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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廣場] 혼란의 시대, 국민은 확고부동한 사상가를 원한다
자유일보
손광주
나이 들면 보수적이 된다고 한다. 윈스턴 처칠은 "20대에 리버럴(liberal) 아닌 사람은 가슴(heart)이 없고, 40대에도 보수적(conservative)이 아닌 사람은 머리(brain)가 없다"고 했다. 이 표현은 여러 버전이 있다. ‘리버럴’ ‘보수적’ 대신 ‘사회주의자’가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보수-진보 용어를 제멋대로 쓴다. 보수를 ‘극우’로 쓰는 무식한 매체들이 적지 않다. 우리보다는 많이 나은 편이지만 유럽·미국도 다르진 않다. 보수주의·자유주의 용어 사용에 일정한 잣대가 없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사용한다. 오죽하면 제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며 개념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플라스틱 워드’(plastic word)라는 말까지 나왔겠나.
<자유주의> <보수주의> 책을 잇달아 출판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정치전문 기자 에드먼드 포셋은 <자유주의> 책에 ‘어느 사상의 일생’이란 부제를 붙여놓고 1830년~2017년까지 200년 가까이 ‘자유주의’ 용어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개념이 변화해왔는지 추적했다. 그중 하나의 결론은 정치인들이 그때마다 자기가 유리한 대로 ‘자유주의’ 용어를 제멋대로 사용해왔다는 것. ‘보수주의’도 마찬가지. 저자가 벽돌 같은 책 2권을 쓰느라 수고는 참 많이 했는데, 대체로 그렇듯 결론은 심플하다. 물론 심플한 결론이 옳은 경우가 많다. 또 ‘리버럴’ ‘컨저브’ 용어가 그 복잡한 유럽·미국의 정치 통사(通史) 속에서 죽었다 살았다 하는 일련의 과정은 많은 참고가 된다.
필자는 우리 정치인들이 보수주의·자유주의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시대 분위기가 되기를 바란다. 왜? 지금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가 사상의 부재(不在)이기 때문이다. 지난 40년 보수세력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의 선진화를 위한 사상과 미래 비전으로 국민을 이끌어가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북한·중국의 각종 통일전선전술이 먹혀들었고, 지금은 ‘이재명의 개딸’ 같은 막장 그룹까지 출현해 대한민국 정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현실까지 왔다.
그동안 고(故) 박세일 교수 등을 비롯한 지식인 그룹이 대한민국 선진화를 위한 나름의 이론을 제시했으나, 정치권력의 낮은 사상적 수준에 막혀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우리 정치는 대통령 본인이 확고부동한 사상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는 이야기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와 법치’의 진정한 사상가였다면 집권 1년 내 최우선으로 문재인·이재명을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을 것이다. 이를 실천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거꾸로 당했고, 이제 자유와 법치의 사상적 실천을 국민이 직접 나서서 몸으로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천이 없는 사상은 봄날 아지랑이다.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위대한 사상을 보면 명료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국정 정상화다. 대통령이 먼저 대통령책임제 제도권에 복귀하고, 입법·행정·사법이 헌법적 룰(rule)에 맞도록 재부팅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 할 일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여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가장 큰 난관은 국회와 언론의 수준인데, 이 매개 역할을 자유보수 시민사회의 전문가 및 지식인 그룹이 할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사상가는 이승만 대통령인데, 지금 국회에 그런 수준의 정치인(statesman)이 어디 있겠나.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을 주저앉히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려는 과정에서 한·미·일의 역할과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이익을 극대화할 인물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사상을 아는 사람이 사상이 갖는 힘을 안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대중 정치인들 중 사상을 알면서 동시에 가장 확고부동한 사상을 가진 인물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같은 정치인들이 늘어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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