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시대
모든 국가에서 운송 규제기관의 임무는 고객에게 동일한 요금을 징수하고 동일한 서비스를 받도록 함이다. 차별금지가 원칙이다. 철도 화물열차는 며칠 보관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다른 고객에는 즉시 반환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요금 및 서비스를 통제하는 계약은 본질적으로 차별이 포함되기 때문에 규제기관의 반감을 샀다. 바다를 이동하는 화물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운송업체는 그런 지연에 무관심하다. 정시 배송해도 보너스가 없고 늦어도 페널티가 없기 때문이다. 포드 자동차는 화물열차 운송사와 지연 시 15분마다 벌금을 내기로 포드사와 계약을 했다. 60량 편성의 열차에 화차당 저렴한 요금을 지불하고 열차 편성이 적으면 화차당 높은 요금을 지급함에 동의했다. 해운사들은 1984년부터 계약 불이행, 위약금 등의 용어로 가득한 유사한 거래를 하게 되었다.
금융 부문의 규제 완화와 관련된 행정 역량의 부족은 재앙으로 판명됐다. 러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은 은행 신설을 쉽게 하고 은행 감독을 완화하며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차입할 수 있도록 하라는 국제적 지침에 굴복했다. 이 세 국가는 모두 금융규제 완화로 1998년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했으며, 세계화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백만 명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켰다. 세계은행조차도 자신들의 조언이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인정하고 전문가들은 “1990년대의 경험은 민영화와 규제가 둘 다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라고 회한에 찬 시인을 했다.
북미 미국과 캐나다는 별도 절차 없이 완성차를 국경 너머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는 방어적이었다.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외국인 투자를 금지했다. 19세기 영토의 절반을 미국에 빼앗긴 역사 때문에 다시 북쪽의 침입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멕시코 제조업은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했을 때 낙후됐다. 멕시코 공산품은 거의 해외 수출을 못 했다. GATT에 가입하면 관세율을 낮춰야 하므로 가입을 거부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가 수출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비난하거나, 수입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주장할 때, GATT 규정은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무기력한 종이호랑이로 간주했다. 1986년 수십 명의 무역장관이 참가한 ‘우루과이’의 ‘푼다고 델에 그에소’ 개최된 회담이 이러한 문제를 수정하고자 했다.
북미가 NAFTA를 비준했을 때, 유럽공동체는 15국으로 확장되고, EU로 변모하고 있었다.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우루과이 협상이 시작한 지, 8년 뒤 1994년 4월 모로코에서 체결됐다. 최종적으로 농업 보조금 축소부터 서비스 무역 개시에 이르는 많은 문제를 합의했다. 세계화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진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만든 의류 및 수입 쿼터가 없어지면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같은 세계 경제와 연결되지 않았던 나라들이 의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관세가 비용에 미치는 영향에 걱정할 필요 없이 한 국가에서 제품을 제조하고 다른 국가로 배송할 수 있었다.
1973년 석유 위기는 하룻밤에 상황을 바꿨다. 유조선 수요가 감소했다. 주문한 선박의 인도를 거부했다. 이 시기 한국이 조선업에 진출했다. 이전 10년은 한국은 노동집약적 제품의 수출에 의존했지만, 임금이 상승하자 정부는 노동비용을 줄이고 노동자가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중공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포항제철은 역사상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벤처기업이다. 1980년 9개 조선소에 1985년까지 5개의 조선소를 추가로 건설할 것을 제안한, 조선업 발전 계획이 뒤따랐다. 당시 한국은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조선소가 없었다. 한국 정부는 재벌 기업에 세금 면제, 외화 접근 권한, 해외 대출에 국가 보증을 제공하였다. 현대는 유조선을 반으로 나눠 건조를 요구하는 외국 설계사와 사업을 시작했으나 경험 부족으로 완성된 반쪽이 맞지 않아, 약속 납품 기일을 놓친다. 인수가 거부되자 해당 선박을 활용하여 운수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현대상선이 세계 주요 선박회사에 이름을 올린다.
1990년까지 한국의 선박 생산량은 1975년보다 8배 증가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전보다 훨씬 적은 톤수를 생산한다. 일본은 138개의 토크 중 50개를 폐쇄하고 11만 9천 개의 일자리를 없애는 ‘반 불황카르텔’을 조직했다. 전통적으로 상인과 금융업자는 이윤을 목적으로 상선에 투자했다. 서독 정부는 조세 회피처를 찾는 부유한 시민들에게 외항선 투자를 장려했다. 독일의 최대 항구 함부르크를 해운업계의 월스트리트로 탈바꿈시켰고,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운송할 방법을 제공했다. 소련이 지배하는 동유럽을 막아 함부르크는 엘베강에서 바지선이 다닐 도시들로 향하는 화물을 처리할 수 없었다. 그리스가 세법을 변경하자 서독의 선주사들은 2년에 631척의 선적을 서독에서 그리스로 이전했다. 이는 서독의 세수를 위협했다.
국제무역에 ‘보조금 subsidy’라는 용어의 정확한 정의는 없다. 거의 모든 상업적 활동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던 시절에는 정부가 자국 농부나 제조업자를 돕는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제사상은 보조금을 받는 수출은 축복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무관심을 정당화했다. 석유 위기는 수출 보조금을 통상전쟁의 도구로 만들었다. 일본의 통상산업성은 번영하려면 값싼 에너지나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은 이제는 ‘지식산업’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자동차, 첨단 전자 제품 및 정밀 기계를 판매하는 부유한 국가로 성장해야 했다.
많은 가난한 나라와 달리 한국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 개발도상국으로 특이하게 글을 읽는 노동력을 제공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수출 신제품을 찾던 한국 기업들에 큰 이점이 됐다. 식품과 원자재가 수출의 5분의 4를 차지하던 한국은, 제조업으로 14배 성장했다. 만성적가국인 한국은 1986년 흑자로 전환되어 1988년 세계 10대 무역 대국이 되었고 인플레이션을 적용해도 1960년 보다, 1인당 소득은 8배 올랐다. 반도체 산업은 한국의 성공 사례였다. 무역흑자는 2014년 1,080억 달러로 급증했다. 한국은 대규모 중간재 수출국이 되었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제품보다 한국의 반도체와 광학 장치에 더 많이 의존했다.
1980년대 중국은 국제 경제적 관점에서 존재감이 없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혼란은 중국을 뒤집어 놓았다. 1978년 덩샤오핑은 일본과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우리는 후진적이고 우리의 많은 방식이 부적절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선언한 이후 시작됐다. 집권 이후 10개년 계획은 철강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고 제련소, 유전, 발전소와 철도를 건설하기 위한 단기적이며 집중적인 노력을 요구했다. 이 계획을 실현 시기에는 중국이 동원할 수단이 부족했다. 이 계획은 소비재 생산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낙후된 중국의 농업 부문이 현대화로 쫓겨난 수천만 명의 농민공을 흡수할 수 있었고, 생활 수준 향상으로 필요한 소비재를 공급할 수 있었다. 중국은 장시간 노동에 익숙하며 저렴하고 순종적인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전체 과정에 이바지했다. 1980년 2배로 늘어난 국제무역은 곧 벽에 부딪혔다. 외국인 투자는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소유한 기업과 합작투자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정부의 요구로 중국 투자에 불신이 생긴 것이다.
19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경제 개혁이 1980년대 후반이 되자 경제 성장은 둔화하였다. 임금인상은 급격하게 이뤄졌고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에 이른다. 내부 부패에 대한 분노와 더욱 민주적인 정치체제의 요구는 전국적으로 이어져 1989년 베이징 ‘톄안먼광장’에 투입된 군대가 수천 명의 시위대를 살해하는 사태로 절정에 달했다. 잠재적 공룡시장인 중국을 다국적 기업은 WTO 가입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최종합의는 중국은 관세를 자동차는 80%에서 25%로, 유럽 파스타는 25%에서 15%로, 미국산 냉동 돼지고기는 20%에서 12%로 인하하기로 했다. 외국 기업은 중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중국제 부품을 사용 요구를 받지 않아도 됐다. 통신 분야 합작기업은 외국인 지분이 최대 49%까지 허용했다. 각 국가의 특정한 상업적 이익의 우선권을 반영하는 수천 개의 약속을 하는 대가로 중국은 142개국 수출시장의 고객들에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고 WTO 규정에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는 허용되지 않은 방식으로 수입 및 무역 관련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다.
2023.07.17.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