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은 신작로가에 초가집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동네의 맨 위쪽에 굴신이 힘들어 하시던 장애인 어른의 집과 마을 제일 아래쪽에 년세가 높으신 대구할메네 집이 점빵店房을 하고 살았지. 50여호가 채 될까말까한 작은 동네에 두 개의 점빵이 있었던거지. 요즘이야 상점商店이란 말도 잘 안쓰고 가게니 구멍가게니 슈퍼마켙이니 크게는 시장격인 무슨 무슨 마트라고 하지만 그땐 다들 점빵이라고 불렀고 그 뒤 5.16이 일어나고 새마을 운동이 시작됐을때 쯤인가 개인이 아닌 동네 부녀회에서 공공으로 운영하던 구판장이라는 것도 있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거긴 점빵이고 말고했네. 파는 물건이라는것도 애들 좋아하는 굴다란 눈깔사탕과 비스겟도, 누런종이 봉다리에 든 간빵봉지, 빨래비누, 신설로가 그려진 얇고 조그만 비니루 봉다리에 들었던 아지나모돈가 미원하고 막걸리와 소주, 사이다, 묶음 국수... 뭐 그런것들이었지. 아무리 설명한다해도 여기 언젠가 올린 시학후배님의 그 점빵사진만 할까? 난 그때 그 사진보면서 정말 내어릴때 보던 우리동네 그 점빵도 생각이나서 가슴 찡하게 보고 또 보았네. 다들 별 사진이라고 할런지 모르지만 거기서 그런 점빵 이용했던 우리는 다르지. 어디가서 그런 사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동네 내가 꼬게꼬게 속보겟도에 감추어 두고 만지기만 하다가 도저히 못참아서, 큰맘먹고 그 코묻은 돈으로 누깔사탕 몰래 사먹었던 그 점빵을... 점빵할메가 혹시 우리 어메한테 이를까봐 사탕산것 말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었지. 점방이 비포장 도로가이고 점빵문이 늘 열려 있었으니 차 지나가면 전쟁터의 포연처럼 하얀 먼지가 가게안에 대충 진열된 물건들에 뽀얗게 쌓였지. 그러면 그 할메는 자루가 긴 먼지털이개 한번 휘휘 저어서 먼지 털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었을까? 앉았던 그 먼지가 다시 날려서 그 자리에 앉았는데.. 난 지금 생각해 보지. 손님도 없었던 작은 동네에 두깨씩이나 있었던 점빵, 무슨 장사가 되었을까? 몇 달 동안 또 몇년씩이나 먼지 하얗게 뒤집어 쓰고 한없는 세월을 포개고 덮어 앉아있던 그 하잘것 없는 물건들이... 시학이 후배님이 말했던가? 그 물건들 마구 다해도 5만원어치도 안된다고...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잊혀져만 가는게 기양 안타깝네. 우리마져 잊으면 그 동네도 그점빵도 그 시절, 세월도 다 없어지는 거지. 시학님이 보여준 사진인들 얼마나 가겠나? 만약에 우리 조차 관심없어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