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떼께서 몸과 마음 위험이 없고 안전하시기를
반떼께서 마음에 괴로움이 없으시기를
반떼께서 몸에 괴로움이 없으시기를
반떼께서 몸과 마음 행복하시기를.._()_
23.12.12 자애명상 중의 강렬한 두려움에 대해 훈계를 부탁드렸고 조언해 주신대로 무언가 일어나면 원래의 주제로 돌아오는 것을 계속 연습하고 있습니다.
23.12.16 천주교와 관련된 견해에 대해 훈계를 부탁드렸고 조언해주신 부분을 잘 이해하였으며 말을 함에 있어서 현명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반떼께 훈계를 부탁드리는 글을 올립니다.
자애를 주제로 지내다가
자애로운 느낌에 의한 표정이 자꾸 드러나니
직장생활에서 이상하게 볼까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자애로운 느낌을 표정으로 드러나게
하지말고 그대로 평정하게 볼수 있는 연습을 하다가
자애로운 느낌 보다는 그냥 전체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엄청 평온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앉아있을때는 앉아 있는 몸전체와 호흡을 같이 전체적으로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다른데로 가면 그것을 알아차린 후 다시앉아있는 몸전체와 호흡을 알아차리거나 몸전체와 호흡과 일어난 대상을 전체적으로 다 같이 보려고 노력합니다. (호흡은 주로 복부, 심장근처, 때때로 코끝의 느낌도 같이 관찰합니다.)
걸을때는 걸어가는 몸전체와 호흡을 같이 관찰합니다.
무엇을 하든 몸전체와 호흡을 같이 관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도중
온몸을 솜털이나 극세사이불로 덮어 놓은듯한
아주 부드럽고 좋은 느낌(강렬하지 않고 차분한)
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직장생활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이런 상태를 경험하였고 어떤날은 8시간 이상 지속되기도 하였습니다.
몸전체와 호흡을 보려는 노력을 매분 지속하던 도중 하루는 약속이 있어 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타게되엇습니다. 그런데 그 번잡하고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그냥 온몸이 솜털로 덮힌것처럼 부드럽고
시끄럽고 불편한고 번잡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부드럽고 기분좋고 편안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으면서도
몸전체와 호흡을 지속하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이대로 선채로 잠들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냥 편안하고 즐겁고 소리가 들리거나
마음에 뭔가 일어나면 무상하다고 알아차리는 것도
잘되고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몸전체와 호흡을 같이 알아차리면 아무 이유없이 즐겁고 편안하고 차분한 경험을 하는 빈도가 늘고있습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혼자 있을 경우 그러한 평온이
자주 무너집니다. 특히 집에 혼자있을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것처럼 감각기관단속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천주교 신자 시절, 하루종일 성모송을
외웠고 한달내내 하루종일 기쁨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냇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의 느낌은 들뜬 기쁨 이었다면
자애를 주제로 지낼때는 안정적인 자애로움이었고
자애는 무적이라고 생각이 될정도였습니다.
자애는 무적이고 자애 한가지만 계속 붙들면
이대로 죽어도 문제가 없겠다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몸전체와 호흡을 같이 알아차리는 방법을 사용하니 온몸이 솜털이나 극세사 이불을 덮은 듯 부드럽고 차분하고아무일 없어도 즐거운 상태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집에 혼자있을 때는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감각기관단속이 잘 되지않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 누구에게도 검증 받지 못한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상태를 체험하는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 가짐으로 감각기관단속에 더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좌선은 점심시간 십분 이십분,틈날때 십분 이십분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좌선시의 주제는 자애로 수행하고있습니다. 조금만해도 행복감을 듬뿍느끼지만
아주 작은 흰점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도이고 니밋따는 얻지 못했습니다.
자애수행을 할 때에는 자애를 보낸후 그 대상이 정신과 물질일 뿐이다 라고 바로 숙고하여 행복감을
평정심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나거나 피곤하거나 인욕바라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자극. 이 세가지가 아니고서는 좌선이 왜 필요한가? 집중수행처에 가는게 왜 필요한가? 집중수행처에 가고자 하는 마음도 번뇌 아닌가? 지금 몸전체와 호흡을 알아차리고 무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은가? 왜 지금 못하면서 집중수행 가면 할수 있다 생각하는가? 그런 번뇌들도 종종 일어납니다.
직장이 천주교 재단인지라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십니다. 저는 별말을 하지 않는데 수녀님께서는 저의 종교체험에 대해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인가 다르게 보였나 봅니다.
업무중 상사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알아차림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제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나 번뇌가 딱히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상사께서 왜 벌을 서고 있냐 라고 하신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저 하던대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내가 바른길을 가고 있고
수행이 진전되는 체험을 하고 있다 라고 하는
망상 내지는 유신견을 강화하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다 틀렸고 처음부터 다시 해도 좋으니
부디 반떼께서 지적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이 길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