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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자비12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중에서..
부자상인과 여종
갈(葛) 여사는 연세가 60세 가까이 된 불자로 다년간 불교를 신봉하였다. 그녀는 묘법 노스님을 뵈었을 때 눈물을 머금고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저는 스물 세 살 때 남편과 결혼하였는데 아직까지도 어떤 것이 가정의 행복인지, 무엇을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하는지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같이 지내면서도 두려움뿐입니다. 이젠 저도 이미 할머니가 다 되었는데도 남편에게 맞고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어 더욱 고통스럽고 참기 힘듭니다. 저는 지금까지 근 몇 십 년 동안을 남편에게 훈계 받고 질책 받고 얻어맞으면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정한 남편이 밖에서는 도리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은 뒤부터 전생에 그에게 많은 빚을 져서 이런 고통을 받는가 보다 생각하며 그럭저럭 살아왔습니다. 스님, 저는 도대체 남편에게 무슨 나쁜 빚을 졌으며 금생에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묘법 노스님은 그녀의 원을 만족시켜 주었다. 이것은 아마 그녀가 여러 해 동안 염불한 감응일 것이다.
옛날에 부유한 상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처첩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의 집에는 얼굴이 예쁜 여종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반하여 그녀를 강제로 차지하였으며, 온갖 말로 구워 삶으면서 기회가 되면 그녀를 첩으로 삼겠다고 언약하였다.
과거의 여인은 정절을 중시하여 한평생 한 남편만을 섬기고자 하였다. 기왕 그의 여인이 되었으니 줄곧 첩이 될 그 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 주인은 기쁠 때는 그녀를 찾아와 짐승 같은 욕망을 발산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때리지 않으면 욕하였다.
여종은 온갖 고통에 처하여도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평생 소원을 실현하지 못하여 마음속에는 이 부자 상인에 대하여 뼈에 사무친 원한을 간직하게 된 것이다.
이 생에서 원한에 사무친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갈 여사는 바로 그 부자 상인이 바뀌어 태어난 것으로 그 여종이 받았던 고통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이며, 그녀의 남편은 바로 그 여종이 바뀌어 태어난 것으로 금생에 그녀를 향하여 전생의 누적된 원한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인연이 만날 때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갈 여사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있었으며,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참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스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었다. 평소 자기의 성격이 외향적이고 교제를 좋아하고 업무능력이 뛰어나며 남자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남편은 사람됨이 본분에 충실하고 실제적이며 깨끗이 씻고 닦는 것과 바느질하는 여성적인 일을 좋아하며, 자기에게 잘못 대하는 것 외에는 모든 사람에게 잘 대해주며, 여자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하였다.
그녀는 현재 자기가 받고 있는 고통은 자작자수(自作自受)로 생각하며 이후 다시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생에서 반드시 수행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다시는 윤회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묘법 스님은 그녀에게 매일 묵묵히 참회하고 아울러 『지장경』을 독송하여 전생의 여종에게 회향하라고 하였다. 믿고 받아들이면 반드시 나쁜 원인은 소멸되고, 좋은 인연은 증장하여 부부관계는 점점 개선될 것이라고 하셨다.
천 년 된 느릅나무와 체면 없는 남편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에 한 가정이 있었는데 식구는 셋이었다. 남편은 본분에 충실하고 아내는 부지런하고 재주가 있었으며, 17세의 딸은 예쁘고 귀여웠다. 보통 이러하면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그러나 “가정마다 한 가지 어려운 일은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우연한 기회에 그 집 부인이 나에게 여러 해 동안 벗어나기 어려운 고뇌를 털어놓았다.
그녀와 남편은 둘 다 농촌 출신으로서 결혼 전에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맞선을 볼 때 그녀는 남자가 말이 적고 행동거지가 고지식하다고 느꼈으며 마음속으로 이러한 남자는 반드시 착실하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승낙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 남편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나쁜 결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 입을 쩝쩝거린다거나, 국수를 먹을 때 아래, 윗층 이웃들이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이며, 밥을 먹을 때 콧물이 강을 건너도 여전히 머리도 안 들고 계속 밥을 먹는다고 한다.
손님이 있든지 없든지 불구하고 방귀를 뀌고 싶으면 조금도 꺼리지 않고 크게 방귀를 뀌어 같이 있는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데, 자기 자신은 오히려 조금도 난처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가 노파심에서 남몰래 충고를 해줘도 남편은 개의치 않고 고집불통같이 평소 자기 방식대로 한단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일부러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조금도 염치가 없어 자기와 딸을 일부러 난처하게 하는 것 같아서 일찍이 몇 차례 이혼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모두 친척, 친구들이 말려 그만두었는데, 그녀 자신은 남편만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고 하였다.
딸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 사랑의 결핍으로(아직까지 딸을 데리고 놀러간다거나 한번도 안아준 적이 없음) 아버지에 대하여 불만이 가득하며, 부친과 대화도 별로 없어 마치 길을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모녀 사이에는 대화를 잘 나누고 웃음소리가 나다가도 그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즉시 조용해진다고 한다.
불문(佛門)에 귀의한 이후로 딸과 그녀는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끊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하고 독경, 진언을 계속하고 있으며, 딸은 학교 수업 때문에 매일 오고 가는 길에서 「대비주」를 외우며 상당한 정진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일에 대해서는 다 이해하고 마음에서 놓을 수 있으나, 유독 남편에 대하여 생각이 미치면 화가 난단다.
본래 스스로 수행을 통하여 결혼생활의 고통을 줄이려고 하였으나, 채식(菜食) 이후 남편의 몸에서 나는 냄새조차도 맡기가 힘들어 아예 방을 따로 사용하며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방을 따로 쓴 지 3년이 되었으며, 내년에 딸이 대학에 들어가면 이혼하려고 한단다. 매일 이렇듯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현재 두통 등 여러 종류의 질병을 앓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이 여자를 보면서 나이 사십 몇 살 밖에 안 되었는데,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에 고통받아 안색이 초췌한 것이 병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이 숙세의 악연이 모여 그렇게 된 줄을 알지만, 나 같은 범부는 해결할 수 없어 묘법 노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은 이 가족에 얽힌 전생인연을 이야기하셨다.
그 부인은 과거 생에 가난한 남자로서 깊은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그는 읍내 약재상에 갔는데, 가게 점원이 그에게 말하기를 “듣건대 깊은 산 속에 천 년 된 느릅나무가 있다는데, 그 껍질이 매우 좋답니다. 만약 당신이 그 나무껍질을 채집해 오면 반드시 좋은 가격으로 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약을 채집하는 그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이번에 돈을 많이 벌면 아내를 맞이할 작정을 했고, 매우 기분이 좋았다. 바위를 타고 계곡을 건너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니 정말로 세 사람이 안아도 못 안을 만큼 오래된 느릅나무를 찾았다. 그는 예상외의 성과에 기뻐하며 도끼를 들고 나무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산 속 깊이 찾아오느라고 매우 피곤하여 도끼질을 얼마 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잠을 자면서 그는 꿈속에서 비취색 적삼을 입은 한 귀공자가 자기 앞에 꿇어앉아 울면서 말하기를 ‘저는 이 느릅나무 수신(樹神)으로 수련을 한 지 이미 천년이 다 되었습니다. 다시 3년만 더 수행하면 득도하여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나무껍질을 다 벗기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니, 당신이 3년 후에 다시 와서 나무껍질을 벗겨가기를 빕니다. 제가 신선이 되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치고 연달아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꿈속에서 크게 소리치며 “안돼, 안돼! 나는 아내를 얻는 게 급해. 3년을 기다릴 수 없어.”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보니 어디에도 그 공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껍질을 다 벗긴 후 껍질을 짊어지고 약재상에 들어갔다. 점원은 희색이 만면하여 서둘러 물건을 저울에 다는데, 일자무식인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고생하여 채집했는데 무게를 축나지 않게 해주게.”
점원이 답하기를 “안심하세요. 만약 제가 무게를 모자라게 달면 다음 생에 당신 아들이 될게요.”라고 하였다.
이 부인은 바로 과거생에 약을 채집하는 남자이며, 그의 남편은 바로 참담하게 껍질이 벗겨진 천년 된 느릅나무 수신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은 체면이 있어야 하며, 나무는 껍질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부인이 항상 자기 남편을 보고 ‘느릅나무 옹이같이 고집불통’이며 ‘체면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의 말이 정말 맞다.
사람의 성격, 습성은 그 사람의 전생의 경력, 경험과 매우 관계가 깊다. 약재상의 점원은 그 남자가 채집해온 느릅나무 껍질을 두 근이나 줄였으니 아들이 안 되고 도리어 딸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젊은 점원의 권유와 이익에 대한 유혹으로 인하여 천 년 된 느릅나무 수신의 도업(道業)을 망쳤으므로 점원은 바로 그 수신을 망치게 한 원흉인 셈이다.
따라서 금생에서 점원은 이 가정의 딸로 태어나 - 여자는 남자에 비하여 받는 고통이 더욱 크며 - 더더욱 그녀는 아빠의 사랑을 얻지 못한 딸이니 어찌 더욱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이것도 그들 부녀관계가 보통과 달리 냉담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준 뒤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전생과 금생의 인과를 이해하고 부인과 딸은 마땅히 진심으로 전생의 죄업을 참회해야 하며, 금생에 남편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원한의 마음을 가지게 된 잘못에 대해서도 참회해야 할 것입니다(아버지가 금생에 그와 같이 인정머리 없게 된 까닭은 모두 그들 모녀가 전생에 저지른 결과이다).
그런 뒤에 모녀가 함께 경건히 그 수신을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을 49번 독송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가정의 관계가 개선되어 인륜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부인과 딸이 독경, 송주를 3년간 하고 채식하며 염불한 감응인지, 인연이 성숙되어서인지 내가 묘법 스님의 법문을 그대로 전달한 후 그들 모녀는 꿈에서 깬 듯 기쁘게 믿고 받아들였다. 더욱이 그녀의 딸은 더욱 기뻐하며 엄마에게 말하기를,
“엄마, 엄마는 십수 년이나 아빠에게 성을 내면서 체면이 없다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 스스로 우리 아빠 체면(얼굴)을 깨끗이 벗겨냈었군요!”
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기 시작하였다.
보름 후 그 부인이 낙양에서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자기의 두통은 완전히 좋아졌으며, 그 밖의 병도 많이 가벼워졌다고 하였다. 지금은 『지장경』을 매일 두 시간 만에 한 번을 독송할 수 있으며, 남편도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지장경』 49번을 독송한 후에도 매일 한 번씩 독송하여 법계중생에게 회향하기로 결심하였으며, 법계중생 모두 『지장경』을 듣고 이치를 깨달아 큰 이익을 얻게 되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나도 매우 기뻤으며, 그들이 하루빨리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빌었다.
악연(惡緣)의 재생
진(秦) 여사는 어릴 적부터 영리하고 손재주가 있었으며 생긴 것도 예뻤다. 젊어서부터 자기가 사는 시에서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미용사가 되었다. 개혁 개방 이후 그녀는 미용실을 열어 지금은 규모가 꽤 큰 미용원으로 발전하였다.
진 여사는 모친에 대하여 특별히 효순하였으며, 모친이 임종할 때 그녀는 줄곧 침상 앞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여덟 시간이나 염불을 멈추지 않았다. 이에 감동되어 온 가족 열 몇 명이 함께 염불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두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일제히 소리치며 “오, 나는 관세음보살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와 동시에 병실에는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여 사람의 폐부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동시에 관세음보살이 모친 병상의 우측 상방에 강림하시는 것을 보았으나, 단지 진 여사만 모친이 미소를 머금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며, 아울러 부처님 세계의 음악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일시에 전 가족은 흥분하였으며 다시 모친을 보니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이미 왕생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온 가족은 불교를 믿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선량하며 경건한 진 여사는 일찍이 몇 번이나 나에게 그녀가 출가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였다.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알게 된 그녀의 출가 사유는 남편과 아무런 감정이 없으며, 자주 싸우고 어떤 때는 자기를 때린다고 하였다. 나는 매번 그녀에게 현실 도피를 위해서는 출가할 수 없다고 이해시켰다. 더욱 그녀에게는 보살핌과 양육이 필요한 미성년의 딸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울면서 전화를 걸어와 지금 나를 만나고 싶으며, 그렇지 않으면 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만나 보니, 그녀는 울면서 자기의 고통을 하소연하였다.
“우리는 방 세 개, 거실 한 개인 집에서 살고 있는데, 반년 전에 이 집을 샀습니다. 집 값 40만원은 전부 내가 번 돈입니다. 나와 남편이 함께 좋은 집을 선택한 후 내가 일이 너무 바빠서 저금통장을 그에게 건네주고 집 매매수속을 하게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들은 새 집의 열쇠를 받았지요. 나는 반평생 고생한 덕분에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좋아하였는데, 도저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흘 전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와 말하기를 ‘내일 20만원의 현금을 준비해. 늦어도 모레까지는 가지고 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멍해서 그에게 물었죠. ‘우리는 집 값 40만원을 다 지불하고 샀는데 어째서 20만원이 더 필요한 거죠?’라고 하자, 남편이 큰소리로 고함쳤습니다. ‘20만원만 지불하고 은행에서 20만원을 10년 만기로 대출을 받았어. 돈을 벌어보려고 남는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였는데 전부 날렸어. 본전을 건질 생각으로 새집을 저당잡히고 주식하는 친구에게 20만원을 빌려 다시 투자했는데 누가 알았겠냐, 또 전부 날렸어. 지금 그 친구가 돈을 요구하는데 갚지 못하면 집을 내주어야 해.’라고 하더군요.
정말 청천벽력,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그에게 왜 상의도 하지 않고 주식투자를 하였느냐고 질책하자, 그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도리어 손찌검까지 했습니다(그녀는 나에게 시퍼렇게 멍든 팔을 내보였다).
이제는 정말 살아갈 힘이 없어요. 비록 내가 전생에 그에게 빚을 졌다 할지라도 그럭저럭 양보하며 근 2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집안의 먹을 것, 쓸 것, 사는 집까지 모두 내가 번 것인데, 설마 아직까지도 그에게 빚을 다 갚지 못한 것입니까? 지금 남편의 빚을 다 갚으려면 미용실의 문을 닫아야 합니다. 만약 채무를 저당된 것으로 갚으려면 새집을 내주어야 합니다. 나는 사실상 납득할 수 없습니다. 묘법 노스님에게 전화를 해서라도 인과를 물어보고 알고 난 후 죽어도 죽고 싶습니다. 엉- 엉-.”
마음이 좀 가라앉고 나서 진 여사는 나에게 남편과의 결혼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내 동생이 문화대혁명시절 농촌으로 갔는데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써서 동생을 도시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데리고 어느 국장 집에 오고가면서 인연을 맺어왔지요. 국장의 부인이 나를 보더니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묻고 하였으며, 아울러 그녀의 남편을 설득하여 우리 집을 돕게 하였습니다. 그 후 모친이 국장 집에 홀로 가서 부탁하였고, 결국에는 동생을 도시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때 모친은 나와 국장 집 아들을 만나게 할 계획을 꾸민 것입니다. 나는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동생 일도 있고 해서 한번 만나보겠다고 승낙했지요. 만나서도 우리 둘은 공통의 대화를 찾지 못했습니다. 별 감정이 안 일어났었지요. 다만 생긴 게 점잖고, 또 대학을 졸업한 기관의 간부이니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모친의 반복된 설득에 마침내 결혼을 허락하였으며 동생도 뒤이어 만족한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첫날 밤 신랑이 옷을 벗고 잠을 잘 때 몸에서 많은 흰색의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하마터면 구토를 할 뻔했습니다. 이미 내 남편이 된 사람인데 얼굴, 목, 손을 제외한 전신에 고기비늘 같은 피부병이 퍼져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서 멍해졌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집을 도망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친의 눈물과 동생의 앞날, 나아가 사회의 비난을 생각하니 감히 그렇게 하질 못했고 운명이라고 단념했지요. 그 때서야 나는 우리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국장 집에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우리 집을 도와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을 위하여 내 일생을 망쳐놓은 것입니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병을 치료하라고 권했죠. 그는 이전에 치료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창피스러워 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많은 약을 사 주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치료하자고 권하자 나를 욕하고 때렸습니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와 한 침대에서 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접근하면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게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 나에게 폭력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상심이 되었고, 결혼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들은 방을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후에 임신을 하고 딸을 하나 낳았지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학교육을 받고 고급간부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이 의외로 최소한의 위생관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용한 그릇, 젓가락, 밥 먹고 남은 음식, 입었던 옷 등을 아무 데나 내던져 놓곤 하였습니다. 양말도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습니다.
십수 년 동안 하나도 바뀐 게 없습니다. 만약 그를 채근하지 않으면 목욕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런 나쁜 습관에 대하여 조그만 불만이라도 표시하면 당장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세상사람들에게는 유능한 신랑에다가 아름다운 신부,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였으며 행복한 가정이라 비쳤지요. 그러나 나는 얼굴에는 웃음을 띠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울고 지냈습니다.
한번은 내가 청도(靑島)에 출장 가서 해변가 여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쾌적한 방에 누워 파도소리를 들으며 낭만에 빠져들면서 나도 모르게 내 운명을 한탄하면서 눈물로 베개를 다 적시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늘은 왜 이렇게도 불공평한지, 이런 악한 남자에게 시집가게 된 것을 원망하였습니다. 설마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입니까?
갑자기 전설 속의 남해 관세음보살이 생각났고, 그 분은 대자대비하시니 나의 고난을 구제해 주실 것이며,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운명은 왜 이렇게 고생스럽습니까? 창 밖의 파도소리는 마치 나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해변 가로 갔습니다. 밤이 깊어 모래사장은 적막하며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응시하며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안 났습니다.
갑자기 어렴풋하게 관세음보살이 한 마리 고기를 타고 하늘과 바다가 접하는 곳에 서 계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억울함, 원한, 희망 등이 마음으로 몰려들었지요. 나는 모래사장에 꿇어앉아 멀리 관세음보살을 바라보며 대성통곡을 하면서 나를 고해에서 구제해 주실 것을 한없이 빌었습니다.
그 후 나는 당신을 알고 나서 불교에 귀의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 날 내가 관세음보살께 기도한 감응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송경 예불을 해도 우리의 부부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도대체 내가 그에게 전생에 무슨 빚을 얼마나 졌는지,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듣자하니 김 사장의 가정문제를 묘법 노스님에게 의지하여 해결하였다고 하는데 저 대신 스님께 한번 여쭤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정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진 여사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그녀의 절망적인 심정을 보면서 나는 액운이 어떻게 이렇게 선량하고 효순하며 유능한 여인의 몸에 내려앉았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급히 전화를 걸어 스님께 구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그들 부부에 얽힌 인연을 이야기 하셨다.
대략 일백 년 전 작은 읍에 한 남자가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작은 식당을 열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모친은 이미 병으로 돌아갔으며 부친은 딸이 괴로움을 당할까 두려워 후처를 맞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식당 주인(즉 아버지)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5, 6세 가량 된 버려진 남자아이를 발견하였다. 그의 마음은 매일 식당 손님이 남기는 밥만으로도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크면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머슴으로 삼아도 되니 정말 일거양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집 외양간 안에 나무판으로 오두막을 지어 남자애를 그곳에 살게 하였다. 이 아이는 매일 그릇을 씻고 바닥을 청소하면서 남은 밥을 먹으며 살게 되었다. 주인과 딸의 눈에는 이 아이는 단지 말을 할 줄 아는 짐승으로 보게 되었으며, 두통과 열이 나고 모기가 물고 해도 내버려두면 저절로 괜찮았다. 어쨌든 이 아이의 목숨은 질겨서 잘 자랐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를 사람으로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시켰으며, 그와 말하는 사람도 매우 적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그에게 화를 풀면서 때리지 않으면 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히 말이 적고 멍청하게 되어 남들도 그를 모자라는 사람으로 대하게 되었다. 나중에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자 주인은 데릴사위를 맞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죽고 난 후 사위가 재산을 가로챌까 두려워하여 혼담이 들어오면 계속 미루면서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머슴의 마음을 떠보았다. 만약 딸이 머슴에게 시집가게 되면, 실제상 그는 단지 딸이 부리는 노예나 마찬가지이니 재산이 그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총명한’ 주인은 딸에게 틀림이 없을 혼인을 정하게 되었다. 딸은 비록 아버지의 명을 따를지라도 자연 멍청하고 더러운 남편과 같이 자려고 하지 않았으며, 일평생 다른 남자와 사통(私通)하며 사는 황당한 생활을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남편(머슴)은 일생 굴욕과 힘든 노역, 더러움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 이야기 가운데의 딸은 바로 지금의 진 여사이며, 머슴은 바로 진 여사의 남편이다. 그의 불량한 생활 습관은 전생에 가축 축사에서 살면서 형성된 것이며, 몸의 피부병은 전생에 모기에 물리며 장기간 더러운 환경 속에서 조성된 것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潽有斗, 債有主).”라고 하였다.
보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 거사가 금생에 고통스런 결혼의 전생인연이다. 전생의 머슴은 주인집에 일평생 일을 해주고도 한 푼의 노임도 받지 못하였으니, 금생에 빚을 받으러 온 것이다. 진 거사가 맞고 욕을 얻어먹는 것도 그녀가 전생에 머슴을 때리고 욕한 과보이며, 금생의 부부생활도 전생의 재현인 것이다.
“전생의 인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운명’은 정해진 것이며, 전생에 심은 인(因)으로 현생이 정해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며, 운(運)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진 여사가 전생에 악을 행하게 된 것은 거의 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금생에 그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며 심지가 선량하고 불법 듣기를 좋아하였으며, 또 불문에 귀의하여 채식하고 염불하였으니, 불법은 그녀를 도와 숙세의 빚을 없앨 수 있게 인도한 것이다. 따라서 진 여사는 자기 전생의 인연을 명백히 이해한 후 다시는 현재의 남편에 대하여 원한과 혐오의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금생에 성심으로 전세의 죄업을 참회하면서 자기의 허물을 크게 뉘우치고 남의 잘못을 논하지 않으면, 반드시 흉함이 길함으로 변할 것이며, 어려움은 상서로움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지장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많이 독송하여 전생의 머슴에게 회향하면, 진 여사의 남편에게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스피커를 누른 후 고개를 들어 진 여사가 조용히 앉아있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비는 지나가고 하늘이 맑게 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년이 흐른 후 진 여사가 두 번 전화를 걸어왔다. 한번은 불교서적을 구하기 위해서, 한번은 그녀의 업무가 특별히 바빠서 시간을 내어 한번 찾아오겠다고 말하였다. 음성을 들으니 매우 밝았다. 나는 긴 숨을 내쉬고 그들 부부가 하루빨리 숙세의 원한을 제거하여 가정이 화목하고 함께 난관을 돌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김사장과 이리의 악연
한번은 우리들 십여 명의 신도들이 오대산으로 묘법 노스님을 뵈러갔다. 그 날 우리들을 위하여 차를 운전한 김 사장은 어느 신도의 친구로서 모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불교를 믿지 않으나 필사적으로 친구를 도와주는 분이었다.
그는 자기가 새로 산 승용차를 운전하여 그렇게 먼 길을 달려온 것은 첫째 친구를 도와주기 위함이며, 둘째 일찍이 묘법 노스님의 신이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분을 직접 만나 뵙고 싶어서이며, 셋째는 그가 아직 불교성지인 오대산에 가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애석한 것은 첫째 날 우리들이 스님께 법을 청할 때 그는 차를 장거리 운전하여 피로가 극심하여 잠을 자게 된 것이다. 둘째 날 몇 분의 거사가 스님께 병을 앓게 되는 까닭을 물었을 때 스님은 무슨 동물을 죽였으며, 어떻게 죽였으며, 어떻게 먹었으며, 나아가 과거에 누구는 무슨 물건을 훔쳐서 얼마를 쓴 것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자 김 사장은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곤 하였다. 보아하니 그는 매우 흥분되고 긴장되며 또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보였다.
그 날 오후 그는 나를 찾아와 상의하기를 저녁에 단독으로 스님을 찾아뵙고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고 하였다. 인정에 이끌려 먼저 스님의 동의를 얻은 후 저녁에 그를 데리고 객방으로 갔다.
김 사장은 스님의 면전에 꿇어앉아 공경히 합장하며 삼배를 하였다. 그는 이미 스님께 큰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불법을 믿게 되었다(어제 우리들이 스님을 뵙고 예를 드릴 때 그는 문 밖에 서있었다).
자리에 앉은 후 김 사장은 근심 어린 얼굴로 자기의 고충을 이야기하였다.
“저와 아내는 결혼한 지 12년이 되었으며, 열 살 먹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저는 줄곧 제 이웃이며 9년 학교 동창인 이양과 연애를 했습니다. 이양과 저는 죽마고우라고 할 수 있는데, 사이가 깊어져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 때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되었는데, 아내의 외모, 업무 조건과 가정 환경은 모두 이양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모든 게 열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 무슨 귀신에 홀린 것처럼 지금의 아내를 한번 만나 정이 생겼고, 친척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 3일째 때에야 친척, 친구들이 집에 오고 저의 부모도 보살펴주고 하였습니다.
이때 제 친구들이 저희 집에 들어오며 축하해주면서 제게 말하기를 ‘이 친구야! 정말 형편없군. 결혼하고도 형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네 경사스런 술을 마실까봐 겁이 났나!’고 농을 했지요.
저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미안해, 갑작스레 결혼을 하는 바람에 인사가 빠졌네. 용서하게!’ 이때 신부가 뒤이어 담배와 사탕을 가져왔습니다.
‘어, 김군! 자네가 우리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알겠군. 알고 보니 신부가 이렇게 예뻐서 우리가 빼앗아 갈까 겁이 났군 그래.’
저도 웃으면서 ‘예쁘기는 무슨, 못생겼지. 나는 벌써 약간 후회된다네!’라고 대답했지요.
그런데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신부가 몸을 돌리더니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저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저도 일시에 두 눈에 불꽃이 일고 방안의 모든 사람들도 놀라 멍해졌습니다. 새 신부는 울고불고 야단을 쳤습니다. 저는 제가 따귀를 맞은 영문을 도저히 알 수 없었으며, 뒤이어 화가 불같이 일어 그녀를 매우 심하게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올렸던 두 손을 내려놓고 이성을 되찾아 생각하기를 일단 때리게 되면 이웃들이 비웃을 것이고 부모님도 화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두 친구의 사과와 여러 사람의 만류에 저는 노기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참았습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우리 부부는 수없이 싸웠으며 여섯 차례나 이혼할 뻔하였으며, 그 중 두 번은 의복과 가구를 그녀가 가져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이혼수속을 할 때마다 언제나 친척, 친구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은 내 마음속에 줄곧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혼하려 해도 언제나 이혼하지 못하니 정말 이상합니다. 스님께 가르침을 청하오니 깊이 살펴주십시오.”
김 사장이 말할 때 묘법 노스님은 두 눈을 가늘게 감고 들으면서 사색에 잠기는 듯하였다. 이때 스님은 눈을 들어 김 사장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갈 때 흰색 공작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흰 공작이 꼬리를 펼칠 때 정말 우아하고 보기 좋다고 느낍니다.”
“삼생(三生) 전에 당신은 산 아래 어느 촌에서 남자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당신은 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하면서 산에 서식하는 흰 공작을 알게 되었으며, 매번 흰 공작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흰 공작도 당신과 노는 것을 좋아했지요. 서로 사랑이 생기고 정도 생겼습니다. 그 다음 생에 당신은 여전히 남자 몸으로, 흰 공작은 여자 몸으로 태어나 전생의 정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축생에서 바로 몸을 바꿔왔기 때문에 비록 사람의 몸이 되었으나 금수(禽獸)의 습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부부는 자주 싸우게 되었지요. 당신은 화가 날 때 자주 그녀를 때렸으나 그녀는 여인으로서 당신을 때릴 수 없어 자연히 마음에 원한을 쌓게 되었습니다.
다시 생을 바꿔 당신은 다시 남자 몸으로 태어났는데, 입은 옷이 마치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 같군요. 어느 날 당신이 수레를 밀고 산길을 올라갈 때 갑자기 산 위에서 이리 한 마리가 달려오자 수레 위에서 쇠사슬로 이리와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후 이리는 당신에게 맞아 땅에 넘어졌으며, 사슬로 이리의 목을 감고 힘껏 조이자 이리는 발버둥치다가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이리를 길가에 버려 두고 수레를 밀고 갔습니다. 잠시 후 이리는 죽지 않고 깨어났으나 신경을 다쳐 사지가 마비되었습니다. 이리의 울부짖는 소리는 다른 이리들을 불러모았으며, 그들이 이리를 이리 집으로 끌고 갔으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묘법 스님은 김 사장이 그의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것을 보고 또 물었다.
“당신 아내의 목 위쪽에 흰색의 불규칙한 흔적이 없습니까?”
이 말을 듣고 그는 대경실색하듯 말하였다.
“있습니다. 있습니다.”
스님은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온화하게 말하였다.
“당신은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개인의 신체 형태, 얼굴 모습, 나아가 태에서 띠고 나온 기호(흔적), 손금, 성격 심지어 아름답고 추함, 희고 까만 피부색 모두 전세에 지은 업과 관계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태산보다 높습니다. 당신이 평소 마음이 선량하고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여 비록 부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이번에 불교신자들을 도와 멀리 이곳까지 와 예불하고 법을 듣게 한 까닭으로 오늘 당신에게 인과에 관하여 설파하게 된 것입니다. 기왕 설하였으니 해결할 방법을 일러 주겠습니다.
당신은 당신 옆에 자는 사람을 이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실제로 사람입니다. 우리 각 개인은 무시 이래로 육도에 윤회하면서 어떤 세계든지 갈 가능성이 있으며, 부처님과 조사(祖師)도 이전에 사슴 왕 등 축생이 되어 세간에 몸을 나타냈습니다. 내가 다시 한 가지 일을 묻겠습니다. 당신은 일찍이 몇 명의 여자에게 절의 입장표를 사준 적이 있습니까?”
김 사장은 또 한번 놀라워하며 “있습니다.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몇 명의 여공들이 부처님께 예불하고 기도하고 싶었으나 표가 비싸 사지 못하는 것을 보고 표를 사서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일을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남들이 모르기를 원하면 오직 자기가 안 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선악을 막론하고 모두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면 제가 지은 나쁜 일도 모두 아시겠네요?”
“제불 보살, 천지귀신은 모두 알고 모두 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선은 받들어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제 아내는 이후 저에게 목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당신이 사십 몇 살이 될 때를 기다려 어느 날 저녁 당신이 집에 돌아온 후 사소한 일 때문에 또 아내와 싸우게 되고 아울러 돈으로 그녀를 몇 차례 때린 후 당신은 잠을 잘 것입니다. 아내는 한바탕 울고 난 후 독한 마음을 품고 전깃줄을 찾아 한쪽 침대에 당신 발을 묶고 전깃줄로 당신 목을 감고 힘껏 잡아당길 것입니다. 당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녀는 손을 놓은 후 잠시 안정을 취한 뒤 자기의 잘못을 알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당신 몸을 밀고 당기고 하면서 고함치게 될 것인데, 생각지도 않게 당신은 죽지 않고 두 눈을 뜰 것이나 목 아래는 감각을 잃어 마비될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김 사장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는 갑자기 스님 앞에 꿇어앉아 두려운 듯 말하였다.
“스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5, 6년 전 어느 날 백화점을 구경하고 문을 나올 때 일인데, 어떤 사람이 휠체어를 밀면서 들어올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째 저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인가.’ 그러나 연령이 저보다는 많고 보아하니 사십 몇 살쯤 되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제가 아니고 다시 보니 여전히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저는 며칠 동안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내가 사십 몇 살 때 이러한 마비환자가 될 것을 예언하는 것은 아닌가?’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맞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이러한 어려움이 닥칠 것 같습니다. 스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거두어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지금부터 불문에 귀의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벌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스님은 웃으며 말하였다. “일어나세요. 불교에 귀의하는 일은 절에서 당신에게 연락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 액난을 없앨 수 있는 관건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먼저 진심으로 전생에 싸우고 사람을 때린 일과 이리를 살해한 과실에 대하여 참회해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대웅전에 가서 예불하고 참회하십시오. 집에 돌아간 후 집에 불당(佛堂)을 모셔놓으면 더욱 좋습니다. 만약 집에 모시기가 불편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부처님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다만 매일 시간이 있을 때 지난 생에 당신에게 상해를 입고 마비되어 죽은 이리를 위하여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염송하십시오. 한번 염송하는 데 10여 분이 소요되니 시간에 따라 하루 몇 번을 염송해도 좋습니다. 염송할 때 반드시 고요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성심으로 이리에게 회향해야 할 것입니다. 이리를 도와 복보(福報)가 증가하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이리가 당신에 대한 원한심을 소멸하게 되면, 아내는 당신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이 더해질 것이며, 가정도 점점 화목하게 바뀌게 되어 본래 발생될 것으로 정해져 있던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계는 마음을 따라 바뀐다’는 이치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바뀌면 당신 집의 분위기, 환경도 바뀔 것이며, 나쁜 기운이 화하여 상서로운 기운으로, 번뇌는 보리(菩提)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법은 오직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萬法唯心造).
당신은 이곳을 떠난 후 많은 선지식을 가까이 해야 하며, 과거의 형과 친구들에게 현신설법(現身說法)으로 그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한가할 때는 경전을 많이 읽고 자기의 지혜를 증장시켜야 합니다. 평소 밖으로 나갈 때 산책을 하거나 차를 운전할 때 쓸데없는 말은 적게 하고, ‘나무관세음보살’의 성호를 항상 마음속에서 올라오도록 하여 이근(耳根)을 충만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 경쟁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 폭리를 취해서도 안 되며, 의롭지 않은 재물은 얻어서도 안 되며, 모름지기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자기를 해치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후로 다시는 자기의 양심에 거리끼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며,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여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면 당신의 공장은 무너지지 않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나를 스승으로 모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전수하는 불법에 따라 실천하면, 비로소 당신은 진정한 불제자가 될 것이며, 천룡이 보호하고 제불보살이 가피를 내릴 것입니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비록 당신이 불교에 귀의하였더라도 불문제자가 아니며, 부처님의 가호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김 사장은 줄곧 공경스럽게 스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스님의 물음에 서둘러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스님. 저는 본래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차도 마시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닭, 오리, 생선 등 모든 육식을 끊겠습니다.”
뒷이야기는 다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재의 김 사장은 가정이 화목하며 공장은 일감도 많아서 명실상부한 김 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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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중에서
아내의 학대
남녀의 혼인을 보아하니
착하고 악한 인연이 모이지 않은 것이 없고
아들딸로 태어남은 빚을 받으러,
빚을 갚으러 오지 않음이 없구나.
1994년 여름 하북성(河北省) 어느 절에 오십여 세의 거사가 와서 스님께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였다.
“본래 저희 부부는 사이가 좋았으나 아내가 첫째 아이를 낳은 후부터 성격이 비뚤어져 부부싸움이 잦아졌습니다. 싸울 때는 저를 때리고 할퀴고 꼬집어 제 몸과 얼굴에 항상 상처가 없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록 마음속으로는 괴롭고 화가 나지만 아직 아내를 때려 본 적이 없으며, 그녀에 대하여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후에 아이가 하나 더 생겼는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그야말로 집에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원인 때문에 일찍이 불문(佛門)에 귀의하였으며, 부득이하여 앞당겨 퇴직을 하였습니다. 퇴직 후에는 거처를 절로 옮겨 거주하고 있습니다. 퇴직 연금은 식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집으로 보내어 두 아이의 학비에 보태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는 연금이 얼마 되지 않아 아내의 성질은 더욱더 나쁘게 변했습니다. 지금 병이 들었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정말 이 세상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스님! 저에게 밝은 길을 일러 주십시오.”
“아미타불!”
줄곧 자세히 듣고 계시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사님은 전생에 돼지새끼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어미돼지를 교배시켜 새끼를 낳으면 팔아 돈을 장만하곤 하였습니다. 한 배 한 배 연이어 새끼를 낳으면 당신은 새끼돼지를 팔아버리니, 어미돼지는 낳는 고통뿐만 아니라 새끼를 잃는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물도 사람과 같이 감정이 있는데, 그 당시의 어미돼지는 거사님에 대하여 원한이 가득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어미돼지가 늙어 다시는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었을 때, 거사님은 어미돼지를 팔아 죽게 하였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미돼지의 모든 새끼를 팔아버렸으며 죽을 때도 비참하게 도살되었으니, 당신을 놓아줄 수 있겠습니까? 금생에 다시 만나 전생의 원한을 갚게 된 것입니다.”
거사는 흥분되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이 원한을 풀 수 있습니까?
아예 출가하면 끝날 수 있을까요?”
“출가를 해요?
첫째, 거사님은 두 아들을 떠날 수 없습니다. 거사님은 그들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삼 일 보지 못하면 잠을 잘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렇습니다. 스님!”
“그리고 두 아들은 오히려 엄마와의 관계가 더 좋습니다. 거사님은 설령 출가를 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거사님의 처지는 지금보다 더욱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스님은 웃으며 물었다.
“거사님은 정말로 원한을 풀 생각이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스님!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러면 거사님은 이 모든 것을 유쾌한 마음으로 맞이하십시오.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가 때려도 되갚아 때리지 말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말 것이며, 역경(逆境)을 순경(順境)으로 받아들여 기꺼이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해 헌신하십시오. 진정으로 과거생의 죄업을 참회하면 하늘 가득한 큰 죄도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밖에 매일 아침, 저녁예불을 지속하면서 매일 『지장경』 1부를 독송하여 어미돼지와 새끼들에게 회향할 것이며, ‘양황보참’으로 항상 절하면서 참회하십시오. 이미 퇴직하였으니 가정 일을 돌보는 외에 마음을 독경(讀經)과 예불참회에 쏟으세요. 이렇게 하면 출가한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정성이 깊으면 금석(金石)도 쪼갤 수 있으니, 참회를 오래도록 지속하면 얼음같이 꽁꽁 언 원한도 풀리고 녹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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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참회기도법중에서
인천광역시 부평에는 1921년 신유생 할머니가 계십니다...이분의 이름을 밝힐 만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여서는 부평보살님이라 칭하겠습니다...
부평보살님은 18세에 시집을 가서 23세에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23세라면 두아이와 함께 부부의 정을 나누며 한창 재미있게 살 나이인데 그때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그 바람은 밖에서만 끝나는 바람이 아니었습니다.사귀는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잘 해주기를 상전처럼 하면서 본부인은 식모나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싫어지면 버리고 또 다른 여자룰 데리고 들어와서 희희낙락하는 것이었습니다.심지어는 그여자들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아이들까지 본부인에게 키우도록 맡겼습니다..말할 수 없이 속이 상한 부평보살이 가끔 항의를 하면 남편은 절대로 큰소리를 치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습니다..대신 아이들을 때리고 빌길질하고 집어던지기까지 하였습니다..모성애가 지극했던 부평보살님은 자식들에게 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고 견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7년 된 부평보살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무작정 집을 떠났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계룡산 신흥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공주 갑사의 부속암자인 신흥암은 천진보탑이 있는 유명한 기도도량입니다...
온 산천이 꽁꽁 얼어붙은 음력 섣달 부평보살은 신흥암에서 삼칠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새벽 2시에 일어나 계곡의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한 다음 밤 12시까지 기도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또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를 했습니다.그야말로 하루종일 기도하면서 그녀는 부처님게 여쭈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와 그 사람 사이에 무엇이 어떻게 얽혀 있어 그토록 애를 먹이나까 부디 가르쳐 주옵소서"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삼칠일 기도를 한 마지막날 저녁 부평보살은 절을 하다가 엎드린 채 깜빡 눈을 감았습니다 순간 어떤전경이 눈앞에 확 펼쳐졌습니다..
그녀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과 싸움을 하고 있었숩니다.처음에는 말로만 다투다가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서로가 멱살을 잡고 치고박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싸우다가 함게 받에 넘어져 엎치락뒤치락 하였습니다.
그때 불끈 한 생각이 치솟았습니다..
"이걸 그냥 죽여버려야지"
주위를 살폈더니 마침 칼이 하나 보였고 그 칼을 집어 상대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자 다시 칼을 뽑아 또 찔럽습니다.결국 상대는 쓰러져고 싸움은 끝났습니다..
죽었구나 내가이겼다
그렇게 생각하며 칼을 집어던지 일어서는데 죽었던 그 사람이 따라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아 내가 저사람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저사람이 나를 죽일 것이 문득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삳대편이 방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네가 나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죽일 차례다 그리고 칼을 들고 쫓아왔으므로 피하다가 피하다가 꼼짝 달싹도 할 수 없는 모퉁이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그 사람은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목에다 대고 말했습니다...
너는 나를 단 두 번의 칼질로 쉽게 죽였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바짝바짝 마르는 너의 모습을 즐긴 다음 죽일 것이다..
불과 1~2분 사이 부평보살은 절하다가 엎드려 채 이러한 꿈을 꾸고 깨어났습니다..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지금의 내 남편은 남편이 아니구나 꿈 속에서 내가 죽인 사람이 나를 바짝박짝 말려 죽인다고 하더니 금생에 남편이 되어 나를 말려 죽이려 한 거시구나
그날 이후 부평보살은 남편이 하는 일에 한마디의 불평도 반항도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았습니다.하지만 남편의 복수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 자유당 시절 남편은 서울 을지로 3가에 6층짜리 빌딩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활동을 하다가 모두 날려 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빌려쓰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돈을 빌릴 때는 반드시 부인의 인감을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자 남편은 중풍으로 쓰러졌고 부평보살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용하다는 의사를 모셔와서 치료했습니다.3년이 지나자 남편은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작은 마누라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년 뒤 남편은 두 번째로 쓰러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저 세상 사람이 되었으나 남기고 간 빚은 모두 부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자신이 낳은 자식 둘과 남편이 바람을 피워 얻은 여섯 아이등 8남매를 기르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부평보살님은 다행히도 기도를 하여 전생의 업보를 깨달았습니다..그결과 전생의 빚을 갚는 자세로 기꺼이 받으며 살았기에 마음 고생은 덜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흥암의 기도 이후 깊은 참회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만약 부평보살님이 지난 생의 잘못을 녹이는 참회기도에 몰두 하였다면 훨씬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