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한 재 먹어야 올해 버틸 텐데
노병철
영천 손한방병원의 손재림 원장님과는 젊은 시설 인연이 좀 있어 자주 만나 뵙는 사이였다. 그러고는 연이 닿지 않아 몇십 년을 뵙지 못하고 바람에 묻어오는 이야기만 접하고 있었는데 경주에 엄청나게 큰 ‘손재림 화폐박물관’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을 참 많이 버신 모양이다. 당시 영천 한약 시장은 대구 약전골목만큼이나 유명했고 전국에서 한약 지으러 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게 중 손 원장의 한약은 관절통에 즉효라는 소문이 돌아 엄청나게 환자가 몰린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구 외과 근처로 기억된다. 지금은 종합병원이 된 구병원 근처에 성서 조약국이란 곳이 있었다. 말이 약국이지 사실은 한의원이었다. 성서에 있는 조(趙)씨 성을 가진 양반이 약을 잘 짓는다고 하여 성서조약국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진짜 이름은 흥생한의원이다. 약국이라고 해서 진짜 약국인 줄 알고 찾는 사람도 많았다.
이 성서 조약국 아니 흥생한의원이 당시 경북 한의사회 회장까지 역임한 조경제 원장님이 그 주인공이다. 흑염소 파는 이경제 이름만 나오면 난 자꾸 조경제 원장이 떠오른다. 조 원장은 12남매를 두었는데 위로 아들 셋을 병으로 잃고 난 뒤 한의학 공부에 매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예전 한의원엔 다 그랬듯이 종이로 한약을 두어 첩 싸주는 그런 풍경을 여기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성서조약국이 있다. 거창에 가면 자생의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지금은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보존하고 있다. 경남에서 날리던 외과 의사였던 성수현 원장이 돌아가시고 그 자손들이 거창군에 기부해서 만든 박물관이다. 옛날 흥생한의원은 거창의 자생의원처럼 박물관같이 그냥 보존하고 있다. 그 자리 건너편에 조경제 원장 셋째 아들 조덕래 한의사가 그의 딸 조현정 한의사와 함께 보생조한의원이란 간판으로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혜산(慧山)이란 호를 가지고 있던 조경제 원장은 아흔이 넘도록 진료했다. 그만큼 정정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대구한의대를 만드신 변정환 명예총장도 아흔이 넘었지만 지금도 제한한의원에서 진료한다. 아마도 한약을 가까이하신 분들이라 활력이 넘치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파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뚜껑을 열어 먹으려고 하니 엄동설한 혹한이라 밥과 반찬이 얼어붙어서 젓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조 원장이 생전에 일기를 모아 책으로 냈었다. 3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온 일기장이 70여 권이나 되었다. 그 책 이름이 ‘푸른숲’이었다. 오랫동안 쓴 일기도 있고 수필도 있고 자식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적었다. 당신이 만든 푸른방송국에서 출판기념식을 열었고 인근 허병원 원장님과 같이 들러 덩달아 한 권 얻은 기억이 있다.
“집에 고약 있나?”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고약 찾고 있노.”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분은 까만 약제를 기름종이에 싸서 종기 난 부위에 붙이는 고약(膏藥)이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중국을 거쳐 조선에 온 신부가 부스럼이나 종기에 이 약을 처방했고 당시 성당에서 심부름하던 한 소년에게 이 약을 전수하게 된다. 그가 바로 이명래라는 분이다. 약방에 가서 고약 달라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줬던 그 이명래 고약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당시 고약은 거의 만병통치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에 비상약으로 항상 있었다.
치료제며 영양제라곤 별다른 게 없었던 시절, 한방은 이렇게 최근까지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약방은 이제 거의 다 없어지고 한의원으로 바뀌었다. 약전골목에 구수한 한약 냄새를 맡으며 걷다 보니 별생각이 다 난다. 이곳에서 약재상 하시던 친척 형님도 이제 돌아가셔서 누가 그 가업을 이어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은 서울 가서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맥 짚어 진단하고 침 맞고 뜸을 뜨고 한약을 짓는 행위가 이제 한물갔는지 한의사 후배들이 늘 울상이다. 이제 고약을 아는 세대들이 떠나고 나면 한방이란 의학도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언젠가 씹은 한약 한 사발 들이키고 땀 푹 내면 다 나았던 그 시절을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제 사위가 한의원 하는데 한번 가보세요.
장모님 앞으로 달아놓고 보약 한 제 지어가세요. ㅎㅎ
저도 보약 한 제 ~.
장모님 앞으로 달아 놓고 ~. ㅋ
@小 珍 (박기옥) 소진선생님은 너무 건강하셔서 필요없어요. ㅋ
천여개가 넘는 한의원에 일일히 전화를 다 돌리고 있습니다.
"혹 장모님 성함이 조 아무개 아니냐"고.
언젠가 찾겠지요.
꼭 한재 얻어 먹고 말겁니다.
저는 한방을 믿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두통이 심하여 사진 찍으니 머리의 작은 혈관들이 막혔다고 하여 주사를 맞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의원 가서 침을 맞았는데 깜쪽 같이 나았고,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는 운동을 하며 마른 풀을 달여 먹기도 한답니다. 아이들은 야만인이라고 하지만 자연 치유가 되어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