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의 시간 진은영 검고 뾰족한 모자를 쓴 여자, 교훈을 싫어하는 여자다 권태로 새하얘진 아이들의 혓바닥을 칼로 긁어대며 자두향기 쏟아지는 그늘로 데려갔다 그녀는 우리의 작은 귓속에 술을 부었다 처음 마신 포도주 같은 이야기들 보랏빛 가죽주머니에선 날카로운 시간을 꺼내주었다 없을 땐 마시던 술병을 내리쳤지 그녀와 함께 누운 모래밭의 밤하늘 검은 미꾸라지들이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찔리며 파닥거렸다 더 캄캄한 날엔 그녀가 쏟아졌지, 사내아이들의 몸속으로 어두운 복도에 달린 단 하나의 좁은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지듯 또 무엇을 훔칠 수 있을까 불은 꺼졌고 공기는 한없이 차가운데 아이들의 흰 목덜미에 은하수처럼 길게 빛나는 스카프를 칭칭 감아주고 검은 기차를 타고서 그녀는 떠났다 선 밖으로 몸을 내미는 것은 위험합니다 플랫폼 푯말을 쓰러뜨리며 창밖으로 가슴을 내밀어 마지막 인사를 해주었지 우리는 하늘처럼 파란 젤리를 씹으며 오래 묵은 담배냄새가 피어나는 꽃잎무늬 소파에 앉아 그녀가 보낸 엽서들을 큰소리로 따라 읽었다 얘들아, 도시가 점점 납작해져 끈적거리는 누런 기름접시처럼 납작해지면 내가 준 참나무 설거지통에 담가주길 또는, 새로 만든 도시의 카달로그를 동봉한다 밤공기의 부드러운 혀를 찢고 그녀의 모자가 별처럼 솟아오르길 작은 아이들은 공책 밖으로 삐져나오는 연습을 하고 조금 자란 아이들은 황도대 밖으로 새들을 쫓아내며 계속되는 추위 속에서 우리는 그녀가 두고 간 탬버린처럼 몸을 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