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에서는 궁녀는 끗발없는 양반 또는 평민의 여식으로써 인물이
특출한 처녀를 지방관가에서 일찌감치 찜하여 놓고 나이가 들면 징집을 하였다
궁녀로 가는 것보다 조혼을 하였고 또는 조,, 아이는 장래 우리 집 며느리로
맞아들인다는 민며느리 풍조가 만연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빽 줄 없는 여식들만
궁녀로 갔다 말이 쉬워 궁녀이지 처음 궁궐에 들어가면 노가다 중에 상 노가다
즉 무수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 총각들은 이쁘장한 처녀들만 다 잡아갔으니
자연히 못생긴 여자를 마누라로 데리고 살아야 될 기구한 운명 이였다 그러니
임금을 불만의 대상으로 삼았고 밤마다 대궐 벼락빡에는 항시 허연 쌀뜨물로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그건 총각들이 궁녀로 잡혀간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마지막 증표였다고 한다.
이 궁녀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성에 눈을 뜨고 사방에 남자가 있어도
씨 없는 수박 뿐 이였으니 오직 건장한 남자라곤 임금 뿐 이였다
궁녀의소원은 임금에게 성은을 입는 것인데 성은을 입으면 그날부터
팔자가 확 틀려지기 때문이다 일을 안 하여도 되고 몸종 들어오지 또 아첨꾼들이
적당한 뇌물을 주지 하루아침에 상팔자가 되었다
그 상팔자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얼굴 가꾸기 몸매 만들기를 죽기 아니면 까물어 치기로 하였다
그러나 궁녀들은 하루 두끼의 식사를 배정받는데 그것도 온갖 잡곡밥에
씨라국이 전부였는데 그것이 소화는 오죽이나 잘될까
밥만 먹고 나면 대궐 여기서 저기서 뽕 거리는 소리
대전에 상궁들도 임금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가스를 품어대니
임금체면에 말은 못하고 죽을 지경 이였다,,, 얼년이 방귀를 끼었나 이리 나왓
이런 말은 못하고 또 방귀를 끼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궁녀들은 안심 놓고
품어대었다 방귀 중에 으뜸방귀는 참다가 참다가 은근슬쩍 소리 소문 없이 나오는 것인데
그 냄새란 송장 썩은 냄새와 비유된다고 실록에는 전하고 있다
옛날 궁궐에는 환기시설이 거진 없었으니 그 방에 있는 왕후나 임금들은
궁녀의 방귀를 탓 할 수는 없고 죽을 고통 이였다고 하는데
이 방귀에 대하여 처음으로 거론을 한사람은 1461년 성종 때 공혜왕후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방귀사건이 의전회의에까지 들어가니
그간 곤역을 치루었던 방귀가 공식 석상에서 대두가 되었는데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머리회전,, 그건 총알보다 빨랐다
대궐의 모든 방은 창문을 달도록 하고
왕족 앞에서 방귀 냄새가 날 경우 그 자리에 있던 궁녀 전체를 곤장 3대로써
죄를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간 참았던 대신들은 만장일치로 통과
법으로 가스를 분출 못하도록 환경관리보존법 중 대기오염 죄를 선포하였다
대신들은 한수 더 떠서 양반들 앞에도
방귀를 터러 트리지 못하게 하고,, 그 때는 아직 솜이 귀하던 시절이라
솜을 가스분출기 앞에 탁 ,,,가로막고 혹시 가스가 분출되는 사고가 있어도
약간의 시간적여유가 있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서 엉덩이를 두 여번 툭툭 두둘여 주면
환경보존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금이나 왕후 또는 세자 옆에 시중을 들고 있는 내관에게도 이법을
준수하도록 하였는데 내관은 그래도 여유가 있어 두툼한 솜을 팬티에 깔았으니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얻었는데 그것도 문제가 생겼다
첫댓글 방구도 너무끼면 주위사람들 힘들어요
솜보다는 알타리무가 더낞겠네요 ㅎ
무를주세요 ㅎ
목수님 을미년 복많이 받으시고 사업 번창하세요.
@君者 감사합니다 요즘 군자님이 글많이 올려주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