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으나 자기의 겸손함을 드러내보이기 위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겸양이 아니라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마누엘을 선포하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도 선포하였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을 당신의 때에 따라 일하십니다.
하여 이 죄인도 주님 앞에 엎드려 주의 뜻을 이루기 원하오니 이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우매하고 우둔하여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의 인생을 주님의 것으로 바꾸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덮으사 내 안에서 예수의 향기가 풍겨나기를 원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애 1:18-22
제목 :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습니다.
18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그들의 양식을 구하다가 성 가운데에서 기절하였도다.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아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22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 나의 묵상
여호와는 의로우시나 내가 그의 말씀에 불순종하였다.
온 백성들이여 내 고통을 듣고 보라.
내 처녀들과 남자들이 사로잡혀 끌려가 버렸다(18절).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등을 돌려버렸다.
나의 제사장과 장로들은 성안에서 죽었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유지하려고 먹을 것을 찾다가 그러하였다(19절).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게 두려움이 있고 내 속이 고통 앞에서 작열하는 것을.
내가 너무 오만했기 때문에 내 마음은 몸을 비튼다.
거기에서 죽음의 집에서 칼이 아이들을 강탈한다(20절).
사람들이 나의 신음소리를 들었으나 아무도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나의 고통을 들으며 주께서 내게 행하신 이 일을 기뻐하였다.
그렇지만 이 일은 그들에게도 임할 것이다(21절).
그들의 모든 악함이 당신께 이르렀나이다.
당신이 내 모든 죄 때문에 내게 행하신 대로 그들에게도 그렇게 행하소서.
내 탄식은 깊고 내 마음은 병들었나이다(22절).
심판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다.
이 모든 것은 말씀에 불순종한 나의 죄악으로 인함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제사장과 지도자들은 먹을 것을 찾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아이들 역시 강탈당한다.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시인은 온 몸으로 고통을 당하며 마음이 뒤틀린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백성들을 보고 기뻐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기의 죄악으로 인하여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시인의 탄식은 깊고, 그의 마음은 병들어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실로 가혹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으며 그 공의는 반드시 집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른 것은 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반드시 임한다.
한 나라 곧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가 이처럼 가혹하다면 모든 인류에 대한 진노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진노의 잔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조차,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피 같은 땀을 흘리면서 간구하셨다.
그러나 아들은 아셨다.
자기 자신만이 그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의 고백이 위대하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쏟아졌다.
우리 죄인들 아니 내가 응당 받아야 할 진노의 잔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에게 쏟으신 것이다.
그 아들의 마음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뒤틀리고 몸은 찢기셨다.
이렇게 아들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은 진노의 잔을 받으셨다.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고 끔찍한 죽음의 잔을 마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진노의 잔을 쏟으신 것은 우리 자신 아니 나 자신 스스로는 그 죄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죄로 얼룩지고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의인으로 삼기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아들을 죄인 중에 괴수로 삼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죄인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노하시며 심판하신다.
죄를 지었을지라도 자기의 죄를 알고 하나님의 공의를 아는 자, 그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반드시 구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는 진멸이 아니라 공의의 심판을 통해서 광명에 이르게 하는 은혜이다.
이는 아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받은 심판을 믿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으로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죄에 젖어 살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열심히 해서 어떤 소정의 결과를 내면 그 결과에 고무되고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거기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은 아예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영적 수렁에 빠져갈 뿐이었다.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열심을 다하며 사역의 성과도 있는데 그 열매를 따먹으면 내 심령은 더 곤고해지고 힘들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큰 집회를 하고 나면 심령의 공허함이 더 할 뿐이었다.
나는 복음을 몰랐으니 그런 현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를 두고 친하게 지내는 동생 목사와 나누기도 했는데 그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동일한 경험을 들은 나는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다들 그렇구나 하고 거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환난에 빠지고 말았다.
그 일은 결국 나의 모든 삶을 뒤바꾸어 놓는 일이 되었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무렵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 복음을 들은 결과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알 수 없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그 껍질이 벗겨지고 빛으로 다가온 것이다.
내가 사역의 열매를 낼 때마다 내가 알 수 없는 공허와 곤고함이 밀려온 것은 바로 자기주장의지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죄였음도 알게 되자 나는 무릎을 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여 열매를 거둘 때에 나의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고백이다.
예전에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으면 그 돈은 나의 수고로 받은 것이기에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저 교회법이 그러니까 하면서 드릴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셨음을 믿으니까, 아니 믿어지니까 내 입술의 고백만 아니라 돈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늘도 나를 나 되게 하신 주님 앞에 그저 겸손함으로 나아간다.
내가 당했던 환난과 곤고까지도 주님의 선한 배려였음을 알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할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도 모르면서 그저 기독교 법에 묶여 살았던 자가 여기 있습니다.
구약을 넘어 신약 그것도 종말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구약의 법을 지켜 나의 의를 높이려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그 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의 생각과 의지대로 자행자지한 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나를 믿는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내 안에 나를 하나님으로 삼고 내가 하나님 되어 살았던 패역한 자입니다.
주님, 오늘 이 시간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 박혀 죽고 오직 주님만 나의 전부가 되어 예수를 주로 믿는 참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진정한 행함은 그 믿음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더 새기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이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