擊劒以和之。人無不泣下霑襟。當是時。黃公一皓守義州。見胡騎日轢關外。而諸將擁重兵。無敢爲天子批難者。輒登陣長歎。聞公行。以白金漢布贈之。公詣登州。說都督陳洪範以出師。洪範不能用。遂杖劒而走。東見吳三桂。三桂大悅。迎坐幕府以問策。虜入錦州。公邀擊松山下。虜圍之數重。公乘夜潰出。與三桂合。明年。謀遂洩。禮亮等皆坐死。崇禎十七年三月。流賊李自成犯大同。帝召三桂入衛。三桂趨豊潤縣。聞京師陷。止軍山海關。請救於虜。虜入關。而三桂遂降虜據京師。令文武臣薙髮受朝賀。公獨不朝。髮森森盈冠。侍烈皇帝殯。哭臨七日。不食而死殯側。三桂收而葬之。公年十七中武擧。拜訓鍊院判官。遷刑曹正郞。天啓四年。關西節度使李适叛。公領壯士百餘騎。隷都元帥張晩麾下。大破賊于鞍峴之上。七年。虜猝犯義州。公巷戰以破之。及節制使李莞死。虜斬關入。公手劒登西城。獲數十級。虜大懼。從城下望見公風姿燁肰。令軍中生致公。公佯降在虜營。陰使人約都督毛文龍夾攻之。文龍乃遣游擊周文煥。將三萬卒。與虜戰黔東島。虜詗知公連兵狀。將害之。乃亡入龍骨山城。城當虜衝。足以用武。防禦使鄭鳳壽鎭之。公謂鳳壽曰。孝一在虜中久矣。習虜俗莫如孝一。誠使孝一將三百人。可以橫行虜庭也。鳳壽不許。公遂去。與日本劒客。直夜半馳入虜帳。斬首十數人。因還龜城之靑梁山道。收兵五百以保塞。副元帥鄭忠信。以淸川之北數被虜患。請棄之。公使人爭不可。崇禎九年。虜復侵義州。林將軍軍白馬城。公說之曰。以將軍之勇。不與虜一當。何以勸諸將。孝一願爲將軍死。林軍壯而許之。公遂以輕騎破虜鴨水上。擒其將要虎。獲輜重亡計。初公捷武科重試。左議政李公德馨與語奇之。許以國士。深河之役。大將姜弘立聞公名辟之。辭不赴。及林將軍入東江。公爲前鋒。鼓噪徐進。使東江聞兵報。故東江能免陷云。肅廟乙未。右議政李公頤命,吏曹判書趙公泰采。以公風節白于上。贈戶曹參判。書誥旨曰。歸正天朝。義烈卓異。英廟丙子。賜祭。因命輯其事。號曰樹烈千秋傳。今上癸丑。觀察使李秉模因多士言。請以公躋享林將軍祠。上敎曰。崔孝一奇男子也。以陪臣而爲天王死。其忠節卓肰。予甚韙之。躋享之日。義州府尹就其祠以祭之。訪其後孫。拜宣傳官。自今業武者。無拘薦擧。著爲式。是年。公之五世孫性烈。以宣傳官登武科。上命觀察使賜樂張讌。又命義州府尹祭其廟。甲寅三月十有九日。上拜皇壇。敎曰。今日且暮矣。念彼周京。何以瀉憂。崔性烈陞爲軍器寺正。先時。以朝命取公之從子台甫奉公祀。爲武科。孫昌憲爲虎賁衛部將。其後寢微不聞。至是性烈爲正於武庫。而得與士夫之列。丙辰春。上親祀皇壇。命賜公謚。猗歟盛哉。我聖上秉春秋之義。嚴夷夏之辨。雖一時肰諾之徒。若能爲上國守節不屈。則靡不崇奬而賁餙之。用樹風聲。昭示無疆。而若公加謚之典。又出常格。國乘書之。野史記之。將有辭於天下萬世。盖夫子作春秋。以尊一統之微意也。嗚呼。中朝之南渡也。史可法在揚州。黃道周在衢州。瞿式耟在全州。金皷相聞於閩浙。舳艫不絶於江淮。謀夫勇士。左右䟽跗。睢盱叱咜。其聲勢之壯。可謂盛哉。師出則衂。一敗塗地。尙不得爲晉元宋高。天也非人也。雖肰。一歸之於天。而人皆束手曰無可奈何焉。則豈忠臣烈士之所忍爲哉。公以藐肰匹夫。産於僻壤荒服之外。而視天子如父。犯風露衝虎豹。水陸萬餘里。履不測之險。而怡肰若平地。出死力以救帝室之危。旣又從殉於先帝之陵。而不之悔焉。則四海之大。惟公一人焉爾。中州若有修史者。必以公與顧,屈,魏,呂合傳。而附之孫文正諸公之下矣。雷淵南文淸公著南明書。以弘光隆武永曆紀元。系崇禎十七年之後。以述朱子帝昭烈之書法。江漢黃文景公著陪臣傳。以公及林將軍,黃府尹,車禮亮,安克諴曁當時抗義立殣之人。牽連書之。以補史之闕文。若有王者作。必取法於斯。遂書此以俟之。因告有司。以請節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