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은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좋아서,
나는 아침 일찍 마켓 두 곳을 다녀왔다.
미국 마켓에서는
오늘이 지나면 무효가 되는 카드에 잔액이 얼마인지 몰라서
대충 짐작으로 물건을 집어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컸다.
그래도 필요한 것을 샀으니 괜찮다고,
결코 현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만 아는 사정은 늘 나를 그렇게 변호해 준다.
한국 마켓에서는 잡채 재료와
손자가 좋아하는 포도를 샀다.
열무는 세 단에 0.99달러,
얼갈이 배추도 두세 개 묶은 세단이 같은 값이었다.
여섯 단까지 할인이라 하여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각각 여섯 단씩 샀다.
만약 아홉 단 까지였다면
아마 그만큼 샀을 것이다.
먹을 사람도 많지 않은데
쓸데없는 욕심은 아직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사 온 채소를 다듬어 절여 두고
도토리묵을 쑤었다.
내일은 딸이 떡국과 갈비를 준비하고,
나는 나물과 잡채, 묵무침을 맡기로 했다.
비가 많이 온다 하여
안 사돈은 안 오신다 하셨다 하니
전 종류는 하지 말자고 했다.
내일 아침 10:00 미사를 가야 해서 이른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 오늘은 조금 준비만 해 놓는다 .
넷플릭스에서" Good Bye June" 영화를 보다가
화면을 잠시 멈췄다.
쓰러진 준이 병원에 누워 있고,
그녀가 시한부 삶임을 알게 된 가족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아마도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중심이었던 주인공과의
영원한 이별을 통해 남은 이들이 화해하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두 번째 커피를 마신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돌아보니
이 해는 유난히 분주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 좋아하는 방식의 삶은 아니었지만
큰 탈 없이, 무사히 지나온 한 해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화단에는 분홍 장미가 여러 송이 피어 있다.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인 모습이
겨울 장미라서인지 더 애잔하다.
그래도 햇살 좋은 날도
분명 많으니까 ...
그 옆 오렌지나무에는
노랗게 익은 오렌지가 다섯 개가 달려 있다.
초록빛일 때는 잎에 섞여 잘 보이지 않더니
익어가며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겨우 다섯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가을에는 조금 아쉬웠다.
봄에 오렌지 꽃이 많이 피어 그 향기는
화단에 가득했었다 .
작년에는 여덟 개가 열렸고 익자마자
청설모가 먼저 맛을 보았었다.
올해는 그나마 잘 참아 주는 모양이다.
내일 가장 큰 것 하나만 따서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려 한다.
우리 집에 열린 과일은
먹는 것보다
바라보는 일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레몬은 여섯 개가 익어가고 있다.
이렇게
작은 행복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마음을 조금만 낮추어 바라보면
다행한 일과
감사할 일들이
조용히 마음에 남아서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조용히,
2025년 , 한 해의 마지막날을 보낸다.
밖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
첫댓글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이 최고입니다. 새헤에도 건강하게 씩씩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곳도 몇시간 후면 2025년이 갑니다 .
"씩씩하게 " 하신 말씀에 웃음이 났는데
새해에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
언덕저편 1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날마다 하루가, 여기보다 하루 늦은
아녜스님의 글을 보면,
나도 하루 늦게 맞는 기분이
마음이 넉넉해 집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아녜스님의 일상이 짜임새 있고도
넉넉하여, 새해를 맞아
첫글로 댓글 쓰는 기분도 좋습니다.
새해를 맞기 위해,
딸과 함께 준비하는 것도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주부임에
제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이대로 이어가셔도
늘 행복할 것 같은 제 예감이
맞기를 기원합니다.
기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신 콩꽃님의 새 기운을 받으니
힘이 솟습니다 .
제 소박한삶을 늘 칭찬 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
세해에도 올해 보다 아니 조금 더 열심히
수필방에 충실 하겠습니다 .
콩꽃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찬찬히 관조하듯
아녜스님의 한해가
빗소리를 뒤로하고 떠나가네요.
새해에도 늘 건강하세요~
오늘도 , 내일도 그리고 다음주까지
자주 비가 올 모양입니다 .
빗소리를 뒤로 하고 한 해를 보내고
빗소리를 앞으로 하고 새해를 맞게 될것 같습니다 .
마음자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을 읽으면
차분하게 잘 쓰신다
느끼게 됩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이 늘 주님 사랑 안에
화평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은총의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
글이 차분하면 사람도 차분해야 할텐데
제가 실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시는 죠윤정님을
본 받으려 합니다 .
감사 합니다 .
마무리가 참 잘된 듯합니다.
그러면 새해도 그렇게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석촌님 .
25년에도 석촌님이 수필방에 계셔서
행복했고 26년도 그럴것 같습니다 .
석촌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내용과 글이 아름답네요ㅡ 마치 정물화 그림을 보는 듯하게 정돈되고 차분합니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체되는 번잡한 시간에 마음을 조용하게 안정시켜 주네요. 감사합니다 ㅡ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그리고 수필방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다른 해보다 올해 마지막 날은 더 조용히 보내게 되어
저의 하루를 옮겨 보았습니다 .
다저스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용히 읽다 보니
한 해가 이렇게 정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요즘 이곳은 비가 자주 옵니다 .
비가 오는 날은 몸도 마음도 조용합니다 .
그러니 글도 조용한것 같습니다 .
탁구시인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 내리는 하루의 결이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마켓의 소소한 선택들에서부터 절여 둔 나물, 미사와 가족의 약속,
영화 한 장면 앞에서 멈춰 선 마음까지…
분주했으되 성급하지 않았고, 넉넉하진 않아도 따뜻했습니다.
비 맞은 겨울 장미와 다섯 개의 오렌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과일처럼
이 한 해도 많이 움켜쥐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잘 살아오셨다는 고백처럼 읽힙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이 글을 더 깊고 오래 남게 하네요.
비처럼 잔잔한 마무리 속에서
2026년은 분명, 햇살 많은 날로 시작될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도 밤이 깊어갑니다 .
오늘 하려던 오늘일들은 다 마쳤고
또 하루를 보냅니다 .
이렇게 시작된 새해의 날들은 어김없이 빠르게
지나갈것이라는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저하고 했습니다 .
단석님 말씀대로 오늘은 햇살이 잠시 나온 날이었습니다 .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거 같고, 문득 눈을 뜨게 되어
시계를 보니 11시경, 그러니 아직도 2025년.
날이 날인만큼 묘한 기분에 다시 잠들지 못하고 , 뜬눈으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4시쯤에 다시 얼마간 잠들었던 거 같습니다.
시차때문에 계신 그곳은 새해 전날이군요.
새해 새날을 앞두고 장을 보는 두 모녀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한결같은 심성의 좋은 분이시니 주변에 좋은 분들과의 인연이 늘 함께 하는 듯합니다.
사람을 잘 못 사귀는 저, 생계를 위한 일터에서 사회적인 은퇴 연령을
맞아 떠나니, 그나마 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더군요.
그런데, 어깨 수술을 하게 되어 병원 일주일 신세를 지는 동안의 그 병원에서,
그리고, 모종의 종자돈을 축내지 않으려고 시작한 알바에서
최근에 이모티콘 콘텐츠 크리에이터 양성과정에서 등
의외의 장소에서 연상의 언니 뻘이든, 애기 엄마든, 다양한 연령대의 매력 있는 능력녀들..등등 인간적으로 끌리는 인연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문제는 제가 그 인연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회성, 나태함 등등
원래 내성적이었는데, 살아오면서 더 고립되어 지내고 약을 1년간
복용을 하다 보니 얼굴이 보름달처럼 부어 대인기피증까지 더해졌네요.
코로나가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마스크 착용을 하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하고 있어요.
가볍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다면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 그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 하기가 미안해지고,
사실 서로 사는 게 바빠 어렵게 시간 내서 만나는데 달랑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기도 인간미가 떨어지긴 하죠.
나름대로 내 인생의 후반기에 만난 지인들에게 마음을 표현해가면서 살아야하지
않나 자성도 하지요.
마냥 기다려줄 줄 알았던 지인과의 인연이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친정 언니같은 어떤 분의 뜻밖의 부고를 접하고, 저의 무심함을 깨닫고 자성의
날들을 보낸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 날 또 칩거해있는 자신을 봅니다.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알고, 인연의 소중함에 또한 감사하시는
잔잔하고 따뜻한 메세지에 조용히 반성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우린. 정성 어린 댓글 잘 읽었어요 .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기도 하고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우선 제일은 자신의 마음가는 대로 하는게 가장 옳은것이라
생각합니다 .
우린님 마음이 편하게 살면 되는것입니다 .
그래도 마음 터 놓을 벗이 있다면 덜 외로울테지요 .
그렇지만 제가 요즘 많이 듣는 법정스님의 글에
외롭고 고독할때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 졌습니다 .
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지만
혼자 일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답니다 .
그래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에 올해는
먼저 안부 전하고 연락도 하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 제가 그런 쪽으로 많이 부족 하거든요 .
우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정초에 계획했던 초안들이
서랍안에 누워있는데
을사년이 문을 닫았네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뛰어 다녔던 시간마다 감사할 일도 많았는데요
비를 맞으며 고개 숙인 장미꽃 옆에
노랗게 익은 오렌지 다섯 개
커피 잔 기울이며 그 멋진 풍경 바라보면
마음이 이채로울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병오년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매년 저를 속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단한 계획도 아닌것을 못 지키지요 .
오늘 저는 처음 손자들에게 세배를 받았습니다 .
엎드려 절을 받은것이지요 .
시골바다님도
건강하시고 좋은일만 있는 2026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
겨울에도 화단에 장미가 있고
아녜스 님은 넘나 살기 좋은 동네에서
사시는 것같아요.
이제는 새해가 되었네요.
새해에도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겨울이 춥지 않은것은 좋은데
지진과 산불이 늘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
올해도 나무랑님의 씩씩한 글을 자주 읽을 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
울아녜스님의 일상이 차분히 내리는 빗방울이 되어 제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고운 울아녜스님 26년에도 우리 함께 건강한 모습 간직하기로 해요. ^^*
비가 내리고 나니 온통 주위가 산뜻한 기분입니다 .
오늘도 약간의 비가 왔지요 .
수피님의 가족들과 수피님이 행복한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
며칠 안 보이셔서 궁금했는데 여행 다녀 오셨다고요?
미국 할머니 삶은 아주 평범한 재미 별로 없는 나날 인데요 뭘~
오늘은 마음이 좀 쓸쓸해서 냉장고에 오래 묵은 미모사 마셨습니다 .
달착지근 알코올이 별로 없네요 .
술 끊으신 단풍님과는 할 이야기는 아니지 싶습니다 .
댓글로 절대로 섭섭하지 않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언뜻 보면 살림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는데
사실 허당입니다 .
반성은 잘 하지요 .
성격이 변하긴 했어도 여전히 사람 많이 알고 지내는것도
만나는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알게 된 사람과는 쭉 ~ 잘 이어가고요 .
해도네 님도 그러실테죠 .
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계획하신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