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변경의 역사
주일예배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또 몇 성경 절들을 주일 예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모두 성경의 원 뜻을 벗어난 것들이며 사실상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없으므로 그 기원을 역사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 일요일 예배의 기초
1.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레26:30)”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휘파될 것이며 (겔6:4)” ▶ 일요일에 예배는 드리지 않았지만 일요일 예배의 기초는 창조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곧, 일요일 예배의 노선으로서 구약에는 태양신을 섬겼다.
2.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겔8:16-17)” ▶ 성전 안에 가증한 것들을 세움 (민11:16, 겔6:1-6, 겔8:1-7)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며 우상숭배의 장소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3.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겔22:8)”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22:26)”
○ 기독교가 로마에 전파될 무렵
▶ 미트라 종교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기원전 1세기 경에 로마로 들어왔다. 태양신 미트라는 주로 군인 층에서 열렬히 신봉하였는데 이후 귀족과 황실에서 받아들여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 격상되었다. 기독교가 로마에 전파될 무렵에는 이 미트라교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되어 있었다.
○ 로마 교회의 시작
▶ 기원전 61년의 폼페이에 의한 전쟁 포로로서 로마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포로들은 그 후에 석방되어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구성원들을 이루고 있었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쓸 당시인 기원후 57년경에는 이미 상당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은 여전히 로마의 속국이었다.
○ 종교 갈등의 발단
1. 바울은 로마에 복음증거하기를 원했는데 길은 모두 로마로 통하기 때문이었다. 로마에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갔으며 사도행전 후반부에 배타고 로마로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황실에까지 복음을 전했다.
2. 하지만 로마의 궁전 안에서는 이교도 제사를 매일 드리고 있었는데 황실의 여자들이 복음을 받은 후 제사를 드리지 않자 곧 로마제국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3. 복음이 군대에까지 들어갔다. 고넬료를 비롯해서 군인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후로 총을 버리고 제대하는 일이 생겨났다. 그러자 군대는 약해지기 시작했고 로마제국과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4. 이 미움이 유대인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대인은 원래부터 속국으로서 로마와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 로마 황제의 핍박
1. 기원후 64년 7월에 네로황제는 신도시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것을 시민들이 반대했다.
2. 로마시에 큰 불이 나서 시 전반을 태우자 시민들 사이에 “우리가 신도시 개발을 반대해서 네로황제가 불을 일부러 놓았다“라고 소문이 나자 네로 황제는 이것을 다시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3. 이 때부터 네로황제의 핍박이 시작. 그 때 바울이 죽고 베드로가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4. 기원후 66년에 유대인들이 독립반항운동의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는 칼과 철로 대항했고 이 때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하지만 이 반란에 기독교인들은 참여하지 않았었다.
5.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
○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정책
1.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는 유능한 정치가였고 많은 속국들과 화친 정책을 펴서 매우 안정된 정치를 했다. 그 당시 반란이 삼하던 유대인들과 화친 조약을 맺기 위해 소원을 따라서 기원후 130년경에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가를 해 주었다. 유대인들은 막대한 건축 자금을 거두었다.
2.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① 황제를 숭배하라 ②토라(모세오경) 사용금지 ③ 안식일 예배 금지
3. 얼마 후, 황제는 모든 속국들에게 자신을 신의 아들로 부르도록 하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자 유대인들이 반발하였고 황제는 보복으로 할례의식을 금지시켰다. 유대 랍비들의 항의가 일어나자 황제는 분노하여 성전 재건령을 취소하였다.
4. 기원후 132~135년 사이에 유대인들의 대규모 반란이 있었다. 황제는 로마 군대로 초토화시키면서 유대인의 마을 985개를 전멸, 약 80만 명이 죽었다.
5. 이미 내세웠던 세 가지 금지령을 내리고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다.
○ 기독교인에게 문제발생
1. 이 결과로 기독교인들에게까지 문제가 생겼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모두가 다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 반란으로 인한 금지령 속에 포함된 안식일 준수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까지 해당되는 칙령이었다. ①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 ② 구약성경을 사용한다는 점 ③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는 점
2. 로마제국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동일시하면서 안식일을 지키면 박해를 했다. 왜냐하면 아래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 교부들의 변증서
1. 그래서 당시 교부들은 “우리는 반항도 안했고 감정도 없으니 핍박 말라”면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다르게 취급해 달라고 변증서를 내면서 계속 요청했으나 황제는 이를 거절하고 박해는 계속되었다.
2. 결국, 교부들은 유대인들과의 차별화와 로마의 이교도들과의 동질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유대인과의 차별화와 이교도와의 동질화를 위해서 안식일 대신 당시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의 예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교회에 도입하게 된 것이고 교회 내부에 분란이 일어났다. ① 안식일을 계속 지키려는 무리들 ②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려는 무리들 ③ 두 날을 모두 지키려는 무리들
3. 일요일 준수가 즉시로 안식일 준수를 대신하지 않았고, 기독교인들은 계속 두 날을 같이 지켰다.
○ 변증적 교부들의 타협에 의한 배도
1.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일요일을 지킨 역사상의 증거는 '바나바의 서신'(15장)과 '저스틴 마터'의 "첫 변증서"(First Apolozy, 67장)에 나오는데, 이것들은 기원후 150년경의 것이다. 두 경우에 있어서 다 같이 안식일 준수를 비난하고 일요일 준수를 권장하고 있다.
2.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일컬은 최초의 믿을 만한 증거는 경외서인 "베드로의 복음"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Miscellanies, V. 14)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모두 제2세기 말경의 것이다.
3. 약200년 동안 핍박을 당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유대인의 모든 풍습을 회피하고 경멸하며 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다르다고 열심히 황제에게 변증하는 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려는 무리가 발생하고 그리스도인들도 점차 정치상황에 맞춰 안식일도 지키고 또 일요일에도 모임을 가졌던 습관이 있었음을 바나바의 서신, 저스틴 마터의 글, 도마의 복음서, 폴리캅의 순교 등에 나타난다.
4. 기독교 교회 지도자 두 명이 핍박에 못 이겨 이교도와 타협에 의한 배도에 이른 과정을 보자. 첫 변증의 내용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다르므로, 다르게 취급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로마황제는 그 변증을 거부했고, 그러자 그 후 변증의 내용이 바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5. 저스틴 마터의 변증 (기원후 100-165년)
①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시84:11)”
②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③ 빛은 예수님이요, 어두움은 이 세상이다.
④ 영광 중에 재림하시므로 일요일에 재림하실 것이다.
⑤ 그러므로 일요일이 주의 날이다.
⑥ 일요일을 신성시해야 핍박이 없어지므로 일요일에 성도들을 모이게 하고 태양을 향해 기도하게 함. "소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는 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회집합니다!" <저스틴 마터 변증서>
6. 마르시온의 변증 (기원후85-160년)
① 안식일은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날이다. 이토록 슬픈 날에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 하면서 금식일로 지정.
② 안식일에는 성만찬도 폐지하고 우울하게 보내다가
③ 일요일에 만찬을 벌이고 축제의 날로 지정해서 일요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④ 나중에 이단시 되어 로마교에서 쫓겨났는데 (기원후 144년) 이는 영지주의의 창시자이다.
7. 초대교회 이후부터는 무시무시한 핍박이 있었던 서머나 교회 (AD100-313년까지)시대에 초대교회 이른 비 성령으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후, 사단은 그냥 놔 둘 수 없어 이때부터 황제 6명이상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으로 다스리던 시대였다. (트라얀, 아우렐리우스, 막시미누스, 데시우스, 발렐리안, 디오클레시안 황제로서 ,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온건정책을 쓴 콘스탄틴 황제 전 까지) 이때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당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감소되지 않았다. 계시록 2장의 서머나 교회의 상황이 그것을 증거 해준다. ※ 요한계시록 2장의 에베소, 서머나 교회 참조
○ 로마황제의 기독교 공인
1. 로마제국의 정치지도자이면서도 디오클레티아누스(기원후 284-305)는 기독교에 대한 "인종청소"를 실시할 정도로 심한 박해를 가했지만, 뒤를 이은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기원후 304-337)는 기독교와 타협(내지 유착)을 시도한다. 이는 기독교를 권력유지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콘스탄티누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병상에서 갈레리우스 황제는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고 했더니 국고만 바닥나고 나라만 분열되었으니 차라리 그들을 포용하라”
2. 당시에 로마는 동서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가 유명한 십자가 환상 (성당 강대상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을 보고 제국을 통일하였다. 그 후 기원후 313년 2월에 칙령을 내리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였으나 아직 기독교에 대한 전면적 수용이나 국교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고 단지 제국의 다른 종교들에 비해 동등한 법적 지위, 곧 양심의 자유를 인정한 수준이었다.
○ 일요일 예배의 법제화
1. 밀라노 칙령 (321. 3. 7)
① 200여년 이상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게 핍박하던 로마제국은 그리스도교를 힘으로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으며 기독교를 제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여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마침내 밀라노에서 최초로 일요일을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하게 되면서 신교 자유를 허락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밀라노 칙령 The Edict of Milan)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태양을 존경하는 날에 모든 관공리들과 각 도시의 주민과 제조 공장의 종업원들은 휴업하라. 그러나 농촌에서 경작에 종사하는 농민은 자유로이 노동할 수 있다. 이는 씨를 뿌리고 포도를 심는데 불리할까 염려됨이라” (단 7:24 ⑤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
②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과 기독교들을 일요일로 묶어서 단일 종교로 융합해 보려는 야심적인 종교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선포했으나 이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전략상의 개종이었다. (대세계의 역사 3권 p211)
③ 바벨론 시대부터 휴일을 일요일로 쓰고 있었는데 바벨로니아의 점성술에서 따온 요일제도도 오늘날의 요일제도로 바꾸었다. 그 날에 따라 해당되는 행성이 지배한다고 생각. 원래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므로 첫째날을 일요일(日, Sunday)로 지정했다.(2003. 12. 1. 월. 한국일보)
④ 하나님의 시간은 해질 무렵이 하루의 시작인 것을 자정부터를 하루 시작으로 바꾼 것도 로마. 1년, 1달, 하루는 행성주기에 의한 것이지만 1주일은 성서로부터 왔다.
⑤ 모세 5경 때부터 이집트-바벨론-페르시아-헬라-로마-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상들이 태양신과 관련이 있다.
⑥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걸고 반대했다.
2. 니케아 종교 회의 (325. 6. 19~ 8. 25)
① 콘스탄티누스가 참석한 가운데 니케아의 황제의 궁에서 8월25일 폐회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② 태양의 날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 하도록 결의함.
③ “금번 소집된 총회에서 지극히 성스러운 부활절 일자에 관한 문제가 토의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참석자 전원의 연합 일치된 판정으로 잘 해결되었다. 즉 이 부활절은 각처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한 날에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④ 이 해에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게르만민족이 서쪽에서 대 이동으로 침입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소아시아(터키)의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했다.
3. 로마교회 감독의 영향력 강화
▶모든 면에서 하나의 로마를 지향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다양하게 난립해 있던 교회와 경전을 정리하여 하나의 교회, 하나의 성경으로 국가 공인화를 실시한다. 하지만, 정정이 어지러웠던 로마는 결국은 동서로 갈라진다. 거기에 따라 교회도 AD440년경부터 동서로 갈라진다. 연대적으로 AD312(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집권)~476(서로마제국의 멸망)의 기간이다.
① 로마에는 기독교의 5개 합회가 라틴어 계열의 서로마에, 그리스어 계열의 동로마의 도시 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에 각각 있었다.
② 이방인들의 침입 때문에 서로마를 중심으로 합치려는 경향이 생기며 지도자의 필요성을 느낌. 왕들이 없었기 때문에 라틴파의 대주교가 맡아서 물리침. (이때 서로마는 라틴어를 쓰는 라틴파, 동로마는 그리스어를 쓰는 그리스파) 갑자기 황제가 떠나감으로써 공백이 된 서로마의 정치 환경에서 당시 서방의 유일한 정신적 지도자인 로마교회 감독의 입지와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국왕의 일을 맡으면서 교회를 지도함. 대주교가 후에 교황이 되고 왕과 황제를 폐위시킨다.)
③ 이때 당시 라틴어 계열의 서로마에서는 게르만족이 북서쪽에서 대 이동으로 침입이 잦았고 이를 모두 서로마가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는 이 서로마 주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3. 사르디카 회의 (343)
▶ 태양의 날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란 미명아래 일요일 신성론으로 부각시키면서 “주의 날”로 개칭하고 교역자가 여행으로 “주의 날‘을 세 번 범하면 제명시킬 것을 종교 제11조에 명시하도록 의결했다.
4. 라오디게아 총회 (364)
▶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하는 법규를 의결하였다.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도록 결의 하였다. 총회에 의결된 종규 제 2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거나 토요일 안식일에 게을러서는 안되고 이 날에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을 특별히 존중히 여기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이 날에 일하지 말 것이다. 만일 그들이 유대인화(안식일 준수)한 사실이 판명되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 것이다.”
○ 가톨릭 교리서에서 확인
▶ 1910. 1. 25 교황 피우스 10세로부터 “사도적인 축복”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 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가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 일요일 신성론에 관한 역사의 평가
1. "교회는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했다. …전승에 따라, 대중들로부터 추앙받던 우상숭배자들의 축제일 들을 그리스도교가 물려받고, 그 우상숭배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준 것은 명백히 교회의 모략이었다." (Arthur E.P. Wei gall, The Paganism in the Our Christianity, p. 145. Copyright, 1928. by G.P. Put nams's Son, New york. Used with their permission. in SDABC, vol. 9, p. 972; cf. Fran H. yost, p. 45).
2 "고대 태양신에게 부단한 충성심을 바친 자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 자취를(오늘날까지) 남겨 놓았다. … 지극히 거룩하며, 우주적인 이 그리스도교단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고대 우상 숭배자들이 명명한 '태양의 날',(dies solis)이라는 칭호의 존속은, 대개 우상숭배교와 그리스도교의 절개가 서로 연합함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이 법령은 제국 내에 불일치한 종교들을 공통의 제도 아래서 하나 의 조화를 이루어 보려는 의도였었다." (Arthur P. Stanley, Lectures On the History of the Eastern Church, 1884, p. 184. in Fran H. yost., p. 45).
○ 중세 암흑시대
1. 서기 476년 서로마가 게르만민족의 침입으로 망함으로써(계시록 8장 참조) 황제가 없어진 로마는 이미 막강해진 로마교회 감독을 최고의 지도자로 받아들였으며, "아버지"를 뜻하는 일반 명칭인 "포우프"(pope)를 로마교회 감독에게만 적용시켜 오늘날의 "교황"의 명칭이 되게 하였다.
2.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안(Justinian)은 통치권을 상실한 서로마에서 정치력을 회복하기 위해 막강해진 로마교회 감독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서기 533년 로마교회 감독을 "전세계 교회의 머리"라고 선언했으며 그 이듬해 이 사실을 로마법전에 수록하여 법제화하였다.
3. 그러나 종교적 신조와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면서 교황과 동로마 황제의 계획을 위협해 온 게르만족의 세 부족들을 제거하기 위해, 유스티니안 황제는 군사를 일으켜 493년에 헤룰리를 제거했으며, 534년에 명장 벨리사리우스(Belisarius)를 보내 반달을 정복하고, 538년에 동고트를 마지막으로 정복함으로써 교황을 따르지 않는 지상의 반대파를 모두 멸망시켰고 중세기를 시작하는 로마교황의 지상권 확립의 기틀을 놓았다. (다니엘7:24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
4. 열나라 중 프랑크의 페핀이 반란을 일으킴. 이것을 교황에게 도움 요청함. 그러자 왕으로 임명조건으로 교회를 도와달라는 긴밀한 협정을 맺음. (프랑크와 로마 주교는 성상숭배 때문에 동로마의 기독교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음) 이리하여 세계 교회의 머리가 된 로마교황은, 그 이전에 자신이 섬기던 프랑크 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찬달자 페핀(Pepin)에게 752년 대주교 보니파스 (Bo-niface)를 통해 왕관을 씌어줌으로써 이해관계를 통한 정치적 유대를 공고히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756년 페핀(Pepin)은 자신이 롬바르드에게서 빼앗은 동로마제국 총독의 영지를 교황에게 하사함으로써 이제 로마교회는 종교 황제격인 교황과 작지만 영토까지 가진 종교 국가로 탄생했다.
5. 교황 그레고리 7세가 두 가지 개혁을 함 ① 황제의 성직자 임명 반대 ② 황제의 권리가 교황에게
6. 1017년 독일의 하인리히가 반대하자 그레고리후스 7세를 폐위시킬 것을 결의. 이후 하인리히를 폐위시킬 것을 결의. 맨발로 알프스 산맥을 넘어 3일을 성문 앞에서 기다림. 이것이 그 유명한 카놋사의 굴욕이다. 이때부터 교황은 국가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최고의 권력으로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럽은 서쪽 끝 아일랜드에서 동쪽 끝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세상으로 변한다.
7. 1512년 라테란 종교회의 : 삼위일체,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 그러므로 율법을 수정하거나 해석가능. 지상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명칭도 교황에게로.
8. 바오로 6세 등극 대관식 : 삼층 면류관을 씌워주면서 (옥타비아 기도문)
○ 각 시대의 선악간의 대 쟁투
1. 가톨릭교회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핍박했다.
2. 그러나 모든 교회가 다 따른 것이 아니다.
3. 기원후 538년부터 1517년까지 긴 기간 동안 로마 교권 밑에서 복음의 원칙에서 떠나 이교의 사상과 예배의식에 강요당하며 핍박을 당하였으나 신자들은 서로가 성경을 연구하여 주의 진리를 밝히며 로마교를 요한계시록에 기록한바 된 바벨론(교회가 이교의 습관과 세속에 물들어 순결성을 잃었음을 의미함)이라 선언하고 피차 권면하며 악형에서도 죽도록 충성했다. 그 같은 위대한 일들을 하도록 선두에 나선 이들은 산중에 살던 왈덴스와 알비젠스의 무리들이었으며 위크립, 허쓰, 쩨롬,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이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개신교들이 부흥을 이룩하도록 터를 마련하게 하였던 것이다.
4. 왈덴스인 들 : 영국의 청교도인 중에서 제칠일 침례교가 탄생 (1617년) 독실한 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교 법왕의 부패와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반대하다가 로마 교권의 핍박을 만나 이태리와 불란서의 알프스 산중으로 피하여 살면서 성경 연구와 기도에 힘쓰며 안식일을 지켰다. 또한 저들은 자기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가졌으며 또 여러 유익된 성경 구절들을 베껴 옷 속에 숨겨 가지고 다니면서 비밀히 전도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을 왈덴스 교도라 불렀다.
5. 루터 : 루터의 스승이 ‘구원의 문제만 개혁하지 말고 안식일도 개혁하라’고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6. 칼빈의 친구인 파렐도 종교개혁시 안식일도 개혁할 것을 제의했으나 미처 못했다.
※ 538년부터 시작된 중세 암흑시대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들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시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우선 창조 초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실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 외에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번식하고 충만할 때 이런 이런 일을 하라, 하지 말라하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4장 1절부터 3절까지 보시면 아담의 아들들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3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은 번역이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영어번역에는 'at the end of days'라고 바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날들의 끝이 언제지요? 바로 제칠일 안식일이며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계속 그 아들들까지 제칠일 안식일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 제칠일 안식일에 대해서는 이미 긴 설명으로 말씀하셨고 하늘의 율법은 계속 유효한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창조 이후로 수많은 역사가 있었지만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은 그것을 다 기록하지 않으시고 강조하고자 하는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에녹에 대해서는 300년 동안 동행했다는 것을 강조하셨고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는 대부분이 목적이 그 족보의 형성에 대한 진술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록하셨습니다. 그 당시를 설명하는 성경말씀에 안식일이 없다고 하여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성경은 B.C1500년경부터 AD100년경까지 기록되었습니다. B.C1500년경에는 6천년 전부터 있던 일들을 간략하게 적으시고 출애굽하면서 세세히 기록을 하신 겁니다. 간략하게 적었다고 노아도,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법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AD100년부터 2004년까지 긴 공백기간 동안의 성경말씀이 없다고 계명이 무효한 것일까요? B.C400년부터 AD60년까지 성경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아실 겁니다. 그 기간에는 선지자도 계시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에 하나님 믿는 사람도 없고 율법도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창14:20에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처음 있고 모세 이야기까지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십일조 제도가 없어진 것일까요? 수천 년 역사 중에 그 때 한 번 나왔다고 해서 그 때 당시만 지켰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현 시대에 어느 그리스도인 중에는 성경에 담배피지 말라는 말씀이 없다고 하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피는 분들을 봅니다. 그럼 허락하신 걸까요?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고전3, 6, 7, 10장 등에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니 먹든지 마시든지 온갖 더러운 것을 피하라고 권면하시며, 그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멸한다고 경고까지 하시며 마지막 시대의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급이 안 되었다고 해서,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말일 성도들은 1부 다처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1부 1처제의 말씀이 없다고 하여 다처제를 허락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남자 한명에 여자 한명을 창조하셨지 남자 한명에 여자 여럿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인을 여럿 두었던 아브라함도 솔로몬도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죄 값을 치르게 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안식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창조 때에 만들어진 안식일은 계속 지켜온 것입니다. 그것이 출애굽하면서 성문화가 된 것이지요.
① ‘기억하여’라는 말씀 속에는 “내가 창조 때에 이미 안식일을 주지 않았느냐”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② 노아 때는 “또 칠일을 기다려”(창8장)라는 말씀이 암시하고 있습니다.
③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26:5)에서 보듯이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아브라함이 안식일을 지킨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도 안식일을 지킨 더욱 확실한 증거의 말씀입니다. 역사(役事)는 ‘일’의 의미입니다. 모세가 안식일 회복 운동하는 것을 바로가 저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役事)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役事)나 하라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役事)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출5:4-5)
●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이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5:26)
십계명을 반포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이기도 하고 규례며 전통적으로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신약의 히브리서에서 확증하고 계십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히4:3)
● 히4:7절에 보면 다윗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히브리서 3~4장까지 “안식”이란 말이 열두 번 나옵니다. 열한 번은 창2:2절과 같은 원어인 ‘카타파우시스’로 되어있고, 한 번은 4:9절에 ‘사바티스모스’로서 안식일 준수를 의미하는 ‘안식일의 안식’입니다. 창세기부터 마지막 때까지 계속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구약)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4:4-10)
11. 십계명은 범죄 이후에 성립된 것이고 하늘에서는 율법의 정신으로 나온 것뿐입니다. 다음은 화잇 선지자의 글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이 창조되기 전부터 있었다. 천사들은 이 율법의 통치를 받았다.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들을 범하였으므로 타락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그들에게 알려주셨다. 그 당시에는 율법을 기록해 두지 않았고 다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으로 반복해 주셨다. 넷째 계명인 안식일은 에덴동산에서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지상에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율법에서 삭제된 것은 없다. 십계명의 원칙은 타락하기 전에도 있었으며 또한 그 특성은 거룩한 지위에 있는 무리와 상태와 부합되었다. 타락한 후에도 이 계명의 원칙은 변개되지 않았으나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도록 하기 위하여 추가해 주셨다.” (살아남는 이들 p139)
구약에서의 안식일
1. 창조 때
․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느니라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창2:2)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의 창조 기념일이다. ▶노아 시대의 7일 제도- 아담 이래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지켜야 할 법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 법도 중에는 인간의 행복과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안식일도 분명히 있었다. 노아 시대에도 7일 제도가 유지되었던 사실 (창7:4, 10 8:10,12)을 보면 안식일 제도가 이어져 내려 왔음을 알 수 있다..】
2. 광야에서
․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출16:4-5)
【만나를 통해서 안식일 준수 교육을 받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광야의 음식, 만나를 먹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만나를 통하여 안식일을 교육하셨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동안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안식일을 다시 철저하게 지키도록 훈련하신 것이다. 만나는 6일 동안 내렸고 일곱째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
3. 시내산에서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제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8-11)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예배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인 시간은 창조의 기념일로 제정된 제칠일 안식일이다.】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31:13-17)
【결혼제도와 안식일 제도는 사람이 범죄하기 전에 제정된 것이다. 성경에서 안식일이 제정된 경위나 시기를 볼 때에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요구하신 것이지(지금의 우리처럼) 어떤 특수성 때문이 아니었다.】
․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 거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32)
【제칠일이 나라마다 틀리지 않느냐는 반문을 할 줄 아시고 미리 말씀을 해 두셨다.】
․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레23:32)
【창조 때처럼 하나님의 하루는 저녁부터 저녁인 것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이교가 자정 12시에서 자정 12시로 바꿔 놓은 역사가 있다.】
․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사58:13)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사66:22-23)
【여기서의 월삭은 매달 초하루에 드리는 예배를 가리키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지 절기와는 다름을 밝혀둔다. 전통적으로 지키는 하나의 규례 (건강법규, 사회법 등)이다. 구약시대 토요일, 신약시대 일요일, 천국에서 토요일?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영원하듯이 율법도 영원하며 그 중의 하나인 안식일도 영원하다】
4. 비벨론 포로 이후
․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겔20:12, 20)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때 저들은 번영하였고, 안식일을 무시하며 존귀히 여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채찍으로 삼아 저들을 징계하셨다. 안식일은 구약시대 전체를 통하여 거룩하고 존귀한 날로 지켜지도록 요구하였다..】
신약에서의 안식일
1. 예수께서 친히 지키심
․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4:16)
【창조주께서 안식일을 지키심- 안식일을 제정하셨던 창조주,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시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예수님께서 유대 관원들과 안식일 논쟁을 여러 차례 하셨지만. 그 논쟁의 내용은 ‘안식일을 어느 날 지킬 것이냐‘ ’안식일을 지켜야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고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마12장 참조)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에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5:17-19)
․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하시고 (마12:12)
․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7-9)
․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7:9)
․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눅6:5)
【주일은 ‘주의 날’ 그러므로 주일=토요일 안식일】
․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니라 (눅16:17)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24:44)
【예수님이 안식일에 예배드리면서 읽으신 ‘성경’은 ‘구약성경’이며 이 성경을 항상 상고하라 하셨으며 이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라 하셨다. 이제는 구약과 신약 전부이지만.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말씀이라는 말로 안식일을 부인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39)
․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38-39)
․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로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6:45)
․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요9:14)
【안식일은 복 주시는 날이며 거룩한 날】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0)
2. 예수님 십자가 직후
․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눅23:54-56)
【안식일이 거의 된 예비일은 금요일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시간은 금요일 오후 3시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주변에는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예수의 시체는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무덤에 넣어졌고, 그 이후의 여자들이 행동에 대해서 위와 같이 기록되었다. 십자가 직후에도 계명을 좇아 안식일을 준수한 명백한 기록이다.】
․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28:1)
【예수님은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므로 ‘안식 후 첫날’의 안식일은 토요일임을 모든 기독교인들은 인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계명을 지키며 불순종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단 한 가지 불순종으로 인하여 쫒겨 났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온전한 순종을 원하신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할 과제가 있다. 】
․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16:9)
3. 예수님 부활 이후
․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행13:14)
【예수님 제자들도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예수님의 계명을 그대로 지킴】
․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행13:27)
․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17:2)
【회당이 없는 곳에서도 안식일을 준수한 사도 바울-“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행16:13)】
․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13:42, 44)
․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18:4)
․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히3:11-12)
․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3:18)
․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4:4)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9-11)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4)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약2:20)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2:22)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일2:7-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에서 새 계명은 십계명임. 곧,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 백성 되리라는 약속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언약을 버렸음. 그래도 그들을 예수님은 구원하시고자 다시 그들에게 의미를 재부여 해주심. 사도 요한은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 후, 곧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1:5-6)고 말한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신명기 6:5, 레위기19:18에 나왔던 계명이다. 그것은 결코 새 계명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사랑 없이 율법의 문자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재차 반복해 주신 것이다. 더구나 사랑만 하면 된다는 것은 전혀 예수님의 의도하신 바가 아니다. 요한복음14:15에서는‘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다. “다락방에서 제자들과만 같이 계실 때에 예수님의 처음 명령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계명이 제자들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이념과 충동이 그들을 지배하여야 하였으며 새로운 원칙이 그들로 말미암아 실행되어야 하였으며 그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그들이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아셨다....” (시대의 소망 p677~678) 】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4:2-3)
4. 예수께서 예언으로 언급
․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24:20)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이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안식일이 부활절 기념일로 바뀌었다면 이 말씀은 설명이 불가능한 것. 또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 세상 멸망의 표징이니 설명이 불필요하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2) |
첫댓글 교부들의 기록에서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그나티우스(110-117년경 순교)의 서신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 서신을 보면, 다음과 같다. "더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에 속한 날(계1:10)을 지킴으로서...." 즉 주후 110년 전에 속사도이며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티우스는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의 날을 지킬 것"에 대해서 말하였다는 기록이다. ] =>베드로와 요한의 제자이며 안디옥 감독인 아그나티우스의 서신을 잘보세요
이그나티우스는 계1:10절에 근거하여 주일을 지키는 겁니다. 그는 요한사도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것은 날을 지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날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날이 토요일 안식일이 되었던.. 부활하신 일요일이 되었던.. 이 날짜의 그림자를 섬기려 한다면.. 그것은 주객전도의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께서 우리를 죄짐에서 해방하사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원하심으로 완전한 안식을 주신다는 그림자이며.. 일요일은 주께서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는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 실상을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그림자 자체를 섬기려 하는 것은 결코 그릇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주장이나..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주장이나.. 제가 보는 견지하에선 둘다 진리에 미치지 못하는 그림자에 지나침이 있다고 보입니다.. 모임의 문제는 요일이나 날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이 가하면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고.. 토요일이 가하면 토요일에 모이는 것이고... 날짜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자신이 의미를 둔 그 의미에 굴복되는 것일 겁니다..
저도 레마님처럼 생각하구요. 지켜야된다안지켜도 된다는게 아니라 지키게 된 이유는 알고, 예배드릴 때 진정으로 드려야겠지요. 걍 자료를 찾다보니 이런게 있더라구요. 무조건 믿기보다 알고 믿으라고 하시거든요 청년부 목사님은.. 호기심을 가져야한다고 하시구... 왜 믿어야하는가를 안다면 더 온전히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맹목적 신앙 역시 경계해야한다고 하셔서요.
이렇게 훌륭한 자료가 있었군요.
개인이 아무리 애써도 사회체제의 제한을 받습니다.무조건 자기만 훌륭하면, 자기 신앙만 좋으면 목사님이나 다른 분들 허물 볼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하지만 그것은 결국 국지전으로 끝날 것이기에 우리는 보다 아름다운 사회체제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교회가 되도록 체제와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보수주의는 항상 개인만 강조해 왔고 정작 결단의 순간에는 권력과 밀착하여 전혀 예수님과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KJV-(창4:3) And in process of time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unto the LORD. 권위역에서는 process of time it came to pass 라고 되어있습니다.. 시간이 흐른뒤에가 맞습니다. 'process of time it came to pass' 이것은 권위역뿐아니라 다른역본들까지도 바꾸지않은 부분인데(In the course of time 이라고 되어있는 역본도 있음)....'at the end of days' 라고 되어있는것은 어떤역본이신지...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부분은 문맥상으로만 봐도..시간이 흐른뒤에가 맞습니다. (창4:3) 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 (창4:4)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 이것을 봐도 알수있듯이 시간이 흐른뒤에..수확의 시기가 되었을때..카인은 열매를..아벨은 첫배새끼들을..가져왔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바른 번역을 꼼꼼히 확인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때까지 유대에있는자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것을 예언해주신것이며 지금도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있습니다. 그들은 안타깝께도 걸려넘어졌고 그리스도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그중에서 주께돌아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참유다인 입니다. (롬 9:32)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느냐? 이는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이 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에 넘어진 것이라. / 예수님꼐서 안식일을 계속 지키라는것이 아니라 마지막때에도 안식일이 존재함을 알려주신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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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은 기존 교회를 어떡하던지 찢고 볼려는 님같은 이단들의 미움과 시기질투의 반감으로 이렇게 비겁한 댓글도 다는겁니다. 인격되시는 주님을 아는 사람들은 반감이 없습니다. 모든 날들이 주의 날이고 또 특히 날을 정하여 예배를 드림을 귀하게 여겨야 함은 물론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