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야구 말고 다른 스포츠는 거의 안 봅니다.
축구는 4년에 한번 월드컵 본선만 보고 (그것도 새벽에 하면 안 보는)
농구 배구도 런닝머신 걸으면서 채널 여기저기 돌려보다 가끔 멈추면 보는 정도지
신경 써서 본방사수 하거나 누구를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전에는 농구도 좋아했었습니다
고려대학교 팬이었거든요
전희철 현주엽 양희승 김병철 신기성 그 시절에 말입니다.
고딩시절 전후로 몇년간 농구대잔치에 미쳐(?)살았습니다 (그때 농구가 좀 핫했으니까)
봄~가을엔 야구보고, 겨울엔 농구보고 그러면 서로 겹치지도 않았고 참 좋았죠
그런데 프로농구 시작하고 조금씩 흥미를 잃었습니다.
전희철 김병철이 같이 뛰는 동양을 응원하기는 했으나
현주엽 양희승 신기성이 다른팀에서 뛰는 게 낯설었고
이상하게 프로농구는 선수가 팀을 자주 옮기더라고요 (검증할 수 있는 팩트는 아니고 그냥 제 느낌입니다)
프로야구만 보던 저한테는 그게 좀 충격(?) 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수가 팀을 옮기는 건 그냥 '이적'이고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때는 <팀이 선수를 내다 버린다> 또는 <선수가 팀을 배신한다>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정민철 한용덕 송진우 장종훈이 해태나 롯데로 간다든가
선동열 염종석 이만수 이런 사람이 이글스로 와서 뛰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으니까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으면, 기량이 다해 은퇴하거나 야구를 못하는게 아니면 그냥 쭉 우리팀에 있는 것
그게 제가 알던, 그리고 좋아하던 문화였거든요
제가 야구를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내 응원팀 스타들이 계속 내 응원팀 소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사례는 있지만 말입니다)
이상목이 롯데로 갔을 때 서운함과 어색함이 컸고
이범호가 KIA로 갔을 때 서운함+어색함+약간의 분노까지 있었는데
응원팀 팬으로서 느낄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죠
그러나 저는 이글스를 응원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게 더 어색했을 수 있고
올드 아재팬이기 때문에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트레이드 소식에 '그러면 나는 유니폼 벗겠다!'하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고
저는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이며
그 와중에도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롱런'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팀을 응원했으니까요.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김현수의 이적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화정근우+이용규 / 두산장원준 / NC박석민 / KIA최형우 / 삼성강민호 / 롯데민병헌 / LG김현수
이런 이름들을 보면서 확실히 그때와는 달라진 공기를 느낍니다
이범호도 다른 팀으로 갔고
다른 선수들도 우리 팀으로 왔으며
또 다른 (그러니까 다른팀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들의 영입을 바라거나, 이적 소식을 듣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으니까요.
최근 강민호나 김현수의 이적을 보면서
<아무개는 무조건 OO팀에서 은퇴할 것 같아>라는 말이 이제는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김태균이나 박용택 이대호 같은 선수들은 <당연히> 팀을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적 시장에서 <당연히>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메이저리그에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시차 다른 남의 나라 야구여서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수들 이적이 너무 많은 것 같고, 그게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아서인 이유도 있는데
야구판이 커지고 비즈니스인 마인드가 많이 생겨날 수록
야구판에 유입되는 '돈'의 양이 많아질수록
주력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는 일은 더욱 많이 일어나죠.
그렇다면 KBO도 앞으로 S급 또는 A급 선수들의 <원클럽맨> 숫자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팀 감독이 이글스 유니폼을 선수로 17년, 코치로 10년 입었고
타격코치가 선수로 19년, 코치로 9년 입었으며
투수코치는 선수로 21년, 코치로 5년 입었죠
후배들(특히 야구를 잘하는 후배들)도 팀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다른팀 안 가고 끝까지 우리 유니폼 입고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저도 동감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 빼고는 바꾸는걸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유독 야구만큼은 한팀만 응원하게 되고 어느팀 선수가 어디로 옮기고 하는걸 어색해 하는 편입니다.그러다 보니 박찬호도 LA박찬호만 생각나고 추신수도 텍사스가 아닌 클리브랜드 추신수로 더 각인되어 가네요
굉장히 동감됩니다... 우리 선수들... 오랫동안 아니 은퇴를 여기서 끝까지 같이 갔으면 합니다.
1번선발님 저랑 같은 세대에 ~ 스포츠 취향도 비슷하네요 ㅎㅎ 저는 여자인데 ㅎㅎ 회사에서 메신저명이 4번타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많은 부분에 공감하는 한사람입니다.
야구에도 일종에 서구화(?)가 점점 많아지고 있죠. 어디에서나 입니다만.
그래도 나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장종훈이, 정민철이, 송진우가 같은 느낌으로 야구했으니까요.
김태균이나 류현진은 어떤 마무리가 될까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이승엽처럼? 아님 강민호처럼?
장단은 있겠지만 이런 게 또 한화만의 특색인거 같아요. 저도 한화팬25년을 넘어서니 어느새 적응해 버린듯 하네요. 근데 원맨팀이 아니라 원팀맨을 쓰시려던 거 아닌지여ㅋ
네 원클럽맨 의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