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부의 이름은 내 책에는 "계루부, 연나부, 환나부, 관나부(관노부), 소노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네이버 백과사전 등에는 "계루부, 소노부는 맞으나
관나부, 절노부, 순노부가 5부로 나온다는 말이로군요.
그리고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연노부에서 계루부로 나온다. 또 비류나부도 나온다. 이것이 왜 이렇게 헤갈리느냐 하는 것을 물었군요.
자. 답을 하겠습니다. 내가 백과사전과 다른 것을 내 책에 썼을 이유는 없겠지요.
이러한 5부의 명칭의 차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지의 차이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 15년에 비류부가 나옵니다. 비류부는 송양왕이 한때 다스렸던 비류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5부의 명칭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 태조대왕과 차대왕 시기입니다. 태조대왕때에는 관나부 패자 달가, 환나부 패자 설유 등이 등장합니다. 또 관나부 우태 미유, 환나부 우태 어지류, 비류나부조의 양신 등이 등장합니다.
즉 관나부, 환나부, 비류나부 3개의 부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들 3개부는 차대왕 즉위에 큰 공을 세웁니다. 그런데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하고 신대왕을 옹립하게 되지요. 그러면 이제 4개의 부가 등장하게 됩니다.
연나부는 신대왕 즉위 이후 왕실과 함께 국정을 좌우하는 왕비족이 되는데, 고국천왕, 산상왕, 중천왕, 서천왕 등의 왕비가 모두 연나부 출신이며, 가장 높은 관직은 국상 또한 연나부 출신이 많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나부, 환나부는 완전히 몰락하게 되고, 오직 비류나부는 중천왕 시기에 음우가 국상이 되는 등 여전히 세력을 유지합니다. 태조대왕 시기부터 중천왕 시기에 이르는 시기에 고구려에는 왕실을 포함한 5개 부가 정립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주나, 조나 등 다른 부들이 있었지만, 모두 태조대왕 무렵에 5부로 통합이 되어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이 5부는 나중에는 방위명 부로 바뀝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측 기록인 삼국지에는 5부의 명칭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 이렇게 말입니다.
이 가운데서 연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지금은 계루부에서 왕위를 차지한다고 되어 있어서 왕실 교체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지에서 고구려 5부에 노(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비하하려는 의미가 있으므로, 본래 뜻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삼국사기 기록의 5부의 명칭을 쓰는 것입니다. 문제는 삼국지 5부와 삼국사기 5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입니다.
또 왕실이 계루부인 것은 분명하고, 관노부는 관나부에 인 것 같습니다.
또 절노부가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였으므로, 그 대인을 고추가라 칭한다는 삼국지 기록으로 볼 때 절노부는 삼국사기의 연나부를 가르킨다고 봐야겠지요.
또 연노부는 전왕실인 것으로 볼 때 삼국사기의 비류나부(송양왕의 비류국)으로 볼 수 있겠고, 순노부는 고루려의 환나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삼국사기 - 삼국지 등 기록
왕실 - 계루부
연나부 - 절노부
비류나부 - 연노부
관나부 - 관나부
환나부 - 순노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등 후대의 기록에 의해서 5부의 방위가 어떠느니 하면서 이와 다르게 두 사서의 5부를 비정하는 견해도 있기는 합니다.
나는 중국기록보다는 고구려 자체의 전승이 전해지는 기록에 있어서 만큼은 삼국사기를 우선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중국측 기록은 전해들은 것이나 이름이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때문에 삼국사기 기록을 사용하여 내 책에 5부의 명칭을 기록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여 삼국지의 5부명을 기록하는 책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삼국사기 기록이 보다 더 정확한 고구려 5부의 명칭인 것입니다.
첫댓글 아하 중국측 기록인 정사삼구지와 삼국사기의 내용이 틀리군요 ^^ 이제좀 이해가 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