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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한북정맥에서 분기된 한북기맥이 장흥 기산 넘는 말죽고개를 거쳐 앵무봉어깨 개명산 대고령마을과 고양동을 넘는 됫박고개를 지나 첫 번째 무명봉에서 기맥은 북으로 흘러 367봉 월롱산 지나 파주벌 비산비야를 누비다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그 끝을 바다에 담근다 여기서 됫박고개 지나 첫 번째 무명봉에서 그대로 좋은 길 따라 우암산(비호봉) 용미리와 고양동을 이어주는 혜음령 용미리공동묘지 명봉산 수용말고개 공릉 하니랜드 110봉 미군부대 속말고개 등원2리 통일로변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이름한다 |
ㅁ산행코스 : 1번국도(등원2리버스정류장)-봉일천사거리-무명봉(군시설)-헬기장-체육시설(사각쉼터)-만남의장소-소곡로(봉일천
고교앞 도로)-소곡로(봉일천 해성해링턴플래이스 아파트 정문)-1번국도(삼거리)-솔바위골길(동구마을, 봉일천4리버
스정류장,옛 미군부대 정문)-홍원연수원앞 2차선도로-파주삼릉-능고개(철책)-밭능선-포장도로-북두고개(삼거리)-
임도-공원묘지능선 시작-콘크리트도로-철탑-묘지능선-명봉산(△247.6)-어울림동산(6각정자)-서울시립공동묘지,용
미리제1묘지 능선-콘크리트도로-x191.9-x211.7-의주길-x269.8-철탑-올림픽CC위 무명봉-311번지방도로(혜음령)-
철탑-우암산(비호봉 △328.6)-철탑-철탑-임도삼거리-임도-부대장경고문-철탑-임도-단맥분기봉-용미리제2묘지-
78번지방도로(용미4리 제2묘지입구버스정류장)
[한북기맥비호단맥지도]
이 길은 먼저 신경수 선배님으로 부터 지도를 받아
전철3호선 불광역 3.6번출구 에서 31번 버스에 올라 버스는 박석고개 지나 구파발역을 경유하여 한북정맥이 지나는 삼송역 뒤
숫돌고개를 지나 고양군과 벽제승화원이 있는 대자사거리를 지난 1번국도의 통일로를 타고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사거리를 지
난 등원2리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버스를 타고 온 이 길이 눈에 익은 길들이라 이곳의 산줄기도 거의 다 되어 가는가 하는 생각해 보며 고산천에서 흘러 온 물이
곡릉천으로 합류되는 상상을 하며 봉일천사거리로 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봉일천사거리]
4차선도로의 조리사거리와 1번국도의 문산과 판문점으로 가는 도로와 파주시청가는 도로 옆 '통일의 길목파주'란 파주시청에서
세운 표석이 있는 4거리로 부터 출발한다. 파주시 조리읍의 산줄기를 타고 가게 된다.
등원2리의 버스정류장 가까이 옹벽으로 올라 봉일천사거리의 절벽 위 문인석의 묘 위의 산줄기로 부터 발걸음을 올려 보면 지난
사거리와 합수점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동문아파트와 센트빌아파트가 있는 봉일천리의 풍경이 먼저 들어오며 확트인 산길로 운동기구를 지나 사각묘 위의 산릉으로 밟
아 오른다.
[무명봉]의 군시설물들이 있는 작은봉우리의 교통호가 구불구불 나 있기도 하며 진지를 지나 내려서면 산책로 같은 너른길이
맞는다.
편의시설 긴의자도 있고 헬기장을 내려서면 편안 안부인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의 커다란 글씨가 눈에 띈다. '힘고르는 숲 0.25km, 만남의 장소 0.73km, 체력단련장 1.09km'의 이정철
주 등원리의 소재인 다랭이밭도 보이는 안부이다.
아파트가 보이는 그리 내려가는 길도 있고 사각쉼터가 있는 운동기구 시설물을 지나 봉일천초교가 바로 아래 위치해 있으며 조금
더 가면
만남의장소인 곳에 이르러 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안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곳이며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란
이정철주가 처음 보던 것과 거리만 틀린 뿐 같다.
너른길 따라 조금 더 가면 미군부대철책이 시작되는 산책로이서 그리 가보면 미군부대철책과 만나 갈 수 없기에 철책을 따라
내려서면 미군부대 축구장이 보이는 철책과 봉일천고등학교 담장을 만나 마루금을 이어갈 수 없다.
만남의장소까지 돌아 와 우측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이 길도 잠시 봉일천고등학교가 보이는 도로로 내려서게 되며 파주 봉일천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아파트 정문을 지나 소곡로를 나온다. 1번국도의 삼거리까지 와 1번국도를 가다 '솔바위골길'이란 내천을
끼고 솔바위골길의 마을길로 든다.
시골마을 집들이 그대로 있는 풍경처럼 느껴지는 미군부대 아래 조그만 동네의 빨간깃발을 단 암자도 있고 작은 구멍가게 있는 마
을이다.
[미군부대정문]인 봉일천4리 송암마을의 버스정류장이다. 이미 철수된 미군들은 없고 텅 비어있는 부대 안 축구장은 파주시에서
일요일만 개방된다고 하는 옛 미군부대이다.
정문이 열려 있어 그곳으로 갈 수 있으려나 망설이고 있으니 파주시 직원으로 보이는 두 분이 갈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정문도 닫혀
할 수 없이 천신암이라 쓰인 '솔바위골길'의 마을길을 지난다.
송촌토마즈란 아파트가 보이며 도로를 따라 잠시 가면 팔봉6교 앞
홍원연수원 앞 도로를 따라 잠시 가면
'삼릉파주'의 정문으로 자연스럽게 멈추게 된다.
[세계유산 조선왕릉 파주삼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
빼곡한 계수나무를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고 나무들의 팻말이 붙은 나무들과 인증샷하며 삼릉의 숲이 햇빛과 어울려 멋있는 경관을
연출한다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며 먼저 영릉으로 향했다. 영릉으로 가는 산책로가한적하고 아름답다는 안내도를 보며
[영릉]永陵은
추존 진종과 효순소황후의 능으로
진종소황제(1719-1728)는 제21대 영조와 정빈 이씨의 첫째 아들로 1725년(영조1)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728년(영조4) 1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장세자라 하였다. 1776년(영조 52)영조는 세손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 고, 정조가 즉위한 후 진종으로 추존되었다. 효순소황후(1715-1751)는 풍릉부원군 조문명의 딸로 1727년(영조 3)에 왕세자 빈으로 책봉되었고, 1751년(영조 27)에 세상을 떠 났다. 정조가 즉위한 후 효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진종과 효순왕후는 1908년(융희 2)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로 추존되었다. |
장자각 옆으로 있는 영릉의 비각은 두 채이며, 표석은 세 개다.
[공릉]恭陵은
조선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능으로
장순왕후(1445-1461)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첫째 딸로 1460년(세조 6)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원손(인성대 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 즉위 후 1470년(성종 1)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
[순릉]順陵은
조선 제9대 성종의 언비 공혜왕후의 능으로
공혜왕후(1456-1474)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로 1467년(세조 13) 자을산군(성종)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이 되었다. 성종 즉위 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474년(성종 5)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
★조선왕릉 분포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4기이며, 묘가 64기이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무덤 주
인의 신분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데, 능陵은 왕王과 왕비王妃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친
親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墓라고 한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
다.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의 그 유례를 찾기 힘들며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
다.
파주의 장릉, 파주삼릉(공릉, 순릉, 영릉)과 온릉, 고양의 서삼릉(효릉, 예릉, 희릉), 서오릉(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김포의 장릉, 포천의 광릉,
서울의 태릉과 강릉, 정릉, 의릉 동구릉(건원릉, 헌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 남양주의 사릉과 홍릉 유릉,
선릉과 정릉, 헌릉과 인릉, 여주의 영릉, 영월의 장릉, 화성의 융릉과 건릉 등으로
적어본다.
파주삼릉은 비운의 왕족들이 어린나이에 비운에 간 애틋함이 묻어 있는 역사와 왕실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한명회의 딸로
자매가 나란히 왕비가 되고, 요절해 버린 비운의 왕후인 장순왕후와 공혜왕후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떠난 안타까움이 묻힌
곳이라 하니 왠지 마음이 씁쓸해 진다.
갈참나무, 보리수나무, 병꽃나무, 작살나무, 밭배나무 들 중 서어나무의 표면이 더 울퉁불퉁한 것 같아 마음 따라 서 있다는 느낌
으로 다가온다.
[능고개]로 올라
관광지의 썰매장이 보이며
삼릉철책을 넘어 철책 따라 간다. 철책 안은 삼릉의 나무들이 쑥쑥 하늘로 올라 붙고 철책 바깥은 간혹 서민들의 묘가 가끔씩
있어 대조적이다.
삼릉철책과 헤어져 너른 임도로 나오며 밭을 가르는 마루금 위 개집 들이 줄을 서고 그 주인은 손님 맞듯 온 세상 지네들만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다행이 목줄 묶었으니 안심하여 그 앞을 지나 1차선도로로 나오고 도로 따라 성호인쇄와 해강석재가 있는 북두고개의 삼거리에
안착,
[북두고개]의 해강석재의 석물들 중 우리나라의 지도를 담아보고
임도 옆 산속 와불의 석물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길 위로 올라 보면 묘지가 가득한 산릉으로 부터 시작된다.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와 용미리의 산이 전부다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
묘지 위
쓰레기투입금지란 팻말이 붙은 묘지 위 산릉을 지나 콘크리트도로를 걷다보면 철탑과 철탑을 지나기도 하며
명봉산 아래 전부가 묘지다. 오늘도 망자는 또 하나의 무덤으로 나고 동진하며 무덤을 가르며 명봉산으로 오른다.
묘지 위 너른길 따라 잠시 오르면 명봉산의 정상!
[명봉산]정상
에 서면 군시설물의 2층초소가 차지하고 있다. 폐허가 된 시설물 앞 의자가 3개 마련되어 곡릉천이 흐르는 조리읍 내유동과
고양시 일산의 전경이 구름속에 묻혀 잘 보이지는 않는다. 가까이 1번국도의 통일로를 타고 왔던 버스길이 흐릿하게 보이고,
설명절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선지 왠지 설밥 내린 종이 연 하나 띄워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든고 저편 올라온 발자욱 따라
있는 산릉이 훤히 트인 그곳으로 날려보내고 싶다.
명봉산을 뒤로 하고
군시설물들이 이곳저곳 흔적이 남아 있는 산릉을 내려 또 묘지 위를 걷게 된다. 사각쉼터가 있는 '어울림동산'을 지나 포장도
로 위로 걷게 되며
반사경에 비치는 모두가 묘지다.
포장도로 위 서울시시립공원묘지 용미리제1묘지의 300구역과 200구역의 팻말이 붙은 길을 잠시 가다보면 도로는 내려가고
나그네는 너른길의 산속으로 든다.
'참전비, 대자산'으로 가는 코팅지가 붙은 산 위 x191.9봉의 무명봉을 지나 또 묘지 위를 간다.
무명봉 아래 가득한 무덤을 담고 '고양랠리'라 쓰인 표지기도 붙은 길로 '의주길'이란 길과 교차하기도 한다.
[의주길]은 왼쪽길로 이어져 가며 그길이 아니기에 나는 오름짓을 하여 산으로 든다. 이제는 묘지가 보이지 않는 산속인가 싶다.
육군9527부대장의 경고문 뒤 철조망을 건너 잠시 오르면 널따란 평지의 x269.6봉 닿고 폐타이어교통호와 빨간깃발의 군시설물이
바로 위에 펄럭인다. 경고문으로 되돌아 와
나무와 나무를 잇는 흰비닐천들이 끊어진 것들이 산길에 휘날린 산길을 내린 안부에 흰철판이 철조망에 붙어 있다. 참나무류의
낙엽들을 밟는 소리가 울림이 되어 까악~까악도 리듬을 탄다.
제9527부대장의 경고문에 붙은 철조망과 만나 '참전비'의 코팅지가 나무에 붙은 길로 간다. 74번철탑 아래를 지나 올림픽CC
가 보이는 무명봉우리에 서면 올림픽CC의 콜퍼들이 모습과 목소리가 들린다.
잡목들이 얼리설기 가린 산릉을 내려서면 혜음령의 봉덕사와 아파트와 주택가가 잠시 보이며
골프장으로 내려가 혜음령의 2차선도로로 내려선다. [혜음령]은 지방도
로로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서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넘는 고개로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란 커다란 현수막이 붙고 북한산도
조망된다.
군시설물 교통호가 있는 산릉의 오름짓을 하여 철탑을 지나 오르면 너른 산길로 트인 길이 열리며 긴의자 하나 쉼을 할 수 있는
산릉에 이른다.
밧줄달린 바위지대를 지나면
고양랠리의 표지기가 붙고 철탑을 지나면 너른임도를 따르게 된다.
[너른임도]
드디어 오늘의 단맥이름을 빌어 쓴 우암산(비호봉)의 정상에 다다른다.
[우암산, 비호봉] 飛虎峰정상석 전면엔 “비호봉 1982년 하소천 김천두 서”라 되어 있고
후면엔 “비호봉 錫名誌가 기술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설화를 간직한 앵무봉과 벽제관 古址의 중간 고봉인 이곳은 고래로 백수지장 비주천리의 비호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 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부대 전장병들은 초전필승의 전술 전기를 연마하여 비호같은 용맹으로 국토통일의 염원을 실현하고자 제26대 지휘관 이경희장군은 상사인 군단장 백운택장군의 고견과 장병들의 중지를 모아 부대명칭을 비호부대로 정하고 이 고봉을 비호봉으로 명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82. 9. 29 비호부대 장병 일동” |
우암산은 북한산과 마주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산정의 비호동 전설이 선명하지 않아 산행을 마치고 나서야 선배님의 종주기를 보고
내용을 알게 된다.
그 옆으로 [서울304 1990년 재설] 삼각점
철탑과 자연보호라 쓰인 대형 간판과 대형탱크의 철조망을 지나며 철탑을 또 지난다. 계명산의 모습이 시작되고 그곳으로 가듯
방향이 자꾸 그리 따라 간다.
[계명산의 모습]
형제봉을 오르던 군시설물이 있는 지능선이 조망되며 임도삼거리에 닿고 철조망이 붙은 임도 따라 간다. 육군3015부대장의 경고
문이 붙고 철탑을 지나며 너른임도로 가는 내 그림자 밟으며 간다.
[단맥분기점]의 표지기가 다닥붙은 분기점은 한북기맥 위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서측으로 방향을 틀어 광탄면 박달산으로 가고
동측으로 방향을 틀어 동진하면 개명산이며 북측의 앵무봉이며 꾀꼬리봉을 지나 한북정맥의 분기봉에 이른다.
됫박고개로 갈까 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용미리공동묘지로 내려가고자 너른임도를 버리고 길흔적을 찾아 경사를 내린다.
그러다 잡목들과 싸우다 내려오는 길과 만나
용미리제2공동묘지의 도로로 나오면 단맥분기점의 봉우리가 우뚝하다. 버스가 없어 용미4리 까지 걸어 나오면 그제사
버스정류장인 '용미4리제2묘지입구'의 삼거리에서 774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는 넘었던 혜음령을 지나 고양으로 가
불광역에서 내려 환승하여 귀가하게 되는 하루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
돌아보면 오늘 산행은
왕실무덤이 있는 파주삼릉과 용미리공동묘지을 걸으며 죽은 자가 머무는 聖의 공간과 산 자가 있는 속俗의 공간이 만나는 곳으로
그 공간적 시간에 있었다.
[끝]
첫댓글 어려운 산줄기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덕에 좀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