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14]2023년 9월, 테스형은 응답하라!
2004년 가을부터 쓰기 시작한 나의 ‘생활글 행진’에 ‘정치’를 주제나 소재로 쓴 글들은 거의 없다. 그동안 쓴 졸문들을 모아놓는다면, 장담컨대, 대문호 조정래 선생의 장편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을 듯하다. 이 말은 진짜로 자랑이 아니다. 태반이 우수마발牛溲馬勃(소의 오줌과 말의 똥)인 것을 쪽팔리게 생각하니, 소생의 별난 취미라고 좋게 봐주면 좋겠다.
아무튼, 한 천둥벌거숭이(한 친구는 ‘선불맞은 멧돼지’라고 했다)가 한국의 정치판에 졸지에 뛰어들더니, 1년 4개월째 나라를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결국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당당히 길거리를 행진했다. 어느 특정지역의 유권자 한 분은 ‘잘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그것도 말이라고 내뱉다니, 놀라도 너무 놀랐다. ‘생각의 차이’는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 아님을 명심하라. 아니 ‘나라를 팔아먹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한나라당’이라니, 이게 할 말인가? <이게 나라냐?>는 외침은 대체 언제까지 유효한 것인가? 오죽하면 문재인정부 5년 동안 한번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응원했는데, 요즘들어 그의 대책없는 무능이 미워도 너무 밉다. 이제는 좋아하는 유시민의 웃음조차 보기가 싫어졌으니. 급기야, 나의 친구가 '중증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약을 몽땅 타왔다. 죽이고 싶다는 것이다. 일본이 파견한 윤총독을 말이다. 어디 나의 친구뿐인가? 나부터도 가슴이 울렁울렁, 잠이 오지 않고 겨우 하루에 서너 시간 눈을 붙이는데, 이게 어디 하루이틀이어야지, 사람을 잡게 생겼다. 과민, 민감, 이런 단어로 우리를 위로하려 하지 마시라. 정치가 전부가 아니니 올인하지 말라고 엉너리치지 마시라.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겪는 ‘집단 우울중’. 솔직하게 말하라! 이게 누구의 잘못인가?
천주교 사제가 단호하게 말한다. “윤석열은 대통령 미달수준입니다. 낙제입니다. 윤석열과 그의 일당이 ‘인간적으로’ 자진하여 물러나도록 호소하고 기도 드립니다”. 그분의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천만에. 그가 인간적으로 내려올 인간이라면 당선직후 내려왔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뽑아줘서 영광이기는 하나 제가 맡을 일이 아닙니다. 벅차고 귀찮을 뿐입니다. 국민들의 심려를 끼쳐드려 죽고 싶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야당 대표의 단식 캐치프레이즈가 ‘국정쇄신’과 ‘내각 총사퇴’라고 한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하는 것은 좋으나, 이것 역시 어불성설語不成說, 어폐語弊가 있지 않은가? 아니, 내각을 다시 짠다고? 국정을 쇄신한다고? 그러면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형사사건에는 주범主犯과 공범共犯이 있지 않던가? 주범이 천상천하 ‘만인지상’이라며 그 자리에 버젓이 앉아있는데 무슨 쇄신, 무슨 개혁이 필요하고,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느 때는 공범이 더 미울 때도 있다. 엄벙한 총리의 꼬라지를 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막가파 장관들, 이제 갓 쉰인 '싸움닭' 법무장관은 또 어떤가? 장관長官들은 그래서 눈뜨고 못봐줄 장관壯觀이지 않은가. ‘서천의 소가 웃을 일’이고,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도 있다. 그게 빈말이던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도 있다. 대학시절 제 아비로부터 고무호스로 빠다를 맞았다더니, 그 분풀이를 조국이나 이재명에게 전력을 다해 퍼붓는구나. 허어- 이것 참! 큰일났다. 여펜네 치마폭’이라고 해서 정말로 미안하지만, 거기에 놀아놔 신세 조진 역대 임금과 대통령들이 지구상에 무릇 기하이던가?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할 것은 오직 단 하나! 퇴진이지만, 그것조차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니까 ‘탄핵’이다. 탄핵의 사유는 차고 넘친다. 줄줄이 그 죄목을 읊어댈 흥미조차 느끼지 않는다.
정치인은 청산靑山이 아니고 청사靑史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인 것을. 아니, 자기 말대로 '그까짓 임기 5년의 대통령이 뭐 대단한 자리라고 겁이 없'는가?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졌다’(이 말은 방송인 김미화가 미리 쓴 자찬 묘비명이다). <아큐정전>으로 중국의 문호 루쉰도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고 말했다. 에둘러 말하지 말자. 윤석열은 한 마리 ‘미친 개’가 아닌가? 광견이 대명천지에 폭주하고 있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잘못은 고스란히 국민의 책임이자 몫이니, 이만큼 감당했으면 족하지 아니한가? 이렇게라도 신새벽에 이런 글같지 않은, 같잖은 글이라도 쓰는 까닭은,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 친구처럼 될까 싶어서이다. 글로써 쌓인 스트레스가 풀어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나에 대한 ‘방탄防彈조치’임을 혜량해주시라.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가족이 있다.
이제사 솔직히 고백할 게 두 건 있다. 창피하고 쪽팔리는 이야기이다. 1998년인가? 신문사 시절의 이야기이다. 살인마 전두환이 장세동 등 졸병 10여명을 거느리고 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와 직선거리 불과 3-4m, 예고가 없었기에 얼마나 놀라고 떨었는지? 왜 떨었느냐고 물으시는가? 바보같이 주먹만 눈에 안띄게 얼마나 쥐었다폈다했는지, 어떻게든 그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작은 위해危害라도 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어야 했다. <꼬방동네>를 쓴 작가 이동철이 의원이 되어 국회 청문회장에서 “살인마”라고 외치며 그에게 의원 명패를 던졌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 좁은 방에는 신문사 회장, 사장, 편집국장, 문화부장, 문화담당기자가 경호진들 앞에 서 있었다. 만약에 내가 책을 던지는 등 일을 저질렀다면 나의 가정(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완죤히 ‘소영웅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직장도 잘리고 사회에서 매장이 되지 않을까, 그 걱정이 앞서자 쥐었던 주먹이 스스르 풀렸던 ‘더러운 기억’ 말이다. 그때 물불을 가리지 않고 ‘거사’를 감행했어야 맞다. 내가 최소한 ‘사회정의’를 의식하는 ‘깨시민’이었다면 말이다.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2010년대 초였다. 신라호텔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살인마 부부’가 결혼식 10분 전에 와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있다. 이때도 직선거리 3-4m, 식장의 원탁좌석 하나가 통째로 비어있었다. 그 부부와 경호원들이 앉을 자리에 그날의 주례인 대학 총장님이 덩그러이 앉아 그들을 맞이했다. 아아아-, 그때도 나는 또 비겁했다. 용기가 없었다. 내 눈앞에 역사의 살인마를 두고 망설이다니, 무슨 수든 냈어야 했다. 그들과 같이 1인 15만원이라는 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팀장과 함께 인근 신사동으로 달려가 간장게장에 죄없는 소주만 대낮부터 마셔대던 못난 놈.
그러니 일제강점기 가정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애국자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희망이 있었는가? 온통 절망뿐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최선의 삶’을 살았다. 언제가 내가 존경하는 한학자 선생님이 말했다. “백범이든 심산이든 단재든 약산 김원봉이든(쥐새끼 우남은 결코 아니다), 그분들은 오장육부가 아니고 뭐 하나 다른 게 더 있다”고 말이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일편단심 ‘나라의 독립’이라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강심장. 아내와 아들들을 바친 홍범도 장군을 보시라.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그분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가? 민족정기 회복의 차원이라고? 참으로 넋이 빠지지 않았다면 그게 할 말인가? 한명회를 그랬다면 또 모르겠다. 명백히 있을 수 없는 일, 한 신문사 논설위원은 맞짱구를 치며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하고 있다. 기도 안찰 노릇이다. 한 신문사 고문은 대선이 불붙기 전부터 ‘정치인 윤석열’을 주목하면서 “단군이래 최대의 정치인이 나타났다”고 그 신문에 그것도 칼럼이라고 실었다. 요즘도 그분은 글로써 정치를 여전히 희화화시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은 내가 존경하는 정치인 이름과 같다. 오호 통재! 나는 분노한다. 분노를 잃으면 다 끝이다. 분노라도 끝까지 부여잡고 있어야 사람이다. 구한말 위암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찾아 읽어본다. 어쩌면 우리가 놓인 시대상황이 그때와 판박이인 듯도 하다. 나라 팔아먹기 일보 직전. 누군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보고 ‘이완용보다 더 나쁜 친일파’란다. 무엄하다. 국가원수 모독죄! 장삼이사, 시정잡배 아무나 ‘이놈’ ‘저놈’ 심지어 ‘새끼’를 남발한다. 가황 나훈아의 노래나 목놓아 부르자.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럴 때 쓰는 말이 ‘어이상실’이리라)/그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그저 오는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테스형은 응답하라! 2023년 9월 20일 한 초로의 농사꾼 명령이다.
첫댓글 그 XXXX애기도 하지말아라 성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