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은 기억 뿐, 사랑과 희망의 자존감은 잃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병의 증상과 주위 사람들의 고통을 단지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이 소설이 200만 부나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실제 하버드 대학교 신경학 박사 출신인 작가 리사 제노바의 묘사가 탁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주인공 앨리스가 삶을 대하는 자세다. 책 곳곳에 보이는 앨리스의 독백에서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뇌는 굳어가도 감성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지 느낄 수 있다. 눈물을 쏟으며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괴로워하면서도, 죄책감보다는 당당함을 선택한 앨리스의 솔직한 마음은 뭉클한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온다.
치매를 다르게 바라본 작가의 시선은,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알츠하이머병을 묘사한 독특한 시각의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 문장들이 어찌나 진솔한지 읽다보면 어느새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그간 치매 환자를 돌보는 주변인에게 동정과 연민을 쏟은 나머지, 환자 본인이 겪을 고통은 정작 외면해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언제나 씩씩하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얼마 남지 않은 기억의 조각을 사랑하고, 자신을 힘겨워하는 가족들도 깊이 사랑한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단지 기억뿐이다. 사랑과 희망, 그리고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자존감을 잃은 것이 아니다.
눈물어린 박수갈채를 받은 동명 영화 [스틸 앨리스] 개봉
201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줄리안 무어가 받았다. 그녀는 동명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내며 ‘생애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줄리안 무어는 [스틸 앨리스]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세상 밖으로 조명 받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수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원작소설 『스틸 앨리스』를 각색한 이 영화는 ‘삶에 용기를 주는 한 줄기 빛 같은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가수 윤종신은 [스틸 앨리스]를 테마로 한 앨범을 발표하며 이런 감상을 남겼다.
“점점 나를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나일 수 있는, 앨리스의 특별한 ‘상실의 기술’을 꼭 만나보시길…….”
소설 『스틸 앨리스』에서 우리는 앨리스가 특별하게 만들어가는 상실의 기술에 한껏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가족에게, 주위 사람에게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도 함께 가질 수 있다.
결국 그녀의 뇌 기능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 묵인될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질 터였다. 앨리스는 그 전에, 사람들의 가십거리와 연민의 대상이 되기 전에 하버드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때가 언제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버드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끔찍했지만 하버드를 떠나는
건 훨씬 더 끔찍했다. 하버드 심리학 교수가 아닌 자신을 상상하기 조차 두려웠다.
하버드를 떠나면 가족들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써야 할까? 그건 무얼 의미할까? 소송 사건 적요서를 작성하는 안나 옆에 앉아 있고, 회진하는 톰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리디아가 연기 수업 받는 걸 지켜보는 것?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이 병에 걸릴 확률이 50퍼센트라는 걸 어떻게 말할까? 내가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했듯이 아이들도 나를 원망하고 증오한다면?
--- 「이런 병에 걸려서 정말 미안해」 중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이 성공한다면 안나의 아기를 안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리디아가 자랑스러워하는 연극 무대에 선 모습도 보고 싶었다. 톰이 사랑에 빠진 모습도 보고 싶었다. 존과 안식년을 한 번 더 보내고 싶었다. 읽는 능력을 잃기 전에 원 없이 책을 읽고 싶었다. 앨리스는 방금 든 생각들에 놀라며 실소했다.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에 언어학이나 강의, 하버드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다. 앨리스는 마지막 한 입 남은 아이스크림콘을 입에 넣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이런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과 아이스크림을 더 즐기고 싶었다.
--- 「시간을 낭비할 자격」 중에서
여배우가 독백을 멈추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앨리스를 보며 기다렸다.
“좋아요, 뭘 느꼈어요?”
“사랑을 느꼈어. 그건 사랑에 관한 얘기야.”
여배우가 환호성을 올리며 앨리스에게 달려와 그녀의 뺨에 입맞추고는 기쁨 가득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내가 제대로 느낀 거야?”
앨리스가 물었다.
“네, 엄마. 아주 정확하게 느낀 거예요.”
---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