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늘 / 고영민
오랜만에 만나 함께 점심을 먹고
체한 듯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여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이고
도산공원을 걸었다
그해 오늘 저녁 그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다
그해 오늘
나는 또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손에 들고 도산공원을 걷는다
팔을 벌려 오늘의 냄새를 껴안는다
납골당에 다녀온 조카가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1주기야, 크고 뚱뚱한 엄마가
어떻게 저 작은 항아리 속에 들어간 걸까 ㅎ
동의 없이 무언가를 빼앗긴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해 오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의 마지막 개체인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가 죽었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수영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그녀를 만난다, 그해 오늘
그 거리에서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의
일이지만
- 『미네르바』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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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민 시인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 『봄의 정치』 『햇빛 두 개 더』 등.
지리산문학상(2012), 박재삼문학상(2016), 천상병시문학상(2020)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