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멈추다 수10:6~14절 2024.6.2. 오전 예배
* 승리가 보장 된자
가나안 땅은 분명 약속의 땅이며 축복의 땅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투가 끊이지 않습니다. 축복의 땅이라면 편안하게 두 다리 뻗고 아무 걱정 없이 놀고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 것이 우리들의 생각인데, 하나님이 마련하신 축복의 땅은 인간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땅은 편안하게 놀고먹는 그런 차원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축복의 땅은 승리의 땅입니다. 승리가 주어져 있는 땅이 곧 가나안 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에게 전투를 하게 하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승리 안에 들어왔음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힘으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승리하게 하신 땅에 들어왔음을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아이를 이스라엘에게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승리의 땅에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의 싸움을 통해서 '이 땅은 너희들의 힘과 노력으로 승리하고 살아가는 땅이 아니라 이미 승리가 주어져 있는 땅이다.
너희는 단지 승리를 누리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싸움이 없으면 이스라엘이 승리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지를 확인하지 못합니다. 전투가 있어야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땅 안에 있기 때문에 승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의 땅에 전투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힘으로 아이 성을 치고자 했을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은 곧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나약함은 이미 승리한 자로 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서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곧 이긴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만 '나는 이긴자'라고 해서 이긴자로 살아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과연 이긴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전투를 통해서 확인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을 우리 앞에 두심으로 적의 힘에 흔들리지 않고 이미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지를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나안 땅에서의 전투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축복의 땅이란 세상 것을 누리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가 주어진 땅입니다. 그 땅에서 산다는 것은 이미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가 바로 그와 같은 존재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이미 승리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힘이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며 뭘 하고 안 하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따라서 만약 성도가 진심으로 축복의 땅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염려하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약한 자로 산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실패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기에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투가 있음이 가나안 땅입니다.
* 살길은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것
지난 시간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스라엘과 화친을 하고자 했던 기브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브온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군사를 몰살시키고 여리고와 아이를 멸하신 그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줬다면 그 약속대로 틀림없이 되어질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기브온은 자신들의 군사력과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비교하고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화친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주민의 연합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브온은 자신들의 힘과 이스라엘의 힘을 비교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라면 가나안은 틀림없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 길은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것 밖에 없음을 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브온을 통해서 보여준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계산하고 비교한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과 연합한 기브온을 치기 위해서 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이 아모리 다섯 왕과 연합하여 기브온을 대적하는 내용입니다. 기브온 주민들의 행위는 세상이 볼 때는 배신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다른 주민들을 외면해 버린 비열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신의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아도니세덱은 배신자를 척결하기 위해서 아모리 다섯 왕과 힘을 모아서 기브온을 치게 됩니다. 그 내용이 10:4절입니다.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라고 합니다. 원래 이들의 적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마저 이스라엘과 같은 존재로 여겨버립니다. 그래서 기브온마저 공격해야 할 적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과 연합해서 살고자 했던 기브온은 그 댓가로 전에는 자신들과 같은 가나안 주민이었던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도들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브온이 하나님을 알고 나서 하나님께 굴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 역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작정한 자들입니다. 세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만 믿고 살기로 작정한 자가 곧 성도입니다. 이러한 성도를 세상이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도 의지하고 그리스도도 의지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님만 의지하고 살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필히 세상의 미움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 역시 미움을 받게됩니다. 기브온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기브온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더라도 화친을 하고자 했던 그 마음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만약 기브온 이 조금이라도 세상의 힘에 마음을 두었다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보다는 가나안 거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브온 은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6절에 우리를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피 안에 있는 자
이것으로서 기브온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한 자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으로 들통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어떤 외부적인 압력이 가해졌을 때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는 흔들릴 때가 많이 있으며 세상 쪽으로 우리 마음을 조금 양보하고자 하는 흔들림도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전투를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의 약함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성도라면 그 어떤 일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기브온의 요청에 의해서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서 길갈에서 올라가 아도니세덱의 연합군을 쳐서 여호수아에 의해서 패배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도망을 치게 되고 하나님은 도망치는 그들 머리 위에 큰 우박덩어리가 떨어지게 해서 이스라엘이 칼로 죽인 수보다 더 많은 수가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태양과 달이 멈추게 된 것입니다.
12,13절에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이 멈추기를 기도하자 그 기도대로 태양과 달이 멈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과연 세상 누가 믿겠습니까? 태양과 달이란 인간에 의해서 통제될 수 없는 물질입니다. 인간은 오히려 태양과 달이 일으키는 자연의 변화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세상은 태양과 달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태양과 달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태양과 달이 멈췄다는 것은 세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상식이 아닌 과학으로도 전혀 답을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기적을 베풀어서 기적에 감동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는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태양과 달이 정지한 것보다도 더 큰 기적은 성령 받고 그리스도를 믿는자 된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이런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 어떤 강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약속에는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태양과 달을 정지하게 해서라도 약속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피안에 구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