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掘業島) 이야기
내 고향 인천(仁川)에는 크고 작은 섬들 100여 개가 7개면으로 편성되어 있다. 그 중 옹진군(甕津郡)에는 유인도(有人島)가 25개, 나머지 75개가 무인도(無人島)다. 그중 내가 가고 싶은 덕적도(德積島)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75km나 된다.
그 덕적면에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신비의 섬 굴업도(掘業島)가 있다. 금년에 백령도, 대청도, 장봉도에 이어 벼르고 벼르던 굴업도(掘業島)를 향하고 있다.
굴업도를 가려면 인천연안부두에서 1시간 10분,직행/2시간 10분 완행 거리에 있는 덕적도(德積島)에서 굴업도행 여객선을 갈아타고 30여분을 더 가야 한다.
굴업도(掘業島)는 인천시 옹진군에 속해 있는 섬으로 덕적도(德積島 1,707㎢) 의 남서쪽 13km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여의도(汝矣島, 7.0㎢) 면적의 1/4 크기의(52만평)요, 제부도, 濟扶島, 0.97㎢)의 두 배 정도가 되는 서해의 조그만 섬이다. 그 해안선 길이가 12km라니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천천히 한나절이면 섬 한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굴업도 선착장 산 기슭에 굴업도 명칭의 유래비가 서 있다.
옛날 이곳에 정착한 섬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척박한 땅을 일구고 야산을 개간하여 채소, 땅콩 등을 재배하며 삶의 근거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땅을 파는(‘掘’), 일을 업(‘業’)으로 하는 곳이라하여 '굴업도(掘業島)'라 했다고 하기도 하고, 섬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屈') 형상이라하여 굴업도(屈業島)라 했다 한다.
대동지지(김정호)에는 지형이 오리(鴨)가 등을 구부리고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굴압도(屈鴨島)'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 강압기 시대였던 1910년에 '굴업도(屈業島)'로 바뀌어 불러오다가 1914년 이후에는 땅을 파고 산다는 뜻의의 '굴업도(掘業島)'로 바뀌었다 한다 .
내가 굴업도에 가고 싶었던 것은 섬 전체가 100m 내외의 구릉지 대로 개발이 안 된 섬이어서 자연 그대로 분위기의 섬이기 때문이었다. 이 섬에는 논은 없으며 밭이 6ha 정도에 임야가 180ha 정도뿐이어서 여기에 고구마나 땅콩만을 재배하는 17 명 가량의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주민이 산다는 개발 이전의 섬이었다.
굴업도(堀業島)란 섬이 있다는 말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핵폐기물(核廢棄物) 후보지였다가 주민들의 반대에다가 섬 전테가 지진대에 속하는 곳이어서 핵후보지에서 철회 되었다는 뉴스와 함께 이어 C& I 재벌이 굴업도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것을 주민들이 결사 반대로 C& I 가 자진 철회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알게 된 섬으로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의 천혜의 경관(景觀)이라 하여 보고 싶어 찾아온 곳이다.
굴업도는 크게 동도(東島), 서도(西島), 소굴업도(일명 토끼섬, 목섬)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음력 그믐과 보름이 되면 동도와 서도 사이 '목구미 해수욕장'의 사구(沙丘)가 물에 잠겨서 동도(東島) 서도(西島) 둘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동도에는 덕물산( 137m의)과 연평산(128m)이 이 섬의 동쪽에 솟아있는데 500m나 되는 목기미 해변을 통하여 서도(西島)와 연결되어 있다. 목기미 해변은 우리나라 유일의 섬 연륙사빈(連陸沙濱)으로 사리때에는 물에 잠기지만 보통때는 걸어 다닐 수가 있다.
굴업도는 염소 방목으로도 유명하지만 염소와 사슴 방목으로 더욱 유명한데 이 사슴들이 주로 노니는 곳이 서도(西島)다. 서도에는 인가(人家)가 없고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슴을 방목하게 된 것은 이 섬에서 사슴을 키우던 주민이 있었는데 울타리를 넘어 도망간 사슴이 짝짓기로 그 수가 250여 마리로 늘어 자연 방목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관광지를 가서 그 경치를 후회없이 보고 오려면 8경, 10경, 12경 등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게 상책이다.
굴업도에는 '굴업도 12경'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중요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제2경 선단여, 삼형제 바위
맑은 날이면 굴업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남쪽 바다 한가운데 세 손가락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검은 바위가 바로 '선단여'라는 '삼형제 바위'다.
상상해 보라. 이렇게 먼 곳에서도 이렇게 뚜렷이 보이니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하여 보는 '선단여'는 얼마나 마음 설레게 하는 아름다움일까.
제3경 큰말 해변
굴업도 대표 해수욕장으로 굴업도 큰말 앞바다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동해의 해수욕장이 수평선뿐이라면 서해의 해수욕장은 동해와 달리 푸른 바다에 섬들이 수평선을 대신하여 아름다움을 뽑내고 있는 것이 다르다. 선단여 뒤에 섬이 백아도(白牙島), 디도 율도 같다.
제4경 목기미 사빈(沙濱)과 사구(沙丘)
주민이 사는 큰말의 서도와 동도를 연결하는 좁은 모래밭이 사구(沙丘)를 만들어 해수욕장을 열고 서도를 동도와 연결하고 있다. 이 사빈(沙濱)을 지나 '코끼리바위'를 다녀 오는데 바닷물에 막히면 어쩌나 걱정 되었는데 매달 움력 그믐이나 보름에만 물로 길이 막혀 굴업도가 둘로 나뉜다고 한다.
제6경 공룡 연평산
굴업도에 접근하면 목기미로 구별되는 서섬의 두 산을 보게 되는데 오른쪽이 덕물산(138m)이고 왼쪽 산이 공룡 연평산(123m)이다.
이 산은 굴업선착장을 향할 때나 서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산으로 공룡 연평산이다. 섬이 연평도 쪽을 향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데 이 산 기슭이 절리 등으로 기암괴석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란다.
코끼리 바위를 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산봉우리를 거니는 모습이 보였다. 코끼리바위를 찾아 헤메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평산에서 아름다운 굴업도의 조망을 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정상이 굴업도 전체의 전망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7경 붉은 모래 해변
굴업도는 화산으로 인하여 생긴 섬인데 그때 생긴 붉은 색 암반이 해식(海蝕)으로 부서져 된 고운 붉은 모래밭이 만들어 놓은 해변이라서 붉은모래해변이 된 것이다.
9경 코끼리바위
연평산 가는 길 해안에 있는 코끼리바위는 코끼리 코와 발 사이 가 뻥-하게 뚫려서 이곳 사람들은 '홍예문바위'라고도 한다는데, '코끼리 바위를 보지 않고 굴업도에 다녀왔다 하지 말아라.' 할 정도로 굴업도 최고의 명승지다.
그런데 이 일대는 C J 구룹의 골프장 건설을 위해 사 놓은 사유의 땅으로 출입금지의 푯말이 서 있어서 그런지 가는 길에 이정표 하나도 없고, 가는 길이 위험 천만인 사구(沙丘)여서 잘못하면 큰사고를 당할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관광객이 추락사도 있었던 모양이다. 섬 주민이 7 가구로 20명 정도여서 주민이 알아서 할 수 없는 일인데 옹진 관광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지역에서는 없는 것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시설을 만들어 홍보하고 있는데 이 멋진 풍경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있어도 되는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안전을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코끼리 바위는 모양도 그렇지만 색깔도 코키리 같은 회색이었다.
제12경 토끼섬 해식지형
굴업도의 유일의 부속섬인 이 섬을 소굴업도(小掘業島)라고도 하는데 이 섬은 섬 산마루에 국내에 몇 안 되는 길이 120m, 높이 3~4m나 되는 해식와(海蝕窪) 때문에 천연기념물 지정이 유력한 상태다. 그 지정이 지지부진하고 있는 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 반경 500m 주변의 모든 개발이 중지되기 때문에 옹진군 등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 섬을 '토끼섬'이라고도 하는 것은 과거에 주민들이 이 섬에 토끼를 풀어놓고 키운데에서 유래했다.
하루에 한 번 두 시간 정도 물길이 열려서 우리는 물길이 열리는 것 따라서 섬을 향하다가 미끌미끌한 바윗길을 가다가 따개비에의 즐비한 바위들은 위험헤서 안전을 위해 토끼섬을 상륙을 포기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회원 중에 한 분은 무릎을 다치기도 하였다.
굴업도 여행 다음날, 식전에는 큰말 해수욕장을 거닐다가 식후에는 큰말 뒷산의 철탑에 올랐다. 아름다운 굴업도 전경(全景)의 전망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쾌청한 날씨에 잔잔한 파도가 오후에 덕적도로 떠나야 할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는 날씨였다.
아침식사 후 토끼섬에 가니 토끼섬에는 물이 빠지고 있었고 수평선 위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떠 있는데 백아도(白牙島), 지도, 율도, 선갑도, 문갑도가 그 중에 하나 하나일 것이다.
*. CJ 구릅과 굴업도
굴업도를 관광하다 보면 곳곳에 '굴업도 입산 금지 안내문'이 있다.
굴업도 서섬에 해당하는 연평산과 덕물산 일대와 개머리능선은 'C&J 레저산업'이 소유한 사유지이니(굴업도의 90% 이상) 이곳을 출입하면 형사고발조치를 하겠다는 것과 관광객의 부주의로 화재가 있었고 추락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이곳에는 사구가 많아 사고 위험이 있어 추락사(墜落死) 할 수 있는 곳이 곳곳인데 사고 나면 CJ 측은 책임을 못지겠다는 말이 된다.
골프장 건설은 자진하여 취소한 상태이고, 레저 산업으로 섬을 개발한다는 것에는 옹진군이나 주민들도 이에는 찬성하는 편인데 개발이 늦게 진행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앞서 말한대로 코끼리 바위나, 토끼섬은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이 예정된 곳인데 이를 지정할 경우 주변 개발이 불가능한 것과 관계 되는 이야기다.
유한 캠버리는 2009년에 굴업도에게 보건사회부 장관 명의로 이런 상을 굴업도에게 주기도 했다.
'굴업도는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으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 주기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자연 개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발하는 것이니 이를 명심할 것을 CJ 측에 가절히 바랄 뿐이다.
*. 민박집 이야기
옛날 굴업도가 민어(民魚) 어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할 때에는 수많은 사람이 붐비던 이 섬은 어장이 없어지자 주민들은 거의 다 뭍 인천이나 덕적도로 떠나고 현재는 7 가구 17명뿐안 주민이 반농반어(半農半漁)로 살다가 지금은 굴업도의 절경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 들자 주민 모두가 민박으로 집을 짓고 생활하고 있다.
내가 10여 년전 덕적도를 찾았을 때는 음식점도 없고, 슈퍼도 없었던 생각에 우리 일행은 지금도 그런 줄 알고 점심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떡과 라면 술과 안주 등을 개인 각자가 준비하여 왔는데, 정작 굴업도에 와서 보니 소주, 맥주는 물론 라면, 아이스 크림까지 민박집 곳곳에서 팔고 있었으나 숙박시설이 열악한 것은 역시나였다.
우리 일행 17명은 모텔이라는 곳에 방 4을 방 하나에 5만원씩 주고 4인이 한 방에서 숙식을 했는데, 방에는 TV나 전화는 물론 화장실이 없고 공동화장실이 마당 저 편에 떨어져 있었다. 공동화장실에도 소변기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다. 칫솔도, 치약도 없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스리퍼도 없고, 샤워장에 얼굴을 닦을 수건조차 준비하여 놓지 않았다. 수건을 준비해 가지 못한 나는 할 수 없이 신문지로 얼굴을 닥다가 여벌로 가져간 펜티로 얼굴의 물기를 흠쳐낼 수밖에 없었다. 주인에게서 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른 새벽인데다가 민박하는 방은 언덕 위에 있고 주인의 방은 그 아래로 따로 떨어져 있어서였다.
주인 여자에게 가볍게 충고를 하고 왔지만 가볍게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냥 지나칠 것 같아 걱정이다.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외딴 섬의 이야기라서 내가 미리 챙겨 가지 못한 탓으로 돌리면서 주인이 알아서 시정해 줄 것을 바랬지만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시정해 줄 것을 기대하여 본다.
덕적도에 와서 잡은 민박집은 굴업도에 비하면 같은 값인데도 지옥과 천국의 차이 만큼이나 좋았다.
-2018. 10.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