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야 자유롭다 20세기 후반 대표적 실험소설 각기 다른 세가지 결말 “구성 특이” 찰스가 ‘타락한’ 새러를 만났을때
“내것” 욕심만 버리면 사랑=해방한 소설이 세 가지 결말로 끝을 맺는다면 우리의 삶도 한 가지 이상의 인생항로가 열려있다는 뜻이 된다.
열려진 삶이란 예정된 길이 아니어서 불투명하고 불안하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자유의 길은 아닐까.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인생의 갈랫길을 무수히 만났고,그때마다 어느 한쪽을 택하여 그 길만을 줄달음쳐 왔다.그 선택이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때로는 얼마만큼 자유로운 결정이었는지 회의에 싸이게 된다.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정부’(1968)는 20세기 후반 영국의 새로운 실험소설을 주도한 대표작이다.대체로 소설이란 어느 주된 사건이 발생하여 갈등을 겪으며 전개되다가 최종적인 해결로 끝을 마무리한다.현대소설에는 불완전한 미해결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파울스의 작품은 기존의 소설과는 달리 세 가지 각기 다른 결말을 갖는 점에서 특이하다.
작품의 주인공 찰스에게 던져진 세 가지 인생의 전환점은 생각지 않았던 여인과의 사랑에서 시작된다.빅토리아조의 전형적 신사로 등장하는 찰스는 사회 상류층의 후예답게 어느정도의 경제적 수입,남에게 빠지지 않는 가문,적당한 교양과 과학적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자연히 그는 구차스런 직업을 가질 필요도 없이 사회적 변화와는 동떨어진 채 화석을 모으는 아마추어의 취미로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찰스가 이어나갈 미래의 생활이 그저 남과 똑같이 지극히 평탄하고 진부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단지 재산이 풍족하지 못한 점이 흠이지만 이것도 가문을 보고 덤벼드는,천박하지만 부유한 신흥 상업계층과 결합하면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이것이 찰스가 약혼을 서두른 주요 이유였다.
찰스의 예정된 삶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은 새러라는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이고 여기에서 싹튼 열정적 사랑이다.그녀의 첫 시선은 창날같이 찰스의 뇌리에 파고든다.사랑의 신비스런 묘약을 접한 찰스는 이제까지 자신이 구축해 온 삶의 터전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이 더해갈수록 찰스의 의식에서 일상성의 두터운 외피는 벗겨진다.
이미 약혼한 찰스에게 새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은 빅토리아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금기의 영역이다.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파혼할 수는 있지만 고아로 자라난 새러와는 신분상의 격차가 너무나 크다.더군다나 이미 프랑스 군인에게서 버림받은 과거를 갖고 있는 새러에게는 소위 타락한 여인이란 도덕적 명칭이 늘 따라붙는다.
새러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없는 배제된 여인으로 홀로 소외와 고립의 세계에 던져진 여인이다.사회에서 추방당한 국외자이기에 오히려 새러는 파울스가 강조하는 해방된 실존적 주체에 부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개별적인 존재며 자신의 개별적 고독을 인정하는 실존적 인식에서 각 개인은 진정으로 자유를 획득하고 해방을 성취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성에 대해 엄격했던 빅토리아조의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새러는 타락한 여인이지만 그러한 사회의 성도덕에 억눌려있던 잠재적 충동과 열정의 표상으로 출현한 새러의 특이한 위상은 한편 그녀를 평범하지 않은 실존적 존재로 만든다.원죄처럼 새러에게 붙어다니는 한순간의 타락은 그녀를 오히려 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역설을 낳는다.
새러는 자신의 실존적 자유를 쟁취할 뿐만아니라 사회규범에 맞춰 살던 주인공 찰스로 하여금 진정한 자아를 깨닫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그녀는 사회관습에 젖어 일종의 화석화된 존재였던 찰스의 의식에서 새로운 욕구와 욕망을 분출시키는 기폭제다.자신의 독창성과 개별성을 일깨우는 자아탐구의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다.
남몰래 새러와 만나러 가는 이른 새벽 숲을 지나면서 찰스는 작은 굴뚝새의 청량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깊은 신비를 깨닫는다.굴뚝새의 노래는 찰스에게 질식시킬 것같은 일상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일깨우는 고발과 저항의 소리로 들린다.새러가 도덕적으로 엄격한 빅토리아조 사회의 작은 굴뚝새임을 찰스가 인식하는 순간이다.
파울스의 작품세계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인간을 사회적 족쇄에서 해방시키는 자유의 차원으로 자리잡는다.그러나 사랑은 신비스럽고 매혹하는 숭엄함의 차원이 있는가 하면,그러한 신비감을 박탈하는 소유의 차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작가는 지적한다.사랑의 대상을 소유하고 또한 자신이 사랑의 대상으로 소유되는 순간 그 숭엄함은 상실되고 지배와 예속관계로 추락한다.
창조는 결핍에서 생성되듯 영원히 획득될 수 없는 미완성의 상황에서 우리 존재는 자유와 해방을 만끽한다.사랑의 신비란 성취하고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영원히 추구하는 자유스러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새러는 찰스에게 상실된 가능성,소멸된 자유,시도해 본 적이 없는 미래의 항해를 모두 합치시킨 상징이지만 그것은 소유의 개념을 벗어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사랑의 일탈로 찰스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려 있음을 알려주는 순간 새러는 찰스의 눈 앞에서 영원히 사라진다.찰스 앞에 펼쳐지는 미래가 어떠한 모습을 가질 것인지는 철저히 찰스 자신이 결정할 몫이기 때문이다.실존적 선택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 숨겨진 미래의 모습을 발견하여 새롭고 진정한 삶을 세우도록 유도할 뿐이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 소설이 채택하는 일직선적인 진행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새러에 대한 일탈적 사랑을 한때의 열정으로 치부하고 약혼자에게 되돌아오는 첫번째 결말은 사회와의 타협 내지는 화합을 꾀하는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적 결말이라고 하겠다.
이와 반대로 평온한 삶과 결별하고 사랑의 열정을 좇아 새러와 결합하는 두번째 결말은 사회윤리에 도전하는 낭만적 로맨스가 되겠다.
파울스가 제시한 세번째 결말은 해피 엔딩을 거부하고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현대 소설에서나 가능하다.사회윤리까지 거부하며 새러와 함께 하는 미래의 삶을 추구하지만,영원히 사라져버린 새러로 인해 행복한 결합은 허용되지 않고 찰스는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결말이다.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소유의 세계를 떠나 새로운 삶을 세워나가야 하는 찰스는 인간의 진정한 고독과 자유를 발견한 실존주의자로 남는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그만큼 우리 의식은 주어진 인습에서 벗어나기를 강요받고 있다.파울스 소설에서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찰스와 새러의 열정적 사랑은 하나의 비유일 뿐이다.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동시에 진정한 해방의 삶을 모색할 기회이기도 하다.
존 파울스 1926 영국 에섹스 출생 1950 옥스퍼드대 졸업(불문학 전공) 1963 ‘채집자’(1965년 영화로 제작,최근에 한국에서는 ‘미 란다’라는 연극으로 이름을 바꾸어 문제를 일으켰다.‘미 란다’는 ‘채집자’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 1965 ‘마술사’(1968년 영화로 제작) 1968 ‘프랑스 중위의 정부’(The French Lieuten ant's Woman,81년 영화로 제작) 국제 펜클럽 상 수상 1974 ‘흑단빛 탑’(단편집) 1977 ‘대니얼 마틴’ 1985 ‘구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