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안히 휴식을 만끽하고 있을 시각 동대문시장 상인들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9일 밤 동대문 도매시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누죤쇼핑몰에서 디자이너클럽, apM을 거쳐 혜양엘리시움, 아트프라자까지 이어지는 신흥 도매 블록과 에어리어식스, 광희시장을 거쳐 청평화시장까지 이어지는 도매시장은 화려한 네온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내부 전경은 다소 초라해 보인다. 손님맞이에 한창이어야 할 상인들도 왠지 어깨가 축 처진 느낌이다.
누죤쇼핑몰의 한 상인은 서두부터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꺼낸다.
“5월이고 금요일인데 장사가 너무 안돼요. 예전 같은면 물건이 모자랄 정도였을텐데 요즘은 통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어요.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간 문을 닫든지 해야지....”
지방에서 온 상인들도 비슷한 얘기다. 김포에서 소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동대문도 2주일에 한 번 정도 온다”며 “매스컴에서 경기가 안좋다는 말을 계속 하니까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느끼는 고통은 몇 배에 달한다”고 말한다.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상인들과 함께 대형 상가들도 점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혜양엘리시움의 양홍섭전무는 “상인들이 어려워지면서 상가를 운영하는 것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장사를 포기하는 상인들이 많아지면서 일명 ‘이빨빠진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빈점포가 늘어나도 이를 대체할 만한 방법이 없고 갈수록 이런 현상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타까워한다. 현재 동대문형 쇼핑몰의 공점포율은 10%선에 육박하고 있다. 일부 지방 점포는 30%를 넘어선 곳도 있다.
실제로 상가에 들어가보면 1∼2층 메인 층은 별다른 이상이 없지만 다른 층에는 군데군데 빈점포가 눈에 띄며 층이 올라갈수록 이런 점포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당수의 상가들은 빈점포가 늘어나자 임대료를 작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있으며 일부 매장은 오히려 임대료를 내려 상인들을 독려하고 있다.
한편 건너편 소매상가들이 밀집된 지역에는 낮 시간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10일 토요일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동대문 신화’라는 말까지 만들었던 밀리오레, 두타, 프레야타운 등 소매 상가 주변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장바구니를 옆에 낀 아주머니,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여성까지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두타의 한 상인은 “이곳을 지나 다니는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물건을 산 사람들은 의례 상가 이름이 새겨진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10분여 동안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이런 쇼핑백을 든 사람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프레야타운의 전우동과장은 “소매 쇼핑몰들이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행사할 때만 사람이 모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난관을 뚫고 나갈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동대문 커뮤니티 사이트 ‘동타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신용남사장은 “국내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동대문만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렵겠지만 동대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동대문의 생산 기반이 위축되고 있는 것을 감안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한편 동대문을 특화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베이직 아이템은 중국에서, 특화상품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또 동대문 디자이너를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동대문 상품이 중국제품보다 낫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브랜드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