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비닐 봉투
최용규
공원 안은 이미 품바 타령의 구성진 가락에 흠뻑 젖어 있는 듯싶다. 지역 축제의 본 행사장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한 네 박자 품바 리듬이 축제의 떠들썩함을 즐기려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여느 때와는 다르게 바꾸어 놓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의 얼굴에 흥겨운 미소가 번지고 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어깨와 팔을 으쓱거리며 잰걸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들이 거쳐 가야 할 길목은 시골 장터를 옮겨 놓은 듯 했다. 시골의 오일장 풍경답게 각종 먹을거리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장터국수, 순대 국밥, 빈대떡과 막걸리, 만두와 찐빵, 떡볶이 등의 먹을거리 앞에는 간단히 점심을 때우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집에서 조금은 이른 시간에 요기를 하고 나온 탓도 있어서 일까. 나는 이런 저런 먹을거리들이 풍기는 냄새에 끌렸다. 그 가운데 도너츠 냄새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나를 과거의 한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운동회가 열리던 날, 교문 앞에 늘어선 먹을거리 중 유독 이 도너츠가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 내 눈앞에서 막 기름 목욕을 끝내고 나와 통통한 몸매를 뽐내는 저 도너츠에는 삶 가운데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 있고, 그 유혹이 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닫게 해준 사연이 있다.
운동회의 오전 게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도시락을 가지고 오셔야 할 어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점심 도시락을 마중할 요량으로 교문 앞으로 나갔는데, 그 곳엔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 종이 상자에 가득 담긴 도너츠에 내 시선이 꽂혔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엄청 맛있는 먹을거리임을 알아챘다. 그것이 너무 먹고 싶었기에 가진 돈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참도 없이, 나는 그 도너츠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내 손은 장사꾼 아저씨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히고 말았다.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주위에선 어린애가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랬겠냐며, 용서해주라는 인정어린 말도 들렸다. 그러나 장사꾼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며 마냥 울고 있는 나를 기어코 담임선생님 앞으로 데리고 갔다. 상황을 파악한 선생님이 대신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나는 이 날 본능과 규범의 갈등을 죄에는 벌이 따른다는 사실을 용서는 받았어도 마음속에 상처는 남는다는 것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내게 한 가지 집착이 생겼다. 용돈이 생기면 도너츠를 사먹는 습관이다. 기름에 튀긴 도너츠가 별로 좋은 식품이 아님을 알게 된 이후에도 도너츠에 대한 나의 탐식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사연이 깃들어있는 도너츠가 오랜만에 축제의 분위기에 빠지고 싶은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일곱 개를 한 묶음으로 파는 도너츠를 삼천 원을 주고 샀다. 그 자리에서 나 하나 아내도 하나 합해서 두 개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내 손엔 나머지 도너츠를 담은 검정색 비닐 봉투가 들려졌다. 만일 이 봉투가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비닐이었다면 도너츠 다섯 개를 마음 편히 들고 다닐 수 있을까?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정색 비닐 봉투가 이때만은 무척 고마웠다. 더구나 이 검정색 봉투는 어린 시절의 내가 이 도너츠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 하나를 만들었고 그 후 오랫동안 도너츠에 대한 집착을 했다는 것 까지도 감추어 주고 있지 않은가.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무대 앞자리는 이미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인 관객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우리 내외는 뒤편으로 비집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대 위엔 젊은 여성 사회자가 막간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퀴즈를 던지고 있었다. 상품은 음성군의 특산품인 고추였다. 정답을 맞히면 고춧가루 한 봉지를 준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남자, 열 두자를 다섯 자로 줄이면 뭐죠?"
할머니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는데, 정답이 나오지 않자 답을 알려준다. '서있는 남자'란다. 다음엔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여자, 열 두자를 다섯 자로 줄이면 뭐예요? 저기 할아버지 맞춰보세요." 역시 이번에도 사회자가 정답을 알려준다. '속 좁은 여자'란다. 부부 사이에 구름이 일고 소낙비가 내리던 일이 이젠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나와 아내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꺼져버린 생리적 욕구를 아쉬워하며 실소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품바축제의 객석에서 주워들은 우스갯말을 얼른 비닐 봉투 안에 밀어 넣었다. 이젠 다시 살아나기 힘든 욕망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쓰디씀을 그나마 달래줄 수 있는 달콤함이 그 안에 있지 않은가.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상상력에 공감의 미소를 짓게 된다.
드디어 기다렸던 품바 축제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음성군 금왕읍에 위치한 사회 복지 시설인 '꽃동네'를 일으킨 오웅진 신부님으로 부터 꽃동네가 세워지게 된 내력과 꽃동네의 정신에 대한 소개 말씀이 있었다. 자기 몸도 성치 못한 한 걸인이 빌어먹을 힘조차 없어 누워 지내는 다른 걸인을 보살피고 있었다. 오신부는 그 걸인에게서 '작은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무의탁 노인과 병자와 걸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준비된 쉼터가 1980년대에 세워졌다. 그로부터 30년 세월을 지난 오늘에 이르러 꽃동네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난 사회복지 요양원이 되었다는 취지의 소개 말씀을 들었다.
오 신부님의 인사말에 뒤이어 꽃동네 가족들의 춤과 노래 공연이 있었고 수도자들의 연극 공연도 있었다. 꽃동네의 사랑을 알리는 연극의 막이 내려진 후, 공연을 마친 수도자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꽃동네를 위한 후원과 봉사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자를 나누어 주었다. 이미 이십년이 넘도록 후원을 해온 터이지만, 얼마 안 되는 후원금이 아니라 시간을 쪼개고 몸을 내어주는 봉사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봉사에 대해서는 마음 뿐 아직 실천의 용기를 내지 못하는 우리 내외는 책자를 선뜻 펴보지 못한 채 검정 비닐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봉투 안에서 먹다 남은 도너츠와 잃은 것을 보상받기에 안성맞춤인 우스갯말들이 꽃동네 책자를 위해 자리를 좁혔다. 만일 이들이 말을 하는 존재라면 어떤 말들을 주고받았을까.
검정색 봉투 안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기억과 젊은 날의 사랑과 일에 쏟아 부었던 열정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노년의 문턱에서 사랑 실천을 두고 갈등하는 마음이 서로를 어떻게 감싸 안을 수 있을 런지.
사월 중순답지 않게 무더웠던 토요일 오후의 품바 축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서는 많은 사람들의 손에도 검정색 비닐 봉투 하나가 들려져있었다. 그들을 싣고 돌아서는 승용차들은 저마다의 삶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들의 지나온 삶,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할 삶의 여정에서 들고 가야 할 검정색 비닐 봉투 하나에 담긴 상처와 미련, 그리고 여전히 미래를 위해 품게 될 희망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나의 검정 비닐봉투에 담겨있는 것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내 삶의 일부이듯이 그들의 봉투 안에 든 그 모든 것들 역시 되돌아보면 소중하고, 사랑이 있기에 아름다운 삶의 일부임에 다름없을 것이리라.
첫댓글 살면서 검정색 비닐봉투에 많은 삶의 사연을 갖이고 다니지요. 투명한 비닐봉투도 필요하지만 검정색이라 편리하지요. 맵씨 있고, 삶의 향기가 풍기는 글 잘 읽었습니다.
최용규교수님. 말씀은 많이 들어왔지만 정식으로 인사는 못드렸지요. 그러나 이미 존경하고 있는 교수님이십니다. 검정색 비닐봉투 참 애환이 서린 글이십니다. 도넛츠부분에서는 너무도 도넛츠가 먹고싶어 군침을 생켰습니다. 우리 세대에 사카린 넣어 만든 도넛츠가 왜그리 맛있었는지요. 지금은 그맛을 느낄수가 없는 고급 도넛츠가 즐비하지요. 그리고 애환이 깃들인 사연들을 비닐봉투에 이것 저것 담으시는 모습에서 교수님의 소박하시고 박식하신 그리고 인간적인 면을 다시 느끼며 탐독하였습니다. 좋은글 읽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꼭 인사를 꼭 드리겠습니다.
좋은글에 머물다 갑니다. 마음의 키가 한자나 커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나는 이 날 본능과 규범의 갈등을 죄에는 벌이 따른다는 사실을 용서는 받았어도 마음속에 상처는 남는다는 것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내게 한 가지 집착이 생겼다. ......이미 꺼져버린 생리적 욕구를 아쉬워하며 실소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품바축제의 객석에서 주워들은 우스갯말을 얼른 비닐 봉투 안에 밀어 넣었다. 이젠 다시 살아나기 힘든 욕망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쓰디씀을 그나마 달래줄 수 있는 달콤함이 그 안에 있지 않은가.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의 상상력에 공감의 미소를 짓게 된다..... "
" 토요일 오후의 품바 축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서는 많은 사람들의 손에도 검정색 비닐 봉투 하나가 들려져있었다. 그들을 싣고 돌아서는 승용차들은 저마다의 삶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들의 지나온 삶, 그리고 앞으로 걸어야할 삶의 여정에서 들고 가야 할 검정색 비닐 봉투 하나에 담긴 상처와 미련, 그리고 여전히 미래를 위해 품게 될 희망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들여다 볼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
소중하고 감동적인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교수님글 이렇게 읽을수 있어서 감사 합니다.
교수님 오랜만의 글 반갑습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교수님께 드립니다.
검정봉투의 사연을 읽으며 삶의 향기를 담아갑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있을법한 검정비닐봉투안이 궁금해지기도 하지요. 교수님 잘 보았습니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것에서도 훌륭한 글감을 찾으시는 교수님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가게에서 밥을 해먹고 반찬을 해야 하는 저는 검정비닐 봉지를 무척고맙게 여긴답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도 야채 노점상이있지만 싱싱하질 않고 값도 비싼편입니다. 좀 내려 가면 다문화가정인 필리핀 아줌마가 있는데 싱싱하고 쌉니다.교수님 말씀 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비닐 봉지라면 언감생신 엄두도 못 낼 일이지죠. 소재가 없어 글을 못쓴다는 분들께 일침을가하시는 검정색 비닐봉투를 잘 감상했습니다.
검정 봉투에서 얘기를 담고 꺼내시는 선생니의 글에 감동을 느낌니다. 좋은 글 써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월 중순답지 않게 무더웠던 토요일 오후의 품바 축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서는 많은 사람들의 손에도 검정색 비닐 봉투 하나가 들려져있었다./ 교수님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글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누구나 흰봉투, 검은 봉투 함께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물건에 따라 담기는 봉투가 달라지겠지요... 벌써 품바축제 한지도 한 참 지나간 것 같습니다. 없다던 장마도 온다고 하니 분명 여름인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기다려 집니다..
오늘은 웬지 수많은 글 제목중에서 교수님의 검정색 비닐봉투안을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호기심을 느끼고 조심스레 검정 비닐 봉투안을 둘러보니 예상과는 좀 달리 교수님의 해맑은 동심과 소박한 인간미와 인간적인 성숙함이 소중하게 담겨있네요! 교수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내일 수필반에서 오전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