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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선장실 창문에서 목을 빼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선장이 말했다.
“이름뿐만 아니고 두 분 자리도 인연이네요. 사오 번 자리가 우리 배 프리미엄포인트인데 나란히 앉았으니 천상의 인연이오! 하하하.”
단골로 승선한지 10년 넘었지만 선장이 프리미엄자리라고 지정하는 것은 처음 본 도치씨가 말했다.
“선상에서 좋은 자리가 어디 있어요? 선장님이 포인트 위에 정확히 올려주는 자리가 명당 아닙니까? 그래서 배낚시는 선장님 낚시라고 그러잖아요?”
선장이 선미와 선수를 돌아 본 후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십육십칠번 보다 사오번이 이거요.”선장이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보고 5번 낚시꾼이 말했다.
“그런디 오늘 조황이 왜 이로코롬 개판이다요?”
선장이 이마를 긁으며 푸념처럼 말했다.
“그러게요. 물빨도 좋고 어초에서 고기도 떴는데 안 올라오네요. 어쨌든 열심히 해보소. 오후에는 좀 될 겁니다.”
도치씨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빙그레 웃었다.
아시발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바자우어부들은 내비게이션 같은 거 사용하지 않아도 고기를 잘 잡는 이유가 있지.”
“특별한 비법이 있습니까?”
아시발이 빙그레 웃었다.
“비법이 아니고 비술이지.”
비술이란 말에 도치씨는 매달리듯 간절한 눈빛으로 아시발에게 물었다.
“제게 그 비술을 전수해주시면 평생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시발은 흔한 레시피도 공개하기 꺼려하는 셰프들처럼 굴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사제가 따로 없다네. 많이 잡기를 원하나? 아니면 큰 것만 골라잡기를 원하나?”
도치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낚시하면서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갈등했다.
많이 잡느냐? 골라잡느냐? 아니면 다 쓸어 담느냐? 그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갈등이었다.
고민 끝에 도치씨는 결단을 내렸다.
“둘 다지만 선택하라면 골라잡는 쪽입니다.”
빙그레 웃으며 아시발이 말했다.
“조선이 될 자격은 있군.”
“조선이라니요?”
“釣仙말일세. 멸치 잡는 어부가 있고, 고래 잡는 어부가 있듯 낚시도 장르가 확실해야 하는 거야. 두 가지를 다 선택하고 싶은 것은 낚시꾼에 지나지 않고, 대상어만 기다리는 것이 조선일세.”
도치씨는 아시발의 설명을 교훈으로 받았다.
아시발이 말했다.
“조선의 비결은 세 가지가 있네. 첫째는 무불과행無不過行이고, 둘째는 소업대소小業大笑 셋째는 대기불성待器不盛. 이 세 가지를 지키면 물속이 보일거야. 물속을 내 텔레파시로 볼 수 있다면 끝난 거 아냐? 흐흐흐.”
“두 가지 말씀은 이해가 되지만 대기불성은 무슨 뜻인지요?”
“고기 담을 큰 그릇을 미리 준비하지 말라는 뜻일세.”
도치씨는 아시발의 발아래 넙죽 엎드려 절했다. 모두 자신을 두고 한 말 같았던 것이다.
도치씨는 눈을 감고 다시 집중했다.
그러나 주위가 소란스러운 탓인지 심해집중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아시발이 전수해준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다시 20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귀가 멍해졌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 깜빡 졸았다.
물속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어초사이에서 커다란 우럭이 떼 지어 나타났다.
그러나 도치씨가 기다리던 크기의 우럭들이 아니었다.
그때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고함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눈을 떴다.
5번 낚시꾼도 휘어진 낚싯대로 전동 릴의 원줄을 감고 있었다.
“지금 뭐하고 있소? 요럴 때 얼른 잡아야재?”
고개를 꺼덕이며 도치씨는 빙그레 웃었다. 영락없이 아시발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5번 낚시꾼이 두 마리의 우럭을 수면에 띄우고 기관장을 불렀다.
“뜰채” 뜰채!”
기관장이 뜰채를 들고 달려왔다.
선장이 고개를 내밀고 도치씨에게 말했다.
“어디 아프요?”
“아닙니다.”
“한창 고기 피었을 때 잡아야지. 쯔쯔쯔.”
5번 낚시꾼이 기관장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은 후 말했다.
“개우럭 쌍걸이 하는 거 봤지라? 인자 기도 그만하고 얼른 넣어소. 넣자말자 물어 버린당께요!”
대답대신 도치씨는 다시 눈을 감고 수면을 쳐다봤다.
기관장이 5번 낚시꾼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분이 낚시 잘하는 사람인데 오늘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끝날 시간이 얼매 안 남았는디 하루 죙일 저러고만 있소.”
창문에 턱을 걸친 선장이 끼어들었다.
“멀미래요?”
5번 낚시꾼이 대답했다.
“약도 안 먹는 거봉께 멀미는 아닌갑소. 시방까지 줄도 한번 안풀었당께라.”
“산에 가면 범을 잡고, 물에 오면 물고기 잡아야지 염불만하다 시간 다 보내겠네. 이 보소!”
선장이 도치씨를 불렀다.
두 번째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도치씨에게 선장이 말했다.
“아침부터 왜 그러고 있소?”
도치씨가 빙그레 웃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요? 어려운 일 있으면 기관장님께 부탁하세요.”
고개를 흔들며 도치씨가 말했다.
“두고 보면 압니다.”
느닷없는 도치씨의 말에 5번 낚시꾼은 물론 기관장 선장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락이라도 넣어야 잡히지, 아직 줄에 물도 안 묻히고 어떻게 두고 본단 말이오? 다른 사람들은 지금 한창 올리고 있잖아요?” 도치씨가 귀찮은 투로 말했다.
“지금 나도 한참 열심히 하고 있으니 두고 보십시오.”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장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흐흐흐, 거참.”
도치씨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시발로부터 전수받은 스킬텔레파시가 안정적으로 지배되지 않고, 스파이크처럼 불안정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주위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었다.
도치씨는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어수선한 환경에서도 아시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적응했다.
거의 5시간동안 단 한번 짧은 스킬텔레파시로 수중을 볼 수 있었지만 도치씨는 곧 익숙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오후 조류가 거세게 살아났다.
선장이 낚싯배를 정확하게 암초위에 올렸지만 순식간에 포인트를 벗어났다. 손 빠르고 재수 좋은 사람은 한두 마리 올렸지만 조과는 빈약했다.
조류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낚시종료 1시간 전.
선장이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좌우를 훑어봤다.
속 타는 표정이었다.
“그 참. 활성도는 아주 좋은데 올라오지 않는 이유가 뭐야? 한 놈도 못 올려?”
5번 낚시꾼이 선장을 돌아봤다.
“시방 뭐시라 그랬소?”
“뭘요?”
“놈이라 그랬지라?”
“그랬지요.”
“이 배가 누구땜시 먹고 산다요? 그런디 우리더러 놈이라고 그라요?”
선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에이 난 또? 설마 손님들을 놈이라 그러겠소? 하도 고기가 안나오니까 ‘한 놈도 안 올라오나?’ 그런거지.”
5번 낚시꾼도 싱겁게 웃었다.
“나가 놈이라면 질려서 그라요. 헤헤헤.”
어느 틈에 선장실 지붕위에 올라간 기관장이 쪼그려 앉은 체 푸념했다.
“오늘은 사이트에 올릴 사진도 몇 방 없고 큰일 났소. 개우럭 몇 마리는 나와야 될 텐데, 손님 끊어질까 걱정이네요.”
기관장의 푸념은 도치씨를 두고 한 말이었다.
도치씨가 빙그레 웃었다. 기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걱정마세요. 아직 50분이나 남았는데.”
“50분이 아니라, 5시간 남으면 뭐해요? 눈 뜨고도 못 잡는데.”
“이제 곧 터질 겁니다.”
도치씨의 장담에 기관장이 입술을 내밀었다. 들어내지 못한 비아냥거림이었다.
도치씨가 선장에게 부탁했다.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선장이 눈짓으로 허락했다.
“지금부터 배를 흘릴 때 좌현 5도만 비켜서 흘려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요?”
“설명드릴 순 없고, 저를 믿고 그렇게 배를 흘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하게 어초위에 배를 꽂아도 안 나오는데, 포인트를 5도나 벗어나면 남의 다리 긁는 것과 뭐가 다르오?”
조금 전부터 도치씨의 낚싯대가 미치지 못하는 5도 전방에서 엄청난 왕우럭들과 광어들을 발견했지만 도치씨는 더 부탁하지 않았다.
선장만의 고유권한을 흔드는 행위기 때문이었다.
허지만 도치씨는 조금 전 부산한 환경에서도 아시발이 전수해준 스킬텔레파시를 자유자재로 작동하는 능력을 되찾았던 것이다.
셈프로나에 다녀 온, 지난 3개월 동안 도치씨는 낚시 나오는 대신 아시발의 능력에 대해 전수 연구했다.
스킬텔레파시로 물속을 파노라마로 연상시키는 능력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가능한 과학적 근거였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물체는 웨이퍼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이 결정체의 싸이클을 판독하면 인간도 레이더모니터처럼 연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이론을 발견했던 것이다.
도치씨는 서재의 양 벽면에 스프링을 걸어두고 시험했다.
한쪽에서 충격을 가하면 스프링을 타고 반대편으로 파동 하는 무한공명을 눈으로 보면서, 전자파를 연상했다. 그리고 똑 같은 물고기체동파를 찾아 자신의 텔레파시와 헤르츠 사이클을 맞추었다.
그러나 물고기체동파는 텔레파시능력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소멸되었다.
도치씨는 방금 그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공기 중에서 발사된 파동은 물속에서 무효하고, 물속의 파동은 공기층을 뚫지 못하는 기초원리를 방금 깨달았던 것이다.
도치씨는 수면에서 물고기체동파를 감지하도록 텔레파시를 조정했다. 이 역시 연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었다.
그러자 선명하게 찾고자하는 범위의 물속이 파노라마로 연상되었다.
도치씨는 그때부터 눈을 감지 않고도 물속을 연상할 수 있었다.
포인트를 벗어난 배를 선장은 반복해서 원위치로 옮겼다.
“삐이익!”
선장의 입수신호가 내려졌다.
재빨리 줄을 내린 5번 낚시꾼이 소리쳤다.
“왔소! 왔당께!”
5번 낚시꾼의 대가 절구처럼 쿡쿡 처박혔다.
기관장이 카메라를 들고 달려왔다.
“으으미! 엄청 큰거! 으메! 오메! 안 봐도 6짜개우럭이여!”
전동 릴을 감으며 5번 낚시꾼은 엄살을 떨었다.
“개우럭은 안될 거 같은데?”
기관장의 말에 5번 낚시꾼이 눈을 흘겼다.
“흐미. 부정 타는 소리 그만 하소. 올라오다 작아지몬 워쩔라고 입방정 떠요?”
“개우럭이면 내 손에 장을 지져버리겠소. 얼릉 올리기나 하소. 다른 사람과 줄 엉켜버리겠소.”
5번 낚시꾼은 기관장의 재촉에도 느릿느릿 원줄을 감았다.
보다 못한 도치씨가 말했다.
“기관장님 말이 맞네요.”
5번 낚시꾼이 버럭 소리쳤다.
“머이라? 나가 낚시경력이 얼만디 고런 소리하시오?”
“상단 바늘은 우럭이고 아래바늘은 놀래미네요. 그렇지만 6짜개우럭은 아닙니다.”
5번 낚시꾼이 도치씨를 쏘아봤다.
눈에서 불똥이 튀고 있었다.
잠시 후, 선상에 끌어올린 한 마리의 우럭과 놀래미를 번갈아 쳐다보던 5번 낚시꾼이 앙갚음하듯 도치씨에게 말했다.
“무당님 맞지라?”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의 가시 돋친 말을 대충 받아 넘겼다.
“나는 무당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무당이 아닌디 물속에 있는 고기를 워캐 안다요?”
대답대신 도치씨는 빙그레 웃었다.
대신 셈프로나 이후 다시 찾은 스킬텔레파시가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의 가벼운 말싸움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선장이 어탐기의 포인트를 5도 수정했다.
선장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선장은 암초에서 완전히 빠져 나가지 않는 낚시 선을 서둘러 원위치로 이동시켰다.
후미에서 물거품이 거세게 일어나도록 좌표를 수정한 선장은 포인트에서 정확하게 5도 벗어난 지점에서 배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도치씨가 홀더에서 낚싯대를 뽑았다.
쿨러에서 미리 불려 둔 미끼를 꺼내 3단 바늘에 끼웠다.
도치씨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선장이 고개를 빼 바늘의 미끼를 관찰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보는 미끼의 종류는 알 수 없었다. 햇빛에 무지갯빛으로 변하는 미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장은 굳이 입을 다물었다.
다른 낚시꾼들의 채비처럼 도치씨의 채비도 물속으로 갈아 앉았다.
1m, 5m, 10m, 15m.
27m에서 전동 릴의 스풀이 멈췄다.
낭창해진 원줄을 팽팽하게 감아 들이고 고패 질을 시작한 도치씨의 액션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상하좌우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액션이 아니었다.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리도록 대를 흔들어주었다.
흔들어주던 액션을 멈추었을 때였다.
“툭! 툭! 툭!”
짧고 강한 반응이 도치씨의 낚싯대 끝에서 일어났다.
챔질과 함께 재빠르게 세운 도치씨의 낚싯대 끝이 사정없이 수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1.8m 레귤러지깅낚싯대가 수면에서 거의 반원을 그렸다.
강하게 전동 릴을 감은 후,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도치씨가 원줄 회수하는 방법을 거꾸로 시행하는 것은 그의 오랜 노하우였다. 입질과 함께 전동 릴의 순간토크를 최대로 하는 것은 입 걸림을 한 번 더 해주고, 대상어에게 충격을 덜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은 아슬아슬하지만 펀치를 맞고 KO당한 격투기선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도치씨는 오른손가락으로 천천히 전동레버를 당겼다.
월줄 감기는 속도와 포획물의 무게 밸런스가 유지되도록 낚싯대로 텐션도 유지했다.
곁눈으로 도치씨를 지켜보는 것은 5번 낚시꾼만 아니었다. 선장도 유심히 도치씨를 관찰하고 있었다.
중간 쯤 감겨 올라오던 원줄이 배의 밑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낚싯대가 배 밑창으로 휘었다.
5번 낚시꾼이 선장실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으으으. 으메! 배를 옆으로 빼야 쓰겄소!”
선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밑창으로 파고 든 도치씨의 낚싯대를 확인했다.
도치씨는 전혀 당황하지 낚싯대를 충격흡수용 타이어 위에 걸쳤다. 타이어의 탄성을 받아 대도 출렁거렸다.
“뿌럭. 뿌럭.”
낚싯대에서 카본섬유질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치씨의 낚싯대를 지켜보던 5번 낚시꾼이 코푸는 소리를 했다.
“훼엥, 암초가 물었잖여? 대 부러지겄소. 얼릉 줄 끊어버리소!”
고개를 내밀고 도치씨를 지켜보던 선장이 5번 낚시꾼을 찍어 말했다.
“그 가만히 좀 있어요. 보면 몰라요? 바닥에 걸린 게 아니요.”
“와땀시. 조거시 암초 아니면 내 뱃대지 갈라버릴라요. 남대문 안 가본 놈이 이긴다는디.”
선장이 벌컥 화를 냈다.
“좀, 방정 떨지 마요!”
선장의 성질에 하려던 말문을 닫고 머쓱해진 5번 낚시꾼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선장이 배의 각도를 돌렸다.
팽팽하게 휘었던 도치씨의 낚싯대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전동 릴도 다시 돌았다.
햇빛이 닿는 물속에서 희미한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전동 릴이 역회전했다.
5번 낚시꾼이 자지러졌다.
“워메! 슬로! 슬로! 암초가 아니여!”
선장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 그 양반!”
“오메! 오메! 더 슬로! 더 슬로!”
“큰 놈이 물었을 때는 조용히 하소. 정신 산란해지게!”
5번 낚시꾼이 빈정거렸다.
“제에미! 뺨 얻어맞으면서도 훈수 둔다는디.”
도치씨의 낚싯대가 완전히 꺾였다.
뱃전을 발로 밀어 버티는 도치씨의 목에 핏줄이 섰다.
대치상태로 긴박한 5분이 흘렀다.
전동 릴의 역회전이 멈췄다.
서서히 낚싯대가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사르르르.”
전동 릴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25m, 18m, 10m, 7m, 3m, 2m.
“삐이익!”
전동 릴의 전자음이 울렸다.
가파르게 줄어들던 전동 릴의 액정화면이 안전거리를 남겨두고 정지했다.
도치씨가 대를 세우자 수면아래에서 희뿌연 3개의 물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내밀고 선장이 도치씨에게 물었다.
“다 올라왔소?”
도치씨 대신 5번 낚시꾼이 대답했다.
“말하지 말람시로?”
“누가 당신한테 물었소?”
“으미!”
선장이 마이크를 켰다.
“기관장! 갈고리! 4번 자리에서 일 터졌소.”
주방에서 라면을 먹던 기관장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날쌔게 배 지붕위로 기어 올라가서 뜰채와 갈고리를 챙겨 들고 선두로 달려갔다.
수면아래에서 마지막 힘을 쓰는 세 마리의 물고기를 후미에서 지켜 본 낚시꾼이 소리쳤다.
“산칼치다!”
산갈치라는 소리에 좌우 현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낚시꾼들이 선두로 우르르 몰려갔다.
수면아래의 세 그림자가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5번 낚시꾼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마이 갓!”
기관장이 달려왔다.
“대를 조금만 들어줘요.”
도치씨가 천천히 대를 들고 수동으로 핸들을 감았다.
세 마리의 물고기가 흰 천을 펼쳐 놓은 것처럼 차례차례 다시 떠올랐다. 멀리서 보면 산갈치 같아 보일만했다.
허옇게 희번덕거리는 2번째 물고기가 기관장의 뜰채를 보자 마지막 저항을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기관장이 아슬아슬하게 뜰채에 담았다.
대기하고 있던 선장은 두 번째 물고기의 주둥이를 갈고리로 걸었다.
원줄 캐블러울트라8호, 카본목줄10호, 세이코32호 바늘을 장착한 도치씨의 3단 채비에 세 마리의 물고기가 안전하게 선상으로 올라왔다.
상단, 왕 조피볼락 73cm.
중단, 초대형 넙치 108cm.
하단, 대형 석반어 54cm.
합산 235cm, 중량 24kg.
어마어마한 거물들이었다.
허지만 하단 바늘에 걸린 석반어는 물고기취급도 받지 못했다.
프레스티지 또는 럭셔리 대접받으려면 브랜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쥐노래미나 게르치 또는 놀래미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명성과 인기가 없으면 죽어서도 푸대접받는 현실이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늙어버린 기관장도 석반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조에 던지듯 처넣었다. 신주 모시듯 우럭과 광어만 도치씨의 양손에 들게 한 다음 인증 샷을 눌렀다.
셔터를 누르던 기관장이 카메라를 내리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럭과 광어의 입에 남아 있는 미끼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색으로 반사되었던 것이다.
기관장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 때마다 미끼는 선명한 붉은 색 또는 코발트에서 무지갯빛으로 변했다.
인증 샷을 찍다말고 기관장이 미끼를 들어 보이며 도치씨에게 물었다.
“반짝이 같은 이게 뭡니까?”
“미낍니다.”
“생미끼는 아닌 것 같은데?”
“생미낍니다.”
“으엉? 생미끼라구요?”
기관장이 광어 주둥이에 물려 있는 미끼를 손가락으로 눌러 질감을 식별했다.
“그렇군.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은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요?”
도치씨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인증 샷 챙기는 것도 잊고 기관장은 미끼를 잡아당겨보고 킁킁대며 냄새까지 맡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참, 희안하네? 내 평생 이런 미끼는 처음인데 냄새마저 특이하군.”
바로 옆에 서 있던 5번 낚시꾼이 미끼를 만지작거리며 아는 체 했다.
“요거? 짱께당면에 물들인거여라!”
주위를 둘러 싼 낚시꾼 중 한사람이 말했다.
“당면은 무슨 당면? 이미테이션이 아니라면 육포거만.”
“요로코롬 질겅질겅한 육포도 있어라?”
미끼를 두고 옥신각신할 때 엔진소리가 커졌다.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선상에 울려 퍼졌다.
“오늘 4번 자리에서 초대박터졌네요. 4번 조사님 축하합니다. 축하기념 이벤트로 마지막 포인트 한 번 더 이동합니다.”
주위를 에워쌌던 낚시꾼들이 흩어진 후에도 기관장은 미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재사용도 가능하지요?”
“물론입니다,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특허내면 대박치겠소.”
낚시정보는 언제나 솔직하게 공유하는 도치씨였다.
그러나 미끼에 대해 설명해줄 수 없었다.
제조과정을 설명하려면 너무 길고, 어부 아시발에 대한 이야기를 실화라고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고, 아시발과 했던 약속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포인트를 향해 낚시선이 속력을 내자 갑자기 다리가 풀렸다.
파란플라스틱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낚시선을 따라오는 갈매기가 눈에 띄었다.
아시발이 갈매기 사이의 하늘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잘했네! 자네가 미끼의 비밀을 누설하는 순간, 지구상의 한 종이 멸종될 테니 얼마나 대견하냐?”
도치씨가 말했다.
“보고 싶습니다. 아시발님.”
여전히 아시발은 빙그레 웃었다.
페이드아웃 되는 영화장면처럼 서서히 아시발이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갈매기들도 멀어졌다.
도치씨는 그리운 눈빛으로 사라지는 아시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5번 낚시꾼이 갈매기와 도치씨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조 갈매기가 물고기를 몰아다 줬소?”
“아니요.”
“그럼 모시는 신이 떠나는 거이라?”
“나는 무당이 아니라니까요! 양아치대표님.”
5번 낚시꾼이 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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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낚시 소설 잘읽었슴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네 산아래님
편한 밤되시고 우한폐렴 걱정없는 날들되십시오.
고맙습니다
낙시소설 언젠가 본기억이 나는 것 같군요
잘보았슴니다.
이 소설은 다 그런거야 의 탈고교정을 남겨 둔 완성판입니다.
내용이 다소 변해가지만 결론은 거의 같습니다.
항상 소설을 쓸 때 정서로 쓸 수 없어 대충 매일 쓰고 다시 보완해서 완성시킵니다.
계속 읽어보시면 아실것입니다.
좀처럼 완성판은 카페에 올리지 않지만 요즘 우한폐렴 때문에 글 쓸 마음도 없고 해서 올려드렸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시간만되시기 바랍니다.
도치의 낚시 모습을 제조명 하는듯
기억을 되찾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고맙습니다. 고운 밤 편한 꿈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