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입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 위에 함께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진리를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본문 주해)
예레미야 애가는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런데 3장은 알파벳 하나로 3절씩 노래한다. 그러므로 총 66절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구조는 시의 화자가 ‘나’로 시작하여(1~39) ‘우리’가 되었다가(40~47) 다시 ‘나’로 마감이 된다(48~66).
1~3절 :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새번역)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분노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즉 자기 백성에게 내려진 재난을 모두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4~6절 : “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새번역)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내린 재앙으로 인해 선지자 자기의 온몸이 부서져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음을 하소연한다.
7~9절 : “내가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 가두시고, 무거운 족쇄를 채우시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다듬은 돌로 담을 쌓아서 내 앞길을 가로막아, 길을 가는 나를 괴롭히신다.”(새번역)
부르짖어 기도하는데도 기도를 물리쳤다고 한다.
예레미야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 부르짖는데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물리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를 물리치신 것을 보게 한다.
10~12절 : “주님께서는, 엎드려서 나를 노리는 곰과 같고, 몰래 숨어서 나를 노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길을 잘못 들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외롭게 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새번역)
하나님께서 곰과 사자처럼 달려들어 나를 찢으신다. 또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셨다고 한다.
‘죄’는 화살이 목표에 빗나갔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 나로 표현된 예레미야는 자신이 화살의 과녁이 되었다는 것이다. 화살통의 화살들이 자신의 허리를 맞추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를 말한다.
13~15절 :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쓸개즙으로 나를 배불리시고, 쓴 쑥으로 내 배를 채우신다.”(새번역)
화살은 선지자의 심장을 관통하고 백성들은 그를 비웃고 수모를 가한다. 쓰디쓴 고통은 마치 쑥과 담즙으로 배를 채우는 모양과 같다.
16~18절 : “돌로 내 이를 바수시고, 나의 얼굴을 땅에 비비신다. 내게서 평안을 빼앗으시니, 나는 행복을 잊고 말았다.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이제 내게서는 찬란함도 사라지고,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새번역)
스스로가 복을 버렸기 때문에 결국 평강에서 멀리 떠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나의 묵상)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오늘 어찌 이렇게 무서운 분이 되었는가?
그것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유다의 책임이다.
그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과 함께 자신이 당하는 처절한 슬픔으로 노래하고 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죄로 인하여 이런 고난을 당하지만, 예수님은 죄 없이 이런 고난을 당하셨다.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과 인내를 거두시고 진노의 매로 다스리심에 숨이 막힌다.
모두가 내가 당해야 할 일들인데.....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참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일임을 매일, 매순간 확인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들이 겪는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게 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게 하심으로 성도들을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으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은 절망이 아니라, 참된 소망을 가지게 한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누리게 되는 일이다.
십자가 위에 나의 옛 사람이 죽었음을 선포하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게 하신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고 깊다.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죽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같이 흐르네
그의 생명 내 속에, 그의 능력 내 안에, 그의 소망 내 삶에, 나의 삶 주의 것
십자가 십자가 그 위에 나 죽었네 그 사랑 내 속에 강같이 흐르네”
어제 금요기도회 때에 십자가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내 삶이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텁텁하고 아름답지 못하지만(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러기에 내게 주님이 더욱 계셔주셔야만 함을 생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하였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옛 사람의 본성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아들의 생명, 그 새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와 유다의 짙은 슬픔을 대하며 가슴이 철렁한다. 그러나 내게 예수님이 계시니 나는 슬픔의 노래가 아닌, 기쁨의 찬송을 부르는 자가 되었다.
(묵상 기도)
주님,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의 탄식을 들으며
그 절망 한가운데서 살아갔을 저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영원히 멸망 당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존재를
주님께서 온갖 고난과 수모를 당하시고
또 죽으심으로 먼지 같은 생명을 구해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할 때
비록 먼지 같은 인생이지만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로 향하는 이 달음박질이 멈추지 않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