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설에도 집에 가지 못한 손톱이 긴 매춘부들이 건네주는 오징어 튀김의 유혹에 굴복하진 않았다. 나중에 떨
어질 매와 꾸지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것은 다 더럽혀져도 자존심만큼은 더럽힐 수 없었다.
그리곤 어느덧 해질녘.........
이미 비밀이 다 까발려졌을 아홉 가구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간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다. 엄마한테 연탄집게로 맞으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문간 앞을 흐르는 시궁창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갔지만 아무도 나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었
다.
내게 일제히 안됐다는 시선을 던지며 몰려들었어야 할 사람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냄비를 들고 왔다갔다했고, 문
짝에 기대 입을 가리고 웃었으며, 수돗가에 몰려나와 쌀을 일며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수돗가에서 시래기를 다듬다 마주친 엄마도 너 점심 굶고 어디 갔다 왔냐, 하는 지청구조차 내리지 않았
다. 나는 무척 혼돈스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짜고 그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얼
른 눈사람을 천연덕스럽게 세워두었던 변소통 쪽을 돌아다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람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물론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어야 할 짠지 단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짐작하고 또 생각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는 이렇듯
머나먼 거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감은 사실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프레한 깨달음에 속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나를 상대하지도 혼내지도 않는 세계가 너무나 괴물스럽고 슬퍼서 싱거운 눈물이라도 흘려야 직성이 풀
릴 듯했다. 하긴 눈물 서너 방울쯤 짜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