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최연소 기록을 갖고 국회의원에 첫 도전을 하였던 조경태,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로 3선을 거머 쥔 그 신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과연 신화일까? 4.19와 부마항쟁을 이끌어 왔던 부산은 김영삼의 3당야합 이전까지는 야성을 지닌 곳이였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김영삼의 그릇된 선택으로 3당야합이 이루어지고, 부산의 민심이 김영삼를 지지하면서 옳고 그름 이전에 "우리가 남이가"식 깃발선거가 되어왔다. 그러나 사하구의 조경태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부산은 깃발선거의 불의를 끝내고 부산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을 남겨왔다. 조경태의 말을 통해 부산의 자존심을 다시 회복할 방도를 알아본다.
길가다 구청 단속원들의 과격한 노점상 단속을 보고 항의가 무력하자 그들을 도와 줄 방법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 결심 박사논문을 던저 버리고 28세에 부산 사하에 출마를 하였고, 부인의 아이디어로 누드 벽보 사진까지...© 서울의소리 |
▲ '원칙있는 승리, 원칙있는 패배, 원칙없는 승리, 원칙없는 패배' 중 어디에 속하는지 국민의 판단은? © 서울의소리 | | 새누리당 텃밭 부산에서 3선을 이룬 국회의원 이지만 생소하기만 한 신진같은 중진 민주당 조경태 의원을 만나 보았다. 정치를 하게 된 동기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은 대학교 3학년때 노무현 후보의 선거를 도우며 알게 되었고, 1996년 국회의원 첫 출마 낙선 후 종로낙선자 노무현과 사하낙선자 조경태는 낙선자 모임을 함께 하였다. 대학 강사를 하는 중 길가다 구청 단속원들의 과격한 노점상 단속을 보고 항의가 무력하자 그들을 도와 줄 방법이 정치를 하는 것이라 결심하고, 준비중이였던 박사논문을 던저 버리고 28세에 부산 사하에 출마를 하였고, 부인의 아이디어로 파격적인 누드 벽보 사진까지 제작하기 이르렀다.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희생을 전재로 봉사 할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젔으면 좋겠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젊은이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 지난 정치 활동에 대한 평가는? 부끄럽다. 무기력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입문이 8년인데 세상에 많은 변화를 줄 줄 알았는데.. 지역구는 많이 바뀌었는데 대한민국의 변화는 주지 못했다. 정치적 철학은?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해 주고,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20대 후반 정치 지망생 그 때 꿈꿨던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꿈이다.그러나 여러가지 부족한 부분이 많아 죄송하다. 정치적 소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원칙있는 승리, 원칙있는 패배, 원칙없는 승리, 원칙없는 패배' 중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원칙있는 승리를 해왔다는 말을 들었다.5번 출마를 하면서 당선을 위해 한번도 민주당 깃발을 놓지 않았다.실패를 하더라도 원칙있는 정치를 계속해 나가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