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쉬움
모든 일에는 항상 기대와 아쉬움이란 단어가 공존하는 법이겠습니다만 올 여름에도 많은 팬들이 아쉬워 할 만한 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역시 가장 큰 아쉬움은 오랜기간 팀(혹은 리그)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이 팬들과 작별을 고한다는 것이겠죠. 물론 이러한 작별은 벽에 똥칠을 할 때까지 축구를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상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상황이긴 합니다. 다만 막상 그 시기와 조우할 때 느끼는 그 애매모호한 느낌 - 마치 피자를 자장면 소스에 찍어먹는 듯한 - 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지겠죠. 이번에는 떠나가는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썰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베르더 브레멘의 주장이었던 프랑크 바우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물론 브레멘 팬분들이 느끼시는 상실감을 글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도 무모한 일이 되겠지만 지난 시즌 올리네이터를 떠나보냈던 바이에른 팬들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네요. 더군다나 칸은 선수생활을 해먹을 대로 해먹었던 나이였을 뿐더러 미리 은퇴가 예고되어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33세라는 다소 어린(?) 나이였던 바우만은 예고편이나 스포일러도 없이 은퇴를 선언해 그 충격은 더 크리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1년 정도는 더 팀에 남아있을 것이라 예상을 했던터라 좀 놀라기도 했었죠. 어쨌든 바우만은 클라우스 알로프스의 오른팔이 되어 이제는 구단 프런트에서 활약하게 됐습니다.
1999년에 뉘른베르크에서 브레멘으로 이적해 10년간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중앙 수비수와 스위퍼, 그리고 홀딩 미드필더로 뛰며 2004년 역사적인 '더블'의 주역이 되기도 했었던 바우만의 프로필은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사실 전 바우만에 대해 조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기억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는데 2000년대 초반 모 카페에서 바우만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붙은 바 있습니다. 당시 브레멘은 프랑크 페어라트, 바우만, 그리고 믈라덴 크르슈타이치로 이어지는 쓰리백을 사용했었는데 이 수비진의 중심축이 누구냐는 논쟁이었죠. 크르슈타이치야 팀 내 짬밥이 부족해서 이 논란을 자동적으로 피해갔고 핵심은 페어라트와 바우만 두 명이었습니다. 당시 전 얄짤없이 페어라트의 손을 들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 페어라트와 바우만의 경험차가 고려된 선택이었죠. 사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바우만이 리그 정상급의 특출난 수비수는 아니었으니깐요.(그나저나 페어라트 이 아저씨는 뭐하는지, 참 좋아했던 수비수인데 말이죠)
각설하고 뭔가 '어설프고 연약하게 보였던' 바우만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그가 홀딩 미드필더로 전업하게 된 이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아들러 마크를 달긴 했지만 바우만은 2002년 정도까지 독일 대표팀에서 그다지 의미있는 선수는 아니었죠. 물론 옌스 노보트니라는 당대 최고 수비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루디 푈러 당시 분데스트레이너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구요. 그러나 간간히 미드필더로 나섰던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주목한 푈러가 바우만을 홀딩 미드필더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대박을 치게 됩니다. 좁은 지역에서의 엄청난 활동량과 태클링을 바탕으로 상대의 볼 포제션을 뺏어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 것이죠. 이 활약상은 소속팀 브레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게 됩니다.
바우만은 커리어 내내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도 한 선수죠. 위기순간에 팀을 응집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가 부족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라운드에서의 성실한 자세와 모범적인 사생활로 동료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에페나 칸이 사생활은 개떡같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위권 클럽에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주장이었지요. 브레멘 커리어를 동고동락한 토마스 샤프 감독의 듬직한 오른팔로 자리했고 오랜 기간 주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팀을 이끌어온 공로는 잊혀지지 않을 겝니다. 어쨌든 브레멘 팬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약올리냐구요? 팀의 레전드 목록에 한 명이 더 추가됐는데 어찌 경축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외에도 몇몇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했지요. 독일 대표팀의 왼쪽 풀백이었던 미카엘 타르나트는 결국 부상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류 무대에서의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타르나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유고전에서 터뜨린 '무지막지'한 왼발 프리킥 골로 여전히 회자되는 양반이시기도 하죠. 다만 왼발 프리킥에 가려진 그의 훌륭한 대인방어 능력과 수비력도 응당 기억되어야 할 부분이겠죠. 그러한 점이 대표팀에서 크리스티안 치게와 건강한 라이버리를 형성했던 원동력이기도 하구요. 비록 부상이 선수생활의 말년을 망쳐놨습니다만 현역 시절 큰 부상 없이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다는 점은 후배 선수들이 배워야 할 점입니다. 2007~2008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 부분은 좀 아쉬움이 남네요. 그 당시 "가족 중에는 현역 생활 연장을 더 이상 설득할 사람도 남아있지 않아요. 설득한다면 아마 우리집 개일껄요"라고 했는데... 정말 개가 설득을 시킨건지..^^
쾰른과 헤르타 베를린의 '원 클럽맨'인 마티아스 슈레츠와 크리스티안 피들러도 올 시즌을 끝으로 리그를 떠납니다. 슈레츠도 바우만과 마찬가지로 1999년 쾰른에 입사해 10년 근속을 채운 경우죠. 1부와 2부를 들락날락했던 쾰른의 최근 10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지켰다는 점은 정말 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에 오랜 기간 조커로 투입되는 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불평불만없이 중앙이든 날개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왔는 점, 쾰른의 팬들 역시 참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즌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을 품고 태업(?)을 일삼았던 - 전 그렇게 생각한다능 - 어떤 선수는 슈레츠를 보면서 뭔가 느끼는 게 있어야 할 겝니다. 쾰른의 팬들이 잘 도닥거려 주겠지요.
피들러는 근속기간으로만 보면 리그 짱이지요. 헤르타 유스팀에 입단한 게 1991년이니깐 20년 가까이 이 수도팀에 머문 셈이 되겠습니다. 사실 피들러는 소시적 독일 U-21팀 주전 멤버로 활약한 경력도 있고 그 실력도 리그 내에서 검증된 선수죠. 그러나 15년 이상을 뛰면서 리그 출장은 137회에 그쳤습니다. 초창기에는 볼품없는 헐랭이 추리닝의 가보르 키랄리에게 밀렸고, 해가 좀 뜨는가 했더만 게르하르트 트렘멜과 피말리는 주전 싸움을 벌여야했었고, 결국 말년에는 야로슬라프 드로브니에게 골문을 넘겼던 비운의 주인공이죠. 피들러는 다음 시즌부터 헤르타의 골키퍼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선수를 떠나 리그 전체로 시선을 확대시켜보죠. 감독 쪽에서는 크리스토프 다움이 가장 진한 아쉬움을 남기는 인물이겠죠. 전 아직도 다움이 신병치료차 쾰른을 방문했을 때 "우리 좀 살려주셈"이라며 간청했던 쾰른 팬들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코카인 파동 등으로 인해 비주류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그 능력만은 독일 내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다움은 터키에 떼인 돈이 있는지 다시 터키로의 컴백을 결정했다네요. 다움이 다져놓은 토대 속에 재기를 꿈꿨던 쾰른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됐습니다. 어디서 이런 감독을 데려오나요. 뭐 다움이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는 독일 축구 기득권에 대한 반발 - 인간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 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면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다움이 '쾰른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 -> 중상위권 팀의 감독으로 능력을 발휘 -> 유로 2012 감독?'의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밟아나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터키로 떠난 이상 언제 다시 독일로 돌아올 지 알 수 없는 형국이고(어쩌면 영원히 바이-바이일지도) 결국 다움이 가진 역량과 이상이 독일 축구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도 가져보네요. 어찌됐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다움의 축구인생은 꼬이고 꼬여버려 이제는 풀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축구계 전체의 손실이라 생각합니다.
프런트 쪽에서는 미카엘 A. 로트 뉘른베르크 회장과 디터 회네스 헤르타 베를린 단장이 책상을 비웠습니다. 73세의 고령인 로트는 두 차례에 걸쳐(1979년부터 1983년까지,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뉘른베르크의 회장직을 역임한 팀 현대사의 산증인인데요. 지지난 시즌 뉘른베르크가 강등될 당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홀로 측은히 그라운드를 거닐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띵받은 팬들을 막아서며 그들을 설득시키던 모습도 기억에 남구요. 울리 회네스의 승승장구와는 반대로 동생 디터는 계약기간을 1년 남긴 상태에서 팀 단장직을 사퇴했습니다. 13년 간 헤르타 구단 내의 요직을 담당했던 회네스는 클럽의 장기전략에서 구단 수뇌부와 마찰을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회네스가 야심차게 세웠던 3년 계획(첫 시즌은 10위권 내, 두 번째는 유럽클럽대항전 진출, 세 번째는 리그 우승에 도전)이 이제 마지막 시즌에 이른 상황인데 좀 아쉽네요. 루시앵 파브레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면서 두 번째까지는 잘 온 셈인데 마지막 고비는 내부에 있었던 셈이니깐요.
어찌됐건 이 인물들이 영원히 지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 아니니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추억의 인물들을 볼 수 있게 되겠죠. 한영애 선생께서는 일찍이 "변하는 건 당연해. 어떻게가 중요해"라고 노래하셨더랬죠. 이 인물들이 어떻게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지, 진심어린 박수로 격려를 해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건승을 기원합니다.
http://blog.naver.com/skullboy
첫댓글 skullboy님 항상 글 잘읽고 있습니다^^ 근데 직업이 무엇이신지요?? ㅋ 너무 글을 잘쓰시네요... 이러한 여러가지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도 궁금할 따름...
동감이에요..ㅎㅎ 언제 필체가 좋으시구여...제가 아는걸로는 예전에 사커라인 분데스리가 필진이셨던걸로 알고 잇습니당..ㅎㅎ///확실친 않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