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고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농사일 하는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하고 있는데 시골마을에는 그 때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려운 집들이 많은 때라 대도시에 가서 고등학교 공부하고 나온 놈이 집에서 놀고 있다고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들려 주경야독 2년동안 공부하여 군대가기 몇 달 전에 말단 9급 공무원이 되었다.
제대 후 복직하던 다음해인 1994년도 2년제 방송통신대학이 생겨 거기 입학했다가 중도 그만두었는데 그때 말단 공무원은 휴가도 없고 공휴일도 없이 일할 때라 공부가 안되었다.
그 후 1981년 방송대학이 5년제 학사과정으로 바뀌어 다시 또 입학하여 5년동안 여름, 겨울 방학때는 일주일간 경북대학교에 출석수업을 다녔는데 그때 출석수업은 휴가처리를 해 주었던 것 같다.
근무하면서 라디오로 강의 듣고 혼자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140학점을 못 따서 그 학사과정을 7년 반 동안 공부하고 서울 어느 학교에 졸업시험을 보러 올라가서 영어 객관식, 전공과목 4과목은 주관식 시험을 처서 과락없이 평균 60점 이상 받아야 졸업을 시켰는데 전공과목 논문형 시험은 자신 있었으나 영어시험은 과락을 면할 자신이 없어 옆에 시험보는 분 문제지와 답안지를 훔쳐보고 컷닝을 하여 졸업시험을 통과하였다. 그때 공직사회에서는 고졸 출신들은 거의 방송대를 공부하여 학사학위를 따는 게 유행이라 할 까 그랬고 어떤 이는 그 후 박사학위까지 하는 사람도 몇 사람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는 학력으로 평가를 차이나게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친구는 중학교를 나왔는데 공부하는 제주가 있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들어왔는데 요새로 치면 9급으로 들어와 다시 7급시험을 보고 또 5급 시험을 합격하여 과장이 되고 국장급 기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직사회는 학벌로 평가를 하는 것을 보진 못했는데 왜 그렇게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 출석수업을 다니며 학사학위를 받겠다고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그러고 난 뒤 나는 정년퇴직 2년을 앞두고 또 인근에 있는 사립대학교 사회복지과에 3학년 편입학하여
2년을 공부하여 대학 졸업장 하나 더 받았는데 이게 다 소용없는 일이라
예전 젊을 때 어느 고등학교 동기생 아버님은 60년대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셔서 무슨 훈장을 받아서
집 방문 앞 마루위에 훈장증을 액자에 걸어 두셨는데 그 때 그 분 보고 대단한 일은 하셔서 훈장을 받으셨군요 했더니 그 때 그분 ‘다 소용없는 일이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다.
첫댓글 제 친구 중 우경님과 같은 길을 걸은 친구도
우경님과 같은 생각을 말 하였습니다.
제 친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며 야간 대학
야간 대학원 까지 다니면서시간 내느라 직장 상사눈치, 동료들 눈치 봐가며 힘들게 다녔다는데....
우리나라는 학벌 주의가 강해 누구나 대학을
다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다 명함도
못 내미는 그런 사회가 되었지만 소수를
제외하곤 학교에서 배운 공부가 다 소용 없는시간 낭비,돈 낭비로 되었으니 외국 처럼
직업 학교가 활성화 되어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는것이 현명한 생각 이라 합니다.
우경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친구님 고맙습니다
저는 공직때나 농사지으면서 바보같은 삶을 살아왔기에 30여년전 서예를 하면서 스승님이 호를 지어주실려고 할 때
저 스스로 저 사는 모습을 생각해서 우경으로 호를 지었습니다
공직생활 참 우직하게 했습니다 원칙애로 우직하게 일하다 보니 직장에서 제일 윗자리에 있다나오더군요
그래서 지금 사람들 좀 부러워하느 연금생활자가 되었는데
물려받은 토지에 농사도 그렇게 하지요 ㅎㅎ
현제 친구가 대학가려 검정고시 공부 죽어라 하더니 췌장암 진단으로 열심히 하던 수학도 못풀고 병원에 있고 글도 안써주네요
때가 있는거 나이들어 넘 힘들면 병나요
방통대 입학 졸업 학위까지 따놓고 사망한 후배도 보며 젊어선 문제안됬는데 나이들면 스트레스 덜받고 욕심 줄이며 살아야지 싶어요
이미 하신분들은 다행이지만 시간여유 생겼다고 열혈 하더니 속상하네요
글을 쓸까 싶었는데 마침꼬리글로 다네요
우경님 이해해 주세요?
찬미님 고맙습니다
방통대 공부할 때는 다른 직원들 거의 다 하는 데 안하면 뒤쳐질까 생각했는데
8년 까까이 하여 졸업했으니 참 어렵게 했지요
요즘은 졸업시험이 없는 것 같은데 그땐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했으니
시험장에서 생판 모르는 옆 사람 시험지 훔쳐보고 영어시험 통과한게 그랬지요 ㅎㅎ
그래도 꼭 진급이 목적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시고 싶은 열망이 있으셨던 거 아닐까요 ㅎㅎ
그런 것 같으네요
고졸 직원들 열에 여덟이면 다 방송통신대학 다니는것 같았지요
그래도 고졸이면서 퇴직때까지 고수하며 마치는 사람도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우경님 글을 읽으니 내생각이 나는군요.
나는 68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야간고등학교를 다녔지요. 낮에는 회사에서 심부름을 하고
71년도에 5급을류시험을 보고 근무한 후 군대를 갔다와
복직을 하면서 나이 50에 야간대학을 졸업했지요.
방송대도 시도해봤으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어림도 없더군요.
방송대를 나오셨다니 대단한 분입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직에 계셨기 때문에 잘아시지만
임용할 때는 학력의 제한이 없으나 실제 근무하면서는 참 많은 차별을
받았네요. 우선 공무원교육원에는 대학졸업이 아니면 못들아가고
우리는 본부근무도 주사급인데도 불구하고 대졸자만 받습니다.
부처마다 다르겠지만 그렇다는 말씀이고 남은 기간 건강하세요.
중개사님 그렇군요 우정본부 쪽은 그렇군요
저는 40년 재직하면서 재직중에 야간대학 방송대학 공부하는 직원들 많았지만
근무평정할 때나 승진심사할 때 학력에서 우열을 가렸다는 예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직원후생복지쪽에서는 참 잘 되어있는 것 같더군요
3년전에 우리 쥐때방 칠순 여행때 여수를 갔는데 그 때 쥐방에 우정본부에서 고위직으로 있다 퇴직한 친구덕분으로
여수 우정본보 연수원에서 저렴하게 단체 숙박을 했던 일이 있었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우경님 ........
우선 고생많으셨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꼭 내 인생과 같은 과정을 겪은거 같아 반갑습니다
주경야독 ,이거 말마십이요 정말 고생입니다
새벽이면 통신대 강의를 들을 려고 귀에다 리시버를 끼고 그 어려운 공부를 하였는지?
그래도 강의를 듣고 어려운 그이론을 이해하였을때에는 그 뿌뜻한 기분 ......
우리아들이 자꾸 아버지 말을 잘못알아듣는다고 .........
그때 라디오 리시버를 많이 끼고 공부를 하여서 그러나 ?
그래도 출석수업때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여 학문의 시야를 넓혔을때의 그기쁨 ,
내가 마치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는 것같은 착각.....
영등포구청시절 상사의 '정책형성론을 ' 사례 보고를 써 주었으니 근무평정을 승진했던 기분 ....
나의 인생 2모작의 교육학과 공부 , 노후의 취미로 국어국문학과의 공부 ....
다 나의 삶의 충족을 하여 주었던 방송통신대학의 덕분입니다
나는 방송통신대학의 이과 저과 공부는 내가 대학원을 대신하여 다니는 즐거움으로 ....
막상 서울시 시립대학원도 못다니고 .
선배님 공직생활이나 학구열은 그간 보여주신 글에서 보아왔는데
참 대단하신 끈기를 가지고 평생 공부하신것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더러 글을 뵈니 화순에서 글공부와 연관된 삶을 사시는 모습 그려지고
저는 흙을 벗 삼아 작물을 키우며 살가네요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공감의 글입니다. 지나면 학사 ,석박사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우리사회만은 편견과 인식은 두드러집니다.
가장 편협된 곳이라면 연구기관등 특수직은 말할것도없고 정치경우는 대학문턱을 밟지않고는 어림없습니다.간혹 있을지는 모르나 대신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공공기관 간부직 특채의 경우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공부하시느라 힘드셨지만 힘던만큼 선택 참 잘하셨습니다.학문의 가치는 그야말로 큽니다.방송통신대
설립이 70년초반으로 기억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잘 살아 오신겁니다.^^
예 방송통신대학 2년제 전문과정은 74년도에 생겼느느데 그 때 입학했다가 중도에 그만두었고
그 후 81년도에 학사과정으로 5년제로 바뀌었지요
81년도에 입학해서 87년도에 졸업을 했으니 학점 따는 게 어려웠지 싶습니다
그 후 사회복지과 들어가서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받았지만 그냥 기게 끝이었습니다
인초님 감사합니다 시골생활 하시는 줄 아는 데 즐겁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공무원 생활 하면서 최선을다하며 사신것같아요.학위라는게 승진이라든가 복지등에 큰영향을 미치지 못 했을지라도 잘한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방장님 감사드립니다
공부하는 과정이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하나의 삶의 현장이었지요
그래도 공무원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간부가 되지만
저가 다닌 회사는
만년 기능직이였습니다
기우님 회사 저가 잘 알지요 노랑 유니폼에 해도들판길을 자전거 행렬로 출퇴근 하던 모습
69년 그 회사 처음 시작할 때 회사 지을 부지위로 저가 자전거 타고 출장 다녔는데 길에 먼지가 자전거 바퀴를 덮을 정도 였지요
기우님 말씀과 같이 저가 방송대 다닐 때 그 회사 직원들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 더러 있었고
그 때 과장 승진을 하려면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저의 고등 동기가 다섯명 정도 그 회사 다녔는데 기우님이 언제 광양으로 가신지 모르지만
87년인가 여름 대 홍수로 포항시가지가 새벽에 물에 점겼을 때 저의 동기친구로 인해 한 사건도 있어서 얘기하면 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우경(愚耕) 우경님 포항시에
계셨네유.
저도 포항제철에
근무했었습니다.
포항제철 인력관리실
에서 첫직장을 시작했
습니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방송대 졸업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1978년도에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간이
남아서
2016년 법학과 3학년
으로 편입학해서
2018년 법학사를 받
았답니다.
그때가 64살이었습니다.
법학사를 받고 보니까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건강이 제일입니다.
우경님 고생하셨어요.
행복한 아침이 되세요.
법도리님 고맙습니다 저도 중간에 법학과 입학했다가 일년 공부하다 그만두었지요
공직사회는 위에 중개사님 경우는 학력을 중요시하는 조직에 계신 것 같은데
저와 같은 지방 공무원은 고졸로도 시장 바로 아래 국장까지 하는 사람 여럿보았으니
학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고 저는 학사과정 처음 시작할 때 입학하여 공부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는데
그때 방송대 공부한 친구들 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제일 고생했다고..졸업시험까지 쳐야했고요.
學歷보다는 學力,
그것이 확실한 평가입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꿈나그네님 고맙습니다
학력보다는 실력이었고 성실성이 중요한 게 공직사회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경님의 글을 읽노라니
그 시절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주마등 되어 지나갑니다
고생하신 보람으로 지금
잘 살아 가시니 아주 좋습니다요
이젠 건강하시고 맘껏 누리시며 행복하게 살아 가시니
좋으십니다~~♡
정바다님 고맙습니다 정말 그 때 방송통신대학 학사과정 처음 들어갔던 사람들은 고생많이 했습니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 다른 학생들은 방학으로 쉬는 데 협력대학에 매년 1주일간 씩 출석수업에
그것도 5년동안, 지금은 4년제로 바뀌었지요. 졸업시험도 쳐야 했는데 영어가 필수과목이라
학점도 따야하고 졸업시험도 과락을 면해야 하고,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세월이었다고도 생각되는 군요
박봉이라는 공직생활 중 다른 곳 갈 기회를 포기하고 한 우물 판 덕분에 연금생활자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꼭 배워서 뭘 써먹기 보다는 삶자체에 최선을 다하신 모습이 넘 좋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