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자락엔
새벽 일찍 일어나는 나는 출근 전 시간이 느긋하다. 헬스장이나 반송공원을 둘렀다가 아침밥 먹고 출근해도 여유 있을 정도다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종이신문이 배달되는 시각이 세 시 반인데 나는 대개 그 이전 일어난다. 신문이 오기 전이라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글쓰기 시간을 보내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현관 앞에 신문이 떨어지는 소기리가 들린다.
정적을 깨트리는 ‘톡’하는 소리다. 나는 종이신문이 배달된 그 소리가 들리면 잠시 뒤 현관 밖 신문을 집어와 펼쳐본다. 앞면 정치 기사보다 뒤로 가면서 문화 기사나 칼럼에 눈길이 먼저 간다. 때로는 환경이나 건강에 관한 기사도 관심거리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뉴스 검색이 가능해도 특유의 마법에 끌려 하루도 종이신문을 펼쳐보지 않은 날이 없어 신문이 나오지 않는 일요일은 허전하다.
종이신문을 펼쳐보고 나면 아침 다섯 시 무렵 공중파 방송에서 정시 뉴스가 시작되고 고향 소식이나 토속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재방송된다. 이어 여섯 시면 남녀 앵커가 나선 아침 뉴스가 진행된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도 나는 화면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기상 게스트가 전하는 날씨 소식은 관심 있게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생활에서 날씨 정보가 중요했다.
공중파 방송 기상 게스트는 날마다 옷을 바꿔 입고 등장한다. 어느 날은 원피스를 입었다가 어느 날은 투피스 차림이었다. 어떤 때는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언젠가는 지방의 꽃 축제 현장에서 날씨 소식을 전한 경우도 있었다. 기상 게스트의 의상과 그날의 날씨와는 무슨 함수 관계가 있는지는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상자료를 분석해 전달하는 기상 게스트였다.
사월 첫날 아침 뉴스였다. 기상 게스트가 전하는 일기예보 전에 기상 뉴스가 한 꼭지 먼저 있었다. 벚꽃 개화시기를 기록으로 남긴 이래 처음으로 여의도 벚꽃이 삼월 말에 활짝 피었다고 했다. 서울 도심에서 벚꽃만이 아니라 개나리나 목련꽃도 마찬가지란다. 일정 간격 차례를 두고 피어나던 봄꽃들이 순서 없이 한꺼번에 화들짝 피어난단다. 서울 벚꽃이 무려 보름을 앞당겨 피었다고 한다.
올봄에 남녘은 봄비가 잦은 편이다. 봄비가 잦으면 농촌에선 여름 농사가 순조롭다. 저수지마다 농업용수가 가득 채워지면 가뭄 걱정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잦은 봄비가 농사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겨울을 난 양파와 마늘이나 봄배추와 감자들은 생육환경이 좋아 수확량이 늘면 가력이 폭락할 수 있다. 비가 잦으면 노지에 심는 채소들은 파종이 쉽지 않아 농부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벚꽃이 만개한 진해에선 군항제가 시작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뜰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출근길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 벚꽃도 마찬가지다. 요 며칠 사이 한낮 기온이 이십 도를 웃돌았다. 비도 흡족하게 내려 대지를 촉촉이 적셔 초목이 자라기에 적합해졌다. 겨우내 말랐던 창원천은 생명수와 같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생태하천으로 거듭 태어난 가장자리엔 조팝꽃이 화사했다.
엊그제 삼월 마지막 주말은 경주 산내 골짝에서 보냈다. 친구가 주말이면 들려 일구는 농장을 찾아 이틀간 일손을 돕고 나왔다. 친구는 인터넷으로 여러 약초 모종을 마련해두고 나를 기다렸다. 둘은 천궁과 방풍나물을 심었다. 잔대와 영아자와 어수리도 심었다. 그곳은 봄이 늦게 오는 깊은 산골이라 밭둑 매화와 산수유가 그제야 피었다. 목련이나 벚꽃은 가지 끝 꽃눈이 망울만 도톰했다.
다시 내가 사는 창원으로 돌아와 보자. 시내에서 벚꽃이 만개하면 산자락엔 진달래가 수를 놓는다. 신록이 움트는 계절이면 나는 마음과 몸이 바빠진다. 다가오는 주말은 청명 한식이라 틈내어 고향을 다녀와야겠다. 받아 놓은 청첩이 있고 동창회가 열린다만 마음만 보내야겠다. 지금쯤 어느 산자락 어느 계곡에서는 홀잎이 피고, 두릅 순이 나오고, 취나 참나물이나 바디나물이 돋아날 텐데. 1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