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의 나쁜 아이에게 / 구윤재
누가 이 모래밭의 나쁜 아이지?* 내가 묻자 풀숲에서 은사시나무였던 은수가 걸어 나온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은수를 보는데 오랜만에 보는 은수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은수, 어린 은수는 입술이 부르튼 은수. 땅에 오래 묻혀 있던 은수. 머리 사이사이에 어린잎이 자란 은수, 은수를 불러내기까지 내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이제 은수보다 세 마디 정도 높은 시선. 은수를 내려다보는 나. 나를 올려다보는 은수. 나는 훤히 내려다보이는 은수를 꼭 끌어안는다.
은수야 너한테서 짙은 흙냄새가 나. 할머니를 두꺼비집에 넣을 때 맡았던 냄새가 나. 세 마디나 더 자란 내게는 은수에게 말할 것이 세 마디만큼 쌓였는데 말할 것이 너무 많아서 이제 네게는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겠구나.
은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은수라서
나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다. 은수야 너는 너무 작다. 품 안의 은수를 떼어내 내가 은수의 어깨를 잡고 은수를 본다. 작은 나무 같은 은수. 를 가만히 보면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잊게 됩니다. 앞에 있는 공만
쫓아가게 됩니다. 속이 상한 내가 은수의 어깨에 배에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은수의 무릎에 시선을 두면서, 아직도 딱지가 앉지 않으면 어떻게 해. 나는 무릎을 꿇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철봉 매달리기를 했던 날 생긴 피탁지를 떼어낸다. 자꾸만 잎이 떨어지는 너를 어떡하면 좋지. 내가 은수를 올려다본다. 멀리 내다보는 은수에게 은수야, 속으로 부르면 저 멀리서 가장 높은 철봉보다도 큰 은수가 지민아 지민아 울먹이면서 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덜 자란 지민이가 풀숲에서 나와 두리번거리는 은수에게 간다.
*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한유주 옮김, 마티, 2022, 99쪽
2024년 24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작 / <문학과사회> 2024년 여름호 ------------------------------
* 구윤재 시인 2000년 경기 고양 일산 출생. 2024년 <문학과사회>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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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각각의 원고에 담긴 질곡과 시간을 모르는 채로 많은 원고를 마주했다. 심사에 참여하게 되어 큰 부담과 떨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놀라게 할 새로운 시를 고대하는 마음도 들었다. 압도되는 경험을 기다리는 것이 모순된 기대임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을 다 없앨 수는 없었다.
본심에 오른 7명(구윤재, 김하은, 모연지, 소이랑, 안진, 윤수진, 이순재) 중에 구윤재, 윤수진, 이순재의 시가 마지막까지 경합했다. 그 외에도 내가 주목한 작품들은 김하은과 안진의 시였다.
구윤재의 시에는 강렬한 이미지나 말을 제시하는 대담함이 있고, 제시한 모티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었다. 그는 시를 쓰는 과정 자체가 허구적 상황의 전개가 되는 현장성 있는 언어를 구사한다. 시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는 사변적 상상력과 익숙한 시공간을 뒤섞는다. 그렇게 언어가 움직이는 와중에 아이들이 불쑥 튀어나와 말하거나 움직이고, 다시 언어의 뒤로 숨기도 한다. 그 숨바꼭질 같은 활달함이 읽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경합하는 작품들 가운데 한 작가의 것만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당선자의 대담하면서도 탄탄한 언어에 결국 설득되었다. 당선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아쉽게 손을 들어주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응원의 인사를 전한다.
- 이희우(『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시를 읽고 쓰면서 점점 드는 생각은 시는 목소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물론이고 읽는 입장에서도 발화자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말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가. 목소리에 힘이 생기는 순간은 어떤 식으로 발생하는가. 이런 질문을 손에 쥐고 신인문학상 응모작들을 읽어나갔다. 발화 위치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만들어나가는 시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고 최종적으로 모연지, 황성하, 이순재, 윤수진, 구윤재에게 주목했다.
구윤재의 시를 읽어나가면서는 조마조마한 마음보다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다. 발화자가 미리 상상한 내용이나 툭 던진 질문이 그다음 문장을 발생시키는 진행 방식이 작위적이지 않고 흥미로웠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기대하면서 따라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시작점에서 한껏 멀어진 결말에 이르러서는 여기까지 데려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시 속으로 끌어들인 인물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한편 시 쓰는 행위가 언어의 길항작용임을 이해하고 있는 태도에 신뢰가 갔다. 수상자를 정하기까지 오랜 논의가 있었지만 막상 구윤재의 시에 마음을 모았을 때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당선자의 시에서 앞으로 만나게 될 인물들과 그로부터 흘러나올 단단한 목소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임승유 (시인)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도 적지 않은 수의 응모자가 작품을 보내주었다. 언제부터인가 응모자의 숫자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시를 쓰고자 하는 응모자 수의 변화가 어쩌면 열렬히 시를 읽고 있는 독자 수의 변화를 어느 정도는 짐작게 한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응모자 수가 조금 줄어 아쉽기는 했지만, 예심과 본심의 과정을 거치며 이런 아쉬움이 기대와 안심으로 바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우리 곁에는 시인이 될 만한 사람들, 그리고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로 충분한 듯하다.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 중 관심 있게 읽었던 것은 구윤재, 소이랑, 이순재의 작품들이었다. 구윤재의 시가 만들어내는 선명한 이미지들에 호감이 갔다. 감각적으로 뚜렷한 이미지들이 갖는 매력을 오랜만에 확인하게 되는 작품들이었다. 구윤재의 시를 읽으며 누군가에 대한, 어떤 시절에 대한, 미지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결국 선명한 감각의 기억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소이랑의 작품들은 관념적으로 읽혔다. 그러면서도 한 편 한 편의 작품들이 각각 특색 있게 새롭기도 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장미는 여전히도 장미」 같은 시는 ‘장미’처럼 흔하디흔한 시적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그리고 그 단어를 반복적으로 호출하면서도, 어떤 문장도 익숙하게 읽히지 않도록 배치했다는 점이 꽤 흥미로웠다. 자신만의 시적 문법을 잘 다듬어나갈 충분한 잠재력을 갖춘 응모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순재의 작품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각 작품마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시적 기획이 굉장히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익숙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획을 작위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게끔 추진해나가는 능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작품성만을 놓고 보았을 때 당선작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얼핏 익숙해 보일 수도 있는 시적 기획이 결정을 망설이게 만들기도 했다.
본심을 진행하면서 심사위원들이 가장 많이 나눴던 말은 개성 혹은 새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남다른 시적 재능을 갖췄다고 확신하게 되는 응모자가 여럿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작품은 선배 시인의 독특한 분위기나 특정 작품들과 오버랩되어 읽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어떤 문장이, 때로는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시적 전략이 특정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해마다의 심사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이기도 한데, 사실 기시감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어떤 느낌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응모자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장면과 문장들이 더 재빨리 눈에 띄기 때문에 생겨나는 효과인지도. 이제 막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위의 응모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흥미롭게 개척하기를 바란다. 이후의 작업들이 응모자들의 초기작들을 전혀 새롭게 다시 읽게 해줄 훌륭한 준거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는 물론 시인만의 몫이 아니라 독자인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구윤재 씨의 당선을 충분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린다.
- 조연정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가득히 도착한 시편들 사이에 앉아 다양한 언어와 세계와 사람 들이 시 쓰는 마음 하나로 모인 이 계절을 실감했다. 시를 읽는 이편의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어 반갑고 기뻤다. 나는 시를 쓰는 일을 블록 놀이에 빗대어 생각해보곤 한다. 블록 조각을 대하는 손길과 쌓거나 잇는 마음, 공간을 만드는 방식과 사람 모형을 배치하는 자리, 배경을 생각하는 시야 같은 것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고, 다름이 시를 제각각 살아있게 한다. 그 각각의 놀이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 역시 개별적이라는 점에서, 시를 읽는 일도 같은 놀이에 빗대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놀이들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시 너머의 사람이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의 성격에 초점을 두어 시를 읽고, 어떤 이유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를 많이 질문했다. 선택의 이유가 확장되고 연결될 수 있을 세계를 가만히 헤아려보면서, 10편 내외의 응모 원고 다음을 기다리게 되는 시편들에 마음을 기울였다.
당선작 「접시 되살리기」 외 9편은 무언가 있던 자리에서 부재 이전의 기억을 끌어안거나, 그저 없는 것을 결핍된 것으로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 반복에서 거듭 읽히는 것은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소외된 채로 있는 것을 그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떨어져 있는 것들을 둥글게 뭉치고 붙여 시는 환영 같은 장면을 만들고, 그 이미지에 기대어 시간을 흐르는 동시에 고이게 만든다. 내일이 눈앞이 하얘지는 빛 속처럼 불투명한 공백으로 여겨질 때, 시는 채우는 방식으로 텅 비어가는 슬픔과 두려움에 가까이 닿는다. 그러나 이 시편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슬픔 자체이기보다 둥근 반복을 투명하게 지켜보는 오랜 시선이다. 고이는 마음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 대한 고민이 시를 쓰는 동력이라면, 그 안에서 언어는 드러나는 것보다 더 큰 몸체의 육중한 무게를 굴리는 중일 것이다. 그 무게의 소리에 천천히 귀 기울이는 마음으로, 구윤재의 「접시 되살리기」 외 9편에 기쁘게 손을 얹는다. 다정과 응원을 담아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드린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빗방울 하나하나가 어딘가 표면에 닿아 만들고 있을 무수한 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10편 내외의 응모작 안에는 시를 읽고 써온 오랜 시간과 그동안 쓰고 지운 글자들이 촘촘히 소리를 모으며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소리들의 켜를 다시 반가이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서로 다른 깊이와 질감의 언어로 도착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 홍성희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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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아이들이 달린다.
장소를 떠날 때마다 떠난 장소에 나의 부분을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장소에서 수많은 내가 여전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며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있을 것만 같다. 이를테면 강가에서. 빛이 물결을 반죽하는 풍경 속에서. 버드나무가 새를 감추는 천변에서. 빈 벤치에서. 아직은 이름이 없는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를 처음 만났던 골목에서. 점심시간의 분주한 카페에서.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모두가 빠져나간 운동장에서. 육교에서. 파편이 되어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아이들이 달린다.
때때로 너무 많은 아이를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면 숨보다 웃음이 먼저 차오르는 아이들에게. 아무도 땅을 외치지 않아서 준비 자세만 반복하던 아이들에게. 이제는 시작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슬프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건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곁에서 함께 뛰는 것. 차오르는 숨이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무한의 장소까지.
아이들이 달린다.
함께 달렸던, 달리는, 달릴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 구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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