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림의 떡'이라는 말로 사용된다. 노육은 후한(後漢) 말기의 중신(重臣) 노식(盧植)의 아들로, 학식이 높고 행실이 단정하여 명성이 높았다. 명제는 그를 중서랑(中書郞)이라는 요직에 임명하였다. 어느 날, 명제는 노육에게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 그대에게 달려 있다. 인재를 가려 천거할 때에는 그 명성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니, 명성이란 땅에 그린 그림과 같아서 먹을 수 없는 것이다(得其人與, 在盧生耳. 選擧莫取有名, 名如畵地作餠, 不可啖也)"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노육은 "명성만으로 이인(異人)을 얻을 수는 없지만, 상사(常士)는 얻을 수 있습니다. 상사는 가르침을 두려워하고 선함을 그리워하여 명성을 얻은 것이므로 이는 미워할 바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말로써 아뢰고 공으로써 공정하게 시험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시험 제도가 폐지되어 비방과 칭찬으로써 진퇴가 결정되므로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고, 허와 실을 가리기 어려운 형편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듣고 명제는 시험 제도를 다시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고사는 《삼국지(三國志)》의 〈노육전(盧毓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화병충기는 그림의 떡처럼 먹을 수 없어 아무런 쓸모가 없고 실속이 없는 일을 비유하거나, 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으로 배를 채우는 것처럼 허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중국 5대 미인 이야기
1) 춘추전국시대의 서시 (西施) 침어(浸魚) -서시(西施)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먹다 " 서시는 춘추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였다 서시 2) 한나라의 왕소군 (王昭君)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 "기러기가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다 " 한(漢)나라 왕소군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와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 집을 떠나가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생각이 나서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 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왕소군
3)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폐월(閉月) -초선(貂蟬)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다 " 초선은 삼국지의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한나라 대신 왕윤(王允) 의 양녀인데, 용모가 명월 같았을 뿐 아니라 노래와 춤에 능했다. 어느 날 저녁에 화원에서 달을 보고 있을 때에 구름 한 조각이 달을 가렸다. 왕윤이 말하기를 : "달도 내 딸에 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고 하였다. 이때부터 초선은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초선은 왕윤의 뜻을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시키며 동탁을 죽게 만든 후 애처롭게 목숨을 거둔다 초선
4) 당나라의 양귀비(楊貴妃)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림" 당대(唐代)의 미녀 양옥환(楊玉環)은 당명황(唐明皇)에게 간택되어져 입궁한 후로 하루 종일 우울했다. 어느 날 그녀가 화원에 가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는데 무의식중에 함수화(含羞花)를 건드렸다. 함수화는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당명황이 그녀의 '꽃을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움' 에 찬탄하고는 그녀를 '절대가인(絶對佳人)'이라고 칭했다 양귀비 5) 한나라의 조비연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장 날씬한 여인이 있다. '날으는 제비'라는 뜻으로 본 이름 조의주(趙宜主) 대신 조비연(趙飛燕)으로 불린 이름이다. 뛰어난 몸매에 가무(歌舞)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 그녀는 한나라의 성황제(漢成帝)의 총애를 받아 황후(趙皇后)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한번은 황제가 호수에서 선상연(船上宴)을 베풀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자 춤을 추던 비연이 휘청 물로 떨어지려하지 않는가. 황제가 급히 그녀의 한쪽 발목을 붙잡았는데 춤의 삼매경에 빠진 비연은 그 상태에서도 춤추기를 그치지 않아서 비연은 임금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飛燕作掌中舞)라는 고사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임금의 총애를 받은 비연은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세월은 겨우 10년, 황제가 죽자 비연은 탄핵의 대상이 되었고 평인으로 걸식을 하다가 자살로 그 생을 끝맺고 말았다. 정말 미인들은 가인박명하다는 것이 헛말은 아닌성 싶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인들은 구설수도 많고, 늘 남들이 볼 때는 즐거운 고민이지만, 본인들에게 죽을 고민을 하는 것 같아 꼭 미인이 행복한 것은 아닌성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인이 되고 싶은 것은 모든 여자들에게 공통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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