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스님 영결식과 다비식을 보며-무념스님 페이스북 글
어제 법주사에서 명진스님 다비식을 끝내고 올라오는 차안에서 양감독님이 다들 한 마디씩 해보라고 해서 모두가 명진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길게 설명했다.
그런데 내 차례에 마이크를 받으니 난 뭐, 명진스님과 큰 인연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냥, 명진스님, 양감독, 도정스님, 나, 이렇게 명진스님 생일에 한 테이블에서 밥 한 끼 먹은 인연 정도...
그것도 인연이라면 겁 나 큰 인연이지만....
어제 영결식을 보면서 참으로 우스웠다.
평소에 명진스님을 좌파로 왕따시키고, 제적을 시키고 종단에서 쫒아내려고 그렇게 안간 힘을 쓰던 자들이 영결식에 와서 맨앞 VIP석에 앉고 추도사를 읊고 조사를 하며, 평소 큰 스님의 덕을 흠모했다느니 종단의 별이었다니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면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진스님이 법주사 문중이지만 법주사하고는 평소 소통하진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 법주사에서 다비식을 할 수 있냐고 하니까, 주지스님이 제적된 스님을 어떻게 절에서 다비식을 할 수 있냐고 거절했다고 한다.
아니, 명진스님이 재판에서 승소해가지고 조계종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승적복원이 이루어진 것인데, 뭔가 특별한 복원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가며 복원을 안 시켜줬다는 얘긴데, 그게 말인가 방군가.
강남 봉은사에서 영결식을 하게 된 것도 조계종이 처음에는 장례식을 종단차원에서 치르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추모의 글이 SNS에 올라오고 청와대에서 말이 나오면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한다고 하니까 봉은사 영결식장, 법주사 다비식이 결정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봉은사 주지는 선불당이라는 조그만 방에다 초라하게 빈소를 마련했다. 바로 옆 법왕루라는 큰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승스님은 법왕루에다 빈소를 마련했었다고 한다.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은 김민석, 정청래 등 거물 정치인들이 조문 오니까 급도 안 되는 게 가오잡이 하는 것이 또 우스워보인다.
나에게 오늘 큰 병이 든 같다.
중들이 우스워보이는 큰 병이....
나는 어제 아침 일찍 봉은사에 와서 오전 내내 빈소에서 상주노릇을 했다.
명진스님 상좌, 사제들 그 옆에 서서, 장삼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무슨 자격으로 상주노릇을 했냐고요?
명진스님이 운영한 '평화의 길' 회원자격으로 상주노릇을 했다.
사실, 명진스님의 상주는 상좌, 사제, 문중 식구들이 아니고, 평화의 길 맴버들이다. 그들이 명진스님과 함께 사회운동을 하고, 평화의 길을 함께 걷고, 세상의 아픔을 함께했다.
난 뭐, 정식 회원은 아니고 게스트로 몇 번 휴전선 길을 함께 걸은 적이 있을 뿐이지만.
상주노릇을 하면서 보니까 명진스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겠더라.
조문객이 어마무시하게 몰려왔다. 물론 그 중에 거물들도 가끔 끼어있었다.
명진스님이 사회에 끼친 영향이 이 정도 였던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나에게는 사실 사회적 약자이니, 파직 노동자들이니, 세월호 유가족이니, 그런 억울한 사람들 하소연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보듬어주고 격려해주는, 명진스님과 같은 성인들이나 할 법한 행위를 할 자신이나, 따뜻한 마음이나, 넓은 가슴이 없거든.
그러니 한 사람이 그렇게 세상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도울 김용옥 선생께서 평화의 길 방명록에 좋은 글을 남기시고 설명까지 친히 해주셨다. 선생은 추모시를 지어와 영결식에서 낭독해주셨다. 선생은 평소에도 전화로 명진스님과 자주 소통하신 분이다.
정청래 의원도 평화의 길 방명록에 좋은 글을 써주셨다. 김민석 대표는 떼거리로 몰려와 남의 동네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명진스님의 죽음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사람들은
"왜 스님이 그런 스포츠를 즐기냐고..."
여기에 대해 해명을 해야겠다.
내가 제주 남선사 도정스님 절에서 명진스님을 모시고 초파일 행사를 할 때, 그때 차를 마시면서 명진스님에게서 프리다이빙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들었거든.
명진스님이 프리다이빙을 하게 된 계기는 나이가 드니까 평소에 호흡에 문제 생겼다. 가끔 호흡곤란이 오고, 폐가 원활하게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느꼈다.
그래서 누군가가 프리다이빙이 폐를 건강하게 돌리는데 최고라고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프리다이빙은 물 속 깊이 내려가는 것이다.
물속에서 바다속 자연 생태계를 관람하러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숨을 참고 일직선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이다.
가장 오래 숨을 참고, 가장 깊이 내려가는 것이 장땡이다.
프로는 30m를 내려가고 명진스님은 20m가 최고라고 한다.
그런 얘기하니까 내가 인도네시아 바자우족은 오리발도 없이 수경만 차고, 바다속 60m까지 내려가서 15분 정도 물속에서 걸어다닌다는, 이런 얘기를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내려가면서 폐가 기압에 쪼그라들고 산소공급이 안 될 때, 폐가 살아남기 위해 죽었던 조직, 작은 세포들까지 활성화가 되면서 폐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뭐 그런 것이라고 한다.
명진스님은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스님은 그게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바다속으로 내려가면서 숨을 극한까지 참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어난다.
그래서 아니, 그렇게 평생을 선방 좌복에 앉아서 수행하는 것이
생사에 초탈하기 위해서인데, 생사에 여여하기 위해서인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난다고?
그래서 그 두려움을 관찰하고 두려움 없이 일어나는 마음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초연한 마음을 얻는다고.
숨을 극한으로 참을 때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즉시 숨을 쉬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마음이 명령을 내릴 때, 거기서 한 템포 더 체류하면서 초연한 마음을 얻었을 때 올라오면 거기서 그 한계를 넘어섬에서 초월적인 마음을 얻는다고.
이건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내가 미얀마에서 정진할 때, 스승이 항상 그렇게 말했던 거 같다.
가부좌를 하고 명상하다보면 어느 순간 다리에 통증이 일어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다리를 바꾸라고 피를 돌게 하라고, 마음이 명령을 내린다.
거기서 좀 더 참으면 또 다시 마음이 명령을 내린다.
너무 힘들다고 빨리 바꾸라고.
그럴때 고통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고통이 사라진다.
그래서 스승에게 그렇게 수행하면 되냐고 했더니 스승께서
"고통에 집중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참는 것도 수행이 아니다. 또 그렇다고 바로 다리를 바꾸는 것도 수행이 아니다. 고통이 일어날 때 그 고통을 바라보지 말고 그 반응하는 마음을 바라보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그리고 그 고통에 이런저런 마음들이 사라지고, 초연함이 일어난다. 그때는 다리를 바꿔도 된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닌데 왜 두려움이 일어난단 말인가!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生也一片雲起 死也一片雲滅)이라.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須進一步)라.
절벽에서 한 발짝 더 내디뎌야 비로소 참된 진리가 드러난다.
나의 뇌피셜이지만, 명진스님은
삶과 죽음의 외줄타기에서 일어나는 두려움과 공포, 그것을 초월했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무한한 평화, 초연함을 즐기시다가,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디디시다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너무 나간 것이 아니고, 거기서 아라한이 됐을 수도 있다.
마치 왁깔리처럼.
왁깔리 존자는 부처님 제자 중에서 신심제일이다.
부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에게 붓다께서 그를 깨우치게 하려고 "나의 모습을 봐서 뭐 하겠느냐.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본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시면서 다른 장소에서 안거를 보내라고 명령했다.
거기에 충격먹은 왁깔리는 중병이 들어 고통에 시달렸다.
자살을 결심한 그는 이시길리 산, 깔라실라(검은 바위)에 올랐다.
그리고 칼로 목을 그었다.
그 순간 일어나는 극심한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어날 때, 평소 늘 하던 통찰수행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 짧은 순간 통찰지가 일어나 고통과 공포에 초연해짐과 동시에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그는 아라한이 됨과 동시에 죽음을 통과했다.
아마도 명진스님에게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급박한 순간에 평소의 습관적 수행이, 평소에 닦았던 공부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항상 약자들 편에 서서 약자들을 보듬어주고 보살피거나, 아니면 선방에서 묵묵히 정진하셨던, 오직 두 가지만 하셨던,
다른 스님들은 돈과 권력 두 가지만 추구하는데, 당신은 세상을 살피거나 자신을 살피는 두 가지만 하셨던,
그분이 가셨다.
내가 세 번 눈물을 흘렸는데, 한 번은 노무현 노제를 시청앞 광장에서 할 때, 함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를 때 눈물이 났었다.
또 한 번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회찬의 영결식에서 눈물이 났었다.
그리고 명진스님 다비장에서 한 번, 그리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한 번, 함께 스님이 평소 부르셨다는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함께 부를 때 눈물이 났다.
나는 왜 타인의 죽음에 초연함이 없을까?
첫댓글 붓다께서 그를 깨우치게 하려고
나의 모습을 봐서 뭐 하겠느냐.>>> 법을 보는 자가 나를 본다.*
수좌 명진스님의 사자후를 기억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