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고향집에서 가족들이 만났습니다. 역대급이라는 폭염이 추석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갑이 얇아진 가족들은 대폭 줄어든 차례상을 죄송스런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오늘이 추석날 맞는가 생각될 정도로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습니다. 추석날 에어컨을 돌려야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례후 밥상앞에서도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얼마전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나온 아들도, 자영업을 하는 딸도, 편의점에서 알바로 생활을 해 나가는 손자도 얼굴이 어둡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냥 밥을 먹을 뿐입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술도 오늘은 드시지 않습니다.좋은 이야기 나오지 않을테니까요. 편의점 알바생인 손자는 밥을 먹자 마자 귀경합니다. 오후에 출근을 해야 한다네요.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손자가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는지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인이라도 이제 이 나라가 처한 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진 노부부는 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아 머지않아 지구상 국가가운데 최초의 소멸국가 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저출산률은 이제 화제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소멸국가된다는 경고음이 먼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 전문가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초경쟁국가에다 초이기적인 심리, 세계 최대의 갈등, 천정부지 집값, 도저히 조달할 수 없는 교육비, 물가상승, 독신주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등 다 맞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저출산률로 고전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가진 가치관의 급속한 붕괴가 가장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형적인 농업국가입니다. 사농공상이라는 것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한국은 농업으로 버티어온 나라입니다. 공업과 상업은 근본이 없는 상놈들이 하는 천한 직업이라는 의식이 너무도 강했습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독립이 되고 한국전쟁을 통해 나라는 세계 최빈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압축성장으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한국의 가치관은 송두리채 바뀌어 버렸습니다. 자본 지상주의가 팽배하면서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한때 그 많았던 가족들이 어느날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드디어 일인 가정의 수가 세계 최대국가가 되었습니다.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현장에서 활약하고 세계적인 부흥분위기에 편승해 한국이 승승장구를 하면서 가족의 가치관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성심성의를 다해 키우고 그 자식은 늙은 부모를 부양하고 그 자식이 그의 자녀들에게 부양받는 그런 사회가 어느날 사라진 것입니다. 가족도 각자도생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부모도 자식들의 불편한 부양을 별로 원치않는 사회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런 베이비부머들이 출산한 젊은이들이 지금 이 나라 최저출산의 주인공들입니다. 성적 지상주의, 돈이 권력이다라는 개념을 어릴 때부터 뼈속깊이 새긴 세대가 바로 지금 가임세대라는 말이죠.
그들이 가진 최대의 가치는 바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에만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투자란 무엇입니까. 투자대비 이윤이 어느정도 이상이 되어야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전혀 투자가치가 없는 깡통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생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을 키우지만 그 자녀들은 스스로 자란 것처럼 판단하고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는 관심밖입니다. 수억원을 들여 교육시켰지만 투자자인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볼 때 아주 별 볼 일이 없는 종목에 투자한 셈입니다. 거액을 들여 투자한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것이지요. 그런 투자를 왜 합니까.
1900년 말정도까지는 사람이 때가 되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야 사회의 눈총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믿지는 장사인지는 알지만 상도덕상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것이죠. 하지만 21세기가 되면서 특히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결혼 출산 안해도 별다른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직장에서 어린 아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퇴근후에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의무도 없어졌습니다. 육체적 외로움을 적절하게 메울 장치가 이 사회는 너무도 많이 제공도 합니다. 돈만 있다면 말입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노후에 외롭다는 것인데 자신들의 부모들이 황혼이혼을 하는 것과 졸혼이란 아주 우스운 놀이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늙어 배우자와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이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물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얻게 되는 것이 모두 실일 수는 없습니다. 득도 물론 존재합니다. 하지만 득과 실을 비교했을 때 게임이 안됩니다. 100을 투자에 10의 이익을 얻는다면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정말 득이 많다면 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나라에서 나오는 방안속에 실보다 득이 많다고 판단할 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임기응변식 그리고 전 정권에서 폐기처분된 방안을 마치 새로운 것인냥 들고 나와 발표하는 수준이니 투자자인 젊은 가임자들에게 흥미를 주겠습니까. 아이를 낳으면 정말 실보다 득이 많은 방안은 없는 것일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전무하다는 판단이 정답일 것입니다. 투자자는 이득이 나지 않는 종목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우려스럽게도 민족 최대의 명절은 앞으로도 더욱 우울하고 쓸쓸한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17일 추석날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