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보다 더 밝은 태양은
캔버스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해결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의 도움 없이도,
화가는 나름 그들만의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바로 밝음과 어두움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너도 전공이 시지각인데, 미술에 관심을 좀 둬야 하는 거 아니야?”
훅 들어온 선배의 말이었다. 내가 시지각을 하는데, 왜 굳이 미술을? 그런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 있는 선배도, 후배도 미술 전공. ‘음… 그래야 하는 건가?’ 아마도 그때였었던 것 같다. 만화 이외에는 시각 예술을 가까이하지 않던 내가, 시간 날 때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즐겨보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시점은.
화가와 심리학자의 공통점
시지각 심리학자와 화가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모두 세상과 마음을 연결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화가는 3차원인 세상을 2차원인 캔버스에 표현하여 관람자의 마음에 전달하려는 사람들이고, 시지각 심리학자는 2차원인 망막에 맺힌 3차원의 세상이 어떻게 마음에서 해석되는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눈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 보이지 않는 과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도 머리가 아프지만, 세상을 캔버스에 표현하는 화가의 심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2차원인 캔버스에 3차원의 세상을 욱여넣는 원근법만 해도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최초의 원근법 그림이라고 하는 마사쵸의 성 삼위일체를 보고 르네상스 시절의 사람들은 충격을 먹을 만큼 혁신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화가의 노력, 아마도 그것이 그림 속에 감춰진 땀이 아닐까?
캔버스보다 밝은 색을 칠하는 방법?
캔버스가 갖는 한계는 입체감뿐이 아니다. 밝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캔버스를 하얀색이라고 지각하는 이유는 광원으로부터 온 빛 에너지의 대부분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대략 빛의 80~90%를 반사하면 우리는 흰색이라고 지각하는데, 이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밝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캔버스보다 더 밝은 태양은 캔버스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해결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캔버스보다 더 밝은 물감을 개발하는 것이다. 최근 개발된 ‘울트라 화이트 페인트’라고 하는 물감은 빛의 98.1%를 반사하는 역대 가장 밝은 흰색이다. 이 물감을 칠하면 캔버스보다도 밝은 흰색을 구현할 수 있다.
보이지 않아도, 캔버스에서 나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주연은 빛이겠지만, 조연은 바로 옆에 있는 어둠이다. 렘브란트, 작업실의 화가. 1629년 작. 캔버스의 오일.
빛과 어둠의 상부상조
하지만 이런 과학의 도움 없이도, 화가는 나름 그들만의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 바로 밝음과 어두움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두운 색을 밝은 색 옆에 배치해서 밝은 색의 밝음이 더 밝아 보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대비를 잘 사용한 화가들이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나 렘브란트로 대표되는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비해서 대비를 강조하면서 전반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끌어냈다.
위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업실의 화가’라는 작품이다. 제목을 보면 주인공이 화가인 것 같지만, 사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화가가 아니라 가운데에 놓여 있는 캔버스이다. 캔버스는 뒷면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의 그림을 우리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강렬한 빛을 담고 있는 그 캔버스는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처럼 밝은 빛의 옆에는 어둡게 칠한 캔버스의 뒷면이 있다. 밝은 햇빛의 색은 어두운 캔버스 뒷면의 색을 만나, 강렬한 대비 효과를 일으키면서 캔버스보다 더 밝은 태양의 빛을 담아냈던 것이다.
주변의 밝기가 주는 효과
이런 대비 효과는 시지각의 영역에서는 일찍부터 연구되어 온 주제이다. 복잡한 시각 환경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하나의 개별적인 대상을 구분하여 독립적으로만 처리하기보다는 주변의 정보도 함께 처리한다. 아래의 그림을 잠시 보자. 아래의 그림에는 2개의 원이 겹쳐 있다. 안의 작은 원은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운, 즉 위에서 아래로 점차 어두워지는 형태를 띠고 있고, 반대로 밖의 큰 원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차 밝아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밝기의 대비가 강해서 어느 정도의 입체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안에 있는 작은 원의 밝기가 아래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균질한 회색의 원이라는 사실이다. 믿음이 부족한 독자들이라면, 주변의 큰 원을 손으로 가리고 안의 원만을 보기를 바란다.
안쪽 원은 실제로 균일한 회색으로 채워져 있지만, 주변과의 대비 효과로 인해 위쪽은 밝게 아래쪽은 어둡게 보인다.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일종의 착시인데,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밝아지는 밖의 큰 원 때문에, 안쪽 원의 밝기도 다르게 지각된다. 작은 원의 윗부분은 주변이 어두우니, 대비 효과로 더 밝아 보이게 되고, 아랫부분은 주변이 밝으니 상대적으로 더 어두워 보인다.
화가의 대비, 심리학자의 대비
대비는 시각 정보 처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의 대비가 강한 곳은 한 사물의 경계가 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시각 시스템은 대비를 탐지하는 데에 매우 민감하며, 더 나아가 대비를 지각적으로 강화한다. 즉,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맞닿아 있으면, 어두운 면은 더 어둡게, 밝은 면은 더 밝게 보인다. 이와 같은 대비 강화는 경계를 더 쉽게 탐지하려는 시각 시스템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는 대비를 사용하여 빛과 어둠의 차이를 극대화하고 그 결과 캔버스보다 밝은 태양의 빛을 그린다. 이는 시지각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시각 시스템의 대비 강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화가들이 시지각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대비의 효과를 알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가들은 그들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대비의 기법을 만들고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세상을 마음과 연결하려는 화가와 시지각 심리학자는 이렇게 서로 닿아 있는 셈이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