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야권 일각에선 “제2의 이정희가 몰락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통진당 차세대 ‘유망주’로서, “통진당이 이정희 대표 이후를 위해 키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던 김재연(34) 전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시비 끝에 당선,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국회에 당당히 입성했던 김재연 전 의원은 이번 해산 결정으로 당분간 정치적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2년 남짓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부정 경선’ ‘종북(從北) 시비’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킨 그는 어떤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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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연 전 의원 /뉴시스
보라색 미니스커트 입고 국회 입성한 ‘제2의 이정희’…”몰염치” vs. “미인”2012년 5월 30일. 당시 32세의 김재연 전 의원은 무릎 위로 올라오는 보라색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으로 국회에 걸어 들어와 19대 국회 첫 일정을 시작했다. 보라색은 통진당의 상징색이다. 그때까지도 그에 대한 비례대표 부정 경선 시비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보라 미니스커트’는 적지 않은 논란을 나았다.
여권에선 “뻔뻔하다” “염치없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인터넷과 케이블방송 패션 프로 등에선 “미인이다” “패셔니스타”(fashionista)란 반응도 나왔다.
국회 입성 후 그에겐 ‘제2의 이정희’라는 수식어가 빈번히 따라붙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서울대 총여학생회장, 김재연 전 의원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39세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32세 나이에 통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둘 다 ‘비례대표 3번’이었다.
대구 출생인 김재연 전 의원은 대일외고를 졸업, 199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학과에 입학했다. 2001년 매향리사격장 폐쇄운동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이후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하다가, 2004년 11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기습 시위를 주도해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주사파(主思派)가 주축이 된 통진당 구(舊)당권파 인사들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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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5월 30일 국회에 첫 출근한 김재연 전 의원이 보좌진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복도를 지나고 있다.
2006년부터는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의 부대변인, 학생위원회 조직국장 등을 맡았다. 18대 총선에서 “최대한 많은 곳에 지역구 의원 후보를 내자”는 당의 방침에 따라 서울 강남을에 출마, 낙선했다.
경선 부정으로 당선돼 통진당 해산으로 물러난 34세 김재연김재연은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 청년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통진당은 자체 모집한 10만명의 20·30세대 선거인단이 온라인 투표를 통해 청년비례대표 후보 1명을 선출하도록 했는데, 당시 거의 무명(無名)이었던 김재연은 제주해군기지 반대로 얼굴이 알려진 ‘고대녀’ 김지윤씨를 가볍게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와 경쟁했던 청년비례대표 후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리 투표 의혹이 있다”, “경선 투표 첫날 김재연 후보를 찍으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후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에 대한 중복 투표와 대리 투표 의혹 등 부정 경선에 대한 내부 증언이 계속 터져나오자 통진당 지도부는 그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수 차례 비례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진보·좌파 인사로 분류되는 공지영·진중권씨도 “한숨이 나온다”며 김 전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때마다 김재연·이석기 전 의원은 “소명 기회가 충분치 않다” “우리가 물러나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 등이 주축이 된 구당권파와 진보신당·국민참여당 출신 등으로 구성된 신당권파의 갈등이 격화됐고,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김재연·이석기 등이 소속된 구당권파는 통진당을 ‘접수’했고, 신당권파 인사들은 그 해 10월 탈당해 지금의 ‘진보정의당’을 만들었다.
이석기와 함께 ‘경기동부 남매’ ‘從北 남매’로 불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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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회의를 위해 국회 회의장에 들어서는 김재연 전 의원과 이석기 전 의원(맨 뒤쪽)
김재연 전 의원은 국회 입성 후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종북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그는 우스갯소리로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경기동부 남매’, ‘종북 자매’로 불리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당선 직후인 2012년 6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달라”를 질문에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이라며 “북한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연평해전 도발들이 있었는데, 평화를 위해 북한이 공격을 해오더라도 참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불을 놓으면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했다. “친북인사냐”란 질문에는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한편, 김 전 의원은 지난 19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독재정권이 저의 의원직은 빼앗아가도, (제) 가슴속 진보정치의 꿈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의원은 내년 4월 재·보선이나 2016년 총선에 출마해 정치적 재기(再起)를 노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